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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쥐는 법 고찰 본문

차나 한 잔

찻잔 쥐는 법 고찰

단 단 2012. 2. 24. 04:48

 

 

 

 

 

동양은 작은 찻잔 하나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사유한다. 막 피어 올린 가녀린 움싹을 유린 당한 차나무에게 진실로 머리를 숙인다. 특히 차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차나무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또한 일일이 한 순 한 순 찻잎을 채집해서 덖고 비비기를 거듭해 차를 만들어 준 제다인의 노고에 감사한다. 이제 이런 귀한 차를 입에 머금고 주변과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찻잔 속의 귀한 차를 마음 속에 떠올리며 너와 나,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귀한 차, 귀한 생각이 담긴 찻잔은 그래서 두 손으로 꼭 안아야 하는 귀한 보석 같은 존재이다. 보석 같은 귀한 존재를 만든 사기장은 더 귀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찻잔 하나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고 동양의 정서 위에 찻사발 짓기를 해야 할 이유다.

 

- 김동현, 《茶器, 작은 공간의 미학》

 

 



그렇습니다. 한국식·일본식 찻사발을 들어올릴 때는 반드시 두 손으로 공손하게 감싸 안아야만 합니다. 일단, 한 손으로 들기엔 찻국물이 많아 무겁잖아요. (꽈당)

 

 

 

 

 

 

 

 


두 손으로 감싸 안더라도 저렇게 히죽거리면 안 되고;;
(역시 코쟁이들은 델리킷하지가 못해. 엥이.)

 

 

 

 

 

 

 

 


옳지, 표정도 함께 다소곳해야 하느니.
아니 그런데
웨스턴 우먼아, 찻자리에서 지금 헐벗고 있느뇨?
찻자리에 타월 난닝구 차림이라니 토탈리 언억셉터블하다!

 

 

 

 

 

 

 

 


찻자리에서 조신하기로 치면 일본인들 따라갈 사람이 없지요. 어이쿠, 깨뜨릴 뻔했네. 조심 조심 또 조심.

 

그런데, 저렇게 입전(입술 닿는 부분)이 두꺼우면 차 맛을 온전히 음미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입전은 얇을수록 좋아요. 그런데 또 입전이 얇으면 이가 빠지기 쉽지요. 그래서 단단은 얇고 단단한 본 차이나 찻잔을 좋아합니다.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에서는 보다 작은 잔을 씁니다. 중국의 차가 유럽에 전해진 후 중국의 다구도 함께 유행하게 되었는데, 유럽이 자력으로 중국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것을 만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찻자리 풍습을 담은 유럽 회화들을 보면 자사호를 비롯한 각종 중국 차도구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은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이 소장한 것으로 홍차 관련 문헌에서 한 번쯤은 보셨을 만한 아주 유명한 그림이죠. 유럽인들이 쓰던 초기 찻잔들은 중국 수입품이기 때문에 크기가 작고 손잡이가 없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이 모여 담소 나누거나 음식 나누는 그림들을 '컨버세이션 피스conversation pieces'라 부르는데, 의뢰인이 화가에게 이런 그림을 주문할 때는 대개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진귀하고 값비싼 최신 유행 소장품들을 배경에 두거나 주변에 슬쩍 늘어놓아 부를 과시하곤 했습니다. 당시로선 차와 다구 모두 보통 부자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값비싼 것들이었죠. 은제 다구의 스타일과 복식으로 보아 1727년께 그려진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설탕그릇, 설탕집게, 뜨거운 물 담은 저그, 차통, 스푼 보트, 개수통slop bowl, 램프 딸린 찻주전자 등이 보입니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런 물건이나 옷차림의 과시보다는 의뢰인 가족의 찻자리 매너 과시입니다. '우린 제대로 찻잔(찻종 tea bowl)을 쥘 줄 안다'는 거죠. 찻종을 쥐는 법으로 그림과 같이 세 가지 방법이 통용됐던 모양입니다. 뜨거운 것 잘 못 만지는 단단은 찻종을 들 때 이 집 딸래미와 같은 방식으로 겨우 듭니다. 내열성이 뛰어난 다쓰베이더는 이 집 바깥양반처럼 과감하게 듭니다.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나 괜찮지만 마나님의 손 모양이 가장 우아해 보이죠? 자자자, 다들 집에 있는 찻종 갖다놓고 앉아 연습해보세요.

