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청담동 권숙수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청담동 권숙수

단 단 2022. 6. 10. 17:11

 

 

 

 

단단이 생일을 맞았어요. 

나이 먹는 거 너무 슬퍼서 생일 앞뒤로 2주씩, 즉, 6월 한달 동안 사생결단하고 잘 먹고 잘 놀기로 했으니 말리지 말아 주세요. 

 

권숙수에 생일밥 먹으러 왔습니다. 외식 잘 안 하는 단단은 그저 그런 식당과 커피숍에서 15,000원 쓰고 그저 그런 음식을 먹느니 열 번 참았다가 이런 집에 오기로 했습니다. 내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맛이 좋든, 재료가 좋든, 그릇이 좋든, 뭐 하나라도 나은 점이 있어야 외식하는 의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기대가 됩니다. 

권여사님이 이 집 음식을 아주 좋아하시는데, 드시면서

"권씨들이 원래 요리를 쫌 잘해."

본인이 우쭐해하십니다.

 

 

 

 

 

 

 

 

이 집의 특징 - 옛날식으로 독상 소반을 씁니다. 마음에 들어요.

제가 한식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 바로 '공용 반찬'이거든요.

 

 

 

 

 

 

 

 

 

동절기에는 따뜻하게, 하절기에는 차게 해서 내는 물수건.

 

 

 

 

 

 

 

 

 

그렇죠. 제대로 된 한식당이면 장, 김치, 식초, 장아찌 전부 직접 만들어야죠.

독상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양이 많으니 추가 메뉴는 전부 배제하고 기본 메뉴로만 먹겠습니다.

이날 이 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전날, 당일, 그 다음날, 3일간 한 끼만 먹었습니다.

 

 

 

 

 

 

 

주안상 - 우리 술과 6종 한입거리
Welcome Drink with Small Appetizer

 

 

 

 

클릭해서 크게 띄워 놓고 찬찬히 살펴보세요. 

시작부터 호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원래 서양에서도 식전주인 아페리티프apéritif와, 아뮤즈부쉬amuse-bouche, 애피타이저appetizer, 스타터starter라고, 짭짤한 한입거리 작은 음식들을 제공하게 돼 있는데, 그걸 여기서는 주안상이라고 부르는 거죠.

차림새가 훌륭하죠?

 

 

 

 

 

 

 

 

주안상 왼쪽에 있는 것들부터 -

• 씨간장을 곁들인 한우족편

• 들기름마요네즈를 곁들인 사슴육포

• 소고기우둔살과 표고를 끼운 순무선에 무청오일소스

코코넛참외주스

 

 

 

 

 

 

 

 

주안상 오른쪽에 있던 것들 -

 두부, 닭고기, 오이로 속을 채우고 김을 올린 메밀전병

 고추장 뱅어포

 문어숙회

 

"6종"이라더니, 일곱 가지가 올라온걸요?

코코넛참외주스는 단맛 난다고 가짓수에 포함시키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 맛있었어요. 식감도 다채롭고 향도 좋고요. 

사진 올리면서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다시 한 번 헤아려 봅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대체음료로 주문했습니다.

이날은 하동매실주스가 나왔습니다. 

술병 술잔의 곡선과 매화문 좀 보세요. 

'오너 셰프'인 권우중 주방장이 직접 디자인해 광주요 측에 제작 의뢰한 작품이랍니다. 

이 분의 외조부께서 유명한 이북식당의 오너 셰프셨고, 부친은 미술쪽에서 일하셨다고 합니다.

 

 

 

 

 

 

 

500년의 무만두
Dumpling, Radish, Korean Beef, Dubu, Pinenut Juice

 

 

 

 

출연.

 

 

 

 

 

 

 

 

우유처럼 뽀얀 잣물을 부어 줍니다.

 

 

 

 

 

 

 

 

무, 한우, 두부로 빚은 피 없는 만두 위에 석이버섯채와 갖은 고명.

500년 된 어느 종가 레서피를 재해석했다고 합니다.

 

저한테는 사실 어떤 음식이 유구한 전통을 가졌다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맛만 좋으면 장땡이나

'스토리텔링'거리가 있으면 감상자(식객)의 기억에 좀 더 깊게, 오래 각인시킬 수 있지요.

