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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런던여행] 디너 바이 헤스톤 블루멘쏠 Dinner by Heston Blumenthal

단 단 2016. 2. 12. 12:30

 

 

 

 

 
오늘은 헤스톤 블루멘쏠의 <디너>에서 밥 먹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두 번째 방문에 권여사님과 이모부를 모시고 갔었습니다.

 


헤스톤은 현재 잉글랜드 안에 다섯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The Fat Duck (1995) 
Bray, Berkshire ★★★

☞ The Hinds Head (2004) Gastropub
Bray, Berkshire 

☞ The Crown (2010) Gastropub
Bray, Berkshire

☞ Dinner by Heston Blumenthal (2011)
The Madarin Oriental Hyde Park, London ★★ 

☞ The Perfectionists' Cafe (2015) Gastropub & Diner
London Heathrow Terminal 2 (The Queen's Terminal)


이 중에서 네 번째인 <디너>에 다녀왔다는 거지요.
하이드 파크와 인접해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안에 있습니다. 










호텔 정문.
호텔이 크다 보니 문도 크고 문지기도 두 명이나 필요합니다.







 

 

<디너>의 헤드 셰프 애쉴리 팔머-와츠의 인터뷰입니다. 영화 <번트Burnt>(2015)에서 본 것처럼 서빙하는 직원이 정말 많네요. 인건비로 다 나가 남는 것도 없겠어요. 손님을 받기 전 그날 낼 음식들과 소스들을 접시에 조금씩 담아 점검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디너>를 방문하실 분들은 가급적 점심 때 가시기를 권합니다. 하이드 파크와 바로 붙어 있어 전망이 좋거든요. 예약할 때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이니 창가 자리로 달라고 요청해보세요. 예약할 때 이 문구를 안 넣었더니 안쪽 어두운 곳에 자리를 받아 음식 사진 찍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디너'가 저녁이 아니라 (아침은 건너뛰고) 정오에 먹는 식사를 뜻했다고 하죠.
[(Breakfast) - Dinner - Supper]







 



옛날 젤리 몰드 형상으로 전등갓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천장이 높고 창이 크니 실내가 쾌적합니다.
2인 식탁도 제법 큽니다.
지나치게 격식 갖춘 듯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식탁보를 깔지 않는다고 합니다.










메뉴판입니다.
깔끔하고 디자인 좋죠? 글꼴도 예쁘고요.


이 집은 영국음식을 내는 집입니다. 옛날 영국음식들을 헤스톤이 현대식, 자기식으로 재해석해서 냅니다. 음식 이름 옆에 연도가 함께 적혀 있는데, 해당 음식에 영감을 준 옛날 레서피가 실렸던 요리책의 출판 시기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전식 두 번째 요리인 "Ragoo of Pig's Ear on Toast"는 1727년에 출판된 E. Smith의 《The Compleat Housewife》에 담긴 'To Make a Ragoo of Pigs-Ears' 항목을 재해석한 요리라는 거죠.


첫 번째 방문 때는 이 집에서 가장 저렴한 세트 런치로 주문했습니다. 세트 런치는 저렴한 대신 재료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메뉴 선택의 폭을 좁히고 아주 비싼 재료는 잘 쓰지 않으며 단품 메뉴들에 비해 양을 적게 냅니다. 한 번에 많이 못 먹는 다쓰 부처한테는 이 세트 런치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식전 빵과 버터.
영국 와서 사 먹어본 빵 중에 이 빵이 풍미가 가장 강해 기억에 남습니다. 풍미만 강한 게 아니라 질감도 예스러워 요즘 빵처럼 쫄깃하면서 촉촉하지가 않고 거칠거칠합니다. 빵맛 좋았습니다.








 

 Lemon Salad (c. 1730)

- Smoked Artichoke, Goats Curd and Beetroot



다쓰베이더가 선택한 전식 "레몬 샐러드"입니다.
맛있었다네요.
고기 대신 훈향 씌운 아티초크와 염소젖 커드를 주재료로 삼았습니다. 양쪽에 고운 분홍빛의 비트 피클을 돌돌 말아 얹은 것 좀 보세요. 저도 비트를 저렇게 내봐야겠습니다.


전식이라 채소가 많이 보이는데, 향초와 작은 녹색 잎을 제외하고는 전부 피클로 만들거나 콩피confit한 뒤 지져서 썼습니다. 샐러드라 하더라도 조리하지 않은 생채소를 그냥 올리는 것은 요리사에겐 직무유기에 해당하거든요. 하다못해 몇 분 안에 완성되는 즉석 피클이라도 해서 내야 합니다. 조리하지 않은 생재료가 올라와 있으면 요리 경연대회에서도 지적 받거나 탈락 당합니다. 페이스트리 셰프가 생과일 그냥 얹어 내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헤스톤은 이 요리에서 심지어 레몬마저도 장시간 준비해서 씁니다. 레몬도 최고의 레몬이라는 이태리 아말피Amalfi 레몬을 그 비싼 샤도네 와인 비니거를 써서 절입니다.










