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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그릇]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Portmeirion Botanic Garden 본문

영국음식

[영국그릇]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Portmeirion Botanic Garden

단 단 2019. 1. 16. 17:23

 




"영국에서 보던 꽃들 많이 그립지? 옛다."

귀국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권여사님이 단단을 불러 느닷없이 그릇 수십 장을 하사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릇 '여러 장'도 아니고 그릇 '수십 장'입니다. 
단어에 유의하십시오. 

수십 장.
우왕ㅋ굳ㅋ >_< 

열어 보니 <포트메리온> 대접시, 중접시, 얕은 소스 그릇이 잔뜩, 쓰시던 걸 주신 것도 아니고 새걸 사서 곱게 모셔 두었다가 주셨습니다. 으흑,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혼수로 산 그릇은 영국 가 있는 동안 창고에 고이 보관해 두었고 귀국하면서 그릇 수천 점을 또 가지고 왔는데, 살림 다 처분하고 맨몸으로 갔다가 맨몸으로 돌아온 줄 아신 권여사님.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단단은 모친께 이런 걸 하사 받을 자격이 충분하단 말이죠.
☞ [어버이날] (19금) 효녀 단단 

 

 

 

 

 

 

 

 

포트메리온 그릇만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그릇이 또 있을까요? 싫어하는 사람들은 너어어어어무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런 과감한 무늬는 맨 정신에 낼 수 있는 게 아냐. 예술적 감수성 충만하면서 반쯤 넋 나간 자들만이 만들 수 있고 즐길 수 있지." 하면서 꽃 종류와 그릇 형태별로 다 모을 기세죠. 

저는 '극혐'하는 쪽이었다가 실제로 써 보고 나서 '극호'로 전향한 사람입니다. 영국 살면서 미감이 완전히 바뀌기도 했고, 또, 영국 풀들과 꽃들에 정이 흠뻑 들기도 했고요.

따뜻한 물에 포트메리온 그릇 설거지 해보신 적 있나요? 이 세상 감촉이 아녜요. 유약 처리가 끝내줍니다. 손에 쥐는 느낌이 얼마나 보드랍고 좋은데요. 둥글둥글 온화한 성품의 테두리에 독특한 형태의 단차를 두어 쥐기 편하고 손에서 미끄러질 염려도 없어요. '그립감'이 정말 좋습니다. 사려 깊게도 뒷면 역시 굽을 맨질맨질하게 처리해 원목 식탁 위에 플레이스매트placemat 없이 그냥 막 올려도 되고요. 

테두리를 오목하게concave 넣어 아이비 닮은 상상의 잎을 조로록 전사했는데, 저는 볼 때마다 아이비 무성했던 우리 동네 풍경이 떠올라 추억에 젖습니다. 영국에서는 '국민풀'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사철 무성하고 어디서든 볼 수 있죠. 수 세기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상징도 얻게 되었고요. 아이비에 대해서는 글을 따로 쓴 적이 있습니다. 
☞ 영국의 크리스마스 식물, 홀리, 아이비, 미쓸토, 스노우베리
타 회사들 제품에 이 포트메리온의 테두리 잎 문양을 베낀 예가 많은데, 볼 때마다 재밌어서 웃습니다. (제보 바랍니다.)


 

 

 

 

 

 

켁켁, 뭡니까, 이건?

2017년 여주 도자기 축제에서 맞닥뜨린 유사품.


 

 

 

 

 

 

 켁켁켁, 이건 또 뭡니까?

강남 어느 쇼핑몰에서 맞닥뜨린 유사품.

 

 

 

 

 

와, 진짜 너무들 하네. 누리터에서 맞닥뜨린 유사품.


 

 

 

 

 

 이토록 정신 사나운 무늬의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게지.

 


접시 가운데에는 큼직하게 꽃을 전사해 넣었는데, 저렇게 큰 꽃그림을 담다니 과감하기 짝이 없죠. 다쓰베이더는 윗줄 정가운데 파란 나비가 함께 있는 콩꽃sweet tea 그림을, 저는 아랫줄 맨오른쪽의 분홍색 튤립 그림을 가장 좋아해 각자 자기 그릇 삼아 음식을 담아 먹습니다. 권여사님은 아랫줄 맨왼쪽의 수국 그림을 좋아하셔서 저것만 두 개를 구입해 손님 찻상에 쓰십니다. 먼지에 뒤덮인 회색빛 도시의 정원 없는 공동주택 우리 집이 갑자기 알록달록 꽃밭으로 변한 것 같아 마음에 잠시 위로가 됩니다. 점잖고 우아한 그릇도 좋아하지만 저는 과감한 무늬의 그릇도 좋아합니다. 플레이팅 시 흰 접시나 무늬 없는 접시는 백지 삼아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무늬 있는 그릇은 여기에 조화까지 고려해야 해 더 많은 감각과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영국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식물 채집하고 조사해 도감 만드느라 세밀화 제작에 많은 공을 쏟았는데, 이 습관이 남아 아직도 생활용품에 생생한 꽃그림을 담곤 합니다. 


 

 

 

 

 

 

 

큐가든Kew Royal Botanic Gardens이 소장한 세밀화를 활용한 관광기념품.

 

 

포트메리온의 '보타닉 가든' 그릇들은 얇고 단단한 골회자기bone china가 아니라,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 구운 도토로 된 두툼한 도기earthenware입니다. 도자 산업이 매우 발달한 영국이 왜 아직도 'earthenware'를 쓰고 있냐고요?

 

한식에서는 펄펄 끓는 음식을 그릇에 바로 담거나 그릇째 펄펄 끓이거나, 둘 중 하나일 때가 많아 음식 담기 전 그릇을 미리 데워 둔다는 개념이 없죠. 지나치게 뜨거운 음식은 상에 올리지 않는 영국인들은 대신 음식의 온기가 오래 가도록 접시를 미리 뜨겁게 데워 둡니다. 이때 골회자기보다는 두툼하고 기공이 많은 도기가 열을 훨씬 오래 간직합니다. 집에 포트메리온 그릇 갖고 계신 분들은 양식이나 단품요리 담을 때 잘 데워서 사용해 보세요.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이 날은 베이크트 빈즈를 종지에

따로 담았는데, 다른 요소들과 어우러지도록 접시에 바로

담는 것이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소스 흥건한 빈즈나

그레이비gravy 때문에 가장자리를 저렇게 얕은 벽으로

처리했다. 조로록 두른 잎이 손으로 짠 바구니 같은

정겨운 느낌을 준다. [10 inch dinner plate. 대접시]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 그릭 샐러드 담기에도 안성맞춤

☞ 동네 공원에서의 아프터눈 티

☞ 영국엔 예쁜 그릇이 왜 이리 많냐

☞ 영국음식 열전

 

 

 

 

      

 맨 아래 여섯 장은 '이국식물원Exotic Botanic Garden'.

 

 

 

 

 

 

 


감각적인 선별과 조합. 
차분한 보라 계열로 맞춘 뒤

보색인 노란색으로 악센트를 주었다.

영국에서 위로 길죽한 주전자는 커피 포트로 통하고,

 

 

 

 

 

 


동글동글 펑퍼짐한 것은 티포트로 통한다.
이번에는 푸른

계열로 맞추었다. 커피 포트는 완성된 커피를 담기만 하면

되지만 티포트는 그 속에서 차를 우려야 하므로

찻잎이 춤추기 좋고 위·아래 찻물 농도 차를 가급적

줄일 수 있는 옆으로 퍼진 둥근 형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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