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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드레스트 크랩 Dressed Crab · 영국 게요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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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드레스트 크랩 Dressed Crab · 영국 게요리

단 단 2015. 12. 7. 00:00

 

 

 

 

 

오늘은 영국인들의 게 취식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영덕대게나 붉은대게, 꽃게를 먹지요. 영국인들은 'European Brown Crab'을 먹습니다. 줄여서 그냥 '브라운 크랩'이라고 합니다. 나라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테니 학명을 알아두시면 좋겠네요. 'Cancer pagurus'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게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름이 '유러피안' 브라운 크랩이니 태평양 쪽에서는 잡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게를 쪄서 껍데기가 얇은 대게는 가위로 다리를 갈라 살을 쏘옥 빼 먹거나, 껍데기가 단단한 것들은 게 전용 포크를 이용해 후비적후비적 발라 먹거나, 해물탕이나 꽃게탕을 끓여 먹거나, 간장게장을 담가 먹는데, 영국인들은 게를 '드레스dress' 해서 먹습니다.


게살도 몸통에 있는 진하고 부드러운 갈색 살brown meat과 다리에 들어 있는 달고 하얀 살white meat을 구분해서 씁니다. 수퍼마켓이나 생선가게에서도 브라운 미트와 화이트 미트를 따로 구분해서 팝니다. 맛은 브라운 미트가 더 좋지만 값은 화이트 미트가 몇 배나 비싸죠. 브라운 미트와 화이트 미트를 각각 얻어내는 모습을 보면 왜 화이트 미트가 더 비싼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화이트 미트 발라 내는 게 품이 훨씬 많이 들거든요.

 

게를 '드레스'한다는 것은요, 게를 찐 다음 브라운 미트와 화이트 미트를 각각 발라 잘 다듬은 게 껍데기 안에 보기 좋게 다시 담는 것을 말합니다. 아래 사진들을 보세요.

 

 

 

 

 

 

 

 

 

 


감 잡으셨죠?
이게 바로 '잘 담은 게dressed crab'입니다. 정성껏 발라 담은 큰 게 한 마리의 살을 혼자서 다 먹는 거니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어요. 영국에서 잡히는 브라운 크랩은 우리 한국인이 먹는 게보다 훨씬 큽니다. 우리도 옛날엔 반가나 궁중에서 드레스트 크랩과 비슷한 '게감정'이란 것을 먹었지요.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잘 못 봅니다. 아쉬워요. 게를 '드레스' 하는 방법은 아래 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숙달된 사람이 하는 데도 한 마리 살 발라 내는 데 15분이 넘게 걸립니다. (씻고, 찌고, 고명 준비하는 시간은 별도.) 유용한 영상이니 게 좋아하시는 분들은 봐 두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영상에서 다루고 있는 게는 숫게입니다. 숫게가 암게에 비해 집게발이 커서 화이트 미트가 더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숫게의 값이 더 비싸죠.

 

게살을 넓은 그릇에 대고 발라 낸 뒤 게 껍데기에 다시 담으면 편할 텐데 힘들게스리 저렇게 좁은 게 껍데기 속 공간에 대고 꼼지락거리는 이유는요, 이미 한 번 쪄서 살균이 된 게 껍데기가 그릇보다 오히려 위생적이기 때문입니다. 해산물은 자꾸 그릇 옮겨 가며 준비하면 오염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성가시면 그릇을 잘 살균한 뒤 그릇에 대고 살을 발라도 되고요.


프리젠테이션이 호쾌하면서 뭔가 근사하죠? 정성도 대단합니다. 인건비 비싼 나라에서 저렇게 해서 손님에게 내려면 음식 값이 얼마나 비싸지겠습니까. 로또 당첨되면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 가서 저 드레스트 크랩 실컷 먹고 싶어요.

 

 

 

 

 

 

 



전업주부가 흔치 않은 현대 영국 가정에서 저 드레스트 크랩을 사람 수대로 준비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대개는 나가서 사 먹든지, 생선가게나 수퍼마켓에 신세를 지든지 합니다. 수퍼마켓들이 살을 미리 다 발라 드레스 해 놓은 것을 팔고 있거든요. 위 영상에서 보는 것만큼 화이트 미트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것도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기 때문에 값이 비쌉니다.

 

 

 

 

 

 

 

 



이건 까나페용 작은 크기.
소스에 버무려져 있어 스프레드처럼 빵에 부드럽게 잘 발립니다.

