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심폐소생술 본문

영국 이야기

심폐소생술

단 단 2012. 3. 10. 00:00

 

 

 

 

 꽈당. 블라디미르 푸틴의 재선 소식을 듣고 심장 마비 일으킨 이리나. 지금부터 4분이 아주 '크리티칼'하다.

 

 


잊을 만하면 꺼내는 이야기 중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에 관한 것이 좀 있었다. 오늘은 '공익'을 위해 우리 영감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이야기를 해야겠다.


환갑 잔치도 못 치르고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
술과 담배와 육식을 몹시 즐기시던 분이었는데, 그 때문에 잔소리꾼 단단과는 철저한 애증 관계에 있었다. 자신의 정력과 건강을 과신하던 이 영감님이 어느 날부터 심장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 급기야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검사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고혈압에 다혈질에, 그러면서도 술 담배 육식을 끊질 못 하셨으니, 쯧.

 

돌아가신 그 날도 심장 관련 검사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 병원엘 가셨더랬다.
"늘 하던 검사니 잠깐이면 된다. 차 안에서 기다려라."
영감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던 내 막내 오라버니는 영감님의 만류로 주차장에 그냥 남게 되었다.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간호사가 건넨 검사복을 받고 우리 영감님은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고 간섭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그 좁은 공간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돌아가셨다. 검사실에서 환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간호사는 그저 옷 갈아입는 데 시간이 좀 걸리나 보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단 1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들 잘 아시리라. 심장 검사 받으러 병원에 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쓰러져 돌아가시다니 이런 기막힌 운명이 또 있을까. 주의를 소홀히 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우리 가족은 영감님께 허락된 인생이 거기까지인가 보다 단념하고 장례를 치렀다.


고작 4분짜리 곡을 쓰기 위해 작곡가들은 수많은 밤을 새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렇게 쓴 곡이 연주되는 그 4분이라는 시간.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소위 시간예술을 하는 음악인들이나 무대 예술인들은 1분 1초의 가치를 잘 안다. 찰나의 순간에 순위와 더불어 여생의 안위가 결정되기도 하는 스포츠인들은 더 잘 알 것이고, 심장 이상으로 가족을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1분 1초의 가치를 뼈저리도록 느낄 것이다. 역 앞 분식집에 앉아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의미 없이 흘려 보낼 수도 있는 그 하찮은 몇 분이 가슴 움켜쥐고 쓰러진 사람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다.


영국에 있을 동안 다쓰베이더의 큰아버님이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아파트 입주자 회의에 참석하셨다 쓰러지셨단다. 부고를 전해 들은 우리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거기 모인 그 많은 사람들 중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당시 상황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 다들 소란만 떨고 119에 전화 걸어 구급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을 터. 여기서 잠깐 뉴스 링크를 따라갔다 다시 돌아와 보자.  ☞ 4분이 생사 가른다

 

위 뉴스의 문제는 무얼까?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누군가 재빨리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다. 심폐소생술의 필요성이나 중요성 따위만 강조하고 있을 게 아니라 실제로 하는 법을 수시로 보여주고 각인시켜야 한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제 영국 TV에서 본 CPR 홍보 영상을 걸어보겠다. 터프 가이 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영국 배우가 심폐소생술을 아주 터프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국식 블랙 유머 끼가 농후하다.

 

 

 

 

 

 

 

 

 

 

 

 

 

이건 아이들 버전.

 

 

 

 

 

 

 

공익광고가 이토록 불량하다니 재미있지 않나? 영국인들이 좀 사악하고 다크한 구석이 있다. 가만 보면 홀리우드 영화에서 악당 역은 죄 영국인이다. 영상을 보고 기억해야 할 몇 가지 -


1. 먼저, 딱딱하고 평평한 바닥에 눕혀 의식이 있나, 호흡이 있나 확인한다. 물렁물렁한 침대에 눕히면 흉부 압박 효과가 떨어지므로 반드시 딱딱한 바닥에. 의식과 호흡이 없으면 심정지.


