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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라자 호텔 서울 - 주옥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더 플라자 호텔 서울 - 주옥

단 단 2022. 6. 28. 18:44

 

 

 

 

서울시청 앞에 있는 플라자 호텔의 한식당 <주옥>에 생일밥 먹으러 왔습니다. (또?)

6월 한달 동안 잘 먹고 잘 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었죠.

 

올해 생일에는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면요,

최근 가까운 이들 중 무려 세 명이나 암 진단을 받아 제가 몹시 슬프고 심경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윗세대 분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만 듣다가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내 세대 사람들이 암 투병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저도 다음달에 암 검사 두 가지를 앞두고 있고요. 제가 지금 하늘에 대고 피켓 드는 거예요. 힘 닿는 한 잘 먹고 잘 놀아보겠다며, 고통과 슬픔을 '디폴트'로 준 조물주를 향해 시위하는 중입니다. 

 

 

 

 

 

 

 

 

 

식당 입구.

 

저는 생일 맞은 단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식당 내부.

 

 

 

 

 

 

 

 

 

왼쪽에는 한식 재료들과 직접 담근 식초들.

 

 

 

 

 

 

 

 

 

아, 이것들이 주방에서 직접 담근 맛식초들인가 봅니다.

맛식초뿐 아니라 맛기름도 만들 수 있지요.

맛기름은 쉬운 게, 원하는 식용유에 원하는 재료를 그냥 담가 놓기만 해도 됩니다.

 

 

 

 

 

 

 

 

 

오른쪽으로는 시청이 보이는 창가에 식탁들이 놓여 있습니다.

 

 

 

 

 

 

 

 

 

저희 자리에서 본 창밖.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시청인지.

영국 갔다 온 사이 구청사 뒤로 신청사가 생겼어요.

 

 

 

 

 

 

 

01_ 맞이 음료

 

 

 

 

맞이 음료 (1) 산사화채.

 

자리에 앉자마자 산사나무 열매로 만들었다는 화채에 잣을 띄워 갖다줍니다.

자,잠깐만요, 가방과 소지품 좀 정리하고 마스크 벗고요.

 

그런데,

밑이 좁고 위가 넓은 불안정한 형태의 잔을 식탁보 위에 받침도 없이 그냥 낸다고요?

 

 

 

 

 

 

 

 

 

짭짤한 보리새우맛 매작과도 주전부리로 제공.

 

맛은 좋은데, 저,저기요, 

아직 냅킨도 못 폈고, 수저집에서 수저도 못 꺼냈고, 차림표도 못 봤어요. 

 

 

 

 

 

 

 

 

 

곁들일 술이나 물 주문을 받더니 순식간에 탄산수와 미네랄 워터를 제공합니다.

자,잠깐, 냅킨부터 좀.

 

'비단 주머니' 안에는 놋수저가 들어 있습니다. 

손님이 꺼내서 수저 받침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차림표도 봉투에서 꺼내야 하고요.

아, 뭔가 어수선하고 번거로워요.

 

 

 

 

 

 

 

 

 

맞이 음료 (2) 식초 에이드.

 

주방에서 직접 담근 식초로 에이드를 만들어주기 위해 수레 등장.

아니, 저,저기요, 숨 좀 돌리고요.

 

 

 

 

 

 

 

 

 

생강맛과 포도맛 중 택1.

저는 생강맛.

청귤청과 얼음을 담은 찬물에 선택한 식초를 부은 뒤 레몬밤 잎을 얹고 빨대를 꽂아 제공합니다.

 

 

 

 

 

 

 

 

 

이렇게요.

새콤달콤 청량해서 여름용 맞이 음료로 제격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음료와 음식을 플레이스매트placemat나 받침접시charger plate, service plate, underplate 없이 그냥 내 먹는 내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것 보세요, 찬물도 그렇고, 음료도 그렇고, 땀 흘리는 잔을 받침 없이 내 식탁보가 막 젖습니다. 앞서 화채도 잔받침 없이 내니 잔을 집어들면서 행여 엎을까 조마조마 했고요.

