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아프터눈 티] 인디안 레스토랑의 탈리(thali) 한 상과 짜이(chai) 한 잔 본문
하드 디스크가 잘못되는 바람에 수년간 찍은 소중한 가족 사진을 몽땅 날렸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 작심하고 그간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습니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외장 하드까지 구입해 나름 안전하게 여러 곳에 나누어 저장을 해 두었습니다. 작년 여름 사진 중 차茶와 관련된 게 몇 장 있어 올려 봅니다.
귀한 분께 선물할 일이 있어 모로칸 티포트와 컵을 사러 집을 나섰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로칸 티포트를 사기에 알맞은 곳이 런던에 몇 군데 있는데 이 날은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을 갔었죠. 빠알간 2층 버스의 좌석에 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흔들흔들 가던 중 눈에 띄는 담벼락이 있어 급하게 담아 보았습니다. 공사 현장을 저렇게 작품처럼 꾸며 놓았어요.
영국에 여행 오면 쇼핑만 하지 말고 담이나 바닥도 유심히 보세요. 벽돌 사이에 바른 크림, 아니, 시멘트를 보아서는 담을 쌓은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벽돌들은 하나같이 얼룩덜룩 낡았습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새로 찍어 낸 벽돌, 새로 캐서 다듬은 돌로는 증축이나 개축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죠. 대개 주변에 있던 비슷한 건물이 헐릴 때 나온 자재들을 사다 써서 새로 담을 올려도 마치 50년, 100년 된 듯한 느낌이 나도록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건축법 때문인지 독특한 영국인들의 미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페인트칠 돼 있다가 벗겨진 벽돌까지 간간이 섞여 있어 꼭 오래된 모자이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살던 동네 집들도 이런 꼬질꼬질한 벽돌로 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눈에는 이런 것조차도 근사해 보입니다. 단돌이 다쓰베이더는 비스킷 샌드 같다며 벽돌담만 보면 군침을 흘립니다.
볼 때마다 가슴 아파지는 사진입니다. 이 모로칸 숍에서 봐 두었던 근사한 티폿을 다른 곳 더 둘러보고 오는 사이에 놓쳤기 때문에요. 결국 모로칸 티폿은 못 샀죠. 어려서는 보자마자 물건 사는 버릇 때문에 후회하더니 나이 들어서는 순발력과 결단력이 없어 후회. 고민하고 재다가 놓친 물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래저래 후회만 하다 종칠 인생.
영국인들은 '타이퀀도Taikwondo'라고 발음합니다. 타이퀀도가 코리안 무예인 줄은 알기나 할까요. 'HYUNDAI'는 '하이언다이'라 읽고요. 왼쪽 가판대에 있는 가품 버버리 모자 보세요. 저도 영국 브랜드 옷, 특히 버버리와 바버의 옷을 좋아하긴 하지만 영국에 여행 올 때만은 버버리 입기를 좀 피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버버리 걸친 관광객들이 그렇게 우스워 보일 수가 없어요. 신혼부부들 중에는 아예 커플 룩으로 저 체크 무늬를 맞춰 입고 오시는 분들도 있죠. 요즘은 버버리 티 안 나는 은근한 디자인도 많아졌으니 하여간 '나 버버리요' 외치는 옷들만 좀 피해서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엔 <해리 포터>의 깍쟁이 아가씨 헤르미온느를 모델로 기용해 '버버리=중년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노력중이랍니다. 여기서 잠깐 숙녀로 훌쩍 성장한 헤르미온느 사진 한 장 감상.
우리 헤르미온느가 이제 말만 한 처녀가 다 됐네그려.
영국 여인들의 매력은 까칠한 피부와 부스스한 머리, 허스키한 목소리, 광채 나는 눈빛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의 날씨와 기후 탓인 것 같아요.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안에서는 수건이 튀김처럼 바삭하게 마르죠. 입 안도 늘 바짝 말라 있어 저절로 밀크티를 찾게 됩니다. 영국식 영어 발음 역시 그녀들의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만드는 데 한몫 한다고 봐요. 자욱한 안개와 부슬비를 뚫고 사물을 바라보려면 눈에서도 광채가 날 수밖에요.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 뒤로는 소박하나 활기 넘치는 모로칸들의 거리가 있습니다. 밥 먹을 때가 다 되어 출출했으나 모로칸 요리를 아는 게 없으니 일단 구경만 했습니다. 생선구이가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이 사진에서 나의 이목을 끄는 건 두 가지 - 각기 다른 의자들과 (역시 런던은 알록달록) 저 모로칸 요리를 담은 희한한 뚜껑의 그릇 '타진Tagine'. 뚜껑이 저렇게 생긴 데는 필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외식 잘 안 하는 다쓰 부처는 이 날 큰 맘 먹고 (싸구려) 인도 식당엘 들어갔습니다. 인도의 가정식 백반인 탈리thali를 시켜 볼 참이었죠. 인도 사람들의 가정식 백반이 하도 푸짐하다길래 몹시 궁금했습니다. 저 실내 꾸민 것 좀 보세요. 인도인들이 요란뻑쩍 테크니컬러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네들의 알록달록한 향신료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국에서 이런 유쾌한 키치를 맞닥뜨릴 일은 별로 없으니 이럴 때 실컷 감상해 두어야 합니다.
