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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 팀스보로 Tymsboro 염소젖 치즈 본문
닐스 야드 데어리Neal's Yard Dairy에서 사 온 치즈 세 가지 중 첫 번째 것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메리 홀브룩Mary Holbrook 씨가 만들었다고 써 있네요. 원래 치즈란 게 주로 농가 아낙네들이 만들던 것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전직 고고학자였다고 합니다. 이런 작은 치즈들은 여자들이 만들기 좋지요. 영국 경성 치즈나 모짜렐라, 파마산, 에멘탈 같이 중노동이 필요한 치즈들은 여자들이 만들기엔 힘이 좀 부칠 겁니다. 치즈 장인들은 운동하러 헬쓰 클럽엘 따로 안 가도 된다잖아요. ㅋ 영국 남서부 서머셋에 있는 팀스버리 마을에서 만든다고 이름을 팀스보로라고 붙인 모양입니다. 원유를 외부에서 납품 받지 않고 자기 농장에서 키우는 염소들한테서 짜서 쓴다고 합니다. 전통식을 따라 밖에서 풀을 뜯을 수 있는 봄에서 가을까지만 젖을 짠다고 합니다. 그 소리인즉슨, 이 치즈는 사철 맛볼 수 있는 치즈가 아니라는 거지요.
하도 비싸서 반만 사 왔는데, 맛보고 나서 한 덩이 다 사 오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둘이서 반 나눠 먹고 나니 양이 하도 적어 많이 아쉽더라고요. 한국 가면 제 평생 언제 이걸 또 맛보겠습니까. 생유 치즈라서 수입조차 안 될 텐데요.
위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의 염소젖 치즈는 전에 프랑스의 ☞ 발랑세로 소개를 해 드린 적 있는데, 발랑세가 먼저 있던 전통 치즈이니 이 팀스보로는 영국판 발랑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뉘앙스는 많이 다릅니다. 공정한 맛 비교가 좀 어려운 것이, 제가 발랑세는 두 번 다 흐물흐물 과숙한 것으로만 먹어봐서 매우 '고티goaty'한 치즈로 기억을 합니다. 과숙했어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고요. 이 팀스보로도 맛있습니다. 잘 만들었어요.
팀스보로 생산 과정은 이렇습니다. 일단, 원유는 저온살균을 하지 않고 생유로 씁니다. 한국에서는 이 때문에 수입을 못 하지요. 아쉽습니다. 동물성 응고 효소를 써서 원유를 굳히므로 채식주의자도 팀스보로를 먹을 수 없습니다. 동물성 효소를 쓰는 게 전통식입니다. 식물성 효소는 현대에 와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따로 개발한 것입니다.
원유에 응고 효소를 넣고 18시간에서 36시간 정도 기다립니다. 응고 시간이 좀 길다고 하네요. 그 뒤, 국자로 응유를 얌전히 떠서 위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 통에 담습니다. 살살 담아야만 순두부 같은 연약한 응유가 깨지지 않고 큰 덩어리로 담길 수 있습니다. 꺄몽베흐 만들 때와 비슷하죠. 발랑세도 이렇게 만듭니다. 압착하지 않고 틀 안에서 자기 무게로 저절로 유장whey이 빠지도록 하룻밤을 둡니다. 유장이 빠지고 나면 원래 크기의 3분의 2로 줄기 때문에 두어 번 더 응유를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유장이 빠질 만큼 빠지고 나면 응유가 뭉쳐져 틀 모양으로 성형이 됩니다. 틀에서 빼낸 뒤에는 소금 간을 하는데, 여전히 부서지기 쉽고 연약하기 때문에 압착해서 만드는 경성 치즈들처럼 소금물brine에 막 담글 수가 없고, 그냥 치즈 위에만 소금을 솔솔 뿌려줍니다. 숙성하면서 소금 기운이 점차 아래로 퍼져 나갑니다. 3일 후에는 검은색의 식용 재ash를 뿌려줍니다. 원유에 풀었던 흰곰팡이Penicilium candidum, 혹은, 숙성실에 뿌려 주었던 흰곰팡이 때문에 출하 전 3주에 거쳐 표면에 흰곰팡이가 천천히 자라면서 안으로 숙성해 들어갑니다. (8주까지 숙성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치즈 바로 위의 검은 재와 그 위의 흰곰팡이 때문에 눈으로 보면 마치 시커먼 곰팡이가 자란 것처럼 보여 처음 보는 분은 무서워 합니다. 발랑세와 마찬가지로 이 치즈는 만드는 데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리고, 숙성 신선 치즈aged fresh cheese로 분류가 됩니다.
이제 맛을 봐야지요. 잘라보겠습니다.
작지만 야무지게 잘 생겼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숙성해 들어오는 치즈란 게 눈에도 벌써 보입니다. 공기에 닿아 다소 단단해진 껍질 밑으로 부드럽게 녹아 흐르는 회녹색 층이 형성되었습니다. 흰곰팡이 연성 치즈들은 저 부분이 참 매끌거리면서 관능적이지요. 풍미가 농축돼 있어 맛도 좋고요.
껍질
흰곰팡이 연성 치즈들에서 나는 버섯 향이 아주 희미하게 나는데, 맛을 보면 희한하게도 버섯 맛은 또 안 납니다. 맛에서 꽃향이 좀 나는 것 같습니다. 꼬득꼬득 씹힙니다. 껍질이 제법 알싸하고 맵습니다.
속살
살짝 '고티'하긴 하나 발랑세만큼 고티하진 않아 염소젖 치즈 입문자들한테도 추천할 만합니다. 센 염소젖 치즈들에서 나는 '동물' 맛이 거의 안 나요. 고티한 맛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으음... 저는 제과용 건조 코코넛채와 매운 로즈마리와 고소한 헤이즐넛을 합친 맛이라고 묘사하고 싶네요. 여기에 머스크 향 같은 무언가 동물스러운 느낌이 살짝 가미된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속살 흰 부분에서는 레몬 산미가 제법 느껴지고, 견과류 같은 고소한 맛과 젖의 단맛, 풀향이 느껴집니다. 속살은 결이 고우면서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여느 흰곰팡이 연성 치즈나 숙성 신선 치즈들처럼 결이 고실고실 일어나지 않고 밀도가 높아 칼이 잘 안 들어갑니다. 단단하면서도 씹으면 실크처럼 부드럽게 입 안에 들러붙습니다. 뒷맛에 꽃향이 느껴져 기분이 좋습니다. 뒷맛이 좋아요. 발랑세에서도 꽃향과 건대추 같은 향긋한 단맛이 좀 났었는데, 이는 염소젖 흰곰팡이 숙성 신선 치즈들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특징적인 맛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생과일과 함께 먹거나 배숙poached pear 위에 얹어 녹여 먹으면 좋다고 추천을 하는데, 치즈가 맛이 섬세하고 자체에 이미 은은한 과일 맛을 가지고 있으므로 저는 그냥 드실 것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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