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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런던여행] 마커스 앳 더 바클리 Marcus At The Berkeley

단 단 2016. 6. 14. 00:00

 

 

 

 

생일 밥 먹으러 런던에 왔습니다. 엄마와 이모부 다녀가시고 나서 4개월 만에 하는 외식입니다. 단단의 런던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 방문기를 보신 어느 독지가께서 "이번에는 미슐랑 3-스타 레스토랑을 한번 가 보라"며 금일봉을 하사하셨습니다. 제 레스토랑 리뷰가 재미있으셨답니다. 또 한 번 리뷰 자세히 잘 써 보라며 넉넉히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나서 브리티쉬 아방가르드 퀴진을 선보이는 헤스톤 블루멘쏠의 <팻 덕Fat Duck>을 예약하려고 보니 런던 근교까지의 교통비는 둘째치고 밥 먹는 데만 둘이서 백만원이 들게 생겼습니다.

백만원.
허허허.


설사 그 돈이 수중에 있다 하더라도 소시민인 저로서는 한 끼 식사에 백만원이나 들일 배짱이 도저히 나질 않습니다. 그 돈이면 점심 때 미슐랑 1-스타나 2-스타 레스토랑 가서 저렴한 세트 런치 먹고 남는 돈으로 켄우드 스탠드믹서 살 수 있을 텐데. 그 돈이면 디자이너 플레이트 바리바리 사서 집에서 플레이팅 기가 막히게 할 수 있을 텐데. 그 돈이면 못 먹어 본 컨티넨탈 치즈들 잔뜩 사서 시식기 한참 쓸 수 있을 텐데. 그 돈이면 버러 마켓Borough Market 가서 각 나라 샤쿠테리charcuterie 제품들 다 사서 맛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차선책으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인다는 고든 램지의 미슐랑 3-스타 레스토랑을 예약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긴 또 전세계에서 오는 여행자들까지 수용하느라 4월말인데도 벌써 6월말까지 예약이 꽉 찼습니다. 고든 램지의 인기는 여전하네요. 영국 와서 활동중인 프랑스인 요리사들이 버글버글한 마당에 왜 영국인까지 합세해 그 좋은 영국 재료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영국 요리사들도 요즘 이런 생각들을 해서 '탈-프렌치 퀴진'이 유행입니다. 심지어 고든 램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도 저처럼 영국음식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영국음식만 골라 시켜 먹는 것도 가능합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한국의 '파인 다이닝' 외식 현장에서 양식 요리사들보다는 한식 요리사들을 더 응원합니다. 제가 만약 한국에서 훌륭한 식재료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한식 요리사들한테 먼저 기회를 줄 것 같아요.) 미슐랑 3-스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응원하고픈 마음이 생겨 고든 램지 레스토랑에 꼭 가 보고 싶었습니다. 올해 9월까지만 고든 램지와 일하고 독립한다고 하니 마지막 기회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렇게 예약하기가 힘드니 클레어 스미쓰Clare Smyth의 솜씨는 독립해 자기 레스토랑을 차린 다음에나 맛볼 수 있겠습니다. 차선책도 결국 실패.

 

 

 

 

 

 

 

 

세 번째로 미슐랑 2-스타 셰프인 마커스 웨어링의 레스토랑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약 성공. 세계적으로 이름난 부촌 중 하나인 벨그레이비아Belgravia에 있는 바클리 호텔 안에 입점해 있습니다. ('Berkeley'를 영국 발음으로는 '버클리'가 아니라 바클리'라고 합니다.) 다소 격식 있고 엄한 분위기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벗어나고자 2014년에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재개장 했고 메뉴도 탈-프렌치한 좀 더 영국스러운 음식들을 선보입니다. 바클리 호텔과 새로 10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죠. 위의 영상들은 그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마커스 웨어링은 젊은 요리사들의 등용문인 <마스터셰프 프로페셔날>의 심사위원입니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 자주 보죠. <마스터셰프> 프로그램은 한국에도 수입돼 들어갔죠? 영국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저기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떤지 모르겠는데, 영국 <마스터셰프 프로페셔날>은 대단히 재미있고 정보가 많아 매년 빼놓지 않고 꼭 챙겨서 봅니다. 그 해에 유행하는 조리기술, 재료, 플레이팅, 타국 요리 영향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일류 레스토랑들의 속살을 엿볼 수 있어 요리에 관심있는 분들은 꼭 보셔야 합니다. 영국이라는 공간에 한정돼 있질 않고 매우 '글로발'합니다. 심사위원이 프랑스 사람Michel Roux Jr에서 영국인으로 바뀐 뒤 쇼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고, 프랑스인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려고 젊은 영국 요리사들이 열심히 프랑스 음식들을 해대다가 이제는 마음 놓고 영국음식들을 해댑니다. 타국 음식들도 더 많이 보이고요. 진작 좀 영국인으로 바꿀 것이지. (저 이 프로그램 보면서 요리사들에 대한 무한 관심과 애정이 생겼습니다. 귀국해 어디 가서 요리사 만나면 모르는 분이라도 손에 천 원 쥐어 드리며 "습하고 더운 주방에서 고생 많으시니 '비비빅' 하나 사 드시라" 하고 싶어요.)