접시를 옆으로 돌려서도 한번 찍어봅니다.
플레이팅을 꼼꼼히 보세요.
브렉퍼스트 래디쉬도 참 깔끔하게 잘 손질해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잘 손질된 식재료를 보면 저는 주방의 막내 요리사commis chef 얼굴이 보고 싶어집니다.








 

 Ragoo of Pigs Ear on Toast (c. 1750)

- Anchovy, Onions and Parsley



제가 선택한 전식 "토스트 위에 얹은 돼지 귓살 라구".
맛내서 익힌 돼지 귓살을 채 썰어 채소들과 함께 조리한 뒤 토스트에 올렸습니다. "Everything but the squeal." 속담에 걸맞게, 'nose-to-tail philosophy'에 부합하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이렇게 돼지고기 살코기 외의 것들을 정성껏 조리해 손님 상에 올리곤 합니다. 돼지 귓살은 이날 처음 먹어봤는데, 사진에서 딸리아뗄레 국숫가락처럼 생긴 게 바로 채 썬 돼지 귓살입니다. 식감도 꼭 딸리아뗄레 같고요. 찰기 없는 면처럼 툭툭 끊어지면서도 이에 아주 잠깐 동안 들러붙었다 떨어져 젤라틴 느낌도 나기는 합니다. 맛내는 채소와 술을 함께 넣고 압력솥에 2시간 30분을 익혀서 씁니다.


맛은 강렬하고 짜릿합니다.
돼지 귓살 자체는 간을 잘 흡수하지 않는 성질이 있는지 약간 싱거운 편인데, 안초비, 머스타드, 레몬 피클, 식초로 맛낸 양파, 훈향 씌운 양파, 파슬리, 넛멕nutmeg 같은 강한 맛의 재료들을 투입해 짠맛, 신맛, 우마미를 냈고, 조리를 통해 불맛과 훈향도 강하게 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쓴맛과 기름진 맛, 농후함까지 더해져 복잡하기 짝이 없는 맛이 납니다. 마치 불맛 나게 볶은 중식과 새콤한 태국음식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신맛과 훈향이 결합되니 것 참 독특한 효과가 납니다. 돼지 귓살에서 나온 젤라틴 때문인지 입 안에 기분좋게 엉기는 기름진unctuous 느낌도 있었습니다. 맛의 조합도 익숙한 듯하면서 다소 낯선 데가 있어 먹으면서도 계속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레서피에 쓰인 재료들이 모두 들어가 있고 헤스톤이 이런저런 재료들을 더 보탰습니다. 먹은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맛이 생생하게 기억 납니다. 강렬하면서도 참 오묘하고 복잡한 맛이어서 역시 헤스톤이군, 했어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른 업장의 요리사들도 <디너>에 오면 이 음식을 그렇게 찾는다고 하네요.









 Roast Pollack, Admiral's Sauce (c. 1830)
- Parsnip Puree, Shrimps, Shallots, 
Brown Butter and Capers



다쓰베이더가 고른 본식 "폴록 구이".
흰살 생선입니다. 피쉬 앤드 칩스에 쓰이는 흰살 생선인 코드cod와 해덕haddock보다 많이 잡히고 저렴하기 때문에 이것들의 대용으로 많이들 씁니다. 사람들이 하도 코드와 해덕만 찾으니 요리사들이 의식적으로 이렇게 대용 생선들을 내곤 합니다. 꼭 값이 더 싸서 쓰는 건 아니고 일종의 캠페인 겸 제스처이지요.

 

저기 저 쬐끄맣고 거무튀튀 너덜너덜한 '흉한 새우'는 '브라운 쉬림프'입니다. 영국 주변 바다와 북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주 맛있는 새우입니다.
☞ 포티트 쉬림프 만들기


'어드미랄 소스'는 안초비, 케이퍼, 샬롯, 넛멕, 버터, 레몬 즙, 버주스verjus 등을 써서 만든 소스를 말합니다. 파스닙 구이와 퓨레도 올라왔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퓨레 중 가장 곱고 가벼웠습니다. 감탄하며 먹었어요. 집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갈고 고운 체로 걸러도 저렇게 매끈한 질감이 나오질 않죠. 저렇게까지 광도 나질 않고요. 저는 이 집의 비결을 압니다. 흐흐흐. 고가의 특수 장비와 인내가 좀 필요하죠. 로또 당첨되면 이런 장비들을 집에 사들이는 게 좋을까요, 그냥 이런 데 와서 잘 만든 음식을 사 먹는 게 나을까요?








 

 Roast Quail (c. 1590)

- Sprout Hearts, Celeriac and Smoked Chestnuts



제가 고른 본식 "메추라기 구이".
제 접시에는 파스닙 퓨레 대신 셀레리악 퓨레가 올라왔는데 이것도 실크처럼 부드럽고 가벼웠습니다. 메추라기 알은 많이 먹어 봤어도 메추라기는 처음 먹어봅니다. 닭고기와 비슷한데 좀 더 고소하면서 맛있네요.








