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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라이스 푸딩 Rice Pudding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라이스 푸딩 Rice Pudding

단 단 2017. 6. 30. 00:00



 

클로티드 크림을 넣은 영국의 라이스 푸딩.

겨울 음식 이야기를 여름에 꺼내는 철없는 주인장.

 

 

몸은 비록 영국 땅을 떠났으나 컴퓨터 하드 디스크 속에는 찍어 둔 영국음식 사진이 그득, 머릿속에는 못다한 영국음식 이야기가 그득. 고로, '영국음식 블로그'라는 저 위의 간판은 앞으로도 수년간은 끄떡없을 듯합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맛있는 영국음식의 세계. 


오늘은 영국인들의 겨울철 '컴포트 푸드'인 라이스 푸딩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쓰 부처도 영국에 있을 때 계절 상관없이 즐겨 먹던 음식입니다. 

 

동물의 젖을 얻을 수 있거나 쌀을 수확할 수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쌀젖죽'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데, 서양에서는 로마 시대 때 약으로 먹던 '라이스 포티쥐rice pottages'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력에 따라 사순절Lent 기간에 육식을 금했지요. 이때 영국의 부자들이 고기 대용으로 먹던 음식 중 하나도 바로 이 라이스 포티쥐입니다. 중세 영국식은 쌀을 물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 뒤 여기에 '아몬드 밀크'나 소젖, 혹은 둘 다를 섞고 단맛을 가미합니다. 사프론saffron으로 색을 내기도 하고요. 헤스톤 블루멘쏠 요리책 소개할 때도 잠깐 언급했습니다. (☞ 가장 아끼는 요리책) 냉장 시설이 없던 옛 시절에는 쉬이 상하는 동물의 젖 대신 아몬드를 물과 함께 갈아 천에 걸러 쓰기도 했는데, 이를 아몬드 밀크라고 부릅니다. 영국 수퍼마켓에서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엄격채식주의자vegan들을 위해 틈새 상품으로 최근 고안해 낸 건 줄 알았는데요.  

 
라이스 포티쥐는 솥에 담아 저어가며 끓여 만들었고, 오늘날 영국인들이 즐기는 오븐에 굽는 방식의 라이스 푸딩baked rice pudding은 17세기 초에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여러 레서피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쌀을 물이 아닌 우유에 익힌 뒤 설탕, 빵가루, 달걀 노른자, 흰자(반만 사용), 골수bone marrow로 맛을 내고, 용연향(ambergris 향유 고래의 창자에서 얻는 향료)과 로즈워터, 넛멕nutmeg, 메이스mace로 향을 냅니다. 요즘 라이스 푸딩에 비하면 맛도 진하고 향도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이들 맛내기 재료 중 오늘날에는 우유, 설탕, 넛멕만 남았는데, 맛과 향이 가벼워진 대신 크림으로 유지방을 보강해 유제품 풍미를 한껏 살리고 식민지에서 들여온 값싼 설탕으로 단맛도 마음껏 내 어느덧 기름지고 달콤한 후식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쌀에는 단맛이 많으므로 쌀로 단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한국에서는 단맛 나는 쌀죽을 먹어본 적이 없어 다쓰 부처는 영국 수퍼마켓에 놓인 라이스 푸딩을 처음 보고는 놀랐었습니다. 


• (포장 그림과 문구를 보고) "뭐어? 쌀로 푸딩을 만든다고?
이거 죽 아냐?"

• (성분표를 보고) "죽에 소금이 아니라 설탕을 넣었어!"

• (성분표를 따라 읽고) "으악, 바닐라도 넣었대!"


ㅋㅋㅋㅋㅋㅋ 

영국은 유제품 천국입니다. 그래서 유제품을 쓰는 요리가 많아요. 요즘은 라이스 푸딩에 우유뿐 아니라 크림도 넣는데, 크림 중에서도 특별히 진하고 고소한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을 섞으면 벨벳 같은 환상적인 질감의 라이스 푸딩이 나옵니다.

 

라이스 푸딩용 쌀은 끈기가 좀 있어야 하니 한국 쌀로도 충분히 맛을 잘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없이 무른 한국식 죽보다는 심이 좀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이태리 리조또만큼 '알 덴테'는 아니고, 쫀득한 느낌도 살짝 나야 합니다. 집집마다 화력과 조리 용기가 다르고 크림의 성질에도 차이가 있을 테니 아래의 레서피는 그저 참고만 삼으시고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 입맛에 맞는 무르기와 점도, 단맛 강도를 찾아 보세요.