작품(음식)에 애착도 더 생길 수 있고요. 

 

진하고, 고소하고, 식감 좋고, 합에 담겨 있으니 기분 좋고.

 

 

 

 

 

 

 

남해 바다
Raw Fish, Sea Squirt, Seaweed, Bang-A

 

 

 

 

합 또.

"남해 바다"라고 파란색 합을 채택한 모양입니다.

 

 

 

 

 

 

 

 

감성돔회 위에 멍게젓, 그 위에 가늘게 채썬 방아잎과 감태 파우더, 주변의 하얀 것은 참기름 파우더.

 

평소 액젓은 사용해도 씹는 젓갈이나 회 같은 날해산물은 안 먹으려 드는데 잘한다는 집이니 눈 질끈 감고 먹습니다. 바다향이 강하지만 기분 좋게 나고 감성돔 식감은 부드러우면서도 오돌오돌, 좋네요. 저는 면역력이 시원찮아 날해산물을 삼갈 뿐이지, 사람들이 왜 회를 즐기는지는 이유를 압니다. 맛이 생생하고 식감이 좋더라고요.   

 

여기 주방이 우리 전통 유지인 들기름과 참기름을 고집해서 재미있었습니다. 들기름 마요네즈, 참기름 파우더, 들기름 막걸리 소스, 전복용 참깨 소스 등, 이 두 유지를 변형시켜 내는 일이 많으니 눈여겨보세요. 

 

 

 

 

 

 


민어구이
Pan Fried Croaker, Venus Clam Porridge, Beach Silvertop

 

 

 

 

세 번째 합.

여름 생선인 민어.

 

 

 

 

 

 

 

 

민어는 먼저 찐 다음 가볍게 지졌고, 백합으로 맛낸 죽과 함께 담았습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방풍나물을 곁들이고 사랑초꽃 한 송이로 마무리했고요. 다쓰베이더는 서버의 설명 듣고 재료 적느라 정신 없고, 저는 사진 찍느라 정신 없고. 이것도 맛있었어요. 백합죽은 강한 우마미에 짭짤하니 고소하면서 찰지고, 불맛 나는 민어는 한 입 깨무니 녹아내립니다. 

 

 

 

 

 

 


민들레 국수
Dandelion leaf, Perilla oil, Noodle, Smoked Prawn

 

 

 

 

'시그너춰'인 민들레 국수.

크게 띄워 놓고 보세요. 담음새가 예술입니다.

 

 

 

 

 

 

 

 

좀 더 단단한 식감과 색을 위해 우리 소면 대신 스파게티 중 가장 가는 카펠리니cappellini를 쓰고, 들기름과 막걸리 식초로 만든 소스를 넉넉히 담아 냅니다. 사과나무로 훈제한 홍새우를 납작하게 반 갈라 얹었습니다.  

 

 

 

 

 

 

 

 

 

국수 그릇에 부어 섞어 먹어야 하는 민들레 샐러드는 까나리액젓과 매실청으로 버무려 담았습니다. 모친이 자주 해주시던 토종고수무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담은 것 좀 보세요. 일류 꽃꽂이입니다. 주방에 쫓아 들어가 카펠리니 야무지게 돌돌 말아 담은 분과 민들레 샐러드 담은 분 뵙고 칭찬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샐러드는 핀셋 써서 정성껏 배치했겠죠. 저도 집에 플레이팅용 핀셋이 있어서 담음새를 눈여겨봅니다.

 

기름 고소한 맛에 새콤달콤하면서 면발은 적당히 힘이 있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집이 '들기름 국수' 맛집이네요. 일상 한식에서 국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면 좋아하는 이들이 많으니 파인 다이닝 코스에 국수를 넣는 건 잘 하는 거지요. 여기 음식이 다 맛있는데 일행 모두 이 민들레 국수와 디저트를 그중 가장 기억 나는 권숙수 음식으로 꼽았습니다.

 

 

 

 

 

 


전복구이와 토종 참깨소스
Pan Fried Abalone with Kelp, Korean Sesame Sauce

 

 

 

 

깻잎 동그랗게 찍어 올린 것 좀 보세요. 향미가 강한 향초니 모양틀로 작게 찍어 올린 겁니다. 채썬 향초들은 앞에서 이미 여러 번 봤으니까요. 