 

 

 

 

 

 

 

 

 

차림표.

클릭해서 크게 띄워 읽어보세요.

 

 

 

 

 

 

02_ 한입거리 

 

 

 

 

한입거리 (1) 국내산 한우 고추장 육회와 계란 노른자 젤리.

 

아몬드 타트tart 위에 고추장으로 맛낸 육회와 달걀 노른자로 젤리를 만들어 얹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알차게 맛 잘 냈습니다.

 

 

 

 

 

 

 

 

 

한입거리 (2) 간장 찜닭 크로메스키.

 

간장 찜닭을 깻잎으로 싼 뒤 튀김가루 묻혀 튀겼습니다.

이것도 맛있었습니다.

러시아식 고기 크로켓을 ☞ '크로메스키'라고 부르는데,

이날 먹은 것은 튀김옷이 좀 더 고운 입자이며 섬세하게 바삭거렸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놓고 각자 손으로 집어가는 한입거리 음식이어도 앞접시는 좀 내줬으면 좋겠어요.

속을 보려고 베어물다가 음식을 흘릴 수도 있는데요.

플레이스매트도 없는데 앞접시도 없으니 내 식사 영역이 확보되지 않은 듯해 불안했습니다.   

 

 

 

 

 

 

 

 

 

창밖.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니 딱 3초간 눈 감고 순국선열을 추모하자는 서울시의 캠페인.

 

 

 

 

 

 

 

03_ 한국의 여름

 

 

 

한국의 여름 (1) 네 가지 맛의 국내산 자연산 대하.

 

제철 재료를 쓴 계절 요리입니다.

이게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진을 크게 띄워서 보세요. 들어간 정성이 보통 아닙니다.

 

큰 새우를 토막 낸 뒤 각 토막마다 각기 다른 맛을 구현했는데,

머리서부터 꼬리까지 다 먹을 수 있게 조리했습니다.

진한 맛의 머리에는 오세트라 캐비아를 얹었고,

그 다음 토막은 미나리로 돌돌 말았고,

그 다음 토막은 청어알 젓갈을 얹었고,

그 다음 토막은 잣가루를 씌웠고,

꼬리는 된장가루를 묻혀 튀겼습니다.

 

발상이 훌륭하죠? 화려하고 정교해서 보기에도 좋고요.

"네 가지 맛"이 아니라 다섯 가지 맛이었습니다.

맛있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접시에 방울방울 찍어 놓은 것은 유자 잣즙과 청고추 소스.

 

 

 

 

 

 

 

 

 

03_ 한국의 여름 (2) 장어와 막걸리빵.

 

단호박 가루로 색 내고 막걸리로 맛 낸 기공 많은 푹신한 빵을 숯불에 구워 사용.

그 위에는 생강 간장 양념에 부드럽게 조린 붕장어를 얹고, 그 위에는 요즘 제철인 초당옥수수를 튀겨 얹었습니다. '초당'은 지명이 아니라 'super sweet'라는 뜻입니다. 맛은 좋은데 양념이 강해서 그랬는지, 옥수수가 달아서 그랬는지, 장어맛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철 재료인 초당옥수수를 기리는 음식이므로 문제는 없습니다.

 

'시그너춰' 중 하나라서 담음새에 힘을 준 것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그릇이 참으로 부적절합니다. 위에 얹은 옥수수 튀김 알갱이가 분리돼 굴러떨어지는 데다 한입에 다 먹을 수도 없는 크기의 음식을 저렇게 좁고 높은 그릇에 올리니 먹는 사람은 불편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손으로 들고 먹게 한 음식이었는데, 먹기도 힘든 데다 흘리는 음식을 받아 줄 만큼 그릇이 크지 않아 다들 투덜투덜. 앞접시도 따로 없는 상황이라 여간 애먹은 게 아니었습니다. 저처럼 입이 작은 사람은 음식 높이가 너무 높아 한입에 베어물 수도 없고요. 더 낮고 지름이 크면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그릇을 써야 합니다. 

 

 

 

 

 

 

 

 

 

국물 음식이 나오려나 봅니다.

