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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과자를 통해 살펴본 유럽 3국의 미감과 국민성

단 단 2012. 5. 22. 22:21

 

 

 



영국의 국민 비스킷인 쇼트브레드shortbread를 모르시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으로는 빨간 타탄tartan 포장의 <워커스Walkers> 사 제품이 유명하지요. 저는 이것도 좋아하고, <더치 오리지날스Duchy Originals> 것도 좋아합니다. 한입 베물면 '쇼트'하게 파삭 부서진다고 해서 '쇼트브레드'라고 불립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출시되고 있는데 사진에 있는 것은 손가락처럼 길죽하다고 해서 '핑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얼마 전 단단은 티타임에 밀크티와 함께 쇼트브레드 핑거를 먹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대량생산 과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꼬챙이로 낸 구멍이 삐뚤빼뚤한 거예요.

'어? 이게 핸드 메이드 비스킷이었나?'
싶어 과자 상자에서 또 하나를 끄집어내 살펴봤지요.

 

 

 

 

 

 

 



'어라? 같은 사람이 작업했나? 구멍이 거의 똑같은 위치에 뚫렸네?'
혹시 몰라 하나를 더 꺼내 봤지요.

 

 

 

 

 

 

 



ㅋ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감이 오실 겁니다. 기계 세팅이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낡고, 불완전하고, 산만하게 흩어진 것들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미감을 과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의 베이킹 취미 가진 분들이라면 십중팔구 똑바로 줄 맞춰 얌전히 구멍 냈을 겁니다. 비슷하게 생긴 한국의 '칼로리바란스'만 해도 비교적 반듯하게 구멍이 뚫렸죠. 둘씩 둘씩 구멍을 뚫었는데 구멍이 열두 개 짝수도 아니고, 하나를 더 찍어 열세 개입니다. 이런 엉뚱한 사람들 같으니.


영국인들은 매끈하고 번쩍이고 반듯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국 생활 초기, 골동품인 줄 알고 물건 샀다가 처음부터 낡게 보이게 만든 새 제품임을 뒤늦게 깨닫고 혀를 내두른 적도 많았지요. 골동품으로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라 새 물건이라도 너무 번쩍이는 것들은 싫어하는 겁니다. 영국 브랜드 <바버Barbour>의 왁스 먹인 아웃 도어 쟈킷을 보세요. 신상품과 백년 넘은 옷이 비슷해 보입니다.

 

이 쇼트브레드의 재료는 놀라우리만치 단순합니다.


쇼트브레드 성분: 밀가루, 버터, 설탕, 소금. 끝.

 

이 네 가지가 전부입니다. 수퍼마켓에서 팔리는 공장제 대량 생산 단과자 중 이토록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진 과자 있으면 또 나와 보라고 해보십시오.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고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과자라 단단이 즐겨 먹는데, 그래도 과자는 재료만 좋아선 안 되고 맛도 좋아야지요. 이 쇼트브레드는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파란 깡통에 든 '데이니쉬 버터 쿠키'들보다도 버터 함량이 높아 훨씬 고소하죠. 게다가, 묵직해서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든든합니다. 티타임에 이 쇼트브레드 핑거를 한 개 이상 드실 수 있는 분은 제가 왕언니로 모십니다. 들뜨지 않고 과묵한 국민성이 과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저는 쇼트브레드 먹을 때마다 '아, 이거 정말 영국스럽다' 생각을 합니다. 무거우니 봄·여름보다는 가을·겨울에 더 찾게 됩니다. 추운 데서 떨다 들어와 먹는 영국식 밀크티와 쇼트브레드는 그야말로 신의 선물입니다.

 

 

 

 

 

 

 

 


프랑스 과자 팔미에palmier입니다.
꺄~ 하트 모양
역시 프렌치들은 다르죠?
퍼프 페이스트리를 돌돌 말아 모양 낸 것 좀 보세요.
파사삭, 식감은 더 끝내줍니다. 집에서 이런 식감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 들여 복잡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죠. 프렌치 제과 장인들 참 기술 좋아요.

