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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프랑스 랑그르, 롱거흐 Langres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프랑스 랑그르, 롱거흐 Langres

단 단 2021. 6. 5. 23:37

 

 

 

 

 

 

 

 

 

꽥, 제가 지금까지 맛본 치즈들 중 주름이 가장 많습니다. 크기는 작아도 카리스마 넘치죠. 죄 지은 인간 수 만 명이 발가벗겨진 채 불구덩이 속에 한데 엉켜 몸부림치고 있는 지옥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너무 늦었을까요?;;

 

반 가른 것을 작게 잘라서 냠냠 먹는데 업무 전화가 와 일처리 하느라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그만 깜빡 잊었지 뭡니까. 아참, 치즈. 세 시간 뒤 다시 보니 마지막 사진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저렇게 흐를 정도로 두면 안 되고 그 윗사진에 있는 정도로만 상온에 두었다 드시는 게 좋아요. 

 

프랑스 동부 샹파뉴아르덴 지방 오트마른 주 랑그르의 고원에서 만드는 전통 치즈입니다. 원산지명칭통제[AOC, PDO]로 보호를 받으려면 생산자들끼리 모여서 정한 어떤 원칙을 고수해야만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원유를 그 고장 품종 소들로부터 얻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Montbéliarde

☞ Brune

☞ Simmental

  

1874년에 첫 기록이 있는 치즈로, 19세기말에는 도매상들 덕에 널리 퍼져 크게 인기를 얻었으나 1차대전 발발로 농가 아티잔 치즈 생산이 감축될 때 같이 쇠했다가 1950년이 되어서야 생산이 재개되었습니다. 1981년 랑그르 생산자 조합 탄생, 1991년 원산지명칭통제[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AOC)] 자격 획득, 2009년 유럽연합에 의해 PDO로도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랑그르 치즈 생산에 있어서는 두 가지 과정이 특히 중요합니다.

 

 원유를 천천히 젖산발효시켜 가며 응고시키기[lactic type curd].

 숙성 기간 동안 소금물로 표면을 문질러 주기.

 

생산 방법을 간략히 설명해 보면,

 

1. 저온 살균한 우유를 식힌 뒤 종균 첨가제starter culture를 넣고 우유가 발효하기를 기다립니다.

 

2. 그런 다음 응고제rennet를 넣고 무려 5시간 동안 응고시킵니다.

 

3. 응유자르개cutting harp를 써서 순두부 성상으로 굳은 응유curd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줍니다. 이렇게 하면 응유와 유장whey이 분리됩니다.

 

4. 그런 다음, 유장이 빠져 나갈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성형틀mould에 조각 낸 응유를 떠서 담고 25˚C의 온도에서 24시간 동안 단 한 차례만 뒤집으며 유장을 더 빼 냅니다. 자기 무게로 인해 유장이 빠져서 응유가 적당히 다져집니다.

 

5. 성형틀에서 꺼내 건염 처리하고 숙성실로 보냅니다. 

 

6. 숙성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뒤집어 주어야 위아래 구분 없이 반듯한 모양과 고른 맛의 치즈가 나오는데, 이 치즈는 뒤집기 작업을 해 주지 않아 위가 저렇게 움푹 패이게 됩니다. 이를 '샘fontaine'이라고 부릅니다. 뒤샹의 1917년 작품 이름과도 같죠. 이 움푹 패인 공간에 그 고장 술인 샴페인을 부은 뒤 칼집 낸 틈으로 스며들게 해 먹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마르Marc를 붓고 불을 붙이기도 하고요.

 

7. 생산 공장에서는 20일 정도 숙성시킨 뒤 포장하나 각 판매처로 분배되고 진열되고 소비자가 먹기까지 숙성은 계속 진행됩니다. 숙성 기간 동안 장인이 손으로 치즈를 하나하나 특별 조제한 소금물로 문질러 닦아 줍니다. 이런 치즈를 '껍질을 닦은 치즈washed rind cheese'라고 부릅니다. 이때 생산자에 따라서는 천연염료인 아나토anntto를 소금물에 첨가해 고운 발색을 얻기도 합니다.

 

랑그르의 외형적 특성으로는 지름 약 11cm, 높이 약 4cm, 무게는 약 284g, 움푹 꺼진 윗면, 표면의 자글자글한 주름, 겉껍질의 예쁜 오렌지빛을 들 수 있는데, 한국에는 제가 산 것 같은 180g짜리 작은 크기만 들여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제르망> 사의 랑그르는 이름난 치즈대회에서 2년 연속 금상을 받은 맛있는 치즈입니다. 포장에 있는 설명을 옮겨 적어 봅니다.  

