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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케르반 베이커리> 터키 과자들 본문

차나 한 잔

이태원 <케르반 베이커리> 터키 과자들

단 단 2021. 7. 23. 01:46

 

 

 

권여사님께 <케르반 베이커리>의 바클라바만 선물 받은 게 아니라 색소 넣어 알록달록 화려한 다른 과자들도 함께 받았습니다. 쇼트브레드 스타일의 과자들입니다. 체계 없이 욱여 담은 과자 400g에 12,000원을 주셨다고 합니다. 쇼트브레드가 여러 종류 진열돼 있었는데 손님이 원하는 대로 골라 살 수 있는 건 아니고 저렇게 미리 담아 놓은 것들만 살 수 있다고 하네요. 가게에서 먹는 손님들도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하고요. 판매 방식이 좀 희한하죠. 견과류가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코코넛이 싫은 사람, 잼이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가게 입장에서는 재고 생길 일 없어 좋겠으나 손님은 자기 돈 주고 음식 사면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는 거죠.

 

 

 

 

 

 

 

 

황홀하죠?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보십시오.  

 

접시에 하나씩 옮기면서 놀랐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상자였는데 과자가 끝없이 나옵니다. 저게 도대체 몇 가집니까? [22종]

 

저 많은 과자들을, 그것도 홍콩 <제니> 쿠키처럼 무른 것들을 구분 없이 막 담아 놓아 과자들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과자 표면에 서로의 부스러기들과 토핑들이 잔뜩 묻어 있고 상자 바닥에는 떨어진 토핑들이 수북했죠. 토핑들이 많이 소실되어 아까웠습니다. 베이킹용 붓으로 과자 표면의 부스러기를 일일이 털어 내고 정돈하는 데 시간 한참 걸렸습니다.  

 

알록달록 화려해서 눈이 팽글팽글 돕니다. 지금까지 찍은 과자 사진 중 화려하기로는 이 터키 과자들이 단연 으뜸입니다. 스쿱으로 뜬 모양 그대로 구운 것도 있고 가운데에 잼을 채운 것들도 있는데, 후자는 'soldier buttons'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잼 타트tart나 잼 비스킷은 과자를 상식하는 나라라면 어디든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 전통과자 중에도 잼 타트와 잼 비스킷이 있습니다.     

 

 

 

 

 

 

 

 

이것도 큰 사진으로 보세요.

 

맛은요,

 

휴...

안타까워서 장탄식이...

 

저 나이 꽤 많은데, 살면서 지금까지 맛본 과자들 중 여기 과자들이 가장 맛없었습니다. 맛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맛이 없어요. 이렇다 할 맛이 안 느껴집니다. 쇼트브레드의 주재료는 밀가루, 유지(대개 버터), 설탕 아니겠습니까? 유지와 설탕을 제대로 쓰면 누가 만들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게 쇼트브레드인데 놀랍게도 아무 맛이 안 납니다. 모양과 색만 다르지 맛도 다 똑같습니다.

 

버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듯한데, 사실 팜유로 만들었어도 맛 좋은 과자는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죠. 제가 이 블로그에서 밤낮 버터 안 넣거나 찔끔 넣고 버터 비스킷 행세하는 가증스러운 과자들 흉을 많이 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칼로리바란스나 버터링, 빠다코코낫, 러시아 <알룐까> 같은 비스킷들, 맛있잖아요?

 

버터 넣을 생각이 없으면 이런 과자들처럼 향료나 다른 첨가물을 넣어서라도 맛을 내야 하는데, 이 집 과자에서는 특별한 맛은커녕 유지맛도, 설탕맛도, 바탕이 되는 곡물맛도 나질 않습니다. 심지어 토핑으로 올린 견과류들도 맛이 흐리고, 코코넛도 물에 빨아 맛을 전부 빼 내고 쓰는지 태양 같은 화사한 맛을 내줘야 할 코코넛 과자들이 맛이 제대로 안 나는데다, 잼을 쓴 과자들에서는 잼맛도 나질 않습니다. 설탕을 안 넣었을 리는 없을 텐데 단맛도 태부족합니다. 

 

끼니로 먹는 밥은 맛이 없어도 용서가 됩니다. 삶을 지탱케 할 영양분과 섬유소라도 제공하니까요. 과일 맛없는 것도 어느 정도 용서가 됩니다. 기후 등 인간 힘 밖의 변수들이 작용할 때가 많으니까요. 과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과자는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안 먹고 살아도 그만인 과자, 몸에 미치는 악영향과 열량을 감수하고 즐거움을 위해 먹는 건데 맛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게다가 과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은 식재료들 중 그나마 일정한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재료 탓'을 하기도 힘들 텐데요.

 

<케르반 베이커리> 여러분, 우리 한국인을 좀 더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터키 음식과 문화가 궁금해 먼길 마다치 않고 찾아가는 갸륵한 이국 손님들에게 왜 이런 과자를 먹이십니까. 한국은 이제 마트에서도 외국의 소문난 맛있는 과자들을 쉽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분 좋고 맛있는 유럽의 과자들 - 프랑스 과자, 이태리 과자, 퓨어 버터와 진짜 쵸콜렛 듬뿍 쓴 영국산 오트 비스킷과 쇼트브레드, 심지어 독일 니더레거 마치판과 북유럽 과자들까지 마트 선반에서 집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좋은 재료를 쓰기 어려우면 동남아시아 과자들처럼 고심해서 맛이라도 잘 내주셔야죠.

 

내 몸 속에 들어와 살로 바뀐 이 맛없는 과자를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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