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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나 꽃, 향초 등의 부재료로 향을 입히지 않은 순수한 백호은침을 소량 입수했다. 백호은침은 백차white tea 중에서도 이런 여리디여린 심으로만 만든 고급 차. 아무리 질 좋은 녹차나 홍차도 이 백차에 비하면 그저 험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멜론의 단맛과 오이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아주 섬세하고 싱그러운 '피아니시모pp' 찻잎이기 때문에 백호은침을 마실 때는 차음식이 필요 없다. 찻물도 미색을 띠어 곱다. 사진의 찻잎은 상을 수상했다는 영국 의 백호은침. 다섯 번 우리고 난 뒤 심 몇 개를 골라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다. 은빛 솜털이 여전히 남아 반짝거린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기' 찻잎들이라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둔다. 1회 분량의 시음용 차였으니 이번 한 번으로 끝. 아쉽구나. ■
수퍼마켓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용 과자와 차가 벌써 나와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10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합니다. 선반 위의 온갖 과자와 쵸콜렛, 홍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팽글팽글. 하도 행복해 으악 소리 한번 내지르고 찬찬히 살펴보았지요. 올해의 프리pre-크리스마스 과자로는 이태리 과자인 아마레띠를 골랐습니다. 그간 허술한 포장의 아마레띠만 봐 왔었는데, 크리스마스라고 아주 제대로 깡통에 넣어 팝니다. 빈티지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자기들 말로는 원조라고 하는데 누리터를 뒤져 보니 원조라고 하는 곳이 몇 군데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맛만 좋으면 원조고 뭐고 크게 상관 없지요. 이가 시원찮아 아마레띠를 살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아마레띠로 삽니다. 'Ameretti soffici'라고 되어 있죠?..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수퍼마켓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병 제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영국인들은 쥐기 편하고 쓰기 편해도 저 미국식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용기를 선호하지 않는 듯합니다. 환경 호르몬 걱정 때문인지, 그놈의 '품격' 때문인지, 공병이 필요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수퍼마켓 선반에 갖가지 크기와 형태의 예쁜 유리병들이 조로록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오르가즘이 다 느껴집니다. (응?) 내용물이 휜히 들여다보이니 고르는 소비자 입장에선 여간 편한 게 아니고요. 떠올려 보니 한국의 마트에서는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간장이든, 마요네즈에 심지어 식초와 식용유까지도,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들이 선반을 가득 메웠던 것 같습니다. ..
다쓰베이더 생일입니다. 이번처럼 추석과 겹칠 때가 종종 있어 손해를 보곤 합니다. 오늘은 아프터눈 티 테이블 대신 하이 티를 차려 보겠습니다. 아프터눈 티와 하이 티가 어떻게 다른지 아시는 분? 우선, 시간대가 다르죠. 아프터눈 티는 점심 먹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이 오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귀족들의 문화입니다. 나른한 오후에 갖는 간식 시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대개 5시 정도면 끝나는데, 그리고 나서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립니다. 이에 반해 하이 티는 주로 잉글랜드 북부의 노동자들이나 농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이른 저녁 식사입니다. 대개 6시쯤 갖습니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의 생활상을 다루는 영..
이태리 홍차? 영국 브랜드 홍차는 기본이요, 미국 캐나다 일본 인도 스리랑카 프랑스 독일 브랜드 홍차까지 다 마셔보았지만 이태리 브랜드의 홍차는 금시초문이라는 분 계실지 모르겠다. 이태리 홍차라... 흐음... 커피 맛있게 내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면 홍차에도 소질이 있을 게 분명할 것으로 판단해 덥석 구입. 산 지는 꽤 되었는데 오늘 꺼내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렇다. 가필드 님께서 현재 이태리 방방곡곡을 돌며 홀로 배낭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태리 여행 하니 갑자기 내 신혼여행 때가 떠오르는 것 아닌가. 일정에 베니스도 들어 있다니 분명 산 마르코 광장의 에도 들르실 터. 오늘의 홍차가 바로 저 유명한 의 블렌딩 홍차인 것이다. 오늘은 사진 왼쪽의 녹색 깡통 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황홀한 찻물. 로..
Summer afternoon - Summer afternoon... the two most beautiful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 Henry James - 셰익스피어를 비롯,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했던 영국의 '글로리어스'한 여름 날씨. 9월이지만 아직까지는 유효합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여름에 햇빛을 쬐어 두지 않으면 비타민D 부족과 피부병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들 기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1층 할머니가 또 머그 한가득 밀크티 담아 일광욕 하러 마당에 나오셨습니다. 햄퍼hamper와 담요는 아직도 못 샀습니다만, 오늘은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차를 즐겨야겠습니다. 간단하게 싸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합니다..
