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치즈 ◆ 스위스 바슈랭 몽도 Vacherin Mont d'Or 프랑스 바슈랭 뒤 오-두 Vacherin du Haut-Doudbs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스위스 바슈랭 몽도 Vacherin Mont d'Or 프랑스 바슈랭 뒤 오-두 Vacherin du Haut-Doudbs

단 단 2014. 4. 21. 00:00

 

 

 

 

 

이달 초에 맛보았던 낭비가 심한 치즈 하나를 소개합니다. 바슈랭입니다. 스위스 치즈이기도 하고 프랑스 치즈이기도 합니다. 두 나라가 맞닿은 국경 지역 산자락에서 양국이 각각 만들거든요. 바슈랭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Vacherin Fribourgeois

Vacherin d'Abondance

Vacherin des Bauges

Vacherin Mont d'Or / Vacherin du Haut-Doubs

 

첫 번째 줄에 있는 것은 바슈랭이라는 이름만 공유할 뿐 성격은 완전히 다른 치즈입니다. [아래 사진]

 

 

 

 

 

 

 


 Vacherin Fribourgeois

 


오늘 소개할 치즈는 마지막 줄에 있는 것으로, 스위스에서는 '바슈랭 몽 도'라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바슈랭 뒤 오-두'라 부릅니다. (스위스와 프랑스는 종종 같은 치즈를 놓고 투닥거리곤 합니다.) 이름은 다르나 기본적으로는 같은 치즈입니다. 스위스 바슈랭은 저온살균유를, 프랑스 바슈랭은 생유를 쓴다는 차이가 있지요. 생유 바슈랭은 한국에선 수입이 불가능합니다.

 

첫 사진의 치즈 포장 오른쪽에 빨간 스티커가 보이죠? "last of the season"이라고 써 있죠. 수퍼마켓 치즈 매대에서 이 문구를 보고는 호기심에 눈이 반짝, 일년 중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치즈가 아니라 제철이 따로 있어 이제 마지막 물량이 풀렸다는 뜻으로 감 잡았습니다. 잽싸게 집어왔죠. 이때 못 먹으면 다음 제철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잖아요?

 

 

 

 

 

 

 

 


집에 와서 누리터를 뒤져 보니 과연 제철이 따로 있는 치즈였네요. 날씨 좋을 때는 소들이 산에 올라가 자유롭게 풀을 뜯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고 풀이 듬성듬성해지면 마을로 내려와 따뜻한 축사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다시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서 풀을 뜯는 시기에는 젖 분비가 왕성해 이때 짠 우유로는 우유가 많이 드는 콩떼Comté나 그뤼에르
Gruyère 같은 경성 치즈를 만들고, 8월15일부터 이듬해 3월15일까지 마을 축사에 내려와 있을 때 짠 우유로는 양이 부족해 유장whey을 덜 뺀 연성 치즈인 바슈랭을 만든다고 합니다. 완성품 치즈의 출하는 9월10일부터 5월10일까지만 하고 있고요. 그러니 내일이라도 치즈 매대에서 이 바슈랭을 보시면 당장 장바구니에 담으세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인생 살면서 이런 치즈를 한 번쯤 경험해 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치즈 포장에는 스위스 이름과 프랑스 이름이 둘 다 써 있는데, 잘 보면 생유로 만들었다는 문구가 보입니다. 프랑스에서 만들었다는 소리죠. 프랑스인들은 풍부한 맛을 위해 살균 안 한 생유 치즈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전 문제 때문에 수입을 꺼리는 국가가 많아 불리한 점이 많죠. 생유 치즈가 훨씬 맛있다는 사람이 많은데도요. 영국에서는 안전을 위해 주로 오래 숙성시키는 수분 적은 경성 치즈들에 생유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통 체다도 생유로 만들고 있죠. 이렇다 보니 한국에는 생유로 만든 유럽의 정통 전통 치즈들이 수입돼 들어갈 수가 없어 밤낮 미국만 재미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법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의 치즈 애호가들이 똘똘 뭉쳐 으쌰 한 번 해야 합니다. 생유 치즈가 그토록 위험하다면 유럽인들은 벌써 다 죽었게요.

 

 

 

 

 

 

 



바슈랭은 프랑스나 스위스 모두 항상 원형의 이 가문비나무
spruce 통에 담아서 팝니다. 나무 통에 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 보면 치즈 옆면에도 가문비나무 띠를 댔어요. 띠를 댄 상태로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가문비나무 띠도 치즈와 함께 나름 숙성을 합니다. 시커멓게 변해 있죠. 치즈에 나무 향이 스민다고 하는데,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을 때 이 향이 더 잘 느껴지겠지요.


집에 오는 동안, 그리고 집에 와서 냉장고에서 하루 묵는 동안 온도가 맞질 않았는지 표면에 흰곰팡이가 더 생겼습니다. 먹어도 안 죽습니다만, 곰팡이 있는 덜 숙성된 연질 치즈를 생으로 먹으면 저 같은 사람은 배탈이 잘 납니다. (생유냐 살균유냐는 관계 없음.) 저처럼 배탈 나는 사람이 많았는지, 이 치즈는 먹는 방법이 거의 정해져 있는 것 같더라고요. 대개 오븐에 구워서들 먹습니다. 제가 사진을 한번 차근차근 올려 볼게요. 꺄몽베흐 오븐구이와 비슷합니다.

 

 

 

 

 

 

 


    
먼저 오븐을 220˚C로 예열합니다. 팬 오븐은 200˚C 정도면 되겠습니다. 통마늘, 타임thyme, 후추, 화이트 와인을 준비하시고, 통마늘은 까서 납작납작 썰어 두세요.