 

 

 

 

 

 

 

 

이 영상은 테이스팅 메뉴의 플레이팅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요리사들이 플레이팅 하는 모습 구경하는 게 저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공연입니다. (반대로, 플레이팅 엉망인 요리 보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또 없고요.)


이 집의 음식 가격은 현재 이렇습니다:

 양 적고 플레이팅 구성 요소가 비교적 단순한 5-코스 세트 런치: 49파운드
양 많고 복잡한 플레이팅의 단품 3-코스: 85파운드
양 많고 복잡한 플레이팅의 단품 4-코스: 105파운드
세트 런치보다는 양이 많고 플레이팅 구성 요소가 복잡한 8-코스 테이스팅 메뉴: 120파운드
별실에서 따로 진행되는 'Chef's Table': 가격은 다이너의 요구에 따라 변동.


영국인들의 체감 물가와 비교하시려면 환율대로 계산하시면 안 되고
49파운드는 4만9천원,
120파운드는 12만원,
이렇게 생각하셔야 얼추 비슷합니다.

 

 

 

 

 

 

 

 

 

안타깝게도 다쓰 부처는 위가 작아 양이 많거나 코스 수 많은 것은 못 먹습니다. 돈이 있어도 못 사 먹어요. 저희는 점심 때 가서 양 적고 가장 저렴한 5-코스짜리 '봄의 맛Taste of Spring'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계절별로 바뀌는 세트 런치입니다. 이것도 사실 끝까지 먹느라 고군분투했습니다. 메뉴에는 5-코스로 써 있었으나 실제로는 열 가지 음식이 나왔는데 1인당 49파운드라뇨, 이 양반이 지금 자선 사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인건비나 겨우 나오려나요? 한국으로 치면 4만 9천원짜리 코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비교하시면서 보세요.

 

 

 

 

 

 

 

 Pre-starter - steak and chips



전-전식amuse bouche으로는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 나왔습니다. 브리티쉬 클래식인데 이걸 동그란 튀김으로 만들었어요. 안에 스테이크가 들어가 있고 겉에 감자튀김이 붙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발상이죠. 큰 접시에 담기는 요리를 이렇게 '미니어처' 한입거리로 축소해 만드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맛있었습니다. 바삭하면서 안에 든 스테이크는 쫄깃, 식감도 좋고, 맛도 좋고.

 

 

 

 

 

 

 

 Fennel seeds and potato bread, butter



회향과 감자로 맛낸 독특한 풍미의 빵입니다. 이것도 맛있었습니다. 특히 향이 참 좋았습니다. 이 빵은 레서피 찾아서 저도 집에서 구워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버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용돌이 무늬가 보입니다. 처음부터 원통log 형으로 굳힌 것을 자른 게 아니라 버터를 얇게 밀어서 편 다음 무언가로 맛을 보탠 뒤 돌돌 만 것을 썰어 냈어요. 특별한 소금이라도 쓴 걸까요?

