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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이태리 프로볼론, 프로볼로네 발파다나 Provolone Valpadana DOP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이태리 프로볼론, 프로볼로네 발파다나 Provolone Valpadana DOP

단 단 2021. 4. 17. 15:20

 

 

 

 

'응유에 열을 가해 말랑말랑하게 만든 후 죽죽 잡아 늘리기stretching the curd' 기법을 써서 만든 이탈리아 치즈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계열의 치즈는 모짜렐라와 스카모르짜말고도 몇 종류가 더 있는데요, 그 중 한국의 마트나 백화점 치즈 매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소개해 봅니다. 노란색-빨간색 PDO 인장이 박힌 '프로볼로네 발파다나'를 한 덩이 장바구니에 담아 오세요. 온라인 치즈 가게들도 똑같은 걸 팔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둘러보시고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 포 밸리Po Valley, Val Padana 부근의 농가들이 남부에 오래 전부터 널리 퍼져 있던 '응유 데워 잡아 늘리기' 기법을 받아들여 만들기 시작한 치즈입니다. 남부에서 기술을 빌려 왔어도 프로볼로네 발파다나는 남부의 치즈들에 비해 크기가 크고 숙성 기간도 훨씬 깁니다. 치즈 포장에 'Dolce'(mild)라고 써 있는 걸 보니 'piccante'(strong)도 따로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이 치즈 포장을 끄르면서 우리 집 영감이 글쎄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 ♩♪♩♪♩"

동요를 다 부릅니다.;; 

 

 

 

 

 

 

 

 

 

 

영상에 있는 과정을 제가 글로 보충하면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브랜드마다 각 공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PDO 인장을 받으려면 생산자협회가 정한 큰 틀은 따라야 합니다. 

 

1. 원유는 72˚C에서 20초 이상 저온살균 하거나('dolce'의 경우) 가온처리를 해 둡니다('piccante'의 경우).

 

2. 전날 치즈 만들고 남은 유장에서 뽑은 스타터whey starter와 응고효소rennet를 시간 차를 두고 투입합니다. 스타터 컬처는 치즈의 풍미, 질감, 외관을 결정하고, 응고효소는 액상의 우유가 치즈가 되게끔 굳히는 역할을 합니다. (스타터 컬처도 우유를 굳힐 수 있고, 응고효소도 풍미, 질감, 외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원유를 36-39 °C로 데워 응고가 잘 되도록 유도합니다.

 

'Dolce'(mild)는 송아지의 네 번째 위장에서 추출한 응고효소를 쓰고, 'piccante'(strong)는 새끼 염소나 새끼 양의 네 번째 위장에서 추출한 응고효소를 씁니다. 새끼 염소와 새끼 양 응고효소를 혼합해서 쓰기도 합니다. 어떤 동물의 응고효소를 쓰냐에 따라 치즈의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송아지 응고효소를 쓰면 순한 맛이, 새끼 염소나 새끼 양 응고효소를 쓰면 좀 더 복잡하면서 강한 맛이 납니다. 숙성 기간에도 물론 영향을 받고요. 이렇게 동물성 응고효소를 쓰는 치즈들이 많아 제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 했습니다. 고기는 안 먹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치즈는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3. 응고효소를 넣고 나서는 원유 속 단백질casein이 순두부 성상으로 응고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장인이 알맞은 굳기가 되었는지 손으로 직접 만져 확인을 합니다. 

4. 적정 굳기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여러 개의 긴 칼날이 부착된 도구cheese harp를 써서 응유curd를 잘게 잘라 줍니다. 이렇게 하면 응유로부터 유장whey이 많이 빠져 나옵니다.

 

5. 그 뒤 50˚C로 데웁니다. 응유에서 유장을 더 뺄 수 있고 말랑말랑한 질감의 치즈를 만들 수 있습니다.


6. 체로 응유와 유장을 분리하고 응유를 숙성 탱크로 보냅니다. 작은 응유 조각들이 뭉쳐 단단한 판두부 성상이 됩니다.

 

7. 그 상태로 30분간 두면 응유가 숙성합니다fermented and acidified.

8. 응유가 목표 산도에 이르면 장인이 칼로 적당한 크기가 되도록 자른 후 열처리 기계에 넣습니다. 잡아 늘리기에 적합한 상태로 응유가 말랑말랑 녹습니다. 과거에는 뜨거운 물로 작업했으나 이제는 적정 온도로 맞춰진 열처리 기계를 써서 응유를 데웁니다. 프로볼로네 치즈는 본래 카치오카발로Caciocavallo 치즈를 만들기 위해 응유 상태를 점검(prova)해 보던 작업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prova (test) → provatura (testing) → provola → provolone (large-sized povola)]

