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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영국의 저력 ② 오래된 인형

단 단 2013. 11. 30. 01:49

 

 

 

다쓰베이더 소유의 곰돌이 녀석들.

오른쪽부터 - 풀벅이와 보풀이.

 

 

TV 골동품 프로그램에 팔순 할아버지가 털 다 빠진 꾀죄죄한 곰인형을 안고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 어릴 때 사 주셨던 곰인형이라우." 자랑하는 걸 볼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이 나라에선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인형을 80년 가까이 간직하고 있는 노인이 다 있다니. 

 

그런데 영국에는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 조부모가 '사 주신' 장난감이 아니라 아예 조부모가 어릴 때 갖고 놀다 '물려주신' 장난감을 갖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 그럼 그 장난감은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골동품 감정가가 털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낡은 곰인형을 보고 하는 말이 더 기가 막히다. "He's much loved!" 하도 낡아 팔다리도 위태롭게 겨우 붙어 있는 인형을 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곰인형을 'he'나 'she'로 받는 것도 신기하다. 반려동물들도 사람 이름을 가진다. 앤드류 조운스Andrew Jones - 고양이 이름이다. 


나도 어릴 때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곤 했는데, 그 곰, 어디로 간 걸까? 없어진 줄도 모르고 바쁘게 지내다가 나이 들어 문득 생각 난 그리운 내 포실포실 곰인형. 아마도 내가 좀 컸다 싶어 엄마가 옆집 꼬마에게 주셨거나 교회 바자회에 갖다 주셨겠지. 우리 한국인은 무엇이든 이웃과 나누고 동생들에게 물려주는 정 많은 민족이라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간직하고 있는 이가 많지 않다. 다들 아파트에 살아 광과 다락이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고. 현재 쓰는 물건들 수납하고 살기도 벅차니.   


영국인들은 어릴 때 특별히 애착을 갖고 놀던 인형은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는 습관이 있다. 인형 안고 나온 노인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무언가 짠하다. 아아, 이 팔순 노인도 한때는 누군가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손자였겠지. 칠순이 다 돼 가는 내 영국인 지도교수는 아직도 어린 시절 좋아했던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작은 책 전집을 거실에 늘어놓고 지내신다. 

 

젊은 부모들이여, 아이에게 질 좋은 장난감, 많이 말고 하나만 사 주시라. (요즘은 중국산도 질이 좋더라.) 아이가 커서 더이상 갖고 놀지 않으면 남 주지 말고 몰래 잘 보관해 두었다가 아이가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거나 자기 애를 낳았을 때 '짠' 하고 되돌려 주시라. 두고두고 부모님 얼굴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감사해할지 모른다. 

 

 

 

 

 

 

 


 보풀이. 

 

 

 

 

 

 

 

 

 풀벅이. 

 

 

사진 속 곰돌이 두 녀석, 풀벅이와 보풀이 소개.

 

슈타이프Steiff 같은 비싼 녀석들은 아니고 다쓰베이더가 동네 채리티 숍에서 그간 한 마리 한 마리 띄엄띄엄 집어 온 중저가 테디들이다. 그래도 'made in England'에 팔다리도 따로따로 움직이는 제법 잘 만들어진 녀석들이다. 무게도 꽤 나간다. 곰인형의 매력은 '샐쭉한' 표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좋게 마냥 웃고만 있는 녀석들은 오히려 매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 들지 않나? 풀벅이와 보풀이의 입은 살짝 비뚤게 스티치가 돼 있어 새침하고 무언가 불만스러운 듯 보이는데, 내 눈엔 이게 더 귀엽다.  

 

 

 

 

 

 

 

 


권여사님께 성탄 선물로 보내 드린 로얄 코펜하겐 접시.

단단이 어릴 때 딱 저런 잠옷 입고 곰인형 끌어안고 잤으니

이 접시 받으시고 권여사님 감회가 새로울지도.

그런데 내 곰인형, 대체 어느 집에 보낸 거유? 그리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영국의 테디 베어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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