 

 

 

 

 

 

 

 

 

매 음식에 맞는 와인 시음wine flights은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소믈리에가 추천해 주는 35파운드짜리
 'Sommelier's Selection'
 좀 더 고급 와인들로 구성되는 49파운드짜리
 'Prestige Selection'

 

이 외에, 잔으로도 마실 수 있고 병으로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술 안 마시는 'teetotal' 다쓰 부처는 그냥 미네랄 워터나 두 병 주문할 수밖에요. 와인 안 마셔서 이런 데 오면 왠지 홀대 받을 것 같아 늘 눈치가 보이고 주눅 들어요. 사실 레스토랑들이 요리만 내서는 수입이 안 난다고 하죠. 1인당 50만원짜리 코스를 내는 헤스톤의 <팻 덕>도 음식만으로는 수입이 거의 안 난다고 인터뷰 한 걸 보고 놀란 적 있습니다. 그릇값, 재료비, 인건비로 다 나간다고 합니다. 직원 수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러니 싼 코스 시키면서 술도 안 마셔 주는 저희 같은 손님은 레스토랑이 속으로 미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런데 술 안 마시는 손님 입장에서는 술도 아닌 미네랄 워터가 한 병에 5.5파운드나 하니 속이 쓰립니다. 한국에서는 공짜로 얻어 마시는 물인데 여기서는 물 두 병에 2만원을 줘야 하죠. 그래도 이거라도 마셔 줘야 예의라고 생각돼 꼭 주문을 합니다. 참, 유럽 여행 오셔서 코스 내는 집에 들어가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달랑 메인 하나만 주문해 먹고 나오는 것도 예의는 아닙니다. 최소한 메인과 디저트, 두 개는 시켜 주셔야 합니다. 술이나 음료, 하다 못해 미네랄 워터라도 한 병 시키시고요.

 

물병 너머 장년 부부가 있는데 옷차림을 보세요.
이런 데 올 때 남성은 넥타이까지는 매지 않아도 되나 셔츠에 쟈킷 정도까지는 걸쳐 주는 게 좋고 ('스마트 캐주얼'이라고 부릅니다.) 여성은 우아한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입으면 됩니다. 여기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격식 있는 식사 자리일수록 여성들이 살을 많이 드러내는 옷을 입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격식을 차리는 거라고 하네요. (<다운튼 애비> 만찬 장면의 여성들 옷차림을 떠올려 보세요.)

 

 

 

 

 

 

 

 


바로 이런 차림이요.
남자는 꽁꽁, 여자는 훌렁훌렁.
가슴과 등 부분이 많이 파이면 좋고 팔까지 드러나면 더 좋죠.
나이는 전혀 상관 없어요.
연세 드신 분들도 과감하게 드러내세요.
이럴 때 살 드러내고 멋부려 보지 언제 멋부려 봅니까.
이 드라마는 1920~30년대 배경이지만 영국에서는 요즘도 이런 차림이 유효합니다. 이 사진 바로 전에 올린 장년 부부 사진에서도 마나님이 왼쪽에 있는 메리와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1st course: cured salmon, buttermilk, melon, lime

 


첫 번째 요리가 나왔습니다.
스코틀랜드산 연어를 감귤류 즙 등을 써서 향긋하게 절였는데, 연어 살에 적당히 힘이 있어 씹는 맛이 좋았습니다. 그 위에는 붉게 물들이고 향 낸 샬롯을 잘게 다져 올렸습니다. 바닥에 깔린 하얀 버터밀크는 레몬그라스로 맛을 냈습니다. 따로 얹은 보라색 샬롯 링, 멜론, 오이도 다 다른 맛을 내서 절였습니다. 음식 양은 적지만 공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수를 어린 잎으로도 올리고 꽃도 함께 올렸습니다. 어린 잎과 꽃을 함께 올리려면 어린 화분, 늙은 화분을 따로 두고 쓴다는 소린데요. 점점이 찍은 노란색 소스는 동남아에서 많이 쓰는 작은 ☞ 깔라만시 라임으로 맛냈다고 합니다. (서버한테 이건 뭐냐 저건 뭐냐 하나하나 꼼꼼히 물어서 필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음식은 영국산 주재료를 동남아시아산 부재료들로 맛낸 거지요. 참신했습니다. 연어는 찬물 생선이라 동남아시아 쪽에서는 보기가 힘들 텐데 서로 만날 일이 자주 없는 주재료와 부재료를 결합시킨 거죠. 전체적으로 향을 매우 잘 낸 음식입니다. 저는 스칸디나비아 ☞ 그라바들락스보다 더 향기롭고 맛있었습니다. 향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고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다쓰 부처 둘 다 첫 접시 맛보고는 '아, 마커스 웨어링, 향에 특별한 감각이 있고 매우 꼼꼼한 요리사구나.' 직감을 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요리들도 다들 향이 좋아 기대에 부응을 했고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가시면 접시 위에 공들인 요소가 몇 가지나 올라 왔는지 한번 세어 보세요. 생재료나 손쉽게 준비한 것들 말고 품이 들어간 것들만 쳐서 이 한 접시를 위해 요리사가 얼마나 공을 들였나 품을 계산해 보세요. 그러나 잡다하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 빈약해도 안 되고, 과욕을 부려 너무 지나쳐도 안 되고, 이걸 조절하는 게 힘들다고 하죠. 요리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야심찬 젊은 요리사들이 늘 접시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대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접시 위의 요소들을 살펴본 다음에는 그 요소들 사이의 조화, 대비, 균형을 생각해 보세요. 이 요리사가 과연 음식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했는지, 감각이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2nd course: roasted turbot, Hampshire asparagus,