▲ 골동품 같은 치즈 덩이. 크어어, 저 대리석 같은 환상적인 푸른곰팡이의 배열! 영국 블루 치즈의 특징 중 하나다. 오랜만에 영국 치즈 이야기를 다시 해봅니다. 블루 치즈 - 그 화려한 무늬로 인해 서양식 파티의 치즈 보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치즈. 잘 알려진 것으로는 이태리의 고르곤졸라, 프랑스의 록포르, 영국의 스틸튼이 있지요. 이들을 '세계 3대 블루 치즈'라 속 편히 묶어 부르는 이들도 있고요. 고르곤졸라와 스틸튼은 소젖으로, 록포르는 양젖으로 만듭니다. 소젖으로 만든 것들은 익숙한 맛 때문인지 양젖 치즈에 비해 소스나 딥, 수프 등 요리에서의 쓰임새가 좀 더 다양한 편입니다. 스틸튼의 가장 큰 장점은 블루 치즈이면서도 많이 짜지 않아 먹을 때 부담이 없다는 것이지요. 록포르..
머핀 제25호 재료: 커피, 우유, 달걀, 식용유, 밀가루, 설탕, BP, 소금, 잘게 다진 호두, 아이싱슈가 차생활을 한 지도 이제 꽤 되었습니다. 차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죽 즐기던 음료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청차인 우롱차를 즐겼었지요. 영국에 있을 동안은 홍차가 값도 싸고 다양하니 홍차를 집중적으로 즐기는 것이 현명합니다. 홍차 깡통도 꽤 많이 생겼는데, 언젠가 빈 홍차 깡통들 죽 모아놓고 사진 한번 찍어 올려 보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차들을 마시고 나니 이제 차에 대해 감이 '조금' 잡힙니다. 조잡한 차들을 하도 마셔대서 이제 이런 차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ㅋ 좋은 차 감식 능력은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그저 찻잎 얌전하게 잘 생기고 맛과 향만 좋으면 최고이겠거니 생각하고 ..
결혼 기념일 찻상을 위해 샀던 미니 장미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응애가 달라붙어 그놈들 퇴치하느라 애는 좀 먹었습니다만, 달걀 노른자로 천연 살충제 만들어 정성껏 뿌려주고 물 주고 밥 주고 햇빛 쪼여주었더니 보답이라도 하듯 아주 풍성히 잘 자라주고 있어요. 작은 장미 꽃송이가 예뻐 아무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집에 데려왔는데, 원예 고수님들 말씀으로는 이 미니 장미가 키우기 가장 까다로운 것들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이를 어쩐답니까. 한 달 전 집에 데려왔을 당시엔 꽃송이가 10개 정도 있었습니다. 그 열 송이가 다 지고 새로 열한 송이가 또 올라왔습니다. 지금이 한창 자랄 때인가 봅니다. 막 벌어지기 시작한 꽃봉오리처럼 사람 감탄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요? 집 밖에 널린 게 나무와 꽃인데도 이렇게..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느닷없이 소포가 배달돼 왔습니다. 미스Miss도 미시즈Mrs도 아닌 미즈Ms 호칭까지 정확히 쓴 걸 보면 틀림없이 불량소녀 님의 만행입니다. 보낸 이와 주소를 확인하고는 신나서 포장을 뜯으려는 순간, 아니?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젤루 좋아하는 로빈Robin이 아닙니까! 아침에 로빈이를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짜리몽땅 통통한 것이 꼭 단단 같습니다. 한국 가면 이 로빈이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습니다. 포장을 뜯어 봅니다. 밀크티의 제왕이라는 티백을? 영국 수퍼마켓에 널린 게 이 요크셔 골드 티백인데, 왜 미국에서 이걸 보내셨을꼬? 현명하기 짝이 없는 불량소녀 님께서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실 리 있겠습니까. 투명스카치 테잎이 상자에 둘러진 걸 보니 단지 상자로만 활용한 것..