9. 그 뒤 잡아 늘리기 작업을 합니다. 10그람의 치즈가 1미터까지 늘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10. 늘리기를 마친 응유를 스테인레스 스틸 모양틀에 소금물과 함께 넣거나 손으로 작업해 갖가지 형태로 성형합니다. 프로볼로네 발파다나는 대개 (1) 소세지형salame, (2) 과일형melon-pera, (3) 위가 뭉특하게 잘린 원뿔형tronco-conica, (4) 밧줄에 목을 매단 오뚝이fiaschetta 모양으로 만듭니다. 오뚝이형은 바로 전 글에서 소개해 드린 스카모르짜와 생김새가 비슷하나 크기가 좀 더 큽니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위의 형태들을 출하 직전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포장하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리는 제품이 바로 (1)의 지름 큰 소세지 형태를 반 가르고 편 썰어 포장한 거지요.

 

 

 

 

 


11. 모양이 잡히고 나면 흐르는 찬물에 담가 식혀 좀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12. 꺼내서 소금물에 담급니다. 형태와 크기에 따라 두어 시간에서 30일까지도 소요됩니다. 이 작업을 통해 치즈에 소금 간을 입히고 저장성을 높입니다. 

13. 건져 내 표면을 말린 뒤 전통 형태가 되도록 끈을 감고 (그 다음에 훈제를 하기도 함.) 생산자협회 표식을 달아 숙성실에 걸어 둡니다. 'Dolce'(mild)는 2-3개월을 넘지 않고, 'piccante'(strong)는 최소 3개월, 1년 이상도 숙성시킬 수 있습니다. 

 

14. 숙성을 마치면 이름표를 붙이고 왁스를 씌운 뒤 유통망에 공급합니다. 

 

 

 

 

 

 

 

 

 

말랑말랑 촉촉해 부스러기 없이 깔끔하게 잘 썰립니다.

 

100g당 나트륨 680mg. 소금으로 환산하면 1.7g. 이 정도면 무난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짜게 느껴져요. 소금 덜 넣고도 충분히 짠맛을 느끼게 하는 것도 실력이긴 한데 많이 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혀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 수 있겠지요. 자기 혀를 믿지 말고 포장의 소금양을 살펴야 합니다.

 

맛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물기 많은 삶은 밤에 농축 닭육수를 합친 맛이 납니다. 짙은 고소한 밤맛에 짙은 닭육수 우마미 때문에 영국의 체다와도 느낌이 비슷하나 질감은 완전히 다르고 짠맛과 쓴맛이 강합니다. 향수로 치자면, 톱 노트top note는 '고소하다', 미들 노트middle note는 '짜다', 라스트 노트last note는 '쓰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쓴맛이 구강에 좀 오래 남습니다. 체다는 잘 부서지면서 젖산칼슘 결정이 서걱서걱 씹혀 식감이 좀 더 경쾌하고, 이건 수분이 많아 무르면서 찐득합니다. 칼로 눌러서 밀면 스프레드처럼 펴집니다. 입 안에서 잘 녹으나 미세한 입자가 느껴집니다.

 

'Dolce'(mild)라는 형용사에 걸맞지 않게 맛이 강하므로 치즈보드나 샤퀴테리 보드에 올릴 분들은 <라핑 카우> '벨큐브' 크기로 작게 깍둑 썰어 올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맛이 강한 치즈는 사실 테이블 치즈로는 적합치 않고 요리에 쓰는 게 낫습니다. 아래 걸어 드린 생산자협회 누리집에 맛있어 보이는 레서피가 잔뜩 소개돼 있으니 참고하세요. 피짜나 파스타, 샌드위치에 무난히 쓸 수 있고 그 외 여러 요리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재료가 몇 개 안 들고 간단해 보이는 '치즈밥부침'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프로볼로네 발파다나 PDO 생산자협회 누리집

 

 

 

 

 

 

 

국내 시판중인 또다른 프로볼로네 발파다나 PDO 제품.

현재 11개 회사만이 PDO 및 생산자협회 인장을 붙일 수 있다.

큰 사진으로 올렸으니 포장에 있는 활용 요리들을 눈여겨보자.

 

 

 

 

 

 

 

생산자협회 누리집에 있는 달걀, 레몬타임, 프로볼로네 발파다나 돌체 밥부침.

 

 

 

 

 

 

 

 

지글지글지글지글...

 

 

 

 

 

 

 

 

완성. 아까 동요 부르던 자가 부침.

맨입에 먹기엔 맛이 센 치즈였는데

요리에 넣으니 급 순둥이로 변신.

순하고 고소해 짭짤한 베이컨을 곁들이면 좋을 듯.

 

 

 

 

 

 

 

 

 

2022년 9월, 코스트코 양재점에서 통 프로볼로네를 맞닥뜨리고는 흥분한 단단.

 

 

 

그 밖의 '응유를 잡아 늘려 만든 치즈pasta filata cheese = spun paste cheese'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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