 

 Sides - Triple Cooked Chips (left),

Carrots and Caraway (right)



곁들임 음식들도 추가 주문해보았습니다.
헤스톤의 시그너춰 디쉬 중 하나인 '세 번 익힌 감자 튀김'과 캐러웨이로 맛낸 당근 구이입니다. 영국 당근이 원래 단맛이 많이 나는 편인데 조리를 통해 그 단맛을 극도로 끌어올렸습니다. 영국인들이 저 세 번 익힌 헤스톤의 감자 튀김을 집에서 해먹겠다고 설치다가 부엌에 불을 내는 경우가 많아 영국 소방 당국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세 번 튀긴'이 아니라 '세 번 익힌'이라고 썼는데, 첫 번째 익힐 때는 감자를 튀기지 않고 삶기 때문입니다. 표면을 너덜너덜 일으킨 다음 두 번을 튀기는 거죠. 그렇게 하면 표면적이 넓어져 감자 튀김이 더욱 바삭해집니다.








 

 Millionaire Tart (c. 1730)

- Crystallised Chocolate and Vanilla Ice Cream



다쓰베이더가 고른 후식 "밀리어네어 타트".
영국 전통 제과인 쇼트브레드 위에 캬라멜과 쵸콜렛을 얹어 호화롭게 만든 것을 'Millionaire Shortbread'라 부르는데, 그걸 타트로 재해석한 겁니다. 캬라멜은 타트 밖으로 뺐네요. 밀리어네어 쇼트브레드는 영국인들이 일상에서도 많이들 만들어 먹는 겁니다.


관능적인 질감에 농후하기 짝이 없는 쵸콜렛 층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저 위에 얹은 쏠트 크럼crumb과 방울방울 찍은 캬라멜에서 금색의 무언가가 반짝입니다. 특히 저 재해석한 캬라멜은 황홀할 정도로 영롱해서 시각적으로도 아주 근사했어요.








 

Prune and Tamarind Tart (c. 1730)



제가 주문했던 후식 "말린 자두와 타마린드 소스를 깐 커스타드 타트".
커스타드 타트도 영국의 클래식 디저트죠. 윗면은 '캐임브리지 번트 크림'처럼 설탕을 뿌린 뒤 토치로 녹여 굳혔습니다. 비슷한 것으로 프랑스의 크렘 브륄레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둘 다 오래된 디저트인데, 영국의 음식사학자들은 캐임브리지 번트 크림이 프랑스의 크렘 브륄레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크렘 브륄레의 주재료가 영국의 커스타드인데다 프랑스 요리책에 1691년 처음 올라왔던 레서피가 재판을 찍을 때는 "영국 크림Crème Anglaise"으로 이름이 정정돼서 올랐거든요.

☞ Which came first? Crème brûlée or burnt cream?










아, 타트 만듦새 좀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지름이 큰 타트인데 잘 만들었죠. 타트 껍질 두께가 일관되고, 저 꺾어진 부분도 뭉특하지가 않고 각이 잘 살았습니다. 말린 자두와 타마린드 층도 고르고, 커스타드도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잘 굳었습니다. 자신 없거나 생각 없는 요리사 같으면 저 타트 주변과 위에 장식한답시고 소스나 과일 콤포트, 크림, 아이스크림 등을 덕지덕지 꾸역꾸역 곁들였을 텐데 과감하게 타트 하나만 접시에 올린 것 좀 보세요. 사실 타트를 이루는 요소들을 곰곰이 뜯어 보면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삭한 식감을 주는 요소로 저 쇼트브레드 껍질과 녹여서 단단하게 굳힌 설탕 층이 이미 있고, 신맛을 주는 요소로는 말린 자두와 타마린드 층이 이미 들어가 있으며, 부드러운 커스타드가 한가득이니, 과일 콤포트나 크림, 아이스크림 등을 따로 올릴 필요가 없지요.



이 집의 플레이팅에 대하여
플레이팅에서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실제로 일은 많이 안 해 놓고 뭔가 많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손쉬운 것들을 늘어놓거나 비슷한 요소를 중복해서 올리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외식을 하다 보면 알맹이는 놀라울 정도로 공허한데 겉치레한 음식들을 수두룩 맞닥뜨리게 되죠. 이 집 음식들은 오히려 겉은 단순 명료하고 그 속이 다층적입니다. 'Hidden depth'가 있다고 할까요. 뒤에 나올 다른 음식 사진들도 눈여겨보세요.