 

유럽에 맨 처음 차를 전파한 이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습니다. 영국에도 많이 팔아먹었고요. 영국은 17세기에 차를 음용하기 시작, 18세기 들어와서는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차 마시기가 대단히 유행을 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녹차를 즐기다 차츰 홍차로 취향이 옮겨갔습니다. 중국에서 갓 생산한 녹차가 배에 실려 유럽에 도착할 때쯤 되면 신선도가 많이 떨어졌는데, 이 때문에 여리고 섬세해 보관이 까다로운 녹차보다는 아예 상미기간이 좀 더 길고 성질이 강한 우롱차나 홍차를 주문해 마시게 되었습니다. 운반 도중 녹차가 상해 홍차가 되었다느니 어쩌니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말씀 하시는 분들은 중국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하는 겁니다. 그 시절 중국의 제다 기술은 이미 높은 경지에 도달해 녹차뿐 아니라 홍차도 같이 생산하고 있었다 하니까요. 집에 갖고 계신 녹차, 장마철에 백날 놔둬 보세요. 절대 홍차로 변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이 돌게 되었는가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인도의 '몬순드 말라바Monsooned Malabar' 커피 탄생 이야기와 헷갈려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도에서 생산한 커피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던 긴 항해 기간 중 습한 기운과 해풍에 커피콩이 살짝 변질됐는데, 유럽인들이 맛을 보니 이게 나름 독특한 풍미를 내더랍니다. 이후 수에즈 운하가 개통돼 항해 거리가 단축되고 건조建造 기술이 발달하면서 속도가 빨라지자 항해 중 커피콩이 변질되는 일이 줄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옛 맛을 잊지 못 하는 유럽인들의 요구에 인도 커피농들이 그와 비슷한 환경 조성이 가능한 말라바 해안에서 이 개성 만점의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는군요. 이것이 몬순드 말라바 커피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녹차-홍차 2단 변신 이야기로 와전시킨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건 그렇고, 동네 수퍼마켓에서 몬순드 말라바 커피콩을 사 와 일주일간 열심히 에스프레소로 마셔봤는데 상당히 맛있더라고요. 이제는 이 몬순드 말라바가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되었습니다. 값도 비싸지 않아요. 유럽은 확실히 오랫동안 커피를 마셔오던 전통이 있어 밖에서 사 마시는 커피 값도, 원두 값도, 한국보다 저렴하고 종류도 많은데다 구하기도 쉽습니다. 보세요, 수퍼마켓에서 말라바 커피를 다 사잖아요.


다시 찻잔 이야기로 돌아와서 -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찻잔에 담긴 차는 녹차일까요, 홍차일까요? 1720년에서 1730년 사이 영국의 중국차 수입 현황 자료를 보니 녹차가 홍차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1730년대부터 점차 역전되기 시작해 홍차 수입량이 녹차를 앞지르게 됩니다. 이 그림은 1727년께 그려졌는데 그림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거죠. 녹차 홍차 둘 다 갖춰놓고 기분에 따라 즐겼을 수도 있어요. 안티크 잡지나 프로그램에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자물쇠 달린 차통들을 보면 녹차와 홍차를 각각 담을 수 있도록 두 개의 작은 상자가 함께 들어있는 걸 볼 수 있거든요. 믹싱볼이 같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녹차+홍차 자가 블렌딩도 가능했던 것 같고요.

 

 

 

 

 

 

 



한편, 중국인들은 우리 미일리어와 이리나의 냉면기로 쓰면 딱 맞을 것 같은 아주 작은 찻잔을 쓰는데, 쥘 때는 위와 같이 쥡니다. 엄지와 검지로 입전을 쥐고 중지로 굽을 받쳐줍니다. 영국인들의 방법이 종주국인 중국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찻잔 크기가 더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큰 잔은 저렇게 쥘 수가 없거든요. 중국 찻잔을 보니 '대륙의 스케일'은 온데간데없고 깜찍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야말로 '한 입 홀짝'입니다.

 


이제 손잡이 달린 찻잔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지요.

 

 

 

 

 

 

 

 

'Tea' by Mary Cassat, 1880, Oil on Canvas, Museum of Fine Arts, Boston.