 

깻잎 바로 밑에는 간장에 조린 다시마채, 그 밑에는 술찜한 뒤 기름에 지진 전복, 죽순의 일종인 '분죽'을 귀하다는 연천 참깨로 소스를 만들어 버무린 뒤 깔았습니다. 

 

제가 "전복은 질기기만 하지, 자체의 개성 있는 맛도 없고, 우마미도 부족하고,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 적 있죠. 이날 이 집에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럽게 씹히도록 조리하기가 힘든가 보죠? 다들 이 집처럼 잘 조리해서 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조개류(실은 달팽이류라 함.)에 비해 맛이 부족한 건 맞으니 양념을 잘해야 하는데 술향이 배도록 살짝 익히니 좋네요. 영국에 갔다 오니 전복이 흔해져서 이제는 어느 한식당이든 전복을 내지만 잘하는 집이 없어 물려하던 참에 구세주 같은 접시를 만났습니다. 감사.  

 

 

 

 

 

 

 

소르베 - 입가심

Sorbet - Palette Cleanser

 

 

 

 

 

본식 전에 입가심 하라고 내준 소르베입니다. 

2019년에 직접 담근 청귤 식초와 샤인 머스켓을 쓰고 앙증맞게 타임thyme을 한 잎 따서 얹었습니다.

메뉴에도 안 적혀 있는 별것 아닌 소르베조차 훌륭히 맛냈습니다. 

 

 

 

 

 

 


홍합솥밥과 한우 떡갈비 제철 반상
Mussel Pot Rice, Korean Beef Tteokgalbi, Banchan

 

 

 

 

완성된 홍합 솥밥을 밥그릇에 덜기 전에 보여 줍니다.

 

 

 

 

 

 

 

 

참깨와 쪽파를 얹은 홍합무나물솥밥에 새우근대된장국.

솥밥 훌륭합니다.

 

 

 

 

 

 

 

 

반찬은

 제피 장아찌

 유자더덕초무침

오이지무침

소고기 표고 장조림

총각김치 (김치 이름 웃겨 죽것어요. ☞ 숫총각버섯도요. 짓궂은 한국의 아지매들.)

 

 

 

 

 

 

 

 

더 먹고 싶은 반찬 있냐고 서버가 물어 봐 줍니다. 

유자 더덕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솥밥은 반찬이 많지 않아도 되지요. 밥, 국, 반찬, 다 맛있었습니다.

 

 

맨 오른쪽에 찔끔 담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제피'인데, 제피뿐 아니라 딜dill과 딜꽃도 즐겨 쓰는 걸 보니 여기 주방이 저처럼 아니씨드anise, aniseed 계열의 향신료와 향초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적은 양으로도 입맛과 기분을 돋웁니다.

 

 

 

 

 

 

 

 

반상에 떡갈비 작은 것 한 조각이 곁들여집니다. 백김치, 시래기, 표고조림, 청경채가 같이 놓입니다. 메뉴에 "그 유명한 한우 떡갈비"라고 써 있어서 웃었습니다. 네에, 과연 세련된 맛이 나면서 아주 맛있었습니다.

 

청경채에서 신기한 맛이 나 '무슨 짓을 한 거냐' 물었더니 볶을 때 문배주를 같이 썼답니다. 눌은 단맛과 기분 좋은 향이 은은히 납니다. 맛있어서 저도 앞으로 청경채는 뿌리쪽만 살짝 데친 다음 기름과 맛있는 술로 플랑베flambé 해 볶아 먹기로 했습니다.

 

이 코스는 밥과 반찬 없이 좀 더 실한 크기의 고기 요리로 대체할 수도 있는데, 저는 한 번에 많은 양의 고기는 잘 먹지 못 하므로 떡갈비 반상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집에서 양갈비 고추장 구이와 한우 채끝 구이를 본식으로 선택해 맛본 적 있습니다만, 저한테는 솥밥에 국과 반찬 이것저것 나오는 이 떡갈비 반상이 가장 나았습니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고요. 