 

 

 

 

 

 

 

 

 

마늘 편을 박을 겁니다. 칼집을 내 주세요.

 

 

 

 

 

 

 

 

 

마늘과 타임을 박고 화이트 와인을 위에 흩뿌려 주세요. 와인 맛을 물씬 느끼고 싶은 분들은 가운데 부분을 숟가락으로 껍질째 동그랗게 파내어 웅덩이를 만들고 그 부분에 와인을 부어도 됩니다. 저는 치즈 맛이 어떤가 느껴 보고 싶어 와인을 위에 아주 조금만 흩뿌렸습니다.

 

 

 

 

 

 

 



치즈가 녹아 샐 일은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르니 쿠킹 호일tin foil을 대 줍니다. (9개월 뒤 다시 구워 먹었을 때는 치즈가 샜어요. 쿠킹 호일을 꼭 대야 합니다.)

 

 

 

 

 

 

 

 


예열된 오븐에 넣고 각자 좋아하는 정도의 상태가 될 때까지 구워 주면 됩니다. 대개 220˚C 정도에서 25-30분 정도 익히면 되는데, 집집마다 오븐 상태가 다 다르고 먹는 이마다 취향이 다르니 각자 잘 판단하셔서 온도와 시간을 정하시면 되겠습니다.

 

본고장 사람들은 삶은 감자, 얇게 저민 햄, 작은 오이 피클인 꼬니숑cornichon을 곁들여 먹는다고 합니다. 꼬니숑은 똑 떨어지고 오이 피클 담가 둔 게 있길래 저는 그걸로 대체했습니다. 고기를 잘 안 먹어 햄도 뺐고, 감자를 못 사서 바삭하게 구운 빵 조각으로 대신했습니다. 먹는 사람 마음이니 뭐든 곁들여 보세요.

 

 

 

 

 

 

 

 

 

이 치즈는 껍질을 먹지 않는 치즈입니다. 위에 있는 껍질은 뜯어서 버리고 안에 있는 치즈 속살만 소스처럼 찍어 드시면 됩니다. 숟가락으로 떠 먹어도 되고요. 밑바닥과 옆면의 껍질도 먹지 않습니다. 낭비가 좀 많은 치즈예요. 치즈의 3분의 1 정도는 그냥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사 올 때는 무거운 치즈라서 비쌀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껍질을 죄 버리고 나니 버리는 부분이 하도 많아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통에 무려 1만 2천원이나 줬거든요.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퐁듀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남겨 두었다가 또 데워 먹으면 안 될까요?
그,그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가 않네요.
시간이 지나면 치즈가 도로 굳기 시작하는데, 반복해서 자꾸 열을 가하면 좋지 않을 것 같거든요. 식어서 사진에서처럼 꾸덕꾸덕해졌을 때 빵에 얹어 먹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목 빼고 기다렸다가 내년 제철이 되면 또 사 먹겠느냐, 물으신다면,
으음...


아니오.


한 번 경험으로 족할 듯합니다. 맛이 없지는 않으나 목 빼고 기다렸다 또 사 먹을 만큼 맛있지는 않아요. 근사한 나무 통과 한정 생산품이라는 특별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포장의 "Strength 6" 표시가 무색할 정도로 풍미가 약합니다. 생으로 먹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치즈 생산자와 판매자가 구워 먹으면 좋다고 추천을 해 놓았길래 구워 먹은 거였는데, 다쓰 부처 입맛에는 오븐구이 바슈랭보다는 차라리 일전에 소개해 드렸던 이푸아스Epoisses가 더 맛있었습니다. 그땐 생으로 그냥 먹었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풍미가 아주 좋았지요. 공평하려면 이 바슈랭도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고 치즈 자체만 한 번 정도는 더 먹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치즈 생산자들은 소비자가 생으로 치즈를 먹는 것보다는 구워 먹거나 요리에 쓰는 것을 선호합니다. 왜냐? 생으로 먹을 때보다 양을 훨씬 많이 소비할 수 있거든요. 배탈 날 일도 없고요. 그래서 치즈 생산자들 누리집마다 자사 치즈를 이용한 레서피들을 부지런히 올려 대는 겁니다. 그래도 기회가 되는 분들은 바슈랭을 한 번쯤 경험해 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맛봐야 할 치즈는 참 끝도 없어 보입니다.

 




- 2015년 1월 31일 추기 -

 

 

 

 

 

 

 

 



9개월 뒤에 다시 사 먹어 보았습니다. 값이 그간 많이 올랐네요. 9개월 전에는 약 7파운드쯤 주고 샀던 것 같은데 올해는 9.29파운드로 올랐습니다. 저는 떨이하는 것을 4파운드에 사 왔습니다. 이번에는 마늘이니 타임이니 와인이니 없이 그냥 치즈만 구워서 치즈 자체의 맛을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200˚C의 오븐에 약 20분간 구웠더니 치즈가 퐁듀 소스처럼 녹아서 흐릅니다.

 

아, 역시 풍미가 약합니다. 치즈 옆구리에 두른 가문비나무가 시커멓게 변하면서 치즈와 함께 숙성이 돼 치즈에 나무 냄새와 곰팡내와 흙 냄새를 입히긴 했으나, 치즈 자체는 개성이 없고 맛이 참 싱거워요. 쓴맛도 좀 나고요. 비싼 값 치르고 이런 싱겁고 개성 없는 치즈를 사 먹느니 차라리 다른 알파인 치즈 몇 가지를 녹여 만드는 진짜 퐁듀를 해먹는 게 낫겠습니다. 아니면 라끌레뜨를 구워 먹든지요. 돈 값을 못하는 치즈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