 

 

 

 

 

 

 

 

 

한국의 여름 (3) 제철 호박꽃으로 감싼 제주산 갈치 만두국.

 

전체 맛은 좋으나 이것도 갈치맛은 별로 안 납니다. 위에 얹은 것은 전복편입니다.

김치 안 내는 파인 다이닝 한식당은 있어도 전복 안 내는 파인 다이닝 한식당은 없는 듯합니다.

투명하게 굳은 젤리 성상의 진한 맛 국물은 생선, 조개, 닭 육수를 각각 따로 낸 뒤 최적의 맛이 되도록 배합비를 조절했다고 합니다. 라멘야의 '스프' 배합 방식이 떠오릅니다.  

 

 

 

 

 

 

 

04_ 주옥의 맛

 

 

 

이 집의 '시그너춰'인 직접 재배하고 짠 들기름 드레싱에 전복소라와 오세트라 캐비아.

 

파인 다이닝 한식에서 들기름이 주연급으로 부상한 음식이 많아졌는데, 이 분이 유행시킨 모양입니다. 진주의 본가 텃밭에서 재배한 들깨를 짜서 쓴다고 합니다. 

 

 

 

 

 

 

 

 

 

들기름과 식초를 혼합한 한국형 비네그레뜨vinaigrette에 전복소라 편 썬 것과 오세트라 캐비아를 올린 메추라기알을 담갔습니다. 들기름 식초가 고소하고 새콤하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들깨 알갱이가 보이네요.

 

 

 

 

 

 

 

05_ 본식

(1)과 (2) 중 택1

 

 

 

 

본식 (1) 암소 한우 안심 숯불 구이와 나물 구이.

 

한우 안심을 2주 숙성시켜 숯불에 구웠다고 합니다.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서 작게 썬 것을 한 점 얻어먹었는데,

살면서 먹어본 소고기구이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조리도 잘했지만 고기 자체의 맛이 훌륭했어요.

어떻게 숙성시키면 이런 농후한 맛이 나는지 과정을 좀 보고 싶군요. 

'암소 한우 안심'이라니, 고깃값 비싼 한국에서 재룟값만 대체 얼만가요.

이 집도 자선사업을 하는 중입니다.

 

나머지 채소들은 맛을 못 봤는데,

안심 위에 얹은 것은 방풍나물 크럼블,

빨간 페퍼 밑에는 '여름 채소'를 볶아 숨겨 놓았고,

그 옆에 있는 것은 참나물,

양 옆으로는 씨겨자 장아찌와 산초 장아찌라고 합니다.

이것들도 다 맛있었다고 합니다.

 

 

 

 

 

 

 

 

 

본식 (2) 제철 생선 연잎찜.

 

저는 사진을 위해 생선 요리로 선택했습니다.

담음새가 여간 근사한 게 아니에요.

연잎으로 꽁꽁 여며 온 것을 손님 앞에서 잘 펼쳐 정리해 제공합니다.

 

민어를 또 봅니다.

제철 생선이라고 한식당들마다 요즘 부지런히 민어를 냅니다.

 

그런데 생선에 간장 국물이 닿으니 민물고기에서 나는 것 같은 뻘맛pondy, muddy이 조금 올라옵니다.

아, 민어맛이 이렇구나. 권숙수에서 먹을 땐 몰랐는데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맛을 갖고 있네요.

조리법 때문에 더 불거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역시 '물에 담긴 생선'은 취향이 아닌 것 같아요.

기름이나 유제품 써서 고소하게 조리한 생선이 좋아요.

권숙수에서도 이맘때에 민어를 내는데 찐 다음 표면을 살짝 지져서 물기 없이 내죠.

 

 

 

 

 

 

 

 

 

본식으로 무얼 선택하든 함께 딸려 내보내는 밥과 반찬.

 

장어솥밥 때깔이 좋죠?

한우육장을 부어 섞어 먹으면 됩니다.

밥도 맛있게 잘 지었고, 비빔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었습니다.

반찬은 연근 장아찌와 콜라비 장아찌입니다.

