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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영국음식] 플라우맨스 런치 Ploughman's Lunch

단 단 2014. 7. 30. 00:00

 

 

 

 플라우맨스 런치 1인분

 

 

 

 

기웃이: 이보오, 주인장. 오늘을 또 무슨 요리를 하려고 도마 위에 재료를 잔뜩 꺼내 놓았소? 여름인데 집에서 요리하는 거 덥지도 않소?


주인장: 이건 도마가 아니오. 코쟁이들 말로 '서빙 보오드'라 하는 것이오. 게다가, 재료를 올려놓은 게 아니라 완성된 먹거리를 올려놓은 것이오.


기웃이: 무엇? 이게 완성된 요리라는 거요, 지금?

 

주인장: 구라파 코쟁이들은 본디 도마, 아니, 서빙 보드 위에 이런 것들을 잘 올려놓고 즐긴다 하오. 이건 영국의 농부들이 일하다 말고 점심에 먹는 '플라우맨스 런치'라는 것이오.

 

기웃이: 내가 영어 쫌 아는데, '플라우맨스'라니, 그러니까 우리 새참 같은 것이오?

 

주인장: 그렇소. 영국에서는 저 옛날부터 맥주ale와 빵과 치즈를 함께 먹는 관습이 있었는데, 차츰 이것저것 다른 것들이 끼어들어가 가짓수가 많아졌다 하오.

 

기웃이: 오호라, 기본은 맥주와 빵과 치즈. 거 맛나겠소. 썰을 좀더 풀어주시오.

 

주인장: 전후 1950년대가 되어서야 배급제가 막을 내리고 영국의 식품 생산이 활발히 재개되오. <영국 치즈국>에서는 치즈 생산과 소비를 다시금 늘리기 위해 맥주와 빵과 치즈를 함께 먹는 오랜 관습에 'Ploughman's Lunch'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붙이고 국민들이 펍pub에 가서 이를 사 먹도록 권장했다 하오. 그러니까 실은 농부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아무나 점심 때 펍에 가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거요. 찬 음식이라 겨울엔 잘 안 먹소. 요즘 같은 여름에 먹으면 특히 좋은데, 그저 질 좋은 재료들을 잘 골라 사서 접시나 보드에 얹어주기만 하면 되니, 불 안 써서 좋고, 간편해서 좋고.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자기 취향에 맞춰 조합해 먹을 수 있을 거라 보오. 그래도 치즈는 가능하면 영국 치즈로 써주길 바라오. 특히 체다는 필수인데, 이것도 고무 질감의 형광 주황색 미국산 짝퉁 체다 쓰지 말고 최소 9개월 이상은 숙성된 정통 영국산 체다로 써주길 바라오. ☞ 체다 고르는 법

 

 

 

 

 

 

 

 

 

기웃이: 기본 요소인 에일, 빵, 치즈 외에 이러이러한 걸 포함시켜야 한다는 어떤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 있소?

 

주인장: 있소. 에일, 빵, 치즈 외에 삶은 달걀, 햄, 양파 피클, 처트니가 단골로 들어가오. 그 외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더 올려도 좋고 먹기 싫은 건 빼도 되나, 어쨌거나 빵과 치즈는 보드에 반드시 올라가 있어야 하오. 채식주의자도 얼마든지 자기 보드를 꾸며서 먹을 수 있소.

 

기웃이: '처트니'는 뭐요? 사진에서 그릇에 따로 담긴 것들이 처트니요?


주인장: 처트니chutney는 채소로 만든 잼이라 보면 되오. 딸기잼, 살구잼 같은 과일 잼들은 과일과 설탕으로 만들지 않소? 처트니는 채소와 식초와 설탕과 각종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데, 치즈와 빵 먹을 때 영국인들이 자주 곁들여 먹소. 영국풍 처트니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인도에도 맛난 처트니들이 많이 있소. 원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이오. 단단은 향신료 잔뜩 넣은 고추와 라임 껍질 인도 처트니도 아주 좋아하오. 사진에 있는 건 영국풍 어니언 처트니요. 노란 건 처트니가 아니라 피칼릴리piccalilli라 하는 영국의 겨자·채소 피클인데, 피칼릴리에 대해서는 따로 게시물을 써서 조리법과 함께 썰을 풀도록 하겠소. ☞ 피칼릴리 썰

 

 

 

 

 

 

 

 

 

기웃이: 혹시 먹는 방법이란 게 따로 있소?


주인장: 그런 건 없소. 마음 내키는 대로 집어먹으면 되오. 허나, 궁합이 특별히 잘 맞는 것들이 있으니 이런 것들은 같이 먹어주면 좀더 맛있긴 하오. 가령, 햄과 피칼릴리, 빵과 처트니와 치즈 등. 먹다가 목이 메이면 에일을 마시면 되고. 단단은 술을 안 마시므로 주로 무알콜 음료인 진저 비어를 마시오. 지금껏 마셔본 진저 비어 중에서는 <비버Belvoir> 제품이 가장 맛있었소. 발음에 주의하시오. '벨부아'가 아니라 '비버'요. 아래와 같이 생겼소. 냉장고에 두어 차갑게 식혔다 마시면 쥑이오. 다른 회사들 진저 비어에서는 인공스러운 맛과 향이 많이 나오.

 

 

 

 

 

 

 

 

 


기웃이: 그래, 플라우맨스 런치를 먹어보니 어떻소? 위의 구성에서 무언가 개선해야 할 점이 있어 보이오?

 

주인장: 일단은 남들이 넣는 것들을 죄 넣어봤는데, 잎채소, 샐러리, 래디쉬 같은 것들은 따로 어레인지 하지 말고 드레싱에 잘 믹싱한 뒤 하나의 인테그랄한 샐러드로 프리젠트 하는 게 더 좋겠소. (보그병신체)

 

치즈는 사진에서처럼 체다와 블루 치즈를 각각 올리면 좋은데, 체다가 경성 치즈이므로 블루 치즈는 사진에 있는 것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수분이 많은 걸로 올리면 균형이 맞을 듯하오.

 

사진에서처럼 처트니를 어니언 처트니로 올리고 피칼릴리를 올리면 양파 피클은 굳이 또 넣지 않아도 될 듯하오. 양파가 아닌 다른 채소로 만든 처트니를 올릴 경우, 그리고 피칼릴리를 생략할 경우, 이때는 양파 피클이 필요하오. 양파 피클은 어떤 양파를 써서 만들든 상관없지만 영국인들은 특별히 '실버스킨 어니언'이라는 은빛이 도는 작고 하얀 양파를 써서 만드오. 사진에 있는 양파 피클은 연보라색 샬롯을 써서 집에서 만든 거라 때깔이 저 모양인 것이오. 실버스킨 어니언 피클은 아래와 같이 생겼소. 맛은 따귀 한 대 맞은 것처럼 강렬하오. 체다, 처트니, 피칼릴리, 어니언 피클 모두 정신 버쩍 나게 하는 것들이오.

 

 

 

 

 

 

 

 

 

햄이 남았으니 이같은 점을 반영해 내일 다시 만들어 먹어보고 밑에 사진을 추가하도록 하겠소. 좌우간 더울 땐 불 안 쓰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최고요. 아, 그래도 달걀은 삶아줘야 하오.

 

 

 

 

 

 

 


다시 꾸며본 플라우맨스 런치 1인분.

달걀 대신 메추라기 알을 삶아 반 갈라 샐러드 안에 넣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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