fresh baby garlic



구운 터봇이 나왔습니다. 저는 터봇 하면 영화 <번트Burnt>의 씨에나 밀러가 생각 납니다. 이 영화의 주방 장면을 마커스 웨어링이 지도했는데 터봇 굽는 장면을 위해 씨에나 밀러에게 이 비싼 생선을 수없이 포fillet 뜨고 구워서 동작을 익히게 했다고 하죠. 그래서 이제는 웬만한 프로급 요리사들처럼 터봇을 익힐 수 있다 하고요. 터봇 잘못 익혀서 주인공인 GR 셰프한테 혼나는 영화 속 장면이 생각 납니다. 인상적이었죠. "이 따위로 터봇을 조리해? 어서 터봇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 "Turbot, I sincerely apologise..."

 

과연 이 터봇 장면을 지도할 만큼 마커스 웨어링은 자기 주방 사람들도 훈련을 잘 시켰습니다. 최적의 상태로 잘 조리되었습니다. 제 취향으로는 흰살 생선 중 이 터봇이 가장 뛰어난 맛과 식감을 지녔다고 봅니다. 대구 종류cod, haddock, 소올dover sole, lemon sole, 농어sea bass보다 살도 더 단단하고 쫀쫀하고 찰지고 풍미도 진하면서 향긋해 맛있어요. 값도 물론 훨씬 비싸고요. 싼 생선이면 부담없이 사다가 집에서 이렇게저렇게 실험도 해보고 망쳐 보기도 하며 요리해 먹을 수 있겠지만 터봇 같이 어획량이 많지 않으면서 비싼 생선은 그냥 이런 데 와서 솜씨 좋은 이가 잘 조리한 것을 사 먹는 게 낫습니다. 수산시장 옆에 살지 않는 한 저 같은 일반 소비자는 일급 영업집들만큼 신선한 것을 구하기도 어렵고요.

 

아스파라거스가 제가 사는 햄프셔 주에서 자란 것이어서 반가웠습니다. 독일인들은 흰색 아스파라거스를, 푸른 초원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녹색 아스파라거스를 선호합니다. 사각사각 씹히도록 적당히 잘 익혔고 ☞ 어린 야생 마늘의 녹색 잎으로 낸 소스도 맛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 마늘을 잘 안 씁니다. 대신 좀 더 은은하고 섬세한 마늘 향이 나는 이 와일드 갈릭 잎과 꽃을 즐겨 씁니다. 치즈도 와일드 갈릭 잎으로 싸서 즐깁니다. 치즈에서 세련된 마늘빵 맛이 나죠. (☞ 영국 치즈 - 와일드 갈릭 야그) 우리말로는 이 야생 마늘 잎을 '명이나물'이라고 부르죠?

 

 

 

 

 

 

 

 3rd course: quail, white onion, artichoke



브레이징braising한 부드러운 흰 양파 위에 잘 지진 메추라기 가슴살을 얹은 세 번째 코스입니다. 저는 닭고기보다는 메추라기가 좀 더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왼쪽은 아티쵸크이고, 샬롯 튀긴 것도 같이 얹었습니다. 맛도 좋았지만 이것도 향이 참 좋았습니다. 클래식 조합인 주니퍼베리를 써서 향을 냈다는데 팔각이나 오향도 조금 추가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아니스anise 계열 향신료들을 좋아해 이런 게 들어가면 대번 알아차리거든요.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요소들 모두 알맞게 잘 익혀서 맛있었습니다. 저 아티쵸크 손질하느라 주방의 막내 셰프가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4th course: chargrilled Cumbrian veal neck,

pomme purée, Pommery mustard

 