▣ 대학 구경을 마친 뒤 '지붕 씌운 시장'이라는 'Covered Market'에 들렀습니다. 즉석 쿠키 가게 앞에 학생들이 줄을 섰습니다. 막 구운 미국식 쫀득쫀득한 '쿠키'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침이 꼴깍 넘어갔으나 이제 줄 서서 쿠키 사 먹기엔 머쓱한 나이가 된지라 그냥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림체가 익숙하죠? 영국에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아동 문학가 겸 삽화가인 쿠웬틴 블레이크Quentin Blake가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크고 달고 기름져서 입에 넣자마자 혼을 쏘옥 빼앗는 저 미국식 맛난 쿠키가 영국의 전통 티타임 비스킷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고기 파이 가게입니다. 포크 파이가 보이는데, 봄철 피크닉과 티타임, 특히 하이 티hi..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사는 동네에는 50m 안에 채리티 숍charity shop이 무려 여덟 개나 있습니다. 영국 어디에도 한곳에 이렇게 채리티 숍이 많이 모인 데는 또 없을 거예요. 채리티 숍은 말하자면 한국의 같은 중고품 자선 가게입니다. 여기저기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잘 정리해서 값을 매긴 후 저렴한 값에 되파는 곳인데, 저도 살 빼서 못 입게 된 옷을 몇 번 갖다 준 적이 있지요. 이곳에서 옷을 사기도 하고요. 괜찮은 청바지를 5천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는 표어 중에 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안 쓰는 물건이라도 절대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물건일지 모른다는 거죠. 실제로 예술가들 중에는 채리티 숍을 다니며 캔버스에..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한국과 반대입니다. 이들은 우선 아파트 같은 공동 주거 형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타워팰리스 같은 고층 건물은 제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이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명품 가방이나 유명 브랜드 옷 따위를 걸치고 다니는 것도 진부한 일로 치부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단단은 백인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좋은 옷, 좋은 가방으로 잘 치장하고 다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명품 옷 바리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벌) 싸들고 영국 땅에 발을 디뎠는데, 웬걸요. 이런 옷들은 이제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실내복으로나 입는걸요. 남 주자니 아깝고 나중을 위해 고이 모셔두자니 인생은 짧고 말이죠. 영국에서는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는 시골로 갈수..
설거지는 말끔히 다 끝냈습니다. 오늘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제도 다양하셔라.) 단단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중에 한국일보의 장명수 님과 고종석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분들 때문에 한국일보를 구독했었지요. 장명수 님은 내용이 좋고 고종석 님은 문장이 좋더라고요. ☞ 장명수 님의 칼럼 중 기억 나는 대목이 있어 옮겨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과잉보호나 돈GR 과외가 아니라) 좋은 습관과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죠? 단단은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떠올렸지요. 모친인 말괄량이 권여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저희 4남매 극장에도 자주 데려가 주시고, 아이들은 마치 놀기 위해 세상..
친애하는 방문자 여러분. 우선 오늘의 제목부터 다시 좀 봐 주십시오. 결혼 10주년. 감동의 물결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옵니다. 결혼 20주년, 30주년, 40주년, 50주년 맞은 분들이 수두룩한데 시건방진 소리 말라고요? 다쓰베이더의 부친, 단단의 시부께서 결혼 전 저희 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났다 헤어지기를 쉬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꽤 오래 사귀었구나. 아비가 그 점 높이 평가한다." 수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겠다 말씀 드리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쓰베이더의 남동생은 색시 될 아가씨와 만난 지 3개월만에 후다닥 결혼했는데, 이것도 참으로 멋진 일 아닙니까? 첫눈에 자기 짝을 알아보고 이렇게저렇게 잴 것도 없이 단숨에 승부를 보다뇨. (사고 쳐서 결혼한 ..
마카롱을 다 구웠습니다. 영어로는 '마카루운macaroon'이라고 발음합니다. 재료, 공정, 모양, 질감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국에서는 프랑스 마카롱도 그냥 '마카루운'으로 통일해 부릅니다. 구워 보니 재료는 단순하지만 굽는 데는 노하우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노하우는 레서피에 잘 나와 있지 않으므로 몇 번 망치면서 터득할 수밖에요. 단단은 운 좋게도 두 번만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번엔 또 실패할지 모르니 매번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ㅋ 홈베이킹은 인격 수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갑자기 도자기 굽는 우리 둘째 오라버니 생각이 납니다.) 구울 때 레서피를 정확히 따라야함은 물론이요, 온도 조절과 판 선택도 잘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자기 오븐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
무지막지한 기계에 잔뜩 시달린 염소똥 같은 CTC 아쌈, 티끌 모아 태산 만든 티백 아쌈에 물려 제대로 된 잎을 한번 사 보았습니다. 우유 없이 마실 때는 CTC 아쌈의 아린 맛이 다소 부담스럽더라고요. 티백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티백 차는 일단 국물이 탁하죠. 전 그 탁한 국물이 이제 싫어졌습니다. 홍차에 막 입문할 당시에는 구하기 쉽고 값도 저렴한 티백차를 정말 수도 없이 마셨었지요. 사실 그 정도 값에 그만한 품질을 낼 수 있는 에는 지금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에 대한 제 애정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라마다 포장이 다른데, 영국 수퍼마켓에서 파는 차들은 요즘 포장도 얼마나 멋있어졌는지 모릅니다. 티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밀크티용 블렌드만은 나 같은 수퍼마켓표 티백..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에서 깨어나시라.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홍차를 마신다. 머그 한 가득 수퍼마켓 밀크티용 티백 우린 것에 비스킷 한 조각이 전부로, 비스킷도 꼭 한 개만 달랑 내서 먹는다. 한번은 영국인 노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손님인 나더러 아예 자기 집 과자통에 손을 넣어 알아서 비스킷을 꺼내 먹게 해 속으로 킬킬 웃은 적도 다 있었다. 영국의 여염집에 하나씩 있게 마련인 과자통은 아래 사진과 같이 실내용 작은 쓰레기통처럼 생겼다. 시詩적인 맛은 좀 떨어져도 나는 록앤록 같은 밀폐용기를 선호한다. 과자는 바삭해야지, 암. 비스킷은 대개 위에서 내려다본 찻잔과 같은 동그란 형태를 선호하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무래도 열량이 적은 오리지날 다이제스티브. 좀 더 사악하게 티타임..
