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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수퍼마켓에서 미술품 사기 ① 본문

사연 있는 사물

영국 수퍼마켓에서 미술품 사기 ①

단 단 2014. 1. 16. 20:06

 

 

 

 

 

이 그림을 '만든' 사람, 누군지 잘 아실 겁니다. 어우, 단단은 앤디 워홀 작품 정말 좋아합니다. 예쁜 미술품 좋아해요. 그런데 화가들은 자기 작품 보고 누가 "Pretty"하다고 하면 모멸감을 느낀다면서요?


제아무리 최신 사상에서 빌려온 온갖 근사한 말을 다 갖다 붙여대며 현학적인 척, 철학적인 척 해도 회화는 음악과 달라서 근본적으로 장식적인 속성이 그 안에 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루시앙 프로이트가 그린 뱃살 쏟아지는 아줌마 그림은 볼 때마다 내 뱃살이 떠올라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좋아요. 싸이 톰블리의 똥 칠한 그림, 피 칠한 그림들도 제 눈엔 다 예쁘게 보입니다. 거대한 싸이 톰블리 복제품 하나가 코딱지만 한 우리 집 거실에도 걸려 있습니다. 꼬마들이 괴발개발 그린 기린 그린 그림들도 액자에 넣어 벽에 붙여 놓으면 참 예뻐요.


음악은 그렇지 않죠. 불협화음 많이 들어간 현대음악 들으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불편해합니다. 바이올린 갓 배우기 시작해 깽깽거리는 꼬맹이의 연주는 제 부모 아니면 5분 이상 들어주기 힘듭니다. 귀는 눈처럼 질끈 감을 수도 없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해도 소리는 여전히 들리니 음악작품은 미술작품보다 사람을 훨씬 고강도로 괴롭힐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음악은 연주되자마자 곧바로 후루룩 사라져버리는 미덕은 갖추고 있지요. 그러니 세대를 거듭해 우리에겐 연주자라는 고마운 존재가 필요한 것이고요.

 

 

 

 

 

 

 

 

 
이 양반이 마릴린 먼로만 그린 게 아녜요. 런던에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 가면 여왕님 얼굴도 볼 수 있어요. 여왕님이라 그런지 마릴린 먼로보다는 아무래도 색이 좀 점잖아 보이네요. 제가 런던에서 정말 좋아하는 공간이 세 곳 있는데요, <국립 초상화 미술관>, <타워 오브 런던>, <웨스트 민스터 사원>입니다. 런던 여행 오시면 <내셔날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 갤러리>만 들르지 마시고 초상화 미술관도 꼭 가보세요. 저는 영국에 와서야 초상화에 관심이 생겼는데, 사람 잘 그리는 화가가 진짜 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가가 남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스튜디오에 혼자 멍 때리고 앉아 자신을 그린 자화상들을 보면 실로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회화 중에 자화상을 참 좋아합니다. 음악에는 자화상이란 게 없으니 화가들이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게 마냥 신기하고 신비롭고 다소 처량하기도 하고 한편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다시 앤디 워홀.

이 양반이 초상화만 그린 게 아녜요. 저는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참 손쉽게 예술하는군.' 생각했는데, 잘 보세요, 깡통마다 맛이 다 달라요. 개별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이 양반 덕분에 수퍼마켓 선반에 조로록 놓여 있는 제품들을 이제는 예사로이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살짝 돌아서서 놓여 있는 제품 하나를 보면 막 궁금해집니다. '이건 작가(선반에 물건 쌓는 직원)의 무슨 의도인가. 파격을 위한 제스처인가.' 혹 소비자가 성분표 읽고 나서 돌려 놓은 거라면 그것도 또 궁금해집니다. '오, 이것은 인터렉티브 작품? 나도 한번 참여를?' 냉장이나 냉동 선반에 있어야 할 제품이 상온 선반에 은밀히 놓여 있는 걸 보면 맥락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 배치된 오브제를 볼 때와 같은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수퍼마켓에서 장 보고 돌아오는 게 꼭 미술관 관람하다 오는 것 같아요. 수퍼마켓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술작품이 있습니다. 회화, 판화,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유리공예, 금속공예, 설치미술 등등... 영국에선 더합니다. 제품 포장 디자인들이 정말 끝내주거든요.

 

 

 

 

 

 

 



작년 가을, 동네 수퍼마켓에 갔더니 깡통 코너에 이런 게 떡 하니!
단단은 깡통에 든 식재료는 자주 이용을 해도 완제품 수프나 음식은 절대 깡통으로 먹지 않아요. 깡통향이 너무 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건 좀 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Campbell's Soup Cans>가 첫 선을 보인 게 1962년의 일인데(20년 동안 캠벨 깡통 수프를 점심으로 먹었다 함.), 지난 2012년에 50주년을 맞아 본토인 미국에서 먼저 기념 깡통이 출시되고, 호주에서, 이어 영국에서 아주 잠깐 동안 판매가 되었습니다. 깡통 뒷면엔 앤디 워홀 얼굴과 서명도 다 있어요. 앤디 워홀 재단이 급전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나 같은 가난뱅이들도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푼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간 '득템'했어요.

 

 

 

 

 

 

 



이제는 더이상 살 수 없는 한정판이었습니다. (더 신나잖나, 이거.) 내용물을 비우고 깨끗이 씻어 책상 위에 필통으로 두려고 합니다.

 

 

 

 

 

 

 



이건 <하인즈> '베이크트 빈' 깡통입니다. 베이크트 빈은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필수 요소죠.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 레서피로 직접 만들어 먹는 게 훨씬 맛있습니다. 깡통 제품은 미끌거리고 들척지근해요.) 이 깡통은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판이라 사두었는데, 얼마나 특별했으면 이런 싸구려 깡통 콩조림 따위를 <포트넘 & 메이슨>에서 다 팔았겠습니까. 포트넘 앤드 메이슨이 1886년에 이 하인즈 베이크트 빈을 미국에서 수입해와 영국인들에게 '럭셔리' 수입 식품으로 처음 소개를 한 전력이 있다는군요. 저는 동네 수퍼마켓에서 샀습니다. 지금까지 필통으로 잘 쓰고 있습니다. <이베이eBay>에서 100파운드 넘게 거래되는 것도 봤어요. 앤디 워홀풍 깡통도 언젠간 그렇게 될지 모르죠. 되팔 생각은 없지만요. 돈 없는 단단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미술품을 가져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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