 

그런데, 프랑스 과자들은 맛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다 좋은데 영국 과자들에 비하면 재료의 질이 좀 떨어질 때가 많다는 게 아쉽습니다. (영국 과자들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한국 과자들에 비하면 하느님임.) 마카롱의 경우, 알록달록 예쁘게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색소도 서슴지 않고 넣는데다, 수퍼마켓 과자의 경우 저 프랑스 특유의 날아갈 듯한 파삭한 식감을 위해 버터 대용의 질 떨어지는 유지를 쓰는 일도 흔하죠. 위 사진에 있는 프랑스 유명 회사의 팔미에도 맛과 식감은 훌륭하지만 유지가 신통찮고 첨가물이 좀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카롱 만들면서 천연색소니 문제 없다고 하는 분 많은데, 저 빨간색 '천연' 색소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를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골동품 전문가들은 골동품에서도 이같은 점이 드러난다고 말들을 합니다. 프랑스 물건들은 세공이 정교하고 장식이 많아 겉보기에는 참 좋은데 재질은 좀 떨어진다고 하죠. 은제품도 영국 은제품에 비해 은 함량이 낮을 때가 많아요. 즉, 프랑스 제품들은 과자든 공예품이든 'style over substance'라는 평판이 좀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style'이란 건 뭐 아무나 낼 수 있는 건가요?

 

 

 

 

 

 

 



독일 과자 '라이프니츠'입니다. 켁Keks, 이름이 철학스럽습니다. 제가 독일 과자 종류를 많이 알지 못 해 수퍼마켓 과자 선반에서 가장 눈에 잘 띄고 많이 놓여 있는 것으로 집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무려 120살이 넘은 아주 유명한 과자이더군요. (<롯데> '빈츠'가 이거 베낀 거였구나;;)

 

크으, 과자 모양 낸 것 좀 보세요. 그 정교함과 정확성과 탄탄함이란. 과자가 이렇게 야무진 외관을 할 수가 있나요. 구멍은 줄 맞춰 정확하게 뚫렸고 글자는 또렷하게 새겨졌으며 오글오글 귀여운 발가락 모양 레이스는 부서져 떨어진 곳 하나 없이 완벽하게 붙어 있습니다. 예술입니다. 쵸콜렛 씌운 모양새는 또 어떻고요. 독일 엔지니어링의 정수를 과자에서 보는 듯합니다.

 

찻잔과 그릇 좋아하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다소 허술한 품질의 영국이나 프랑스 찻잔과 그릇에 비해 독일 그릇들이 얼마나 마감 상태가 좋은지를요. 저희 집에도 <빌레로이 운트 보흐> 접시가 몇 장 있는데 뒤태와 굽까지 정말 흠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만들 때 잘 만들기도 하지만 품질 검사도 철저히 하는 거죠.


그런데, 깍쟁이 같은 맛을 낼 것 같은 이게 또 의외로 꽤 재미있는 맛을 내더라고요. 한입 깨물면 우선 '딱!' 하면서 경쾌하게 과자가 부러지는데 곧바로 쵸콜렛이 겉돌지 않고 입 안에서 쫀득쫀득 부드럽게 녹아 과자와 어우러집니다. 과자 자체는 건빵처럼 약간 건조하나 씹을수록 우아한 맛을 내므로 '리치'한 쵸콜렛과는 궁합이 아주 잘 맞습니다.

 

 

 

 

 

 

 



아니, 이런 징헌 것들...
과자를 꺼내고 나면 과자 상자에 적어도 티끌 정도는 남는 법 아닌가요?

부서진 과자도 하나 없고 어째 부스러기도 한 점 없어;;
됙일 놈들, 무서운 놈들.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기질들 때문에 오늘날 독일제 물건들은 평판이 좋죠. 과자 역시 훌륭합니다. 독일에 계신 분들, 맛있는 독일 과자 좀 알려 주세요. 단단이 아는 거라곤 이 라이프니츠와 메씨노 등 <발젠Bahlsen> 사 제품들이 전부입니다. 그러고도 '홍차·과자 블로그'로 간판 내걸고 있으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는 거죠.

 

 


☞ 유럽연합 국가들의 대표 과자
☞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한국 코스트코가 독일산 모듬 비스킷을 다 갖다 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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