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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찻상 본문
▲ 기왓장 과자와 오도독 메밀 과자를 곁들인
기축년 새해 첫 찻상. 으응? 찻잔이...
집에 질 좋은 녹차도 있겠다, 그렇찮아도 새해엔 녹차도 좀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며칠 전 쯔유를 사러 일식 재료상에 갔을 때도 녹차와 함께 즐길 과자 접시가 있나 두리번거렸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신기하게도 텔레파시 님께서 천연 옻칠된 목기를 다 보내주셨다.
아니, 이 분, 대체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 비싼 국산 옻칠 목기를 다 사서 보내셨을까. 텔레파시 님이 보기에도 녹차를 소홀히 하는 이 단단이 안타까웠던 걸까? 녹차에 딱 어울리는 그릇들이다. 이런 목기는 한국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영국에선 구할 재간이 없는 것. 외국인 친구 불러다 우리 차를 대접할 때 요긴하겠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려깊은 데가 있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이는 못 속이는지라 (실례) 저런 깜찍한 디자인을 어디서 잘도 구하셨다. 목기는 다 근엄하게 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가만 보니 귀여운 복어다. 배 볼록해서 과자 많이 담게도 생겼네.
마침 그릇에 맞춰서 과자도 다 보내주셨다. 확실히 동양의 과자들은 어딘지 '아정'한 맛이 있다. 양과자처럼 첫 입에 쨍한 맛을 낸다기보다는 씹을수록 고소한 그런 맛 말이다. 과자 하나에 담긴 생각들도 동서양이 참 많이 다르구나 싶다.
찻잔으로 쓸 그릇이 마땅찮아 수플레Souffle 그릇에 녹차를 담았으니 이게 웬 궁상이냐 하시겠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도자기집 딸이다 보니 녹차 다기만은 질박하면서도 장인의 포스가 담긴 범상치 않은 것으로 하나 마련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홍차 다기는 아무거나 되는대로 써도 마음 편한데 녹차 다기만은 내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대량 생산된 매끈한 것들 아니면 손으로 정성껏 만들었다 해도 대개 조형미와 균형미가 너무 떨어지고 색상과 무늬, 공예 등이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라 미루고 미루다가 마음이 맞는 다기를 못 만난 채 영국에 오게 되었다.
저 엉터리 찻잔을 받치고 있는 과분한 미니 조각보는 '쁘띠 몬드리안' 미모의 미혼 사촌 동생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바느질한 것. 가시내, 잘 살고 있누. 왜 소식이 없누.
과자를 다 먹고 난 뒤 목기의 옻칠이 하도 부드러워 한참을 쓰다듬었다. 텔레파시 님, 잘 쓸게요. 고맙습니다. 옻칠의 매력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 옻칠은 천년도 간다지요.
참, 복어 모양 접시를 보니 생각났는데, 누리터에 떠돌아다니는 '복불복福不福'이란 말의 유래가 재미있어 옮겨보기로 한다. 사전적 정의로는 유복과 무복, 즉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로서 같은 경우나 같은 환경에서 여러 사람의 운이 각각 차이가 났을 때 쓰는 말이란다.
복어라는 물고기는 참으로 이상한 놈이지요.
적을 만나면 공기를 들이마셔 배를 부풀려서
겁을 주기도 하고요.
물고기 중에 유일하게 통이빨이 있어서
사람의 손가락 정도는 단번에 잘라버리지요.
어린 시절 낚시 하다 복어를 잡으면 막대기로 툭툭 쳐서
물에 띄워 놓고 깔깔대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놈이 아주 웃기는 놈이에요.
무드를 아는 놈이지요.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저 혼자서 배를 부풀리고
물 위에 둥둥 떠다니지요.
제 나름대로 즐기나 봐요.
바다에서 나비를 보신 적이 있나요?
어쩌다 바람에 밀려 바다 쪽으로 간 나비는
앉을 곳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지요.
그때 물 위에 떠서 즐기는 복어를 만나면
나비는 이제 살았구나 하고 내려 앉겠지요.
그러면 복어는 낼름 잡아먹어요.
우리가 보통 알기로 복어 알에 독이 있어서
먹으면 죽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나비를 잡아먹은 복어는 알이 아니라
살에 독이 생긴대요.
사람이 그걸 먹으면 죽겠지요.
그러면 요놈의 복어가 나비를 먹은 놈인지
안 먹은 놈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 복어 먹고 사느냐 죽느냐는 복불복이다,
라는 말이 생겼대요.
신원이 분명치 않은 z8vj5 님이 쓰신 글.
나비 먹은 복어 살에 독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는 아직 확인 못 했음.
믿거나 말거나.
영어로 복어를 부르는 말도 위의 이야기만큼이나 웃기더라.
Puffer /퍼퍼/ 훅 부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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