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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1961) 본문

음악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1961)

단 단 2022. 8. 6. 21:47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美 전략 폭격기 'B-29 수퍼포트리스'.

덕분에 한국은 해방을 맞을 수 있었다.

 

 

77년 전 오늘.

 

"1944년 3월부터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 때까지 B-29는 수백 회에 걸쳐 일본 본토를 맹폭격하여 66개 주요 도시를 말 그대로 불바다로 만들어 일본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독일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약 30퍼센트가 격추되었을 만큼 많은 고초를 겪은 B-17과 달리 태평양 전선의 B-29는 호위기의 엄호도 없이 일본본토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폭격을 해대었다. 대공포가 도달하지도 못할 고고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느긋하게 폭탄을 퍼부어대는 B-29 편대를 일본은 그냥 뻔히 쳐다보아야만 했다. 일본의 전투기들은 B-29의 비행 상공까지 올라가지 못하여 요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투하한 폭탄이 빗나가거나 불발탄이 되기를 바라는 방법 외에는 일본이 대처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B-29가 요격 범위 내로 진입하지 않는 한 일본이 B-29를 잡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무지막지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을 옥쇄 시켜서라도 필사의 항전을 하려는 일본 수뇌부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계속되자 미국은 결정타를 날리게 되었는데 바로 핵폭탄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B-29가 투하한 핵폭탄으로 일본은 반항을 멈추고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핵폭탄 투하가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전략 폭격기가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군사 전략상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전략 폭격의 개념은 핵폭탄을 장착한 장거리 중폭격기가 담당하는 것으로 각인되어 버렸고 이 때문에 B-29는 전략 폭격기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략 폭격기의 아버지 'B-29 수퍼포트리스(Superfortress)'

 

 

27세의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2020)는 1961년, 음악 역사책에 길이 남을 현악합주string orchestra용 작품을 남깁니다. 처음 발표할 당시에는 작품의 총 연주 시간인 <8분 37초>로 제목을 붙였으나 훗날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더 그럴듯한 제목인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영어 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폴란드어Tren Ofiarom Hiroszimy)로 바꿉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작업을 하는 미술인들은 자기 작품 제목을 <무제>(Untitled) 같은, 시답잖은 것으로 대충 붙인 뒤 전시할 때쯤 돼서는 뒷골이 땡기는지 작품 해설에 온갖 최신 유행 철학과 심리학을 덕지덕지 갖다 붙이면서 '있어 보이는 척' 하지 않습니까? 거 왜, "최신 철학과 심리학을 알고 싶은 자는 미술 전시회에 가 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작곡가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금방 휘발돼 사라져 버리는 소리를 놓고 무형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이들은 최대한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단어들을 선택해 자기 작품을 어떻게든 형상화해 보려고 애씁니다. 형이상학적 용어 배제하고 돌직구로 말하는 단단을 보세요.

 

'난해한' 현대 회화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다들 열심히, 끝까지 보지만 난해..하다기보다는 낯선 음향의 현대 음악은 1분도 못 듣고 도망쳐 버립니다. 아이의 삐뚤빼뚤한 그림은 감상자에게 미소를 짓게 하지만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바이올린 소리는 고강도로 감상자를 괴롭힙니다. 사나운 꼴을 보면 눈은 언제든 질끈 감을 수 있지만 사나운 소리를 들어도 귀는 질끈 감을 수 없어 더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미술작품은 누구든 '이 부분이 좋다', '저 부분이 마음에 든다' 나름의 평을 하고 느낌을 말하지만 음악은 '좋으니 같이 듣자'며 자기 SNS에 올리고도 어떤 점이 좋은지 말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기껏해야 작곡가나 연주자의 신변 이야기, 곡이 작곡되거나 발표될 당시의 이런저런 일화, 그 음악을 들었던 당시의 추억 삼을 만한 상황, 연주 잘한다 못한다, 노래의 경우 심금을 울린다며 가사나 올릴 뿐, 음악 자체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봅니다. 저는 현대 회화나 현대 조형 작품, 그리고 설치 작품들에 대해 제 나름의 의견과 좋아하는 지점을 ('아무말 대잔치'일지라도) 전공자 눈치 안 보고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데 제 주변의 미술인 친지들과 가족들은 현대 예술음악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질 못 합니다. 저는 이 점을 늘 신기하고 흥미롭게 여깁니다. 그만큼 음악은 논하기 어려운 예술이라는 거지요. 음악이 미술보다 고차원적인 예술입니다. 저뿐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철학자, 미학자 많습니다. (→ 미술인 둘째 오라버니와 음악인 단단, 만날 투닥투닥?)

