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비밥(bebop)의 수다스러운 베이스를 사랑 본문

음악

비밥(bebop)의 수다스러운 베이스를 사랑

단 단 2022. 8. 26. 05:04

 

 

 

 

날이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베이스가 근사한 음악들을 시리즈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비밥을 걸어 볼게요.

 

저는 옛날 재즈, 모던 재즈, 현대 재즈, 다 좋아합니다. 뉴올리언즈 재즈와 스윙도 좋아하고, 비밥과 이후의 하드 밥, 쿨·모달 재즈, 라틴 재즈, 프리 재즈, 퓨전도 다 좋아해요. 장르, 종류, 상관없이 뭐든 그 안에서 '잘 만든 음악'을 좋아합니다.

 

어느 실력 좋은 베이스 연주자가 비밥의 거장이었던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의 <체로키>에서 베이스 부분만 놓고 비밥에 대해 설명합니다. 요지인즉슨, 옛 거장들의 음악어법은 낡지 않았고 요즘 음악에 그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져 살아 숨쉬고 있으니 여전히 존경 받아 마땅하다, 뭐 이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베이스에 집중해 설명하느라 드럼이 빠졌는데, 연주 중간에 자유로운 리듬으로 된 부분은 베이스 솔로입니다. 교과서적인 비밥 스타일과 이후의 스타일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큰 차이는 나지 않고, 후자의 화성chords에 불협화음이 좀 더 가미돼 확장되고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리듬은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며, 솔로 부분에 쉼표space를 많이 두어 여유롭게 흐르는 느낌을 줍니다. 고집악구ostinato 등으로 성깔을 부여하기도 하고요.

 

비밥은 8비트가 기본이므로 위 영상의 악보에서 가독성을 위해 채택한 4분음표는 8분음표라고 생각하고 들으셔야 합니다. 32마디가 한 회전이 되는 음악이죠. 64마디가 아니라요. 8마디짜리 부분 네 개가 합쳐진 AABA 형식의 32마디입니다.

 

집에 갖고 있는 책들에서 본 내용과 음악 듣고 직접 알게 된 것들을 두서 없이 늘어놓아 봅니다.

 

 

비밥의 탄생, 음악사에 끼친 영향과 의의

 

1940년대 초반 뉴욕에서 빅밴드의 잘 편곡된 일사분란하고 매끈한 사운드와 차별된 좀 더 분방하면서도 복잡하고 기교적인 새 음악이 탄생합니다. '비밥'이라는 이름은 디지 길레스피의 악곡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스타카토로 된 두 음을 모사한 의성어라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집니다. 대표 뮤지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색소폰: 찰리 파커(Charlie "Bird" Parker, 1920–1955), 존 콜트래인(John Coltrane, 1926–1967)

• 트럼펫: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1917–1993),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

• 피아노: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1917–1982), 버드 파웰(Bud Powell, 1924–1966)

• 드럼: 케니 클라크(Kenny Clarke, 1914–1985), 맥스 로취(Max Roach, 1924–2007) 

 

확고한 명성을 누렸던 스윙 대가들과 달리 젊은 무명 뮤지션들이었던 이들은 잃을 게 적었기에 과감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고 이제는 이런 초기 비밥 거장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재즈 음악가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많은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밥 연주자들

비밥 대표 곡 하나 들어 볼까요 - Dizzy Gillespie, 'Bebop'

 

비밥 뮤지션들은 재즈의 국면을 춤 추기 위한 음악에서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로써 연주자들은 연예인이 아닌 음악가로 변신해 "musician's music"이라는 용어가 생깁니다. 직전에 유행했던 스윙이 백인들에게도 환영 받고 그들에 의해 소비되었다면, 비밥에는 백인들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자 했던 흑인들의 의식이 담겼습니다. 스윙 = 춤곡 = 쉬워서 인기 있음, 비밥 = 예술 = 어려워서 인기 없음, 이렇게 단순화해 볼 수 있겠습니다.

스윙 연주자들

집에만 계셔서 좀 쑤신 분들, 저와 함께 스윙 한 곡 들어 봅시다

 

1950년대에 와서 비밥은 두 갈래의 전혀 다른 성격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킵니다. 하나는, 악기 편성, 화성, 리듬 등은 비밥과 유사하지만 속도와 연주가 보다 여유로워지고 차분해지면서 작품의 길이는 더 길어진, 그러면서 솔로의 기량을 뽐내는 즉흥 연주 패시지들보다는 다시 작곡가와 편곡자의 작업을 중시하게 된 쿨 재즈. 다른 하나는, 1950년대 중반, 막 부상하기 시작한 리듬 앤 블루스의 영향 아래 가스펠과 블루스 같은 흑인음악의 뿌리에 f펑키한 리듬을 결합시킨 하드 밥. 하드 밥에 와서는 스윙의 'one AND two AND three AND four AND'의 약박off-beat 강세가 다시 살아나 템포가 한결 여유로지고 다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드 밥 연주자들 