 

귀국 후 한식당들 쌀밥 맛없다고 여러 번 투덜거렸었는데, 

이런 집에 와야 제대로 된 밥맛을 경험할 수 있군요.

벌이는 시원찮은데 혀는 까탈스러워 큰일입니다.  

 

그런데,

밥과 반찬을 담은 작은 종지들이 식탁보 위에 그냥 올라와 있으니 이것도 뭔가 불안하게 합니다.

한데 아우를 받침이나 나무쟁반 같은 게 있어야겠습니다.

비빔장 더는데 흘릴까 봐 신경 쓰였습니다. 

손님이니 흘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흰 식탁보에 얼룩이 지면 밥 먹는 동안 보기에 좋지 않잖아요. 

사진도 계속 찍어야 하는데요.

 

 

 

 

 

 

 

 

 

창밖.

 

아니? 서울에 저런 예쁜 색의 도심 관광 버스가 있었다고요?

귀국 후 제가 아직 '확' 바뀐 서울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 했어요.

관광객이나 다름없는 처지니 하루 시간 내서 이거 타고 강북 관광이나 해야겠습니다.

 

 

 

 

 

 

 

06_ 디저트 

 

 

 

블루베리 소르베와 눈꽃 빙수.

 

블루베리 젤리, 블루베리 콤포트, 블루베리 파우더로 맛낸 우유 눈꽃 얼음의 빙수입니다.

따로 낸 커스타드crème anglaise를 부어 먹습니다.

맛을 잘 내서 맛있긴 했는데 조금 식상합니다.

 

땀 흘리는 그릇이 또 그냥 올라와 겨우 마른 식탁보가 또 젖습니다.

 

 

 

 

 

 

 

07_ 한국의 맛

 

 

 

전통차나 커피와 함께 내는 한국의 전통병과.

 

이것도 눈 반짝이게 하는 요소가 없어 실망스러워요.

 

 

 

 

 

 

 

 

 

차는 연잎차를 선택했습니다. 차맛은 무난.

 

결들인 과자는

달기만 하고 영 매가리 없는, 예측 가능한 맛의 팥 양갱,

예측 가능한 무난한 맛의 약과,

예측 가능한 무난한 맛의 쌀강정,

예측 가능한 무난한 맛의 호두정과.

 

전부 식상한 데다 식감이 텁텁합니다.

네 개 중에서 텁텁함의 최고봉인 강정은 빼고 쨍한 신맛 나는 것으로 대체해도 좋을 텐데요.

요즘은 양갱도 달게만 만들지 않고 유자나 감귤류로 향기와 신맛을 더하잖아요.

차가 함께 제공되기는 하지만 하나쯤은 물기 있는 촉촉한 것을 내면 좋겠고요.

앞서 낸 음식들은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 와서 디저트와 다과가 평범하니 뒷심 부족으로 김이 샙니다.

미슐랑 1-스타 식당이면 맛 좋고 깔끔하게만 내도 되지만

2-스타부터는 전통보다 자기 색채를 더 내세워야 하지 않나요.

 

 

 

 

 

 

 

08_ 차림표에 없는 깜짝 선물

 

 

 

 

다채로운 견과류가 든, 딱딱하지 않고 찐득거리는 강정.

 

맛은 나쁘지 않은데 이것도 식상해요.

어후, 이런 거 안 줘도 되니 디저트와 다과나 연구를 더 하세요.

앞서 보여주었던 창의력은 어디로 갔나요.

 

 

총평

 

디저트와 다과만 개선하면 추천할 만한 집입니다.

코스 시작 부분에 여유를 조금만 더 주시고, 

플레이스매트나 받침접시를 제공해 주시고,

몇몇 음식은 보기 예쁜 그릇보다 손님이 먹기 편한 그릇으로 바꿔 주시면 좋겠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짭짤한 음식들은 다 괜찮은데 그중

다섯 가지 맛 대하, 들기름 메추라기알, 한우 안심 숯불구이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소고기 본식은 살면서 먹어본 고기구이 중 최고였습니다.

다들 19금 신음을 내뱉으며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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