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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원서동 한식공간 Hansikgonggan

단 단 2021. 5. 7. 16:06

 

 

 

 

한식 파인 다이닝의 대모라 불리는 조희숙 선생의 <한식공간>에 다녀왔습니다. 미슐랑 1-스타 집입니다. 종로구에 오래 살았었는데 창덕궁은 가 본 적이 없어(반성반성) 밥 먹고 창덕궁 산책도 할 겸 이 집으로 정했습니다. 지상층 간판을 보니 옛 공간사옥 건물에 쟁쟁한 집들이 잔뜩 들어와 있네요. 조희숙 선생의 한식에 관한 견해를 담은 인터뷰 기사를 걸어 봅니다.

☞ "한식 파인 다이닝의 비결?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맛 찾기"

 

 

 

 

 

 

 

 

 

식탁이 7개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이라서 오래 전에 예약금을 걸고 예약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천으로 가림막을 했는데, 같은 시간에 밥 먹었던 분들이 다들 건강하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창덕궁이 보입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밥 먹을 수 있다니, 맛 없어도 용서가 되겠습니다.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보세요. 눈이 시원합니다.

 

 

 

 

 

 

 

 

 

소박한 차림표.

 

 

 

 

 

 

 

 

 

놋수저.

아우, 먼지 봐라.

 

식당 하실 분들은 너무 진한 색 식탁은 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햇빛이 안 드는 실내라면 괜찮을 텐데 이렇게 밝은 곳에서는 먼지가 너무 잘 보이거든요. 이 식탁 위에서 홀 직원들이 가림천과 냅킨을 정리했는지 천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들이 상 위에 수두룩합니다. 누리터에서 다른 분들 방문기를 보니 저와 같은 자리에 앉았던 분들 상이 유독 같은 문제를 보이더라고요. 식사 시작 전과 코스 사이마다 상 위의 먼지 떨어 내느라 고군분투했습니다. 맛이 있든 없든 정성껏 준비해서 낸 음식은 일단 사진을 깔끔하게 잘 찍어 주고픈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먼지 제거하느라 애쓰고 있으면 직원들이 좀 알아차리고 젖은 행주로 상을 한 번 훔쳐 주든지 해야 할 텐데 끝까지 눈치를 못 챕니다. 이 집은 주방에서 음식을 아무리 잘해서 내도 홀 서비스 때문에 미슐랑 별을 더 받기는 힘들겠습니다. 보세요, 숟가락 위에도 먼지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따뜻한 물수건 담은 그릇도 물이 흥건합니다. 누가 상 위에 물기 있는 그릇을 올립니까. 수건은 젖어 있더라도 그릇은 보송보송해야죠.

 

 

 

 

 

 

 

 

 

점심은 한 종류의 코스만 있고 1인당 7만원입니다. 국수도 들어가 있고, 튀김도 있고, 탕도 있고, 맛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들뜹니다.  

 

 

 

 

 

 

 

 

 

현미들깨죽.

들기름에 무친 깻잎과 백합조개 다진 것을 장미 모양처럼 내서 올렸습니다.

보들보들, 백합 식감이 참 좋고, 깻잎도 질기지 않고, 전체적으로 맛이 진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물비빔면.

와아, 국수다. 파인 다이닝이라도 이렇게 국수가 나와 주면 한국인은 신이 납니다. 면에 이미 톡 쏘면서 정신 버쩍 들게 하는 양념이 돼 있었고, 고명은 왼쪽부터 참나물, 무생채, 어수리나물을 올렸습니다. 면 질감이 예술이었는데 나물들도 메밀면과 같이 먹기에 맛과 식감이 잘 어울렸습니다.    

 

 

 

 

 

 

 

 

 

두릅새우튀김.

두릅과 새우가 잘 어울립니다. 음식 설계에 감탄, 두릅을 저렇게 바깥으로 두르니 튀기고 난 결과물이 마치 나뭇가지 표면에 돋은 두릅 같습니다. 이 집의 단순명료한 음식 담음새도 저는 마음에 듭니다. 그릇 형태 요란하면서 양식 흉내 낸 힘 빡 들어간pretentious 담음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집의 담음새에서 저는 뚝심과 자신감을 엿봅니다.

 

 

 

 

 

 

 

 

 

간이 이미 충분히 돼 있어도 우리 한국인은 전과 튀김 먹을 때 간장에 찍지 않으면 허전해 하죠. 그래서 짜지 않은 우아한 장아찌를 같이 올렸습니다. 아삭한 돼지감자편, 겹겹이 씹히는 달래 뿌리, 향긋한 아까시나무꽃으로 담갔습니다. 처음 먹어 보는 아까시나무꽃 장아찌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쑥도다리완자탕.