 

Caraway Biscuit and Chocolate Pot



식사를 마치고 나니 뭔가를 줍니다.
영국의 전통 과자인 캐러웨이 비스킷과 쵸콜렛 포트네요. 집에서 만들었던 것과 정말 똑같은 맛이 나서 한 입 먹고 나서는 둘 다 '으흐흐' 체셔 캣처럼 웃었더랬습니다. ☞ 헤스톤의 캐러웨이 비스킷 집에서 만들기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전-전식pre-starter, amuse bouche을 주지 않고 식전빵과 마지막 작별 인사 음식만 줍니다. 식사 전에 자잘한 한입 음식들을 내주는 건 프렌치 레스토랑들과 일본 가이세키 집들의 관습이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3인 이상이 단품 메뉴를 주문했을 때는 대신 즉석 아이스크림 트롤리 서비스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세트 런치라 해도 음식들의 양이 꽤 많아 전-전식들이 없어도 전혀 아쉽지가 않습니다. 저희한테는 사실 이 세트 런치도 양이 많았어요. 아침 먹고 온 것을 후회할 정도였습니다.










캐러웨이 비스킷과 쵸콜렛 포트는 커피를 주문해 함께 먹었습니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주방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깔끔해 보이는 걸 보니 여기는 아마 최종 마무리를 하는 주방인 듯하고, 지하에 주방이 또 있다고 하니 거기서 재료 다듬고 육수 내는 등 기본 준비들을 하는 모양입니다.


앗?
저 주방 너머로 익숙한 그림이?!










이 그림은 제가 얼마 전에 소개해드렸던
《Historic Heston Blumenthal》 요리책에 있던 그림 아닙니까!

☞ 단단이 가장 아끼는 요리책


이게 여기 있는 그림이었군요. 반가워서 외마디 비명을 다 질렀었습니다. 네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일인당 점심 150파운드, 저녁 200파운드짜리 'Chef's Table' 공간입니다. 네 명 이상이어야만 예약 가능하답니다.










흐흐흐.
중세 영국의 연회를 묘사.
봐도 봐도 재밌는 그림들.










이건 조지안 시대와 빅토리안 시대의 영국 음식 문화를 담은 그림. 제가 이 공간 앞에 서서 흥분을 하고 있으니까 웨이터 장 같은 '훈남'이 와서 "마음껏 찍으세요. 여기 다 찍으시면 제가 더 멋있는 곳을 보여드릴게요." 합니다. 더 멋있는 곳이란,










바로 이 공간을 말합니다.
12인까지 수용 가능한 'private dining room'이랍니다. 16세기 튜더 시대풍으로 꾸민 정말 멋진 방입니다. 식탁과 의자 좀 보세요. 벽지는 빨간 가죽을 썼습니다.










캬핫, 의자 등받이에 부조를 하나씩 깎아 놓았는데 뭔고 하니, 옛날 영국 요리책들을 한 권씩 품에 안은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 캐릭터들입니다.










이건 《The Accomplished Cook》(1671) 요리책을 품은 두꺼비. 재밌죠. 그 밑에 있는 장미는 '튜더 로즈'이고요.
헤스톤이 이 레스토랑 문 열 때 음식뿐 아니라 다이닝 홀 구석구석까지 신경을 정말 많이 쓴 모양입니다. 음식들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그렇고, 더이상 영국적일 수가 없어요. 미슐랑 3-스타 레스토랑들을 제치고 세계 50대 레스토랑 안에 들어간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2014년 5위, 2015년 7위] 레스토랑이 표방하는 바concept가 이보다 더 극명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프라이빗 다이닝 홀 문에 박혀 있던 돼지 머리.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연상케 합니다.
험상궂게 생겨 마치 야생 멧돼지인 듯 보이나 옛 시절 영국 토종 돼지가 이렇게 생겼었다네요. 원래는 저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들처럼 영국 토종 돼지들도 마음껏 돌아다니며 알아서 도토리나 헤이즐넛 같은 것들을 주워 먹곤 했다는데, 더디 자라고 지방이 늦게 박힌다는 이유로 인간들에 의해 개량 당하고 인간이 주는 것만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화장실에서 빵 집어먹었던 손을 좀 씻고,










레스토랑 뒤에 있는 하이드 파크 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래서 제가 낮에 오시면 좋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 탄 기마 근위병the horse guards도 떠억 맞닥뜨리고, 얼마나 좋습니까.










옛날엔 군인 아저씨들이었는데 지금 보니 다들 조카뻘.;;










잔디밭에는 거위들의 즐거운 한때.










거위들이 풀을 너무 열심히 뜯어 먹고 있어 좀 신기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풀 쥐어뜯는 소리가 정말 생생하게 났는데, 아무래도 잔디 깎는 기계 대신 풀어 놓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기 발 밑에 깔린 게 다 먹을 거라니.










호수.
고즈넉하니 좋죠?
하여간 <디너>는 낮에 가시기를 바랍니다.





- 권여사님과 이모부 모시고 2016년 2월 12일 2차 방문 -

 

 




 


이번에는 단품 메뉴에서 각자 먹고 싶은 것으로 3-코스를 골랐습니다.










병풍식 메뉴를 두르고 있던 띠지를 벗기니 안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현존하는 영국 최고最古의 요리책인 《The Forme of Cury》(1390)에 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이모부가 주문하신 식전주.










