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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러시안 티타임 Russian Teatime

단 단 2012. 9. 15. 01:52

 

 

 

 

 

오늘은 경이로움 님께서 보내 주신 홍차를 우려 봅니다.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eres의 <알렉산드르 황제Tzar Alexandre>입니다.

 

"Our own Russian blend, featuring silver tips, is famous for its grand finesse and slightly smoky fragrance. This masterpiece by Mariage Frères is named after the Russian czar who introduced Parisians to Russian-style tea in 1814."


프랑스에서 러시아 황제를 기려 만든 홍차.

차장수들, 하여간 장사 수완들도 좋아요.

 

 

 

 

 

 

 



훈향 나는 랍상 수숑에 얼 그레이를 가미한 것 같네요. 향이 아주 좋습니다. '랍상 소총'이라 발음하지 않고 '랍상 수숑'이라 하는 이유는요, 대부분의 영국인이 이렇게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차 자체는 중국에서 생산하고 가공해 들여오지만 저는 이 랍상 수숑 홍차야말로 얼 그레이와 함께 더이상 영국스러울 수 없는 홍차라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굳이 영국인들 발음으로 부르는 거지요. 사실 철자[souchong]를 놓고 보면 영어가 아니라 불어식 발음이죠.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수숑'으로 발음을 하고요.

 

중국인들도 훈향 홍차를 즐깁니다. 중국의 정산소종正山小種 홍차는 영국인들의 '험한' 랍상 수숑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우아하고 섬세한 향을 내지만, 저는 영국인들의 이 저렴한 랍상 수숑도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둘 다 갖고 있는데 값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라고 다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건 또 아니라고 하네요. 영국인들처럼 그저 습관에 의해 늘 마시던 차를 질 나쁜 줄도 모르고 고집하는 사람, 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랍니다. 좋은 차는 못 마셔도 어쨌거나 산지니까 신선한 차는 마실 수 있으려나요?

 

러시아 사람들도 훈향 나는 홍차를 좋아합니다. 중국에서 러시아를 향해 육로로 이동하던 차 상인들caravan의 모닥불 냄새가 찻잎에 스민 탓이라는 설도 있는데, 가만 보면 으슬으슬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훈향 차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추운 지역에서는 집집마다 벽난로를 많이 때죠. 영국에는 아직도 옛날에 지어진 벽난로 집들이 많아 11월만 되면 대기중에 은은한 장작불 향기가 감돌기 시작합니다. 추운 날 밖에 떨면서 돌아다니다 맡게 되는 그윽한 장작불 냄새의 감동, 짐작하실런지요. 얼른 집에 돌아가 랍상 수숑 한 잔에 치즈와 크림 얹은 뜨거운 감자요리 먹고 싶은 생각만이 '굴뚝'같아지죠.

 

 

 

 

 

 

 



러시아 향기가 나는 물건들을 죄다 꺼내 봅니다. 얼마 전 채리티 숍에서 4천원 쯤 주고 집어온 도자기 촛대입니다. 촛농 범벅에 때가 꼬질꼬질 했었는데 말끔히 씻겨 놓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인 거예요. (제가 브랜드 지식이 달려 남들 다 아는 유명 물건들을 잘 못 알아봅니다.) 열 배는 넘게 남길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녀석은 갖지 말고 되팔아 읽고 싶은 책이나 몇 권 사야겠습니다.

 

 

 

 

 

 

 



권여사님의 오래된 동유럽 여행 기념품.
어느 나라에서 샀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십니다. 러시아 물건이 아닐 수도 있지만 느낌이 비슷하니 슬쩍 끼어 자랑해 봅니다. 엄마한테 물려받은 물건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거라도 다 소중합니다. 제 손바닥 길이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무 상자에 저렇게 정교한 그림을 입혔습니다.

 

 

 

 

 

 

 



우리 이리나Irina 오랜만에 인사 드리죠? 조국 얘기 나오는데 빠지면 안 되죠. 보면대 위에 올라가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이리나의 옷차림이 여름엔 보기만 해도 더웠는데 가을이 되니 훈훈하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이리나의 저 '메텔' 모자가 참 좋아 보이는데요, 이리나는 미일리어의 깃털 모자를 몹시 탐내고 있더라고요.


얼마 전, 책을 읽고 있는데 무언가가 자꾸만 제 연약한 뱃살을 콕콕 찌르는 겁니다. 참다 참다 못해 속옷까지 훌러덩 벗어 던지고 진상 규명에 나섰지요.

 

 

 

 

 

 

 



아이고 두야.
이불에서 빠져 나온 오리털 하나가 제 속옷에 잠입해 하루종일 콕콕 찔러 댔던 것이었습니다. 남의 가슴털 쥐어뜯어 내 가슴 따뜻하려 드니 이런 봉변을 당하는 겁니다. 이리나가 깃털을 보고 급히 달려와 읍소를 하길래 옛다 하고 모자에 꽂아 주었습니다.

 

 

 

 

 

 

 



이제 미일리어가 부럽지 않은 모양인지 표정이 아주 밝아졌네요. [사진 밝기 조작]

 

깃털 꽂아 준 김에 머리도 땋아 주었습니다.

다쓰베이더가 보더니

"허허, 인디안 처녀 같구먼." 합니다.

 

참, 러시아 인형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죠.

 

 

 

 

 

 

 



'마뜨료쉬카matryoshka, матрёшка'입니다. <포르보>에서 러시아 사람 4명한테 시켜 받아 적은 '오쎈틱' 발음입니다. '뜨'에서 '료'로 넘어갈 때 혀를 드라마틱하게 굴려 주셔야 합니다. 다들 예쁘지만 저는 특히 맨 오른쪽 아래에 있는 빨간색 세트로 하나 갖고 싶네요. 런던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찍어 두었던 사진인데, 엇, 가만 보니 몇몇 인형들은 눈화장이 과하고 눈빛이 뇌쇄적입니다;;

 

 

 

 

 

 



커어, 이 사진은 더 끝내주죠?
두 번째 선반 좀 보세요. 지금까지 살면서 본 마뜨료쉬카 중 개수가 가장 많은 것이었는데, 몸통에 그려진 풍경이 다 달라요. 맨 왼쪽, 화면에 안 보이는 것까지 짐작해서 한번 세어 보세요. 차 한 잔 앞에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시면 좋겠네요. 모처럼 방문하신 블로그 친구분들께 과제를 안겨 드리고 저는 이만 총총 사라집니다. 해피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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