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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맛은 나쁘지 않으나 꼴은 형편없는 도다리쑥국 다듬기

단 단 2021. 5. 3. 17:41

 

 

도다리쑥국 철이 막 지났죠. 이제는 심지어 <코스트코>에서도 도다리쑥국 밀키트를 다 팝니다. 재료들을 간단하게 씻기만 해서 냄비에 바로 넣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입니까.

 

제가 이 음식을 식당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뭐 이렇게 내는 음식이 다 있나 했습니다. 쑥은 갈기갈기 축 늘어져 거대한 덩이로 뭉쳐 있고, 생선살은 연해서 군데군데 부서져 떨어져 있으며, 시커먼 껍질도 다른 식재료에 부딪혀 벗겨지다 말아 얼룩덜룩, 심지어 떨어져 나간 뼛조각도 국물에 섞여 있고, 어수선하기messy 짝이 없었죠. 하, 제발 지느러미라도 제거하고 내줘요. 쑥 제철에 맞추느라 도다리라 불리는 문치가자미는 자기 철도 아닌데 억지로 갖다 넣었다질 않나. (어획량 증가에 따른 억지 제철은 2-4월, 맛과 영양 면에서 우수한 진정한 제철은 6-10월.) 게다가 국물에 마늘과 된장까지 푸니 쑥향이고 도다리맛이고 뭐고 마늘과 된장 맛밖에 안 나더란 말이죠.

 

그래서 이 음식은 이 날 한 번 경험 후 제 외식 목록과 집밥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미슐랑 1-스타 식당인 종로구 원서동 <한식공간>에서 먹기 좋고 보기 좋게 잘 다듬어진 도다리쑥국과 실로 오랜만에 해후상봉했습니다. 

 

역시 파인 다이닝.

 

지느러미, 껍질, 가시 다 제거하고 완자로 빚은 도다리, 질깃한 줄기를 제거하고 잎만 넣은 쑥.

 

한껏 치대서 어묵 같은 탄력 있는 질감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굵은 생선살이 둥근 형체를 겨우 유지하게끔만 뭉쳐 놓아 생선을 살 발라서 그대로 먹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쑥 줄기 중 일부는 잘게 다져 완자 속에 넣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선 대가리와 뼈는 그냥 버리지 않고 국물 내는 데 썼을 것 같고요.

 

완자 위에 쫑쫑 올린 것은 산초 장아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니씨드aniseed 계열의 향이 나서 맛보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감각이 돋보이는 악센트입니다. 서양에서도 심심한 흰살생선 요리에 쨍한 케이퍼capers를 곁들이곤 하니 동서양 음식의 유사점을 생각하곤 재미있어서 또 혼자 웃습니다. 

 

지금은 철이 끝났으니 저도 내년부터는 이렇게 해서 도다리쑥국을 집밥에 올려야겠습니다.

해피 엔딩.

 

그런데,

웬만한 식당에서는 이렇게 냈다간 칭송은커녕

"이거 도다리 맞아요? 싸구려 생선 가져다 속이는 건 아니죠?"

"뭘 섞은 거죠?"

의심 받기 딱 좋겠습니다.

 

 

 

 

 

 

 

 

 

또 다른 미슐랑 1-스타 한식당인 <비채나>의 잘 다듬어진 도다리쑥국입니다. 무를 갈아서 올리고 예쁜 보리쥐borage 꽃 한 송이를 얹었습니다. '인스타그래머블'하죠.

 

 

 

 

 

 

 

 

 

간 무와 보리쥐 꽃을 치워 봤습니다. 이 집은 포fillet 뜬 도다리를 세 쪽으로 어슷썰어 제공합니다. 쑥은 작은 잎 하나만 장식으로 얹고 나머지는 도다리뼈와 함께 국물 맛 내는 데 쓰고 건져 냈다고 합니다. 이것도 먹기 편했습니다. 그릇도 예쁘죠.  

 

가정이나 일반 영업집에서도 조금만 신경 쓰면 먹기 편하고 보기에도 좋은 음식을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가시와 씨름하지 않고 편히 먹을 수 있는 생선 요리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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