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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손목시계를 다시 차게 될 줄이야

단 단 2018. 3. 9. 22:07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이 그간 참 여러 산업 문 닫게 하거나 힘들게 했구나 싶다. 사진기, 계산기, 가정용 유선 전화기, 휴대용 오디오 기기, 전자 사전, 손목시계, 카 네비게이션...  또 뭐가 있을까? 음악용 속도 측정 기기인 메트로놈?

전자 사전
내가 유학 갈 때만 해도 전자 사전은 유학생의 필수품이었고, 유학 생활 초기에는 정말 어디든지 지니고 다녔다. 영국 간 이듬해에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했고 전자 사전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전자 계산기
수기로 회계 장부 관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제 전자 계산기 사서 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공계 사람들, 아직도 계산기 두드리나?

사진기 
런던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이므로 그래도 거리에서 큰 사진기 들고 제대로 사진 찍겠다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었으나, 귀국해서는 지금까지 공공장소에서 육중한 DSLR 사진기 들고 철컥철컥 사진 찍어 대는 사람 단 한 명도 못 봤다. 특히 식당에서 이런 짓 하는 사람은 이제 촌스러운 사람 중 '끝판왕'
이 되었다. 내 DSLR도 사용 빈도가 갈수록 줄어든다. 밖에는 이제 갖고 나갈 일이 거의 없다. 


휴대용 오디오 기기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귀 상할까봐 절대 음악을 듣지 않으므로 휴대용 오디오 기기는 애초에 나랑은 상관이 없었고, 

가정용 유선 전화기
우리 집에는 현재 유선 전화기가 없다. 개인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집에 TV도 없다.)

손목시계
손목시계는 다른 어떤 기기들보다 먼저 내 품을 떠났다.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니 어언 20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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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단단 선생도 수업 시간에 절대 참을 수 없는 부류가 하나 있으니, 바로 스마트폰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 

아예 강의 계획서에 수업 중 스마트폰 들여다보다 걸리면 학점 깎겠다고 엄포성 문구를 넣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다같이 스마트폰 꺼내 전원을 완전히 꺼서 가방 깊숙이 넣는 '리추얼'
도 행하는데, 문제는, 

내가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거;; 
가만 두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떠들어 댈 위험이 있으므로 누가 나 좀 말려 줘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학생들과 함께 꺼버리니 시간을 볼 수 없어 낭패다. 강의실마다 뒤에 벽시계 좀 걸어 놓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관리하려면 소소하게 비용이 들고 신경이 쓰이니 대학이 해줄 리가 없지.

 

 

 

 

 

 

 

 


그리하여 결국 실로 오랜만에 손목시계를 다시 차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아, 손목시계라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손목시계가 확실히 사양산업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 암만 돌아다녀 봐도 파는 곳이 없다;; 집 근처 백화점도 수백만원짜리 비싼 해외 명품 시계들이나 취급하지 중저가 시계는 파는 매대가 없다. <코엑스몰>에도 그 많은 상점들 중 손목시계 취급하는 곳이 없다. <스와치Swatch> 숍도 하나 안 보인다. 벽시계는 흔하다. 벽시계는 심지어 마트나 <다이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손목시계 보기가 그렇게 힘들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쓰베이더가 누리터에서 5만원쯤 하는 저가 시계를 하나 주문해 주었다. 길 가다 봉변 당할까봐 단단은 몸에 비싼 물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뭐여,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 집에는 값 나가는 물건을 둘 수 있어도 몸에는 지니고 다니고 싶지 않다. 어디 가서 잃어버려도 하루 정도만 마음 아파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가격의 물건이어야 마음이 편하다. (스마트폰은 사진기 기능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아, 블로그에 사진 올려야 하잖나.)  

 

 

 

 

 

 



문자판dial이 크고 장식이 없어 '여성미'는 다소 떨어지는 여성시계인데, 힐끗 곁눈질로 보았을 때 가독성 좋은 것을 최우선 조건 삼아 골랐으므로 기능 면에서는 나무랄 게 없다. 어두운 곳에서는 문자판에 파란 불도 켤 수 있다. 자랑 자랑 미국은 참 값싸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물건들을 잘 만드는 것 같다. <파커> 조터Jotter 샤프와 볼펜은 늘 가방에 넣고 다닌다. <코스트코>에서 산 검은색 접이식 발판은 최고다. 키 작은 단단에겐 이런 고마운 물건이 또 없다.

내 주변인 중에서는 권여사님과 다쓰베이더가 손목시계 애호가들인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편하다는 것. 손목시계 차고 며칠 돌아다녀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메트로놈 60이 내 몸 가까이서 조용히 째깍거리고 있으니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이 음악스러운 일이 되었다. 

 

 

 

 

 

 

모-던 껄이 된 단단

 

"(…) 소위 신여성들의 장신운동(꾸미기 유행)이 요사이 격렬해졌나니, 항용 전차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황금팔뚝시계, 보석반지, 현대여성은 이 두 가지를 구비치 못하면, 무엇보다도 수치인 것이다. 그리하야, 제일 시위운동(과시행위)에 적당한 곳은 전차 안이니, 이 그림 모양으로 큰 선전이 된다. (…)"  - 1928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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