2. 119에 전화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영국은 999)

 

3. 인공호흡은 생략하고 그저 흉부 압박에만 집중하라. 정확히 말하면 '심폐소생술'이라기보다 '가슴압박소생술'이 맞겠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심폐소생술로 부르기로 하자. 과거에는 인공호흡도 병행해야 한다고 교육했으나 요새는 지침이 바뀌었다. 길거리에 쓰러진 낯선 사람의 입을 맞추는 건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 해도 꺼려지는 법. 방법도 잘 모르거니와. 동영상에서도 "키스는 당신 마누라한테나 하고 흉부 압박이나 열심히 하슈." 하지 않나. 인공호흡까지 걱정하느라 지체하느니 차라리 흉부 압박만이라도 얼른 해주라는 소리다.


4. 고르고 힘찬 압박을 가하기 위해 두 손은 깍지를 낀다. 위치는 양 젖꼭지 사이 정 가운데. 심장이 왼쪽에 있다고 왼쪽을 압박하는 게 아니다. 갈비뼈 부러뜨려 훗날 고소 당하는 낭패를 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힘껏 압박하라. 곤경에 빠진 사람 도왔다 낭패 보는 건 중국에서나 있는 일이다. 부러진 갈비뼈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붙을 수 있지만 심장을 되살리지 못 하면 그냥 죽는 거다. 영상에서는 살아있는 배우를 눕혀 놓고 시범을 보이려니 힘껏 누르지를 못 했는데, 5-6cm 정도가 쑥쑥 들어가도록 힘껏 압박하라. 의식이 돌아오거나 구급차가 올 때까지 계속 해야 한다.


5. 템포를 기억하라. 가장 좋기로는 1초에 2번. 아무리 느려도 이 음악의 템포만큼은 해줘야 한다. 음악을 괜히 걸어 놓은 게 아니다. 제목과 템포가 CPR에 이상적이라 판단해 선택한 것. 그런데, 이 음악, 어디서 많이 듣던 음악 아닌가? 그렇다. BBC <셜록> 마지막 회에서 셜록과 모리아티의 옥상 대결에 나왔던 음악이다. 모리아티의 모바일 폰에서 흘러나왔던 Bee Gees의 <Stayin Alive>. 반복해서 들어 이 음악의 템포를 잘 기억해 두자. 영국심장재단British HeartFoundation에서는 아예 이 음악이나 위의 동영상을 자기 모바일 폰에 받아 저장해 둘 것을 권고한다. 어렵다 생각 말고 그저 신나는 이 디스코 음악에 맞춰 압박, 압박, 또 압박.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해주려면 리듬을 탈 수 있는 신나는 음악 없이는 다소 힘들 것이다. 아니면 이걸 들어도 좋고. ☞ ♩= 120 힘이 들어 자꾸 속도가 처지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난데없이 심폐소생술 이야기를 끄적여 보았다. 수줍음 많이 타는 단단이지만 오늘 이 글만큼은 방문자들께서 링크 걸어 널리널리 좀 퍼뜨려 주셨으면 좋겠다. (블로그 홍보? ) 전문 의료인이 아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CPR 덕에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림과 한글로 된 <대한심폐소생협회>의 ☞ 자세한 설명도 걸어 놓는다.

 

참고로, 119, 911, 999 같은, 오늘날 우리가 감사해 마지않는 응급 콜센터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다. 1937년 런던에 처음 개설되었다. 하고많은 번호 중 은하철도도 아닌데 왜 하필 999냐? 다이얼 전화기 시절, 조명 없는 컴컴한 환경에서도 더듬거려 실수 안 하고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숫자 9는 다이얼스톱 바로 옆에 있어 찾기가 쉬웠다고. 시각 장애인들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섬세하다.

 

 

 

 

 

 

 


"쓰러진자 외면말고 압박하여 새생명을"
크어, 급조한 표어, 조잡하나 리듬만은 힘차구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