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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미인과 월병 본문

차나 한 잔

동방미인과 월병

단 단 2009. 12. 8. 15:10

 

 

 

 

 

신분 밝히기를 꺼려하는 수줍은 지인으로부터 추석도 아닌데 근사한 모듬 월병과 '동방미인' 우롱차를 선물 받았습니다. 꺄오 유명한 대만산 동방미인은 아니고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는 구수한 철관음鐵觀音류를 가져다 비슷하게 이름만 바꿔 파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자 표기가 다르거든요. 대만산 진품은 '東方美', 중국 북경의 <차박사가茶博士家>에서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파는 이 동방미인은 '東方美'.


한국에 돌아와서 속았다고 분히 여기시는 분들도 보았는데, 분개하실 필요 없어요. 이름은 비록 '짝퉁'스러워도 현장에서 직접 시음해 보고 맛이 좋아 산 것이니 자기 입맛에 맞는 차를 구매한 거잖아요. 여기 런던의 <해로즈>나 <포트넘 앤드 메이슨> 같은 곳에 와서는 시음도 안 해보고 덥석 잘들 사시면서 말이죠. 마셔 보니 이 우롱차도 맛은 상당히 훌륭합니다.


월병 상자에 적힌 정보를 보니 중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해 파는 게 아니고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거라 오히려 마음이 놓였으나, 재료를 보니 죄다 중국산 아니면 미국산입니다. 월병이 원래 중국 과자이니 재료가 중국산인 건 그렇다 쳐도 미국산 원료가 들어가 있다는 건 뭔가 재미있지 않습니까?


상자 뚜껑을 여니 눈이 팽글팽글. 무려 30개나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이름도 따로 있습니다.

오인, 야용, 부병, 재병, 황두, 화생초, 오복월병 등. 

 

제가 생각하는 월병의 여러 문제점 중 하나는, 껍질과 소의 비율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소에 비해 껍질이 너무 얇아요. 소가 많다 보니 먹다가 소 맛에 압도됩니다. 양갱 먹는 것처럼 지겹고 물려요. 맛있는 월병 판매처 아시는 분은 귀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병도 '광식(广式), 경식(京式), 소식(苏式), 전식(滇式) 등 계파가 있다는군요. ☞ 중국의 월병


월병月餠은 우리말로 '달떡', 영어로 'moon cake' 등으로 옮길 수 있겠는데, 동그란 모양은 물론 중추절의 보름달을 상징하지만 그 안에는 온 가족이 둥그런 상 앞에 한데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렇죠, 작은 과자 한 조각에도 다 사연이 있는 법이죠. 우리 한국인들이야 그저 씁쓸한 차에 곁들이면 좋을 맛난 외국 과자 정도로 여기지만 오늘날 월병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은 좀 복잡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이제 월병 하면 모종의 애증 같은 걸 느끼는 모양입니다. 아래에 한겨레 신문에서 본 중국 언론인의 칼럼 하나를 싣습니다. 읽어 보니 월병의 의미와 취지가 옛날만 같지 않습니다. 튀긴 음식과 고기도 먹는데 월병이 주는 건강상의 미미한 해를 걱정하는 필자의 글이 기우처럼 느껴집니다. 필자의 문체에서 한국인들의 문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는데, 이런 게 바로 중국식 유머일까요?


 
☞ 저우창이 '월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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