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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현대 요리의 국적을 따지는 일

단 단 2016. 1. 19. 00:00

 

 

 

 


신간 요리책들을 보면서 참 재미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보는 건 '퓨전' 음식들인데, 어떤 요리에서는 심지어 서너 개 국가의 음식 영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음식들의 국적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위의 사진을 한번 보십시오. 바질 오일로 맛낸 반건조 토마토, 타라곤으로 맛낸 브리오쉬, 롭스터 콕테일(프론 콕테일prawn cocktail의 변주)이 올라와 있습니다. 전식starter이죠. 이태리-프랑스-영국적 요소가 동시에 보입니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면 그 나라 음식으로 몰아서 봐줄 수 있지만, 이 경우엔 세 요소가 양적으로 거의 같은 비중을 가집니다.


이 요리의 국적은?

 

으음...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죠.


그래도 억지로 국적을 부여하자면,
저는 영국음식으로 쳐주겠습니다.


왜냐?
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굳이 하나 골라야만 한다면 롭스터 콕테일이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요리책에도 요리 이름을 "Lobster cocktail with oven-dried cherry tomatoes"라고 지어 올렸어요. 요리 이름을 지을 땐 대개 그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맨 앞으로 빼지요.

 

그리고, 영국 요리사가 조합해 낸 음식이라서요. 요리사의 국적을 쳐주는 거죠. 게다가, 요리책 제목이 <British Seafood>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양반이 이걸 “나는 이태리 음식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어.” 하면 그냥 이태리 음식이 되는 겁니다. 예술작품과 똑같죠. 해석과 규정이 난해할 땐 그저 '작가의 변'을 중심으로 논할 수밖에요.

 


더 재미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의 에그스 베네딕트Eggs Benedict 볼 때마다 웃게 돼요. 맛 끝내주죠. 그런데 이 에그스 베네딕트의 구성 요소를 보면 딱히 미국스러운 게 없어요.


잉글리쉬 머핀 (영국)
동그란 등심 베이컨 (캐나다), 혹은, 훈제연어 (유럽풍)
수란 (유럽풍, 특히, 프랑스)
올랑데즈 소스 (프랑스)

 

순 남의 것 갖다 '조립'한 거죠. 그래도 미국음식입니다. 이미 있는 것들 끌어다 조합해 근사한 새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엄연히 창작입니다.


참, 저 올랑데즈 소스sauce Hollandaise 말입니다. 저것도 재미있는 게, 저게 프랑스 소스인데 이름이 저렇습니다. 유래가 어떻든 아무도 저 소스를 홀란드 소스라고 생각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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