나왔다 탈리.
인도인들이여, 이걸 어떻게 한 사람이 다 먹으란 말이뇨.;;
반식 다이어트 중인 지금으로선 사진만 봐도 배가 아파 고통스러워요. 이 날도 주방에 미안하게스리 다 못 먹고 많이 남겼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음식에 향신료가 들어가 있었는데(심지어 밥과 요거트에까지) 그 배합이 절묘하게 다 다르면서도 아주 맛있어서 식사 시간 내내 혀와 코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인도 요리를 볼 때마다 여행지에서 향신료 열심히 사 모으던 우리 영감님 생각이 납니다.
제 것보다 좀 더 푸짐했던 다쓰베이더의 탈리. 커리말고도 이런저런 렐리쉬와 감자, 달(콩 커리), 처트니, 요거트도 탈리 필수 구성 요소라고 합니다. 빠빠드와 난도 나왔네요. 커리와 처트니가 맵기 때문에 요거트는 이 순간 너무 소중합니다.
일명 마살라 코크.
콜라에 향신료라니, 인도의 향신료 사랑은 정말 알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맛을 보니 이게 아주 명물입니다.
마살라 짜이.
탈리가 궁금했던 탓도 있지만 인도 사람들이 마시는 짜이가 매우 궁금해 인도 식당에서의 외식을 감행했던 건데 기대와 달리 순하고 달콤한 바닐라 홍차가 나와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인스탄트 카푸치노에서나 볼 수 있는 저 뽀얀 거품. 수퍼마켓 짜이 티백은 아무래도 인도인들의 정통 짜이 맛이 아닐 거라 생각해 내 일부러 이렇게 인도 식당에까지 찾아왔건만 향신료가 들기는커녕 지나치게 부드러운 액체와 거품이라니. 혹시 위타드풍의 인스턴트 가루 홍차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죠. 인도 식당에서 시킨 짜이가 저 수퍼마켓 트와이닝 티백 짜이만도 못할 줄이야. 차라리 유튜브에서 인도인의 짜이 끓이는 법 동영상이나 찾아 보는 게 상책이지 싶습니다. 고로, 이 날의 아프터눈 티는 안타깝게도 실패. 그래도 탈리는 맛있었습니다.
참, 밖에 나가 오후에 사 먹는 홍차는 무조건 '아프터눈 티'라고 부르고 있으니 혼동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호텔이나 유명 티룸만으로 범위를 한정하기엔 다쓰 부처는 가진 돈이 많지 않습니다. ■
▲ 삘 받은 다쓰베이더의 초간단 탈리.
▲ 남편에게 탈리처럼 보이는 식사를 대접하는 아내. 1700년경 인도.
"반찬투정은 도끼로 다스리겠어요."
☞ 우리가 먹은 건 아무것도 아냐 - 다채롭고 화려한 탈리 상차림 구경하기
'영국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스포드 ③ 대학가의 상점들 (5) | 2010.08.09 |
---|---|
옥스포드 ② 크라이스트 처치 커씨드랄 Christ Church Cathedral, Oxford (5) | 2010.08.04 |
옥스포드 ①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 Christ Church, Oxford (11) | 2010.08.01 |
솔즈버리 대성당Salisbury Cathedral에 다녀왔습니다 (4) | 2010.04.11 |
[아프터눈 티] 메이드 오브 아너, 메이즈 오브 오너 Maids of Honour, Richmond (2) | 2009.12.24 |
[아프터눈 티] 큐가든 오렌저리 (2) | 2009.12.23 |
[아프터눈 티] 런던 클래리지스 호텔 Claridges, London (0) | 2009.12.10 |
[아프터눈 티] 런던 모모 티룸 - 모로칸 민트티 Momo Tearoom, London (0) | 200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