 

한국은 유제품이 비싸서 재료비가 좀 많이 들겠습니다. (바닐라 꼬투리pod는 영국에서도 비쌉니다.) 오븐에 굽기 여의치 않은 분들은 포티쥐 식으로 직불에 냄비를 올려 계속 저어가며 익히셔도 됩니다. 강불로 시작해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뭉근히 졸이세요.   

 

 

라이스 푸딩

[4인분]

 


재료


• 라이스 푸딩용 쌀short grain pudding rice 100g 

• 버터, 오븐 용기에 칠할 것 소량

• 전지유 450ml

• [아, 살 뺀다고 저지방, 무지방, 이딴 거 쓰지 마시고.]

• 생크림 230ml [영국에 계신 분들은 유지방 48% 가량의 더블 크림double cream을 쓰시면 됩니다.]

• 클로티드 크림 170g [가능하면 <로다스Rodda's> 사 것으로.]

• 바닐라 꼬투리 1개, 길이로 반 갈라 칼로 씨를 긁어 낼 것. [생략 가능.] 

• 설탕 30g 혹은 취향껏 조절

• [영국에 계신 분들은 카스터 슈가caster sugar를, 

• 미국에 계신 분들은 수퍼파인 슈가superfine sugar를,

• 한국에 계신 분들은 '백설 갈색설탕' 입자 크기 정도 되는 설탕을 쓰시면 됩니다.

집에 푸드 프로세서가 있는 분들은 일반 설탕granulated sugar을 30초 정도 갈아서 쓰셔도 됩니다.]

• 소금, 단맛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소량. [생략 가능.] 

• 넛멕, 양은 취향껏

 

 

만들기

 

1. 오븐을 180˚C로 예열한다. 팬 오븐은 160˚C. 쌀알이 들러붙지 않도록 오븐 용기 안쪽에 버터 칠을 해준다. 

 

2. 쌀을 씻어 물이 빠지도록 체에 받힌 뒤 다음 작업을 한다. 

 

3. 소스팬에 우유와 크림을 넣고 부르르 한 번 끓인다. 반 가른 바닐라 빈에서 씨앗을 긁어 넣고, 설탕, 쌀, 소금, 즉석에서 간 넛멕도 함께 넣어 잘 섞는다. 


4. 버터 칠한 오븐 용기에 옮겨 담고 예열 마친 오븐에 넣어 15분간 굽는다. 


5. 오븐 온도를 160˚C[팬 오븐 140˚C]로 낮춰 30분~1시간, 혹은 쌀알이 충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굽는다. 유지방에 의해 표면만 먼저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너무 탄 부분은 걷어내면 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직불 위 냄비에 저어가며 익힌 것은 갈색 막이 생기지 않습니다.] 뜨거울 때 바로 낸다. 푸딩 위에 넛멕을 소량 새로 갈아서 내도 된다. 한김 식혔다 먹어도 맛있고, 냉장 보관했다 다시 데워 먹어도 맛있다. 끝.



 

 

 

 

 

 푸딩용 쌀. 리조또용 쌀이나 한국 쌀로도 얼마든지 가능.

 

 

 

 

 

 

 

 

<롯데백화점>에서 본 클로티드 크림.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 <데번 크림 컴파니> 사의 수출용 장기 보관 클로티드 크림은

영국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실크 같은 질감과 천상의 고소함을 자랑하는

<로다스> 사의 단기 보관 클로티드 크림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나니

행여 이 제품만 먹어보고는 영국의 클로티드 크림에 대해 잘 안다고 떠들지 말자.

 

 

 

 

 

 

 

 

 오븐에 구운 라이스 푸딩 2인분. 장막 밑으로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푸딩의 세계가 펼쳐진다.

 

 

 

 

 

 

 

 

클로티드 크림을 넣은 시판 라이스 푸딩.

이건 영국 수퍼마켓 제품을 찍은 것.

성분:  milk, clotted cream (14%), rice (12%),  double cream, sugar, nutmeg. 끝.

시판 제품도 집에서 만든 것처럼 성분이 좋다.


쌀 안 팔리고 우유 안 팔려 한국의 생산자들 시름이 보통 깊은 게 아니라던데, 저 같으면 밀가루 때려잡고 서양식 헐뜯을 시간에 이 라이스 푸딩 홍보를 하겠구만요. 성인들 간식으로도 좋고 아이들과 노인들 먹기에도 좋은데 말이죠.

 

 

 

임금님 보양식, 타락죽

☞ 클로티드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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