꼭 식사 전에 드실 와인을 하우스 와인 목록에서 골라 잔으로 주문하십니다. 아, 몸이 안 좋으셔서 자꾸 술 드시면 안 되는데...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식전 빵과 버터.
옛 영국음식들을 재현했다고 하니 왠지 빵도 골동품처럼 보입니다.  멋있죠.










"나 실은 헤스톤 요리책 읽고 레서피 공부하고 왔다우."
하니 터키 출신의 웨이터 장이 반가워하면서
"이 책 말이죠?" 하면서 가져와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조부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저희도 반가웠죠.









 Frumenty (c. 1390) - Grilled Octopus, Spelt,
Smoked Sea Broth, Pickled Dulse and Lovage



이모부가 선택하신 전식 "문어와 스펠트 밀".
크으... 맛있어 보이죠.
평소 문어 숙회를 즐겨 드셨던 게 기억 나 권해 드렸습니다.
스펠트 밀은 개량되지 않은 옛날 밀을 말합니다. 요즘 밀 같지가 않아 몸에 부담이 덜 된다고 하죠. 꼭 보리처럼 생겼습니다.









 Buttered Crab Loaf (c. 1710)
- Crab, Cucumber, Pickled Lemon and Golden Trout Roe



게 좋아하시는 권여사님이 선택하신 전식 "버터 게살 로프".
저 빵처럼 보이는 게 게살 로프입니다. 위에도 게살이 수북이 올라갔고요. 앞에 놓인 광택 나는 녹색의 것은 오이로 만든 케첩cucumber ketchup입니다. 레서피가 집에 있으니 시간 날 때 다시 찬찬히 들여다봐야겠어요. 오이로 케첩을 다 만들다니.









 Earl Grey Tea Cured Salmon (c. 1730)
- Lemon Salad, Gentleman's Relish, 
Wood Sorrel and Smoked Roe



연어 좋아하는 다쓰베이더가 선택한 전식 "얼 그레이 홍차로 조제한 연어".


독특한 향의 얼 그레이와 랍상 수숑 홍차는 영국 요리사들에게 비장의 무기가 돼주곤 합니다. 영국 요리에서 향 내는 데 참 많이 쓰이죠.


오늘 소개해드리고 있는 <디너>의 음식들 중 무려 네 가지 요리에서 레몬 피클이 보이는데요, 만들어 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 이태리 아말피 레몬이나 쏘렌토 레몬 구할 수 있는 분들은 다음을 참고해 집에서 한번 만들어보세요. 만들기 아주 쉽습니다.
기름진 음식에 잘 어울리는 헤스톤의 레몬 피클 만들기

 

 

 





 

영상을 하나 걸어드립니다. 위 요리의 조리법이 담겼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연어를 고등어로 바꾸어 쓰고 있지만 기본 조리법은 같습니다. 접시 바닥에 도포한 건 '젠틀멘스 렐리쉬'라 불리는 영국의 전통 장sauce입니다. 마늘이 가진 달고 고소한nutty한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마늘향을 은은히 내기 위해 우유에 데쳐 '험한' 마늘 맛 빼내기를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데칠 때 쓴 우유는 매번 버리고 새로 부어서 쓰고요. 마늘 하나도 이렇게 공들여 준비해 씁니다. 왜 파인 다이닝인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Meat Fruit (c. 1500)
- Mandarin, Chicken Liver Parfait and Grilled Bread



제가 주문한 전식 "미트 프룻".
헤스톤의 시그너춰 디쉬를 드디어 먹어봅니다.


"푸아그라도 들었죠?"
서버한테 물어보니 초기에는 썼었는데 이제는 치킨 리버만 써서 만든답니다.
만세.

마음껏 먹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죠, 푸아그라는 정말이지 영국인의 정서에 맞지가 않는 겁니다. 유럽에서 아마 동물 복지를 제일 따지는 사람들이 영국인들일걸요.


저는 사실 동물의 내장은커녕 살코기도 잘 못 먹는 사람입니다.
채식주의자로 6년 가까이 살아본 경험이 있어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죠.
지금도 남유럽의 얇게 저민 조제 고기들이나 몇 점 먹고 소세지나 가끔 먹을 뿐 고기는 잘 안 먹습니다. 살코기도 잘 안 먹는 마당에 영국인들이 푸아그라 대신 즐겨 먹는다는 이 치킨 리버를 먹어봤을 리가 없죠.
저로서는 이 날 큰 모험을 해본 겁니다.
호기심이 거리낌을 이겼던 거죠.










갈라보았습니다.
하하, 그것 참 봐도 봐도 신기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면서 보지만 녹색 샐러드 잎 외의 생채소와 생과일을 먹으면 죽는 줄만 알았던 옛 사람들은 연회 때 이런 생과일로 위장한 고기 요리를 보면서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까요? 그야말로 "써프라이즈!"였던 거죠.


그런데...
내장인데 역하거나 비리진 않을까요?
두근두근...