먹기 좋고 보기 좋게 다듬은 도다리쑥국입니다. 어묵 같은 질감이 아니라 생선살 그 자체입니다. 생선완자 위에는 산초장아찌를 올렸습니다. 흰살생선이라 생선 자체의 맛은 심심하고 쑥도 생각보다 향이 약합니다. 떡에 든 쑥은 그토록 강한 맛과 향을 내더니. 이때가 4월말께였으니 쑥은 향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도다리라 불리는 문치가자미는 아직 맛이 안 올랐을 때라 제게는 다소 의아한 음식입니다. ("봄에는 도다리쑥국"? 문치가자미의 어획량 증가에 따른 억지 제철은 2-4월, 맛과 영양 면에서 뛰어난 진정한 제철은 6-10월.)

 

맛은 나쁘지 않으나 꼴은 형편없는 도다리쑥국 다듬기

☞ 산초장아찌 만들기

 

 

 

 

 

 

 

 

닭섭산적.

큰 사진으로 올렸으니 클릭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7만원짜리 코스라서 고급 부위의 한우는 쓰기 힘드니 닭고기를 가져다 정성껏 맛내서 올렸습니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라연은 한우 코스에 59,000원을 따로 청구합니다.) 닭 가슴살과 다릿살을 혼합하고 곰취와 양파를 넣었는데, 일행 모두 쇠고기보다 맛있다며 즐거워했습니다. 향도 참 좋았습니다.

 

오른쪽 옆에 곁들인 것은 고수무침을 올린 장떡입니다. 장떡에는 파, 양파, 애호박, 두부, 콩가루 등을 넣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수가 외국 식재료인 줄 알았는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고수를 먹었다는군요. 그러니까 한국 재료이기도 한 겁니다. 

 

여기까지 맛보고 저와 일행은 이 집이 '맛잘알' 식당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진짓상.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 산해진미 다 갖다 바쳐도 밥 안 주면 큰일 나죠. 순두부된장국을 곁들인 해방풍나물밥인데, 이것도 큰 사진으로 올렸으니 클릭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제가 한국 와서 사 먹은 쌀밥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밥알이 너무 무르지 않고 힘이 있어 제 취향에 잘 맞았는데 확대 사진으로 봐도 익은 정도가 좀 특이하죠. 밥알에 형광빛 투명한 기운이 돌아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눌린 곳, 퍼진 곳 없이 땡글땡글하고요. 밥물로는 맹물이 아닌 육수나 채수를 썼을 텐데 흔히 쓰는 흡수absorption법으로 밥을 지은 것 같지가 않아 보입니다. 비결 아시는 분 계시면 귀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부장을 넣고 가볍게 섞어 먹습니다. 두부장에 쓴 간장은 전남 영암에서 2년 숙성시킨 거라고 자랑했습니다.

 

반찬으로는 질기지 않은 가볍고 바삭한 황태강정, 마늘종무침, 맛 잘 든 오이김치, 단 세 가지만 냈는데도 밥이 맛있으니 충분했습니다. 생일 맞은 손님한테는 그날의 국 대신 미역국을 줍니다.

 

 

 

 

 

 

 

 

 

후식을 위해 수저 교체.

 

 

 

 

 

 

 

 

 

다과 코스의 감잎차가 먼저 제공되고,

 

 

 

 

 

 

 

 

 

후식이 나옵니다.

단호박식혜에 참외빙수를 얹고 꽃모양 낸 참외와 호박씨로 장식했습니다. 단호박과 참외 맛이 잘 어울립니다. 참외가 영어로 'Korean melon'이라는 사실, 아셨나요?

 

저는 저 꽃모양 낸 참외와 호박씨 장식이 왜 이렇게 귀여울까요. 꽃에 나비 앉은 것 같죠. 어릴 때 엄마가 생일상에 올려 주시던 화채 속 과일 모양이 떠올라 또 혼자 헤헤거렸습니다.

 

 

 

 

 

 

 

 

 

전통 과자들.

일행 중 생일인 분이 계셔서 저렇게 호롱불을 켜 주었습니다.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왼쪽부터 홍삼정과를 넣은 화분다식, 개성약과 위 매작과, 곶감편.

한과들이 식사 마무리로 먹기에는 좀 텁텁합니다. 이 집만 그런 게 아니라 한식당에 가면 항상 느끼는 겁니다.

 

 

 

 

 

 

 

 

 

이 집 음식은 파인 다이닝이면서도 푸근하고 정겨운hearty 데가 있어 '찐' 한식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외국인의 평가 따위는 아랑곳없이 우리 한국인을 잘 먹이기 위해 차린 밥상 같습니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이 최고의 식당, 최고의 요리사로 꼽았네요. 지나치게 정제하지 않았고, 다 아는 재료들인데도 먹으면서 뭔가 참신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며, 각 코스마다 맛있어서 더 먹고 싶고 그랬습니다. 짬 내서 홀에 나오신 조희숙 선생께 '따봉' 해 드리고 우리 일행은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음식 먹으러 오고 싶습니다.

 

창덕궁의 무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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