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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풍 찻상 - <귤류올루> 로쿰 (터키쉬 딜라이트) 본문
영국에 살 때 구독하던 <Homes & Antiques>에서 스캔한 크리스마스 센터 피스 사진입니다. 근사하죠?
영국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 몇 가지가 담겨 있는데요, 호두, 스노우베리, 포트(강화 와인), 그리고 왼쪽 아래에 있는 제과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저게 터키 제과인데, 본고장에서는 '로쿰lokum'이라 부르고 영국인들은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고 부릅니다.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 때 특히 많이 찾습니다. 대추야자 열매dates도 중동쪽에서 수입해 크리스마스 간식상에 많이 올리고요. 사진에 보이는 로쿰은 맛있는 간식거리 그득하기로 소문난 영국 수퍼마켓 <막스 앤드 스펜서>의 자사 상표 터키산 로쿰인 듯합니다. 자주 사 먹었던 거라서 척 보면 압니다. 아주 맛있었죠.
☞ 메쥴 데이츠
놀랍게도 터키 카라쿄이의 유명 제과점인 <귤류올루>의 바클라바와 로쿰이 한국에 다 들어와 있더군요. 이태원에서 바클라바 전문점 발견한 것 못지 않은 대발견입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햐, 내 집에 편히 앉아 유명 관광지의 이름난 식료품점 제품을 맛볼 수 있다니.
가로 190mm, 세로 105mm의 종이 재질 상자이니 여성용 큰 장지갑 정도 되는 크기인데, 부피에 비해 꽤 무겁습니다.
로쿰에 대한 첫 기록은 18세기말 또는 19세기초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1830년대에는 외국인 방문자들로부터 이미 입소문이 났던 모양입니다. 1850년경에 잉글랜드로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에는 "Lumps of Delight"로 불렸습니다. 찰스 디킨스 소설에 "Lumps of Delight shop"이라는 문구가 있고,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도 아이를 꾈 때 터키쉬 딜라이트가 미끼로 쓰입니다. 2005년 <나니아 연대기> 영화 개봉 후 로쿰 판매가 늘었다고 하죠.
현재 모습의 로쿰은 1776년에 아나톨리아에서 이스탄불로 이주해 이듬해에 제과점을 열고 이후 술탄의 일급 제과장으로 일했던 하지 베키르Hadji Bekir가 창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음식사학자들은 페르시아와 아랍쪽에 밀전분과 시럽 또는 포도 즙으로 만든 제과sweetmeat가 수 세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이로부터 로쿰이 진화해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이 글 끝에 로쿰의 창시자라 주장하는 하지 베키르 가문의 가게 영상을 걸어 놓았으니 참고하십시오. 전분과 분당icing sugar이 존재해야 로쿰도 존재할 수 있으니 이 두 재료가 상용되기 시작한 때를 알아보면 되겠네요.
현재 그리스, 사이프러스, 발칸 쪽에도 각각 자국 이름을 붙인 "delight"들이 있는데, 그중 사이프러스 것은 지리적표시제PGI로 보호까지 다 받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터키의 것은 어쩐 일인지 이 제도로 보호를 받고 있지 않은데, 그 때문인지 제조사마다 맛이 많이 다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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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공정 사진과 성분이 적혀 있으니 클릭해 크게 띄워 놓고 보십시오.
로쿰의 기본 제법
1. 설탕 시럽을 만든다.
2. 옥수수전분 풀을 쑨다.
3. 옥수수전분 풀에 설탕 시럽을 조금씩 합쳐 가며 오랫동안 천천히 졸인다.
4. 쟁반에 부어 굳힌다.
5. 한입 크기로 잘라서 분당icing sugar에 버무린다.
여기에 레몬 즙이나 오렌지 즙으로 기본 맛을 내고 로즈 워터나 오렌지 블로썸 워터로 향을 더합니다. 나무에서 추출한 진resin인 마스틱mastic으로 식감과 향미를 보강하기도 하고 견과류를 넣기도 합니다. 시나몬이나 민트도 맛내기 재료로 흔히 쓰입니다.
과정을 짤막하게 써 놓으니 간단해 보여 '나도 만들겠다' 생각이 드실 텐데요, 가정집 영상을 하나 걸어 드리겠습니다.
로쿰은 그냥, 앞으로도 쭈욱 사 먹는 걸로;;
네 가지 맛이 들었습니다. 칸막이 없이 한데 담아 놓아 코코넛 가루가 사방팔방 흩어져 돌아다닙니다.
성분을 옮겨 적어 봅니다만, 수입업체의 우리말 성분 표기에 오류가 많은 듯합니다. 오렌지향, 베르가모트향, 석류향, 이 세 가지 향과 코코넛이 기본으로 다 들어가는 것처럼 표기를 해 놓았는데, 맛을 보니 각 로쿰마다 쓰인 향의 종류와 강도가 다르고 코코넛 유무도 다릅니다. 제가 녹색으로 표시한 향이 대표로 나는 향입니다.
장미꽃잎맛
설탕, 정제수, 옥수수전분, 장미꽃잎, 코코넛(?), 구연산, 천연향(오렌지향, 베르가모트향, 석류향) (피스타치오가 박혀 있었는데 성분표에는 빠져 있네요.)
피스타치오맛
설탕, 정제수, 옥수수전분, 피스타치오, 코코넛, 구연산, 천연향(오렌지향, 베르가모트향, 석류향)
벌꿀맛
설탕, 정제수, 옥수수전분, 벌꿀, 코코넛, 구연산, 천연향(오렌지향, 베르가모트향, 석류향)
쵸콜렛맛
설탕, 정제수, 옥수수전분, 쵸콜렛(설탕, 코코아분말, 코코아버터, 대두레시틴, 천연바닐라향), 코코넛(?), 구연산, 천연향(오렌지향, 베르가모트향, 석류향)
다들 설탕이 가장 많이 들었으니 당도에 대해서는 언급 안 해도 될 듯합니다. 제가 영국에서 사 먹던 것들은 향수처럼 향이 강하고 맛도 새콤달콤 강했는데 <귤류올루>의 로쿰은 의외로 향이 세지 않고 맛도 온화하네요. 네 가지 맛 모두 개성 있으면서 맛있어 하나만 추천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권여사님은 쵸콜렛 씌운 오렌지맛 로쿰을 으뜸으로 꼽으셨습니다.)
베르가모트향이 든 것은 얼 그레이 홍차를 연상케 해 홍차인들이 반가워할 듯합니다. 전분을 굳혔으니 질감은 젤라틴 써서 굳힌 유럽의 과일즙 젤리들에 비해 단단하고 찐득거립니다. 굳기 시작한 떡과 젤리의 중간쯤 되는 식감을 내는데, 같은 상자 안에 든 것들도 맛에 따라 덜 단단하고 더 단단한 것들이 있습니다.
유럽 제과 사 먹기도 바쁜데 터키의 유명 제과점 로쿰과 바클라바까지 알게 되었으니 큰일 났어요. 살 언제 뺍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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