음?
하나도 비리지 않고 맛있는데요?
고기도 안 즐기고 내장은 더더욱 꺼려하는 제가 먹어도 맛있었으니 <디너> 가시면 안심하고 이거 시키셔도 될 것 같습니다. 푸아그라 없이 치킨 리버만 써도 맛만 좋구만요. 이 요리 레서피도 갖고 있는데, 술을 네 가지나 써서 맛을 냅니다. 정성을 많이 들였더라고요. 질감은 부드럽고 맛은 농후합니다. 만다린 귤을 형상화한 저 젤리층은 정말로 만다린을 써서 맛을 냈습니다. 짙고 풍성한 치킨 리버 파르페의 긴 여운을 잘 끊어주면서cut 맛도 질감도 대비를 이룹니다. 토스트도 향을 잘 냈습니다. 파르페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여럿이서 나누어 맛보라고 서버가 저 불맛 나게 구운 토스트를 한 쪽 더 갖다주었습니다.









 Roast Iberico Pork Chop (c. 1820)
- Pointy Cabbage, Onions and Robert Sauce



이모부가 시키셨던 본식 "이베리코 포크 촙".
영국음식을 내는 집에서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를 쓰는 이유 - 앞에서 말씀드렸죠.


영국도 원래는 돼지들이 알아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주워 먹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들판에 풀어 놓았었는데, 인클로저 운동과 종자 개량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리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먹을 것을 주면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옛 문헌에도 "돼지를 그렇게 키우면 맛없어져! 도토리 주워 먹게 어서 들판에 풀어 놔!" 하는 주장들이 보이곤 하죠. 영국에도 현재 이렇게 키우는 돼지들이 있기는 한데 규모가 적어 수급 문제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돼지말고도 영국에는 품질 뛰어나고 좋은 환경에서 잘 키운 돼지들이 많은데 굳이 이베리코 돼지를 쓰는 이유는 아마 역사성 때문인 듯합니다. 옛 시절 영국의 돼지 사육 환경이 어땠는지를 상기시키는 거죠. 도토리나 헤이즐넛 먹고 자란 돼지들은 맛이 확실히 다르다고도 하고요.


이 요리에 쓰인 소스에 대해서도 언급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대개 소육수나 닭육수를 쓰죠. 돼지육수는 서양 요리책에서 잘 못 보는데, 특유의 풍미가 있어 쓰임새가 소육수나 닭육수에 비해 제한적이라서 그렇답니다. (돈코츠 라멘이 생각 납니다.) 돼지뼈를 많이 써서 육수를 내면 매우 탁해지고, 살코기를 써서 내면 국물 맛은 좋아지나 젤라틴의 부족으로 점도가 떨어져 식감이 떨어진다 하고, 그렇다고 점도를 얻기 위해 농축하다 보면 또 맛이 너무 강해지고 역해진다 하고. 헤스톤은 그래서 돼지육수 바탕의 이 클래식 소스를 만드는 데 돼지뼈, 돼지 귓살, 돼지 어깻살, 세 가지를 섞어서 씁니다. 젤라틴 많은 돼지 귓살을 써서 맛도 내고 입안을 감싸는 기분 좋은 질감도 내는 거죠. 어깻살로는 좀 더 풍부한 맛을 내고요. 120˚C에서 끓는 압력솥을 이용해 진하면서도 덜 탁한 육수를 뽑아낸다고 합니다. 버터, 샬롯, 마늘, 알자스 지방의 베이컨, 타임, 세이지, 씨겨자, 레몬 즙을 써서 소스 맛을 냅니다. 이모부께 한 점 얻어먹어봤는데 고기도, 소스도, 맛있었습니다.









 Hereford Ribeye (c. 1830)
- Mushroom Ketchup and Triple Cooked Chips



권여사님이 주문하신 본식 "헤러포드 립아이".
헤러포드는 영국 육우로 아버딘 앵거스, 샤롤레와 함께 세계 3대 육우 품종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 3대 ○○"라는 말들은 누가 만들어 내는 걸까요?)


권여사님이 너무나 당당하게 "Well done, please!" 하셔서 후후후 웃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평생 숯불에 고기를 바싹 익혀 드시던 세대라서 어쩔 수가 없어요. 쇠고기는 덜 익혀 먹는 게 잘 먹는 거라는 걸 권여사님도 잘 아시지만 분홍빛 액체 흥건한 고기를 보면 식욕이 싹 가신다고 하시니 비싼 음식점 와서 그러면 안 되죠. 음식에 조예 있는 세련된 사람처럼 보이려고 남의 눈치 보면서 레어로 주문하는 것보다는 먹고 싶은 대로 주문하는 편이 저는 더 좋아 보입니다. 나이 칠십이 넘으면 이렇게 남의 눈치 안 보고 당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소스를 끼얹습니다.









위에 얹은 건 훈향 씌운 골수bone marrow입니다.
헤스톤이 훈향과 불맛을 참 좋아해서 이 집의 많은 음식들에서 이런 '불 기운'이 납니다. 영국의 옛 음식들을 재현한 거니 사실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고요. 옛 시절엔 대개 직불에 'spit-roast'를 했을 테니까요.










