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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벚꽃차 - 영국인들의 새鳥 사랑이 어느 정도냐 하면

단 단 2011. 4. 9. 18:35

 

 

 

새벽에 일어나 눈 비비며 부엌에 물 마시러 갔더니...

 

 

 

 

 

 

 



작년 여름 결혼 기념일 찻상을 위해 샀던 미니 장미가 꽃을 피웠습니다. 분갈이를 못 해줘서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봄인 줄 알고 이파리를 내고 꽃을 피웠을까요? 겨울잠 잘 자라고 가지와 잎을 싹둑싹둑 죄다 쳐서 삭발해 줬는데 말이죠. 창밖은 또 어떤 모습인가 한번 내다보도록 하죠.

 

 

 

 

 

 

 



이크, 꽃 핀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미 흐드러지게 한바탕 피었다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돌로 된 저 물그릇은 새들과 야생동물을 위해 우리 빌라Flat 사람들이 마련해둔 것으로, 마당 있는 집들은 저렇게 물그릇을 두곤 합니다. 새들도 목 마를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해봤는데 말예요. 영국인들, 꽤 섬세하죠? 새들이 물 마시다 말고 풍덩 뛰어들어 목욕하는 것도 자주 목격하는데 다쓰베이더와 둘이 내다보며 킬킬거리곤 합니다.

 

 

 

 

 

 

 

 

 

이거 벚꽃 맞나요? 한국에서 보던 벚꽃보다 커서 섬세한 맛이 좀 떨어지지만 어쨌거나 마음이 환해집니다. 공기가 맑고 고층 빌딩이 드물어 영국에서는 비만 오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저런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정원 한쪽에 있는 나무에는 집집마다 새들을 위한 먹이통을 매달아 놓곤 합니다. 영국인들은 밤낮으로 새 걱정을 합니다. 폭설이 내리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도 이 새들입니다. 포유류 야생동물들은 어쨌거나 새보다는 기운이 세고 잘 발달된 턱과 다리를 갖고 있으니 눈을 헤치고라도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지만, 땅이 눈으로 덮이면 작고 연약한 새들에게는 큰 일이죠. 당장 교통 마비된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지 뉴스에서는 이렇게 떠들어댑니다.

 

"다들 정원의 나무에 새 먹이통 매달아 두는 것 잊지 마십시오. 물그릇의 물도 얼지 않았나 수시로 확인하고 교체해 주십시오."


영국인들이 겨울철에 얼마나 끔찍하게 새들을 생각해 만찬을 준비해놓는지, 추위를 피해 스페인 남쪽까지 날아가 올리브 열매와 과일을 쪼아먹어야 할 철새들 중 일부 꾀바른 녀석들이 가까운 영국으로 와 눌러 앉기 시작했다는 ☞ 학계의 보고가 다 있을 정도입니다. ^^;

 

 

 

 

 

 

 

 

 

땅콩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땅에서 쫄깃쫄깃(?!)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벌레들을 끄집어내 잡아먹지만 벌레 잡기가 쉽지 않은 겨울철에는 주로 인간들이 제공하는 견과류, 공원이나 길가에 수확하지 않고 방치해둔 열매 등을 쪼아먹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새 소리가 최소 다섯 종류는 들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들을 위해 매달아 놓은 견과류의 최대 수혜자는 새가 아니라 다람쥐들입니다. 물론 새들도 덕을 많이 봅니다만 이 다람쥐들 때문에 영국인들이 골머리를 좀 앓곤 하지요. 어떻게 하면 다람쥐 손을 타지 않을까 궁리들을 많이 하지만 뛰는 사람 위에 나는 다람쥐 있는 법. (응? 날다람쥐?) 귀신 같이 알고 와서는 꺼내 먹습니다. 사진에 있는 것은 다람쥐 손 못 타게 특별 고안한 먹이통인지, 녀석이 꺼내 먹으려고 아주 안간힘을 쓰더라고요. 내다보면서 한참을 킬킬거리다가 옛다, 하고 집에 있는 땅콩 한 줌을 창문으로 던져줬습니다.

 

 

 

 

 

 

 



마당에 나가 벚꽃 사진을 요리조리 찍고 있으니 1층에 사는 존John 영감님이 당장 달려 나왔습니다.


"어? 혼자 사진 찍고 있어? 자, 벚나무 아래 서 봐요. 내가 사진 찍어줄게."


영국 남자들은 말수는 적지만 정말 친절합니다. 만일 런던을 방문한 외국인 여자 여행객이 무거운 트렁크 들고 지하철 계단 끝까지 끙끙거리며 다 올라가는 일이 있다면 이 단단이 모자를 먹겠습니다. [영국인들은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를 "내 모자를 먹겠다I'll eat my hat if... " 라고 표현합니다.]