하드 밥 대표 곡 하나 들어 볼까요 - Art Blakey, 'Moanin''

비밥과 하드 밥의 차이

쿨 재즈, 웨스트 코스트 재즈 연주자들

 

비밥과 함께 쿨 재즈, 하드 밥, 모달 재즈로 이어지는 재즈의 경향을 '모던 재즈'라고 부릅니다. 현대적 감각을 더한 세련된 재즈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재즈는 더 이상 댄스 홀과 클럽에서 춤 반주와 술의 안주격으로 연주되는 오락이 아니라 콘서트 홀에서 경청하며 듣는 예술의 경지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만큼 듣기 어려워진 재즈는 이전과 같이 많은 대중을 사로잡는 데 실패해 오늘날에도 재즈는 여전히 '엘리트' 귀를 가진 소수의 음악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재즈 즐기는 분들 글에서 저는 조용하고 잔잔한 자부심을 자주 느끼곤 하는데, 좋아 보입니다. 뭐든 적당한 긍지를 갖고 즐기면 정신 건강에도 좋지요. 난삽하다는 ☞ 프리 재즈도 저한테는 재미있기만 합니다. 대중음악은 아무리 어렵다는 것들도 금방 파악됩니다. 쉽게 이해된다는 게 형편없는 음악이란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고요.

 

 

비밥의 음악적 특징

 

비밥은 빅밴드가 아니라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으로 구성된 작은 밴드combo의 합주와 독주가 골자를 이룹니다. 대개 4-5명 정도(quartet/quintet).

 

이전 시대의 스윙 재즈가 단순한 화성과 리듬을 가졌었다면 비밥은 (1) 비대칭적 길이의 기억하기 어려운 선율, (2) 긴 휴지부space, (3) 잦은 화성chords 변화, (4) 불협화음altered chords, extended chords, chord substitutions, (5) 반음계적 진행으로 대폭 확장된 화성 어휘chromatic harmony, (6) 잦은 조바꿈modulation, (7) 진행 방향의 갑작스러운 변화, (8) 최소 8비트를 기본으로 하는 훨씬 복잡하고 다변적이며 불규칙적인 리듬, (9) 이종種異 악기간 기교적 선율의 중복 연주unison, (10) 빠른 템포 속 몰아치는 듯한 속주를 선보여 일단 연주가 어렵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니 당연히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없고요.

 

비밥 뮤지션들은 직접 새로운 곡들을 쓰기도 했지만 당대에 유명했던 곡들을 기초로 즉흥연주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솔로의 즉흥연주를 강조하여 연주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연주자의 창의성, 순간적인 사고력, 초절기교적 연주 능력virtuosity이 요구되죠. 원곡의 '선율'을 가지고 즉흥연주 하기보다는 원곡의 '코드 패턴'과 음계scale를 놓고 솔로를 구축합니다. 아예 원곡의 선율을 참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악곡 형식form은 32마디 AABA 또는 12마디 블루스 패턴을 토대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솔로 연주자들은 기본 패턴을 넘어서 예상치 못한 곳이나 관습적이지 않은 위치에서 악구를 시작하고 끝내기도 합니다.

 

 

 

 

 

 

 

 

 

실력 있는 재즈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손대 본다는 ☞ 비밥 스탠다드 <도나 리>(Donna Lee)의 재해석한 연주를 걸어 봅니다. 폴란드의 <Kinga Głyk Trio>가 연주합니다. 흐뭇하게도 드럼은 아버지가, 우쿨렐레 베이스는 스무 살짜리 딸이 맡았습니다. 비밥의 베이스는 전통적으로 더블(콘트라) 베이스가 담당했는데 요즘은 베이스 기타나 이 영상의 베이스 우쿨렐레 같은 색다른 악기가 맡기도 합니다. 비밥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시작과 끝은 원곡의 선율을 '식별 가능'하도록 비교적 친절하게 들려 주고 중간에는 각 악기의 기교적 솔로를 번갈아 가며 삽입한다는 것[head-solo-head structure]. 처음에 들었던 선율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면 끝부분이구나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건 비밥뿐 아니라 쿨 재즈, 하드 밥, 모달 재즈의 공통 특징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감상되기를 바랍니다.

 

 

 

 

 

 

 

 

 

오, 단단님, <카우보이 비밥>(1998)의 주제가 '탱크!'는

그럼 이름이 암시하듯 비밥이겠죠?

아니오. 좀 복잡합니다.

라틴 재즈를 가미한 빅밴드, 록, 하드 밥, 비밥에

대중성을 위해 기억하기 좋은 반복 선율을 잔뜩 삽입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