권여사님의 쇠고기에 같이 제공되었던 세 번 익힌 감자 튀김과 머쉬룸 케첩. 토마토 케첩보다 먼저 존재하던 것이 이 머쉬룸 케첩이랍니다. 미국에서 깡통 토마토 가공하고 남은 것들을 모아 만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그 토마토 케첩이라는데, <디너>에서는 머쉬룸 케첩, 오이 케첩 등 토마토 케첩 이전에 존재하던 옛날 케첩들을 다양하게 선보입니다.
☞ 영국의 옛날 케첩들


극강의 바삭함을 추구하는 저 'triple cooked chips'를 저희는 맛있게 먹었는데 권여사님께는 좀 낯설었던 모양입니다. 바삭하기보다는 딱딱하다고 느끼시더라고요. 감자 튀김의 기준이 아마 롯데리아나 맥도날드로 잡혀 있어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 천하무적 쿠키 몬스터 치아를 가진 저희는 이런 것쯤은 끄떡없이 잘 먹고요. (가만, 쿠키 몬스터가 이가 있었던가?)







 


 Braised Celery (c. 1730)
- Parmesan, Vinaigrette, 
Cider Apple and Smoked Walnuts



다쓰베이더가 주문한 본식 "브레이즈드 셀러리".
'브레이징'이란 기름에 재료를 볶거나 지지다가 소량의 액체를 넣고 뭉근하게 끓이는 조리법을 말합니다. 직화구이roast, 오븐구이bake와 함께 영국 전통 음식의 대표적인 조리법입니다. 구성이 다소 복잡해 보이니 레서피 보고 셀러리만이라도 한번 해먹어봐야겠습니다.









 Powdered Duck Breast (c. 1670)
- Smoked Confit Fennel, Smoked Beetroot and Umbles



제가 시켰던 본식 "특별 조제한 액brine에 담갔다 익힌 오리 가슴살". 오리 소스를 끼얹기 전.










소스 끼얹고 난 후.
조리를 잘해서 벨벳처럼 부드럽게 씹힙니다. 오리 껍질만 홀랑 벗겨서도 먹어보았는데, 껍질도 참 맛있었어요. 채소와 소스도 다 맛있었습니다. 훈향이 물씬 났죠.



헤스톤이 훈향 씌운 오리 기름에 채소 콩피confi하는 것을 좋아하고 소스에 훈향 내는 것도 좋아합니다. 빵가루 보슬보슬 입고 있는 것은 오리 심장입니다. 지난 번 <레드버리>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요리사들이 살코기만 먹게 하지 않고 꼭 이렇게 부속물도 같이 먹게 합니다. 사실 이게 맞는 거죠.









 Brown Bread Ice Cream (c. 1830)
- Salted Butter Caramel, Pear and Malted Yeast Syrup



이모부가 선택하신 후식 "브라운 브레드 아이스크림".
이거, 디자인이 꼭
☞ 중세 원형 방패 같지 않나요?
☞ 아써 왕의 원탁 같기도 하고요.

 

헤스톤이 또 희한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모부께 한 숟갈 얻어먹었는데, 이 아이스크림도 기가 막혔죠. 아이스크림에서 빵맛이 납니다. 강한 이스트맛이 나서 신기했습니다. 아이스크림만 단독으로 먹으면 안 되고 접시에 올라온 저 여섯 가지 요소가 동시에 다 포함되도록 떠먹어야만 균형이 맞으면서 제대로 맛이 납니다. 풍미 짙고 맛있었습니다.








 

 Tipsy Cake (c. 1810) - Spit Roast Pineapple



이 집의 또 다른 시그너춰 디쉬라는 "팁시 케이크".
권여사님과 다쓰베이더가 시킨 후식입니다.
영국의 클래식 디저트인 '브레드 앤드 버터 푸딩bread & butter pudding'인데, 빵은 몽키 브레드와 브리오쉬 제법을 결합해서 구웠습니다. 옛 방식인 스핏-로스트spit-roast로 구운 파인애플도 곁들입니다. 영국음식 내는 집에서 웬 영국에선 나지도 않는 파인애플을 내느냐? 이 블로그 독자분들은 이유를 아실 겁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세요.

☞ 단단이 가장 아끼는 요리책










"팁시tipsy"라는 이름에 걸맞게 빵이 다 익어갈 무렵 브랜디를 부어준다는데, 열에 의해 알콜 성분이 증발했는지 향만 나고 술 기운은 안 느껴집니다. 제가 먹어본 브레드 앤드 버터 푸딩 중 최고입니다. 어찌나 촉촉하고 풍미 짙던지요.


이건 까다롭더라도 레서피를 보고 집에서 꼭 만들어봐야겠어요. 우선 저 까만색 스타우브 주철 코코트 냄비부터 구입을.