네 번째 고기 코스는 두 가지 중에 선택이 가능합니다. 다쓰베이더는 송아지 목살을 선택했습니다. 고기의 결이 마치 갈비찜이나 장조림 고기처럼 약간 굵고 거칠고 특유의 풍미가 있으나 잘 익혀서 부드럽게 씹혔습니다. 비교적 저렴한 부위일 텐데 나름의 풍미가 있는데다 조리를 잘 해서 맛있었습니다. 고기 위에 아주 얇게 저민 양송이 버섯이 올라가 있습니다. 소스jus는 뽀머리 머스타드로 맛을 냈습니다. 소스에 겨자씨 알갱이가 듬성듬성 보이죠?


뽐 퓨레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고소한 맛 외에 캬라멜 같은 단맛이 나서 신음을 내며 먹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 양반 요리책을 보니 감자를 헤이즐넛 풍의 고소한 맛을 가진 라떼ratte 품종으로 쓰고 맛을 보존하기 위해 껍질째 익혀서 씁니다. 유제품은 버터, 크림, 우유, 이 세 종류를 다 쓰고 있고요. 라떼는 제가 영국의 저지 로얄Jersey Royals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유럽의 샐러드용 점질waxy 감자 품종입니다. 그래서 뽐 퓨레에서 이런 천상의 맛이 나는 거지요. ☞ 라떼 포테이토로 만든 뽐 무슬린

 

 

 

 

 

 

 

 

 4th course: 60 day aged sirloin,

Jersey Royal potatoes, Bois Boudran dressing

(£12 Supplement)

 


저는 12파운드를 추가로 지불하고 좀 더 고급 부위의 쇠고기로 먹었습니다. 60일 숙성시킨 채끝살입니다. 돈 좀 더 줬다고 양도 어찌나 많이 주던지, 접시 받고 나서 걱정이 좀 됐습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하루 단백질 양은 자기 손바닥 면적보다 적다는데 한 끼에 이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건가 하고 말이죠. 연어도 먹고, 터봇도 먹고, 메추라기도 먹어 이미 하루 양을 채웠는데요. 테이스팅 메뉴인데 제대로 된 단품 요리a la carte 양을 줍니다. 큼직하게 썬 고깃덩이를 여섯 쪽이나 올려 줬는데,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서 그래도 여섯 쪽 중 반은 먹었습니다.


맛은 뭐 훌륭합니다. 제가 외식하면서 먹어 본 쇠고기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고급 부위라 그런 건지, 숙성을 잘 해서 그런 건지, 조리를 잘 해서 그런 건지(셋 다이겠지요), 목살에 비하면 고기 결도 곱고 맛도 향도 참 좋네요. 오른쪽에 보이는 얇게 저민 것은 조제 쇠고기입니다. 제가 라떼 감자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점질waxy 감자인 저지 로얄이 올라와 있습니다. 지금이 제철이라서 레스토랑들이 이맘때 부지런히 냅니다. 철이 짧아요. 저지 로얄은 조리된 모습을 보니 프랑스 식으로 물에 잠깐 삶다가 기름 두른 팬에 지진 뒤 버터 잔뜩 넣고 소테sauté를 한 모양입니다. ☞ Jersey Royals PDO

 

곁들인 '부아 부드랑Bois Boudran' 소스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음식 대부 미셸 루Michel Roux가 창작해 영국에 퍼뜨린 소스입니다. 프랑스 클래식 소스들이란 게 있죠? 그런데 프랑스 요리사들이 영국 와 활동하면서 창작한 소스들의 계보도 따로 있습니다. 이웃한 나라이다 보니 예로부터 프랑스 요리사들이 영국에 건너 와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들이 영국에 있을 동안 창작한 유명 소스들이 있어요. 이 소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재료들이 동원된 맛있는 소스로, 저도 이 소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레서피는 이 글을 참고하세요. ☞ 새우깡 럭셔리하게 먹는 법 마커스 웨어링이 미셸 루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 이 소스를 활용하는 모양입니다. 쇠고기, 닭, 생선, 감자, 심지어 새우깡에까지, 다 잘 어울립니다.