햇빛 때문에 눈을 찌푸렸지만 평소에는 잘 웃는 아주 재미있는 분입니다. 영감님인데도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있는 것 좀 보세요.

 

 

 

 

 

 

 

 

 

사진기 들고 나온 김에 마당 여기저기를 계속해서 찍어봅니다. 영국에는 어디든지 이런 관목으로 된 생울타리hedge가 있습니다. 이유는요? 물론 새들 때문이죠. ^^ 땅에서 벌레를 잡다가 갑작스럽게 몸을 숨길 필요가 있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생울타리로 쏙 들어가 숨어버립니다. 무당벌레가 마침 포착되었습니다. 영국의 거리에는 거미와 무당벌레와 벌이 많습니다.

 

 

 

 

 

 

 

 

 

주차장 바닥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무식하게 다 덮어버리지 않고 작은 면적이나마 흙과 풀로 된 자연 바닥을 살려둡니다. 이유요? 역시 새들 때문이죠. 빗물도 흡수하고 빗길에 차도 미끄러지지 않으니 일석삼조입니다. 아스팔트 바닥보다는 보기에도 좀더 낫죠. 창밖을 내다보면 실제로 이 위를 돌아다니며 벌레를 쪼는 새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보세요, 벽도 그냥 두질 않고 저렇게 담쟁이 식물로 덮은 것을요. 꽃박람회를 가면 도시의 비좁은 주택 거주자들이 자기 집 주차공간을 최대한 녹색으로 꾸밀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부스가 따로 마련돼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식물을 심을 공간이 없으면 주차장 바닥을 위의 사진에서처럼 벽돌과 자연 바닥을 혼합해 꾸미면 되고, 벽은 담쟁이 넝쿨을 활용해 꾸미면 된다는 거죠. 식물이 많아지면 벌레가 많아 새들이 살기 좋아지죠. 꽃이 많으면 벌이 늘고요.

 

 

 

 

 

 

 

 


앗, 3월에 한창이었던 수선화가 한 송이 여태 남아있었네요. 올해는 수선화 사진을 못 찍었구나,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반가워서 정신이 버쩍 납니다.

 

 

 

 

 

 

 

 


벚꽃 보고 마음이 들떠 돌아와서는 집에 벚꽃절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습니다. [교또에서 가져온 소금에 절인 벚꽃 - 경이로움 님 기증]


겉에 잔뜩 묻은 흰 가루는 설탕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짜게 먹지 않도록 물로 한 번 조심스럽게 헹궈내고 뜨거운 물로 우려내면 좋습니다. 살살 다루지 않으면 꽃잎이 갈가리 찢어져 흩어지니 씻을 때는 조심 조심 또 조심.

 

 

 

 

 

 

 



벚꽃차 관련해서 누리터를 뒤져보니 많은 분들이 "짜기만 하고 아무 맛 없는 맹물차",  "벚꽃차는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차"라고들 이야기 하시는데, 단단은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짭쪼름한 물에 은은한 계피향 같은 벚꽃향이 감미롭게 퍼지는데 왜 맛과 향이 안 난다고들 하는 걸까요? 여리고 고운 백차나 이런 섬세한 꽃차들을 잘 즐기려면 평소 맵고 짠 음식을 삼가해 미뢰를 예민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레서피를 새로 바꿨다는 '농심 <너구리> 순한맛'이 매워진 게 못마땅한 1人. 매운맛 따로 있는데 왜!)

 

 

 

 

 

 

 

 


봄이 되어 또 위타드 티포원을 꺼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티포원에 있는 분홍색 꽃이 벚꽃을 닮았네요? 절묘한 궁합입니다. [위타드 티포원 - 불량소녀 님 기증]

 

벚꽃을 보니 시련과 근심으로 심신이 지쳐있을 일본인들 생각이 납니다. 차를 즐기는 단단은 일본인들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차동무들 생각이 납니다. 녹차 생산지인 시즈오까도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라고 하지요. 방사능 피해까지 입었을 테니 저로서는 일본 다인들의 슬픔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진 때문에 선반에서 떨어져 인연을 다했을 소중한 다구들을 생각하면. 그 중에는 집안 대대로 물려가며 쓰던 다구들도 있었을 텐데 말예요. 또, 일본인들 중에도 중국 보이차를 즐기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텐데, 수십년간 애지중지 쓰다듬고 닦아주던, 친구 같고 애인 같았던 자사호와 생이별한 그 허전함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조선 막사발을 가져다(정확히는 '훔쳐다') 국보로 떠받들 정도로 하찮은 그릇 하나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또 이 일본인이잖아요. 그들과 우리 사이에 깊은 앙금이 있다 하더라도 고통 받아도 싼 사람은 지구상에 없는 거죠. 장마가 시작되기 전 대충이라도 복구를 해야 할 텐데 말예요.

 


영국인이 자기 집 정원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새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신 분은 ☞ British Garden 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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