그런가 하면, 가필드 님 생일 역시 7월에 있다고 하지요. 여름에 태어나신 분들 중 귀한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필드 님을 위해서는 제철 딸기 듬뿍 얹은 신선한 딸기 케이크 나갑니다. 영국 딸기는 알이 작은 대신 한국 딸기처럼 신맛 없이 단맛만 많이 나면서 싱겁고 속이 텅 비어 있지 않아요. 따로 만들어 둔 딸기 소스는 먹기 직전 뿌려 줍니다. 오오, 레몬즙이 더해져 새콤달콤, 소스 맛이 기가 막혀요. 엇, 자르다 다 뭉갰... 크림 속 딸기들은 또 다 어디로 가 버렸어? 분명 골고루 깔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과일 듬뿍 얹은 신선한 케이크는 홈메이드가 아니면 맛 보기 힘들지요. '못생겨도 맛은 좋아'가 제 베이킹 철학입니다. ㅋ 가필드 님, 생일 미리 축하 드려요! 재료 [약 10인분] 스폰지 • 무..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 '불량스런'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 생일이 7월에 있다고 하여 오늘은 케이크를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6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미리미리 만들어 기쁘게 해 드려야겠어요. 어떤 걸로 만들까 베이킹 책을 뒤지며 궁리하다 '불량소녀 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고운 빛깔의 마말레이드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껍질이 그대로 다 붙어 있는 밀가루라 스폰지 색이 좀 거무튀튀합니다. 그래도 꽤 고급 유기농 밀가루랍니다. 색은 저래도 풍미는 좋아요. 다쓰 부처는 마말레이드를 먹을 때마다 저 투명하고 선명한 오렌지 껍질을 '보석'이라 부르며 황홀해한다고 합니다. 오오, 저 빛깔,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크림 앞쪽에 뽕 뚫린 저 쬐끄만 구멍은 뭘까요? 맞히시는 분께는 소정의 ..
다쓰베이더: 이번 마나님 생일에는 찌질한 것들은 사다 쓰고 가장 난이도 높은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하였소. 마나님: (호기심에 눈이 반짝) 그게 무슨 소리요? 가장 난이도 높은 한 가지란? 만날 보는 샌드위치 따윈 수퍼마켓에서 사다 쓰고 영국의 바노피 타트banoffee tart 역시 사다 쓰고 테크닉과 노하우가 좀 필요하다는 저 프렌치들의 에끌레어eclairs에 올인하겠다, 이 말씀. 오븐 속에서 한껏 부풀고 있는 슈를 보는 게 그 어떤 것보다도 떼라퓨틱하다는 다쓰베이더. 냄비에 달달 볶은 반죽, 짜주머니에 넣어 짜주고심혈을 기울여 일정하게 짠 반죽, 포크로 죽죽 줄 그어 주고잘 부풀어 오를 수 있도록 오븐에 넣기 전 물 스프레이 칙칙 뿌려 주고 잘 구워진 슈는 식힌 후 똥꼬 푸욱 찔러 정성껏 만든 딸..