 

 

 

 

 

 


청명호
CheongMyeongju, Sliced Canded Ginger, Yogert, Applemint, Oriental Melon

 

 

 

 

여름 디저트.

레몬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사각사각 생강 소르베와 참외 콤포트, 그리고 레몬생강 파우더,

투명한 생강칩 위에 청명주 젤리, 물망초와 딜꽃.

 

저 나이 적지 않은데 지금까지 고급 식당에서 맛본 디저트 중 이게 가장 훌륭했습니다.

맛 진하고 향기롭고 식감도 다채롭습니다. 

맨 위의 생강칩은 맛폭탄이면서 얇고 바삭하게 잘도 만들었어요.

요리도 다 훌륭하고 디저트까지 잘 만들고, 이 집 뭔가요? 

 

 

 

 

 

 

 

 

옆에서 본 모습.

 

 

 

 

 

 

 

 

 

다과상의 과자를 집어먹을 때가 되어 물수건을 다시 제공.

 

 

 

 

 

 


다과 카트와 커피 또는 차
Petits Fours Trolley with Coffe or Tea

 

 

 

 

꺄오. 

차음식 수레가 우리 식탁으로 왔습니다.

고르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걸 하나씩 다 준답니다.

 

 

 

 

 

 

 

 

 

신난다.

 

깨물면 조청과 생강즙청이 '쭈아악' 배어 나오는 막걸리맛의 한국식 도넛 개성주악

생강으로 맛내고 백년초로 색을 낸 매작과

망고 타트

얼 그레이 찻잎을 넣고 구운 뒤 얼 그레이 크림을 충전한 프리앙friand

 오미자와 자몽으로 맛낸 '오미자몽' 젤리

 

영감은 애플민트 인퓨전을, 저는 녹차에 곁들여 먹었습니다.

 

아니? 이 집 뭔가요? 

차음식도 일류 한과집들 것보다 훨씬 나은데요? 

아프터눈 티 전문점 차려도 되겠습니다.

 

 

 

총평

 

살면서 지금까지 경험해 본 파인 다이닝 음식 중 이 집 음식이 다쓰 부처한테는 으뜸입니다.

'맛잘알'도 이런 맛잘알이 없어요. 한국에 이런 실력자가 있었다니요. 

 

한식 재료들을 뚝심 있게 쓰면서

재료들 간의 맛 궁합과 식감 조화를 훌륭히 이루어 내는데,

주재료를 주재료 농축액에 담갔다 쓰는지 재료의 맛과 향이 강하고 생생합니다.

인상적입니다. 저 먹고 나면 맛 금방 까먹는데 이 집 음식은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 '슴슴'하고 '담백'한 파인 다이닝 한식 넌더리내는 단단)  

 

동물성 재료들은 다들 어찌나 잘 익혔는지 보들보들 야들야들 살살 촉촉, 관능적.

 

어느 코스 하나 처지지 않고 다 뛰어나 다 '시그너춰' 삼아도 되겠고

심지어 마지막 다과상까지 훌륭합니다.

한식을 이렇게 낸다면 단단은 한식을 중식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습니다.

 

서버들도 훈련이 잘 돼 있어서 제가 재료와 조리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묻는데도 마치 그 음식을 만든 당사자인 양 설명을 구체적으로 잘해 줍니다. 질문을 하면 보통은 "주방에 가서 물어 보고 오겠습니다." 하거든요. 손님의 필요를 살펴 그때그때 재빠르게 제공해 주기도 하고요.   

 

두 번째 방문인데, 두 번 다 일행 모두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권숙수 적금' 들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와야겠습니다.

아, 예약하기 힘든 집이라서 블로그에 막 이렇게 칭찬하면 안 되는데.

 

 

 

서울의 고급 한식당

 

[라연] 신라 호텔 라연의 아름다운 한식기

[라연] 삼치는 맛있는 생선이었습니다

[라연] 한식 백반 구성 시 고려해야 할 점

[라연] 참 어려운 음식, 김치

[라연] 한식 샐러드와 드레싱 - 라연 스타일

[라연] 라연 후기

원서동 한식공간

잠실 롯데 타워 81층 비채나 - 광주요 그릇 열전

더 플라자 호텔 서울 - 주옥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발표를 보고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