 

 식품유형: 자연치즈 (soft ripened cheese)

 살균여부: 72˚C에서 15초 이상 살균

 제조원: Fromagerie Germain

 원산지: 프랑스

 내용량: 180g

 원재료명: 우유, 정제소금, 렌넷, 배양균, 안나토색소

 

100g당

 열량: 280kcal

 나트륨: 640mg (소금 1.6g)

 탄수화물: 2g 중 당류 1g

 지방: 23g 중 트랜스지방 1.4g, 포화지방 15g, 콜레스테롤 70mg

 단백질: 16g

 

치즈가 무르면서 속살paste이 매우 잘 흐르므로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아직 단단할 때 얼른 한 입 크기로 파바박 잘라 놓아야 합니다.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답게 표면이 끈적이고 들러붙으니 최대한 가는 칼이나 치즈 와이어cheese wire로 자르는 게 신상에 좋습니다. 

 

껍질은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씹히며, 껍질 바로 밑은 차가우면서 매끌거리고, 가운데 심지 부분도 전혀 까끌거리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심지 부분이 그간 맛본 수많은 치즈들 중 가장 신데다 짠맛과 쓴맛도 강합니다. <베르또Berthaut> 사의 이푸아스epoisses와 비교를 하자면, 향이 비슷한 듯하나 이푸아스가 갖고 있는 꿀향과 꽃향이 없어 좀 덜 '샬랄라'합니다. 대신 우유 풍미가 강하게 나고 훨씬 더 성깔 있죠. 먹으면서 '햐, 쬐끄만 게 어쩜 이렇게 야무지냐.' 혀를 내둘렀습니다.

 

기본 제법은 이푸아스와 유사해 두 치즈를 종종 한 생산 설비에서 같이 생산하기도 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이푸아스는 응고 시간이 16시간으로 훨씬 길고[랑그르는 5시간], 유장을 빼 낼 동안 수 차례 뒤집어 주어 더 많은 양의 유장을 내보내서 더 단단한 질감이 되게 하고[랑그르는 단 한 번], 크기가 더 크니 숙성 기간도 한 달 정도로 좀 더 길게 잡고[랑그르는 20일 정도], 숙성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뒤집어 주어 모양과 맛을 고르게 하고[랑그르는 뒤집기를 일절 안 함], 조제 소금물에 첨가하는 술 종류를 달리해 완성된 치즈의 향도 달라지게 합니다. <제르망> 사가 자사 랑그르에는 어떤 술을 쓰는지 밝히지 않아 모르겠는데, 이푸아스를 닦을 때는 마르 드 부르고뉴marc de Bourgogne를 첨가해 쓴다고 합니다.

 

참, 주황색 나는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들은 향은 발냄새 심한 남정의 땀에 젖은 양말처럼 고약하나 맛은 좋으니 향 맡고 놀라지 마십시오.

 

서양인들은 랑그르를 맛보고 "크림과 버섯 맛"이라며 심심하기 짝이 없는 묘사를 하던데, 제가 맛보기로는 이랬습니다. 어떤 맛일지 상상해 보세요. "진하게 끓인 북엇국과 최적기에 이른 열무김치를 먹고 나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우유 한 모금으로 입가심 한 듯한 맛." 본인의 치즈 내공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치즈에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이거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분들은 저처럼 높은 등급의 (어머?) 치즈 애호가가 될 싹을 지닌 분들입니다. 츄라이 츄라이.  

 

이 자체로 그냥 먹기도 하고, 피노 누아pinot noir나 달지 않은 샴페인을 곁들이기도 하며, 치즈가 가진 크림향과 헤이즐넛맛을 돋우기 위해 퐁듀fondue화해 먹거나, 바삭한 식재료와 짝을 지어 부드러운 속재료로 많이 쓴다고 합니다. 윗면의 움푹 패인 부분에 마르 드 샹파뉴marc de Champagne나 마르 드 부르고뉴를 부어 불을 붙여 녹여 먹기도 합니다. 생산자 누리집에서는 화이트나 레드 꼬또 샹프누아Coteaux Champenois, 쥬브레 샹베르땡Gevrey-Chambertin, 또는, 뿔리니 몽라셰Pouligny-Montrachet 같은 달지 않은 화이트 와인을 콕 집어서 추천합니다.

 

 

 

생산자 누리집

랑그르의 자매 치즈, 이푸아스

이푸아스의 자매 치즈, 아피델리스 오 샤블리

☞ 쌍 베흐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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