 

 

 

 

 

 

 

 Cheese selection (£12 Supplement)



배가 불러서 치즈 코스는 또 꿈도 못 꿉니다. 사실 치즈는 집에서도 워낙 잘 먹고 있어 이런 데 와서 굳이 시켜야 할 필요도 못 느끼고요. 저 멀리 치즈 트롤리와 서버가 보이죠? 다른 테이블에서 치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집에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처럼 치즈 코스 내기

 

 

 

 

 

 

 

 5th course: tonka meringue, spring berries, yoghurt



마지막 코스인 후식이 나왔습니다.
영국과 북유럽은 베리의 천국입니다. 남유럽은 레몬과 오렌지 같은 감귤류로 복을 받았고 북유럽은 베리류로 복을 받고 있으므로 신은 공평하다는 말, 제가 이 블로그에서 벌써 세 번째 드립니다. 그래서 영국음식에는 이렇게 베리를 활용한 디저트가 많아요. 오늘날 전세계에서 즐기고 있는 딸기 타트는 이미 튜더 시대에 기록이 있을 정도이고요. 이 디저트에는 다섯 가지 영국 베리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스트로베리, 와일드 스트로베리, 라즈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생과일에 다들 향을 입혔습니다. 머랭도 크고 작은 것들이 함께 올라와 있고, 요거트와 소르베도 보이고, 소스도 두 가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소르베, 그라니따, 셔벗,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차이를 아시죠?


소르베sorbet: 설탕물에 과일 즙이나 퓨레, 술 등을 넣어 지방 성분 없이 고운 입자로 얼린 것


그라니따granita: 재료는 비슷하나 통에 담아 그냥 얼려서 긁어 팥빙수 얼음처럼 거친 질감이 나는 것


셔벗sherbet: 소르베 재료에 달걀 흰자나 우유, 크림, 버터밀크, 젤라틴 같은 것을 넣어 부드러운 질감을 낸 것


젤라또gelato: 우유를 좀 더 많이 넣고 저어가며 고운 입자로 얼린 부드럽고 가볍고 신선한 아이스크림 (아이스밀크라 불리면 더 좋겠음)


일반 아이스크림: 크림을 넣어 저어가며 고운 입자로 얼린 기름지고 부드럽고 럭셔리한 질감의 것


이 접시에 올라와 있는 것은 설탕물에 과일 즙을 혼합해 저어 고운 질감을 낸 뒤 얼린 소르베. 여기 사람들은 소르베를 단순한 빙과류가 아니라 '입 안을 말끔히 정리해 주는 것palate cleanser'으로 여깁니다. 후식이 아니더라도 기름지고 농후한 요리 뒤, 그 다음 요리 전에 입 안을 정리하기 위해 제공할 때가 있죠.

 

 

 

 

 

 

 

 

 

머랭을 가르니 속에 ☞ 통카 빈으로 맛낸 크림이 나옵니다. 통카 빈은 최근 몇 년 사이 이곳 요리사들 사이에서 대유행을 하고 있는 재료인데, 바닐라, 코코넛, 사워 체리, 정향cloves, 감초licorice 맛을 모두 지녀 비장의 무기처럼 쓰입니다. 향수 업계에서도 쓰는 재료이고요. 넛멕갈이를 써서 갈아 쓰는데 독성이 있으므로 극미량을 써야 합니다. 바닐라 빈과 달리 머랭 속 크림에 거뭇거뭇한 점이 딱 세 개 밖에 안 보이죠. 독성 때문에 조심해서 쓰는 거죠. 향은 환상적입니다. 단 음식에만 쓰지 않고 잘만 쓰면 식사용 짭짤한 음식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베리류로 맛낸 리큐어를 함께 썼는지, 통카 빈과 함께 전체적으로 향이 참 좋고 인상적인 디저트였습니다. 요거트에도, 소르베에도 따로 베리 맛을 냈어요. 공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리뷰 쓰면서도 또 먹고 싶어 삼삼합니다.


여기까지 해서 다섯 코스는 모두 끝났고요.

 

 

 

 

 

 

 

 


식후 커피도 추가 비용 없이 제공됐습니다.
저는 라떼,

 

 

 

 

 

 

 

 


다쓰베이더는 에스프레소 싱글 숏.

