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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민주주의와 대중

단 단 2016. 6. 27. 00:00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중이다. 
(아직도 이번 사건을 곱씹고 있는 단단.)
(그 왕성하던 식욕이 싹 달아나 며칠 새 살이 좀 빠졌음.)

 

인류 역사에서 내가 이해 못 하는 사건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뭐냐면, 그토록 빛나는 사상과 음악을 가졌던 독일에 어째서 저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왔냐는 것이다. 나는 태교를 믿지 않는다. 이런 일을 목도하고도 '좋은 생각 하고 좋은 음악 많이 들으면 아기가 총명해지고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는 게 신기하다. (예술가는 인품이 훌륭해야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더 어이없는 사람도 보긴 했다만.) 그런데 그 히틀러가 선거로 버젓이 당선된 사람이라며?

 

내게는 이번 일도 그에 못지 않게 황당하다.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이 이토록 큰 사안이면 저 스콧들처럼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췄어야 했는데 그것도 안 했고, 최소 득표율 설정도 안 해 놨고, 덜컥 투표 공약 싸질렀던 총리는 국민 설득도 제대로 못 했고. 2차대전 다룬 영화들 보면 영국인들 참 꼼꼼하던데, 내가 잘못 알았나?

 

언론이라도 제 역할을 했으면 이 사달까지는 안 났을 거라고 말하는 한국인들 많은데, 영국에 좋은 언론 많다. 많은데, 다만 무지렁이들은 이런 제대로 된 언론사 기사들은 읽으려 들지를 않는다는 게 문제다. 사진이나 그림 없이 글만 많거든. 이런 사람들은 데일리 메일 같은, 큼직한 사진 잔뜩 있고 글자 수 적은 화면이나 좋아하지. 황색 언론들의 특기는 사람들의 화를 돋워 남을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는 그 대상이 이민자와 난민이고.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긴 글 읽는 걸 점점 꺼려하고 어려워 한다니 걱정이다. 이런 마당에 다음Daum마저 긴 글 쓸 수 있는 블로그 서비스를 축소하고 사진만 잔뜩 올리게 돼 있는 이상한 서비스로 자꾸 전환하려는 퇴행을 보여 불만이다. 

 

BBC의 문제는 뭐냐면, 평소에는 매우 훌륭한 언론임에 틀림없는데, 어떤 사안이 불거져 찬반이 갈릴 때면 이게 국민들이 낸 비싼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서 공정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야 하고, 그래서 자기들이 보기엔 옳은 쪽이 분명 있는데도 한 쪽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대단한 선진국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무지렁이들은 교화될 가능성이 평생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이해가 좀 되시나? 

 

나 같은 식자는 (어머?) 보여 주는 대로 믿지 않고 수시로 의심하고 스스로 찾아서 깨우치는 습관이 잘 배어 있는데, 무지렁이들은 깊게 생각 못 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 하고 그저 눈 앞에 들이대는 것만 믿거나,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거나, 한 번 굳힌 생각은 죽을 때까지 의심 한 번 않고 진리로 여기고 산다. 여기 와 살면서 가만 보니 근사한 영국 악센트로 말하고 있다고 해서 다 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더라고. 

 

 

 

 

 

 

 

이번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박빙의 차로 탈퇴가 결정됐는데, 나는 이걸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11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있는데 자기들이 세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투표해 6명이 찬성하고 5명이 반대했다고 치자. 4년이나 5년 뒤 다시 기회가 오는 대선과는 달리 그 1명의 차이 때문에 나머지 5명의 운명이 죽을 때까지 자기 뜻에 반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거 민주주의 맞나? 헷갈린다 나는. 

 

미국은 현재 "껄껄, 거 봐라, 직접민주주의를 하니 그 모양이지, 우리처럼 ☞ 대의민주주의를 했어야지." 하고 의기양양 유럽을 가르치려 든다던데, 뭐 늬들은 항상 옳은 결정만 했냐? 늬들도 현재 도날드 트럼프 같은 사람 나와서 설친다며. (안 그래도 영국의 헌법학자, 정치인, 언론인 중에는 투표가 시행되기 전부터 이런 식의 국민투표는 국회의원MP, member of Parliament을 뽑아 일을 맡기는 영국식 의회민주주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만, 그래서 만일 의회가 최종 동의를 안 해주면 브렉시트는 무효가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럼 저 싱가포르나 중국처럼 가자고? 그건 안 되지. 현재로선 내 머리 속에 답이 읍따. 인간이 모여 사는 일이란 이렇게 복잡한 것이다. 식자들 중에도 물론 브렉시티어brexiteer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이민자 문제 같은 외국인·외래인 혐오증xenophobia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선출하지도 않은 자들(EU 정책 집행자들을 말함)이 왜 우리더러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는, 자주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자면, EU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무제한 사람들을 왕래하도록 내버려 두면 결과는 뻔하지 않나. 못 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일자리 찾아 우르르 몰려가는 건 당연지사. 어느 한 나라 국민이 (그것도 섬나라인데) 자기들 영토가 '잠식' 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고삐를 풀어 대면 어쩌자는 건가.  

 

어어, 이거 음식 블로그인데. 음식 얘기 안 하고 자꾸 이런 얘기 하면 손님 다 떨어지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음식 글은 안 쓰고 이런 사진도 없는 재미없는 글만 쓰게 되네. 

 

억지로라도 사진 올리고 마쳐야겠다. 


여름을 맞아 얼마 전에 집에서 따빠스tapas 몇 가지를 준비해 즐긴 적이 있다. 이곳 사람들의 인기 여름 휴가지 중 하나가 스페인인데 거기 사람들 음식이다. 테라코타 따빠스 그릇은 죄 싸 버려서 그냥 큰 접시에 넓게 펼쳐 담았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 만체고(끝만 조금 보임), 빤 꼰 또마떼, 아쎄이뚜나, 삐몐토스 데 빠드론, 초릿쏘 이베리코 데 베요따, 로모 이베리코 데 베요따,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따(끝만 조금 보임).

 

 

 

 

 

 

 

 

이 와중에 치즈 잔소리: 만체고는 비싼 치즈이므로 '진품 확인' 차원에서 저 검은색 갈대 바구니 자국의 껍질이 포함되도록 썰어 내는 것이 좋다. (껍질은 먹지 않는다.) 장기 숙성 만체고에 꿀을 발라 먹으면 바밤바 맛이 나면서 아주 맛있으니 꿀을 같이 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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