 

 

 

 

 

 

 

 

 

오늘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날을 맞아 '초'고강도로 여러분을 괴롭힐 곡을 하나 걸어 봅니다. 경쾌한 음색의 건반악기나 발현악기도 아닌 찰현악기를 무려 52대나 동원해 악기에 매인 현을 활 밑부분으로 '박박' 긁어 대거나, 손가락으로 직접 뜯거나, 활등의 나무 부분으로 튕겨 대는 등 안 예쁜 소리들만 골라 냅니다. 신음 소리처럼 들리는 대목도 있고요. 듣고 있으면 원폭 현장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바이올린 24대, 비올라 10대, 첼로 10대, 더블 베이스 8대.]

 

현대의 예술음악쪽 작곡가들은 더이상 악기가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찾아 기쁨과 슬픔, 사랑, 이상향을 노래하는 일에만 전념하지 않고 문학이나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사의 모든 면 - 부조리함과 추함과 악함과 아이러니를 표현(기념)하는 데에도 관심을 둡니다. 아편 역할만 하지 않고 송곳 역할도 하겠다는 거지요. 청중들은 탐탁지 않아 하지만요.

 

저한테는 이 곡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립니다. 악기가 가진 예쁜 소리는 쓰지 않았지만 '비브라토'(손가락 끝을 좌우로 천천히 떨거나 빨리 떨어 미묘하게 음정 변화시키기), '글리산도'(음과 음 사이 미끄러지듯 잇기), '트레몰로'(활 상하로 재빨리 흔들기), '쉬익'거리는 현과 활 사이의 긴장감 도는 마찰음 증폭시키기 등 찰현악기의 특성을 잘 살린 수작입니다. 좋아하는 곡이라서 8월 6일이 되면 소개해 드리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제 서양음악사에서는 '고전classic'이 된 전위avant-garde 음악이어서 대학 교재마다 꼭 싣습니다.

 

기존의 '콩나물' 기보와는 다른 형태의 악보도 눈여겨보십시오. 초 단위로 띠를 써서 표현한 그래픽 악보입니다. 한음 한음의 의미나 선율melody은 이 곡에서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룹이 내는 음 덩어리, 즉, 음괴tone cluster, sound mass의 상태나 움직임gesture이 중요합니다. 음괴는 동적일 때도 있고 정적일 때도 있습니다.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고 폴란드 국립 라디오 관현악단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NOSPR]이 연주했습니다.   

 

 

 

 

 

 

 

 

 

"저 폴란드 작곡가가 핵폭격 백번 당해도 싼 일본에 아첨해 일본 정부로부터 연주 기회와 후원 얻어 내려고 작품에 이따위 제목을 붙였다!"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원폭 피해자 중에는 강제 징용되었던 우리 조선인도 무려 6만명 이상이나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일본은 패망했고, 우리나라는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 강제징용이나 이주 등으로 머물고 있던 조선인들도 원폭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5만 명, 나가사키에는 2만 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중 4만여 명이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조선인 생존자 중 약 2만 3,000여 명이 해방 후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다수 생존자는 원폭 후유증과 빈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인의 원폭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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