 

 

 

 

 

 

 

 Nutmeg and custard

 


커피와 함께 즐기라고 영국의 클래식 디저트인 커스타드 타트를 같이 냈습니다. 커스타드 타트는 마커스 웨어링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의미 있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프로페셔날 셰프들 경연대회에서 마커스 웨어링이 이 커스타드 타트를 만들어 여왕의 80세 생일 기념 만찬에 솜씨를 뽐낼 영국 최고의 셰프 최종 4인방에 뽑혔거든요. 커리어에 큰 획을 그었죠. 영국인들은 자국의 클래식 디저트인 이 커스타드 타트를 떠올릴 때마다 이제 마커스 웨어링의 얼굴을 함께 떠올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께 자랑도 할 겸 마지막 작별 인사로 이 커스타드 타트를 건네는 거지요. ☞ 마커스 웨어링의 커스타드 타트 집에서 만들기


과연 칭송 받을 만한 맛입니다. 딱 알맞게 잘 굳어서 접시를 건드리니 귀엽게 '워블워블' 흔들립니다. 떠 먹으니 촉촉하고 보들보들, 사르르 입 안에서 녹아내리고요. 맛도 진해서 이 정도 양으로도 충분합니다. 넛멕으로 맛내는 것은 전통식입니다. 커스타드 속 넛멕처럼 꿈같은 맛이 또 있을까요.

 

 

 

 

 

 

 

 Raspberry cheesecake



아, 생일 케이크.
예약할 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맞은 분들은 귀띔을 하세요. 그러면 이런 걸 받을 수 있습니다.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 결합돼 살살 녹습니다.
맛있었어요. 잘 만든 치즈케이크입니다.

 

 

 

 

 

 

 

 

 

하하하, 다른 테이블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장년의 부부, 참 우아하고 보기 좋죠?
잘 차려입고 오셨습니다.
이 집은 재미있게도 커플이 마주보고 앉게 하지를 않고 길고 푹신한 체스터필드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게 합니다. 좀 더 친밀하고 편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겠다는 거죠. 테이블마다 다들 이렇게 앉아 있어서 후후 웃었습니다. 마주앉아 비즈니스 런치를 하는 테이블도 물론 있었고요.

 

 

 

 

 

 

 

 A sweet treat to take home



계산서와 함께 뭘 또 줍니다.
49파운드짜리에 뭘 이렇게 많이 내줍니까?
남는 것도 없겠어요.

 

 

 

 

 

 

 

 Unpacked: Ginger Cake



집에 가려면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이동중 뭉개질까봐 미리 열어서 사진 찍어 둡니다. 이번에는 생강으로 맛낸 전통 케이크네요. 그러니까 이 집은 후식과 단것 세 가지를 모두 영국 전통 음식으로 내고 있는 거지요. 영국은 디저트와 제과가 매우 발달해 있는 나라라서 프랑스의 신세를 지지 않고도 자국 음식으로만 너끈히 해결을 볼 수가 있습니다.

 



총평
이만하면 런던의 레스토랑 중 '가성비' 최고라고 봅니다.
세트 런치인 'Taste of Spring'은 거의 자선 사업 수준입니다. 이 값이면 커피를 따로 주문한 헤스톤의 <디너> 세트 런치와 거의 같은 값인데 음식은 이 집이 훨씬 다채롭게 잘 나와 세트 런치만 놓고 따져 봤을 때는 이 집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음식 맛, 즉, 솜씨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두 집 다 좋습니다. (두 요리사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 음식 특징이 다릅니다.) 이 집은 식사 시간도 무려 2시간 반이나 주어 여유롭습니다. 음식들이 굉장히 정제돼 있고 세련된 느낌이 납니다. 맛도 좋지만 음식에 특히 향을 참 잘 냅니다.
마커스 웨어링 다시 봤어요.
집에 있는 이 양반 요리책들 보고 이것저것 따라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회가 또 온다면 다음 번에는 제대로 된 테이스팅 메뉴를 맛보고 싶습니다.



☞ 마커스 웨어링의 요리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영화: Burnt (2015)
☞ 마커스 앳 더 바클리
☞ 런던의 또 다른 미슐랑 2-스타 레스토랑: The Ledbury
☞ 런던의 또 다른 미슐랑 2-스타 레스토랑: Dinner by Heston Blumenthal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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