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우표] 일본 2019 - 일본의 전통 색상 시리즈 ③ 검은색의 주철 주전자 · 무쇠 주전자 · 철병 Cast Iron Teapot · Kettle · Tetsubin · 鉄瓶 [남부철기] [이와츄]
▲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오늘은 일본의 차도구 중 철iron로 만든 주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표 맨 윗줄에 있는 검은색 주전자를 보세요.
철을 고온[1400-1500˚C]에 녹여 액상화한 뒤 미리 준비한 틀mould에 부어 굳힌 것을 '주철cast iron'이라고 합니다.
철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이 작업을 해 생활에 필요한 기물을 만들어 왔을 텐데요,
일본에서는 동북(도호쿠) 지방의 이와테현岩手県, いわてけん이 주철 공예로 유명합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주철 공예품을 특별히 '남부철기南部鉄器, nambu tekki'라고 부릅니다.
이와테현에 있는 여러 공방과 회사 중 〈이와츄岩鋳, Iwachu〉가 일본 밖에는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영국의 고급 백화점들도 이와츄 찻주전자를 취급합니다.
▲ 동북(도호쿠) 지방 여행 홍보 우표.
또다른 우표 모듬에도 검은색 주전자가 들어 있습니다.
우표 왼쪽에 아예 "남부철기南部鉄器"라고 병기가 되어 있지요.
▲ '철병鉄瓶, tetsubin' 우표만 확대.
'철병'은 차를 우리는 주전자teapot가 아니라 찻물을 끓이는 주전자kettle를 말합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부릅니다. '테쓰빈'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 우리는 주전자나 사케 데우는 주전자에 비해 크기가 좀 더 큽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애니 《푸른 눈의 사무라이》(Blue Eye Samurai, 2023)를 시청하는데, 이야기도 재미있고, 캐릭터들도 개성 있고, 작화도 근사하고, 음악 · 음향효과도 과하지 않게 잘 입힌 데다, 좋아하는 주철 주전자까지 자꾸 나와 단단은 몹시 즐거웠습니다. 우리 차동무들을 위해 또 화면 갈무리를 잔뜩 했어요.
☞ 《푸른 눈의 사무라이》 짧은 감상문 - 일본 에도 시대 식문화 차문화 온갖문화 엿보기
▲ "날도 추운데 누가 차 좀 우려 갖다주면 좋겠네."
에도 시대 서민용 녹차.
☞ [일본 차의 역사] 와비차(佗び茶)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본 차
▲ 김 모락모락 나는 무색 투명 액체인 걸 보니 이번에는 녹차가 아니라 사케.
데운 사케를 '교토식'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교토 사케는 온도를 높이면 더 맛있었던 모양.
☞ 사케에 대하여
▲ 한편, 지체 높은 분들, 부유한 상인들은 에도 시대에 이미 맛챠抹茶를 즐겼다는데.
마른 천으로 챠완을 닦은 후,
▲ 가루 낸 녹차를 소량 덜어
▲ 온수 붓고 챠센(茶筅 차솔)으로 사락사락 거품 내 완성.
신세계 강남점 〈오설록〉 매장에 갔더니
눈금 있는 비커에 가루녹차 담아 전동 거품기로 부르르
순식간에 거품, 낭만은 저 멀리.
▲ 잔 받으시오.
초딩 혀를 가진 단단에게는 읏, 너무나 쓴 것.
(블랙 커피도 못 마심.)
분말녹차는 대개 아이스크림이나 밀크티 형태로 소비한다.
온갖 차도구를 소장하고 있으나 챠센은 그래서 갖고 있지 않다.
▲ 찻물을 끓이고 있는 거대한 주철솥cast iron kettle.
철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주철솥에 끓인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한다.
녹rust 걱정을 했는데, 철에 슨 녹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설명 보고 놀란 적 있다.
▲ 주철솥에서 작은 주철 찻주전자cast iron teapot로 탕수를 덜어 찻물로 쓰고 있는 작중 인물.
▲ 차음식은 팥앙금과 콩앙금이 든 각종 떡.
▲ 유곽에서는 사케 담는 용도로 주철 주전자를 구비.
▲ 묘기 부리듯 높은 곳에서 사케를 따라 손님을 즐겁게 하고 있는 접대부.
▲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나 유곽이므로 이것도 아마 사케.
▲ 사케.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0-1913) 주전자는 출수구spout 위쪽이 개방되어 있다.
지브리 애니 《가구야 공주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2013)를 보니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주전자도 마찬가지.
▲ 사케잔 형태에 주목.