 



손잡이가 작아 손가락이 다 안 들어가는 탓도 있지만, 넷째 다섯째 손가락이 남아 허공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새끼손가락은 귀엽게 쭉 펴주셔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 찻상이 있더라도 찻상에서 몸이 다소 떨어질 때는 잔 받침을 반드시 같이 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앞서 가족 그림에서도 마나님이 찻잔 받침을 따로 들고 있지요. 이걸 모르고 영국인 집에 초대 받아 갔을 때, 멀리 떨어져 앉아서는 덜렁 찻잔만 들어올려 '후루룩' 품위 없는 소리 잔뜩 내며 마셨더랬죠. 식혔다 마셨으면 좋았을 것을, 나라 망신 시키다 왔습니다. 차 다 마시기 전 뒤늦게 깨닫고 "차의 나라 중국에서는 후루룩 소리 내며 마시는 걸 권장한다우. 산소를 같이 들이켤 수 있어 차 맛이 한층 좋아진다나?" 너스레 떨어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는 후문이.

 

 

 

 

 

 

 



수년 전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그라피티grafiti전 할 때 찍어 둔 사진입니다. 영국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외국 작가 작품입니다. 페인트공이면 워킹클라스에 속하는 사람인데, 일하다 말고 상류층 방식으로 찻잔(머그)을 들어올려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일종의 풍자죠. 영국의 클라스 시스템과 온 국민의 홍차 강박증을 동시에 풍자하고 있는 겁니다. 재미있죠?

 

 

 

 

 

 

 



English: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우악스럽게' 머그를 쥐고

Posh: 포쉬한 사람들은 머그를 쥐어도 새끼손가락을 쭉 뻗어 우아하게
Royalty: 왕족은 더욱 우아하게 넷째 손가락까지 떨어뜨리고 (하여간 손잡이에 손가락을 적게 댈수록 좋음)
Jedi: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들은 이렇게 들어올린다는 거죠.

 

 

다쓰베이더는 한때 제다이였으므로 마지막 그림처럼 찻잔을 들어올립니다. 볼 때마다 신기해 죽겠습니다. 참, 저 'Posh'라는 단어 말이죠, '호화로운', '우아한', '쾌적한', '멋진' 등의 뜻을 가졌는데, 요즘은 'Port Out, Starboard Home'이라는 말의 두문자어acronym로 더 많이 통합니다. 증기선 타고 여행하던 시절에 나온 용어라죠. 돈 많은 사람들이 영국과 인도 사이를 항해할 때 해가 비치지 않는 시원하고 쾌적한 쪽 객실만 골라 여행한 데서 비롯됐다는군요. 요즘은 휴가 잘 갔다 왔다는 표시로 검게 그을린 얼굴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섹시하다고 여겨지지만, 옛 시절엔 고귀한 신분일수록 남녀를 불문하고 얼굴이 뽀얘야 했다고 합니다. 축구선수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의 <양념소녀들> 시절 별명이 'Posh'였죠. '빅토리아'라는 이름이 어쩐지 좀 '있어 보인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합니다.

 

자, 찻잔 쥐는 얘기는 다 끝났고요, (다들 연습하세요.)
이제 이 글의 맨 처음 사진을 다시 보겠습니다.

 

 

 

 

 

 

 



실은, 집에 한국 찻사발이 없어 덴비Denby 밥그릇 갖다 찍은 것이었습니다. (꽈당)
찻사발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형태가 훌륭하죠? 
그런데 얼마 전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에서 아래와 같은 찻사발을 보고 다쓰 부처, 깜짝 놀랐더랬죠.

 

 

 

 

 

 

 



아니? 이거 우리 집 밥그릇 아냐?!
찍힌 각도는 좀 다릅니다만, 크어, 덴비 밥그릇과 정말 닮지 않았습니까?
11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북송의 찻사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술가들, 공예가들, 작곡가들, 예술 한다고 깝죽대는 온갖 부류의 인간들은 죄 사기꾼인 겁니다. 옛것들을 서슴지 않고 갖다 쓰면서 '독창적'이라느니 '새롭다'느니 뻥치고들 앉았지요. 작가들끼리는 다 압니다.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는 것을요. 예술품을 신성화하려는 순진한 감상자들이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따위의 터무니없는 말들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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