 

 

 

 

 

 

 

 

 

이 글 쓰려고 저도 하나 사 왔습니다. 제 형편엔 비쌌어요. 한 마리를 5파운드 50펜스, 우리돈으로 만원 조금 안 되게 주고 샀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먹으려면 두 마리를 사야 합니다.

 

 

 

 

 

 

 

 

 

브라운 미트는 맛이 진해 삶은 달걀을 다져서 위에 보슬보슬 얹기도 합니다. 섞어 먹으면 농도가 딱 맞죠. 화이트 미트는 그냥 먹고요. 이 사진에서는 브라운 미트가 아래쪽에 깔려 있습니다. 차이브chive나 파슬리를 잘게 다져 별도로 조로록 둘러 주면 맛도 좋고 색도 좋아지니 같이 올려 보세요. 단단한 껍질과 촉촉한 속을 가진 갓 구운 사워도우 빵을 썰어서 곁들이고, 레몬 한 조각 올리고, 취향껏 변주를 주어 맛을 낸 마요네즈나 소스를 그릇에 담아 올리고, 모둠 샐러드를 얹어 내면 힘 안 들이고 훌륭한 음식이 뚝딱 완성됩니다.

 

 

 

 

 

 

 



어우, 사진 보니 또 생각 나면서 침샘이 찡하네요. 게 좋아하시는 우리 권여사님도 생각 나고요. 딸이 그간 얼마나 삭았나 확인하러 오신다니 영국에 오시면 꼭 대접해 드려야겠습니다.

 

 

 

 

 

 

 



접사.
껍데기가 참 예쁘게도 생겼습니다. 테두리 좀 보세요. 중국 교자 여민 것 같기도 하고, 영국 파이 여민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안쪽의 우아한 곡선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 영국인들이 게를 드레스 해서 먹는 모양입니다. 살만 발라내고 그냥 버리기엔 껍데기가 너무 아깝죠.

 

 

 

 

 

 

 

 


먹는 법은요,
자기 앞에 주어진 접시는 온전히 자기 몫이므로 어떻게 먹든 아무도 상관 안합니다.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조합해서 드세요. 드레스 된 게살과 고명들을 인정사정없이 섞어 빵에 슥슥 발라 드시든, 빵 사이에 샐러드 잎과 함께 끼워 샌드위치로 만들어 드시든, 화이트 미트는 따로 음미하고 진한 브라운 미트만 빵에 발라 드시든, 아무도 간섭 안 하니 마음껏 맛있게 드세요. 사진발을 위해 저렇게 올려 봤는데, 실제로 먹을 때는 마구마구 섞어서 빵 위에 듬뿍 올린 뒤 레몬 즙 살짝 뿌리고 샐러드 잎 몇 장 올려 먹었습니다.


양념은 레몬 조각과 마요네즈만 제공하면 됩니다. (제가 사 온 제품에는 이미 레몬 즙과 마요네즈가 들어가 있었지만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이 올려 보았습니다.) 마요네즈는 자기 식으로 변주를 줄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마요네즈를 많이 넣어 비비는 것을 꺼립니다. 게맛을 가리거든요. 마요네즈를 아예 안 넣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해산물은 이렇게 최소한의 양념을 해서 섬세한 맛을 살려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브라운 미트는 그 자체가 이미 농후한 소스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삶은 달걀 다진 것으로 오히려 '희석'해 먹기도 합니다.


준비하는 자는 매우 번거로운 반면 먹는 사람은 이 이상 편할 수가 없는 음식입니다. 게를 이렇게 편하게 먹을 수 있다니 호사 중의 호사죠. 영국에 계신 분들은 수퍼마켓에서 미리 준비된 드레스트 크랩 사다가 향초만 다져 넣어 꼭 드셔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국 밖에 계신 분들은 브라운 크랩이나 비슷한 게 구하실 수 있으면 위의 영상을 참고해 특별한 날에 드레스트 크랩 한번 내 보세요. 저는 영상에 있는 것처럼 집게발까지 얹어 가며 제대로 프리젠테이션 해서 내는 레스토랑엘 꼭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게살 바르는 어부들The Dressers, Port Isaac> (2016),

키에론 윌리암슨 (2002- ), 목판에 유화. 30×20 inches.

 


제가 참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열 네살짜리 영국 소년이 그렸죠. 영국 특산 브라운 크랩brown crab의 살을 발라 내고 있는 현지 어부들의 작업 모습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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