 Sambocade (c. 1390)
- Goats Milk Cheesecake, Elderflower and Apple,
Perry Poached Pear and Smoked Candied Walnuts



이건 치즈와 치즈케이크 애호가인 제가 주문했던 "치즈케이크"입니다. 1390년 경의 영국 엘더플라워 치즈케이크를 재해석했습니다. 소젖 치즈 대신 염소젖 치즈와 염소젖 크림을 썼고, 외형도 꼭 숯가루 뿌린 염소젖 치즈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위의 '미트 프룻'처럼 이것도 중세 영국식 "써프라이즈!" 기법을 쓰고 있는 거죠.


치즈케이크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지요.
 달걀을 넣고 열로 굳힌 치즈케이크 (커스타드 타입)
젤라틴으로 굳힌 비가열 치즈케이크 (무스 타입)


헤스톤은 꿈같고 섬세한 엘더플라워 맛과 향을 잃지 않기 위해 비가열식을 채택했습니다.


치즈케이크 옆에는 배 술인 페리perry에 데친 영국 배와 설탕막을 씌워 바삭하게 만든 훈제 호두를 곁들였습니다. 호두에서 훈향이 나는데, 이것 참 별미더라고요.

 

저 잎들은 장식으로 올린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죠.) 레몬과 신 사과 같은 산미가 납니다. ☞ 아이언 크로스 소렐iron cross sorrel인 것 같습니다.










먹느라 반 가른 사진을 못 찍었는데, 속에는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바닥에는 바삭한 비스킷 층

그 위에는 염소젖 풍미가 제법 나는 단맛 적은 크림·치즈 층

정가운데에는 끈적하게 흐르는 엘더플라워-포도잼 층

식감 대비를 위한 잘게 다져 넣은 사과 콤포트

그 위에는 다시 엘더플라워 코디알로 맛낸 단맛 나는 염소젖 크림·치즈 층

 

겉에서 보았을 때는 단순한 치즈 원기둥처럼 보이지만 안은 복잡하면서 재료 간 궁합이 기가 막힙니다. 포도, 사과, 숯가루charcoal powder 넣은 크래커는 영국인들이 치즈 먹을 때 치즈보드에 단골로 얹는 것들이기도 하죠. 아이디어 좋아요. 치즈케이크 겉에 뿌린 저 까만 숯가루는 원래 치즈 제조에 많이들 쓰는 겁니다. 옛 시절엔 방부 효과와 유막 생성을 막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로 썼는데 오늘날엔 주로 시각적 효과를 위해 씁니다. 맛은 거의 안 납니다. 영국에서는 엘더플라워를 음식에 많이 활용합니다. 주로 코디알 형태로 전환해 넣곤 하죠. 꿈같은 향이 나는 낭만적인 재료입니다.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치즈케이크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겠습니다.








 

 Nitro Ice Cream Trolley



식사를 마치고 나니 메뉴에는 없는 아이스크림 트롤리가 와서 아이스크림 쇼를 펼칩니다. 헤스톤이 아이스크림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서비스를 합니다. 영하 196˚C에서 끓는다는 액화 질소liquid nitrogen를 이용해 삽시간에 온도를 떨어뜨려 크림을 얼리는 겁니다. 리퀴드 나이트로젠 아이스크림 하면 여기서는 무조건 헤스톤을 떠올립니다. 이 양반이 유행을 시켰거든요.










먼저 바닐라 아이스크림 혼합물을 붓고,










액화 질소를 부어 저어주면,
어어, 구름이다!










아이스크림 완성.










저 버터 풍미 물씬 나는 고소한 콘은 빛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으면서 바삭했고, 아이스크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식감에 진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토핑은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데, 저는 저 바삭하고 새콤달콤한 동결 건조 라즈베리를 듬뿍 묻혀 먹었습니다. 동결 건조 라즈베리도 돈 주고 사려면 질 좋은 것들은 꽤 비쌉니다.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아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이 아이스크림 서비스는 아마 3인 이상이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트 런치보다는 비싼 단품 메뉴를 시켜야 주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Caraway Biscuit and Chocolate Pot



이번에도 고별 선물로 캐러웨이 비스킷과 쵸콜렛 포트를 줍니다.



저는 이 집에서 즐겁게, 맛있게, 아주 잘 먹었습니다. 음식도, 인테리어도, 창밖 풍경도, 서비스도, 터키 출신의 훈남 웨이터 장도, 깜짝 아이스크림 쇼도, 모두 좋았습니다.

<디너>에서의 4인 식사는 우리 이모부께서 사주셨습니다.

 









어느 나라건 박봉에 장시간 시달리는 요리사들.
그대들의 영혼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스핏-로스트로 파인애플을 굽고 있는 모습.




식사를 마친 뒤 이번에는 넷이서 함께 하이드 파크를 산책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떠억 막은 채 비둘기 수컷 한 마리가 암컷한테 목 깃털 잔뜩 세우고 한참 동안 정말 열심히 구애를 했는데,
엥, 암컷이 눈길 한 번 안 주고 도도하게 굴다가 그냥 후루룩 날아가 버렸어요.
비둘기가 속상해하는 모습, 이 날 처음 목격했습니다.
우리 넷이서 대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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