▲ 사케 담은 주철 주전자.
무광 처리되어 고급스러워 보인다.
▲ 데운 사케. 교토식이라는데.
▲ 납작한 접시 형태의 사케잔.
영국에서도 찻잔받침처럼 생긴 납작한 잔에 차를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 다양한 사케잔
▲ 손님께 술 한 잔 올리옵니다.
▲ 그대도 한 잔 드시오.
▲ 긴장감 고조.
▲ 주인공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촉즉발 와중에도
구석에 있는 주철 주전자를 발견하고는 눈이 번쩍한 단단,
사무라이 칼 휘두르듯 전광석화로 화면 갈무리.
우리 집 주전자와 닮아 흥분.
주철 물끓이개kettle나 주전자teapot는 이렇게 만듭니다. 주조를 마친 뒤 겉에 이런저런 색을 입힐 수도 있으나, 제 눈에는 고전적인 검은색 옻칠lacquer이 가장 카리스마 있어 보입니다. 우표에서 검은색을 대표하는 일본 아이콘으로 주철 기물을 실어 놓은 걸 보니 일본인들도 저와 생각이 같은 모양입니다. 저 돌기 하나하나를 도장 찍어 거푸집mould에 새기고 있는 장인 보고 탄식이 절로 나왔었습니다. 하루 종일 저거 하고 있으면 정신 건강 괜찮을까, 하고요. 거푸집은 디자인에 따라 최대 여섯 번 정도까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다 하니 값이 비싸지는 모양입니다.
저도 검은색 주철 주전자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에헴. 이 근사한 물건을 단단이 그냥 지나칠 리 없지요. (어머 이건 사야 해!)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장만했었습니다. (올해는 25주년입니다.) 〈이와츄〉 제품이라서 크기가 작아도[550ml] 야무지고 값이 제법 나갔는데[₩134,000], 사진상으로도 근사해 보이지만 실물은 훨씬 더 근사합니다. 얼핏 보기에도 잘 만든 티가 물씬 나는 돈값 하는 물건입니다.
☞ 여기서 샀어요 (판매자와 전혀 관련 없음)
전통식은 원래 물끓이개kettle나 찻주전자teapot 호신 안쪽에 법랑enamel 처리를 하지 않으나, 편의를 위해 요즘은 법랑 처리를 많이 합니다. 법랑 씌운 것은 불꽃에 직접 올려 쓰기보다 끓인 물을 담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생각보다 강도가 약하므로 '무쇠'라는 것 믿고 너무 험하게 쓰지 않도록 합니다. 극심한 온도차, 충격에 주의합니다.
법랑 처리하지 않은 물끓이개는 철 성분이 물의 성질을 연하게 만들고 철분이 미량 우러나와 물맛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이를 선호하는 차인들과 바리스타들도 있습니다. 저는 법랑 처리된 저 주철 주전자를 볶은 녹차인 호우지챠(호지차)ほうじ茶 우리는 데 쓰고 있습니다.
사진을 다시 보세요. 냉동실에서 꺼낸 단호박 찹쌀떡이 상온에서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귀국 후 현대식으로 개량한 떡들을 사 먹고는 맛있어서 글을 쓴 적 있습니다.
녹색도 갖고 있습니다. 일본 녹차를 많은 용량으로 우릴 때 씁니다. 맛챠 파우더 씌운 고급 갸또 느낌이 나서 실물도 예쁘고 사진도 잘 나옵니다. 이것도 형태와 색감, 표면 질감 모두 마음에 드나, 중국산 대량생산품이라서 값이 비싸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국산 저가 대량생산품들 때문에 전통 방식으로 작업하는 장인들이 힘들다고 하지요.
무광 파란색도 있는데, 그건 맹물을 끓여 상 위에 올려 놓고 찻물이나 국물 농도를 희석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시간 날 때 사진 찍어 올려보겠습니다.
요즘은 가정집들이 전기 물끓이개와 도기 · 자기 · 유리 찻주전자를 쓰므로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이런 무쇠 주전자는 점점 보기 힘들어집니다. 저는 관리가 훨씬 까다로운 테라코타 그릇과, 구리 냄비와, 은제 커틀러리와, 주기적으로 기름 먹여줘야 하는 목제 플레이트와, 자사호를 상용하는 사람이라서 무쇠 주전자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ㅋ ■
☞ 일본 이와테현 공식 관광 사이트 - 이와테의 전통 공예품 '남부철기'
☞ 유럽의 철 공예 솜씨를 볼까요?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철 공예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