새삼스럽지만 오늘은 이 분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알뜰주걱이여, 그대로 인해 우리 푸른별의 맑디맑은 물이 그나마 덜 더럽혀질 수 있었음을 생육·번성하다 만 휴먼과 짐승들을 대신해 감사 드리는 바요. 오늘의 머핀 재료:타퍼나드, 그린올리브, 맛있는 치즈 강판에 간 것, 달걀, 밀가루, BP. 끝. 유지가 따로 안 들어가도 머핀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구나. 머핀 굽기는 계속된다. ■
제 티백받침 모음 중에 ↑ 이렇게 생긴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작년 제 생일에 어느 고마운 분께서 이 티백받침과 똑같은 그림의 티포원을 보내 주셨지요. 어찌나 신기하고 반갑던지요. 영국 와서 꽃무늬가 막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제 생애 첫 꽃무늬 찻주전자가 생겨 참으로 각별했었습니다. 무엇보다, 포트메리온 티포원은 투박하기 마련인 티포원치고는 손잡이가 제법 정교합니다. 제 수집품 중에는 이렇게 생긴 녀석도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그런데 이번 제 생일을 앞두고 어느 고마운 분께서 이 티백받침과 똑같은 프린트의 티포원을 또 보내 주셨지 뭡니까. 오오, 아무래도 이 분,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제 티백받침 그림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티포원의 찻잔 부분에 굽..
반식 다이어트 성공 기념 오늘의 머핀 재료: 버터, 설탕, 달걀, 레몬 껍질과 즙, 사워 크림, 베이킹 파우더, 베이킹 소다, 양귀비씨앗. 잘못 구워진 게 아니라 원래 윗면이 평평하게 되는 촉촉한 머핀이다. 잘못 구워진 줄 알고 두 판이나 구웠지 뭔가. 젠장. * * * 원래는 10kg만 빼려고 했으나 본의 아니게 11kg가 빠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살이 빠지는 중이다. 외출도 삼간 채 클로티드 크림을 주식 삼아 은둔자 생활만 하던 재작년과 작년 봄. 내 인생 최악으로 살쪘던 때의 모습은 오직 영국 출장을 오셨던 가○○ 님만이 아신다. 우리 가족도 모른다. 이 시기의 모습은 하도 흉측해 사진으로도 남겨 두질 않았다. 다행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오만·자만·교만을 좀 떨어 보기..
현재 붙잡고 실습 중인 머핀책의 좋은 점은, 어른 입맛에 맞을 만한 머핀이 많다는 것이다. 짭짤한 머핀을 굽는 날은 머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좋고, 단 머핀은 찻자리에 티케이크 대신 낼 수 있어 좋다. 귀한 잣 보내 주신 권여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염소젖 치즈 & 페스토 머핀 재료: 페스토, 물, 달걀, 밀가루, 소금, BP, 고트 치즈, 강판에 간 체다. 끝. 주위가 온통 연두색 초록색으로 물들어 동네 공원이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용기를 내서 나도 홍차 끓여 머핀 싸들고 공원에 나가 봐야겠다. 잠깐, 멋진 영국식 햄퍼가 없구나.;; 이럴 땐 우리 대한의 자랑스런 밀폐용기 손잡이 달린 통이 최고다. 록캔록 제품은 여기 영국에서도 인기다. 이런, 생각해 보니 피크닉용 양모 담요도 없잖아..
영국 각 티룸의 아프터눈 티 메뉴를 살피다가 발견한 것. 아래 첨부한 티룸의 메뉴를 잘 보시라. 특히 분홍색 상자 두른 단어를. 당뇨환자를 위한 아프터눈 티까지?! 영국 만세다. 한국의 외식/회식 문화를 떠올려 보자. 대빵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오늘 간장게장 어때? 내가 낼게." 하면 꼬붕들은 토도 한 번 못 달고 간장게장 먹으러 간다. 꼬붕들 중 누군가는 남몰래 고혈압이나 신장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국의 식당에서는 "저기, 제 것은 간을 1/5로 줄인 것으로 주세요."따위의 요청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긴 누군가가 "부대찌개 먹고 모처럼 땀 좀 흘려볼까? 내가 한턱 내지." 하면 다같이 부대찌개 집에 가서 똑같은 음식 후루룩. 이런 일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흔하다. 맵고 짠 ..
어두웠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자칭 미식가였던 내 아버지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세상을 꿈꾸며 세상의 산해진미라는 것은 가리지 않고 모조리 즐기셨지만 어릴 적 생선을 잘못 먹고 크게 혼이 난 뒤로 평생 생선만은 드시지 않았다. 아마 식중독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겼던 모양인데, 어릴 적 트라우마가 평생을 간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문제는 이 영감님이 생선 냄새조차도 맡기 싫어한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집에서 생선 요리만큼은 해먹을 수가 없었고, 멸치 다시로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것도 일절 금지였다. 영감님이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 생선 냄새가 남아 있기라도 하면 그 날은 밤새도록 엄마와 우리를 못살게 들들 볶아댔으므로 집에는 아예 생선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