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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런던 클래리지스 호텔 Claridges, London 본문

영국 여행

[아프터눈 티] 런던 클래리지스 호텔 Claridges, London

단 단 2009. 12. 10. 09:13

 

 

 

 

 

영국 여행을 오신 친척 어르신을 모시고 이번에는 런던 클래리지스 호텔 아프터눈 티룸에 갔습니다. 내 돈 내고는 가기 힘든 곳, "돈 걱정 말고 먹을 곳을 한번 알아보라"는 지령이 떨어지자 '앗싸 가오리' 하고 예약했죠. 지난 봄에 갔던 브라운 호텔은 규모가 작고 가정적인 분위기, 이 클래리지스 호텔은 더 크고 더 호화롭습니다. 브라운 호텔이 올해 런던 최고의 아프터눈 티룸으로 선정되기 전까지는 이 클래리지스 호텔이 리츠 호텔과 더불어 런던 아프터눈 티룸계의 지존이었습니다. 아르 데코Art Deco 인테리어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분 계시다면 그런 분은 이 클래리지스 호텔로 가시면 됩니다. 창틀부터 거울, 계단 손잡이 등 사소한 부분까지 아르 데코풍으로 세심하게 매만졌음을 눈썰미 있는 분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샌드위치를 마음껏 집어먹을 요량에 손 씻으러 화장실엘 갔더니 맙소사, 시중 드는 메이드가 화장실 안에 따로 상주하고 있습니다. 흰 앞치마를 두른 인자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손을 씻는 곁에서 수도꼭지를 틀어주 고, 시간 맞춰 액상비누 짜주고, 손 닦을 개인용 수건까지 건네 줍니다. 이런 민망한 일이 다 있나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팁을 위한 도자기 그릇이 세면대 옆에 따로 놓여 있습니다. 허허, 이런. 팁을 안 드릴 수가 없네요. 손 한 번 씻고 1파운드(한화 2100원)라니, 역시 '아프터눈 티 = 럭셔리'입니다.;; 영국 메이드의 서비스를 다 받고 나니 기분은 좋다만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실에 사진기라도 좀 갖고 들어올 걸 그랬어요. 화장실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티룸 전경을 찍어 두질 못 해 호텔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제 자리가 하필 구석을 바라보는 자리여서 어른들 모시고 대화 도중 뒤돌아보며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어요. 호텔 측이 제공한 사진과 우리가 간 날의 티룸 모습이 같았으니 다행입니다. 쿠션과 의자의 저 '재지jazzy'한 기하학적 패턴 역시 아르 데코의 전형. 가죽 소파의 녹색빛도 그 시절을 대변하는 색입니다.

 

 

 

 

 

 

 



사진으로 여러 번 보아 이미 익숙한 이곳의 다기들. 소품은 다 은제였습니다. 저기 저 은제 설탕함 뚜껑의 선버스트sunburst 손잡이도 전형적인 아르 데코 디자인. 티 테이블이라서 그런지 화려하고 풍성한 영국식 꽃꽂이 대신 달랑 장미 한 송이뿐입니다. 그것도 머리만 똑 따서요.

 

 

 

 

 

 

 



두 명 이상이 호텔 아프터눈 티룸을 방문할 경우 샌드위치 시키는 요령을 알려드려야겠습니다. 간단하게 일행 중 한 명이 "저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 다른 종류의 샌드위치를 주시겠습니까?" 하면 됩니다. 아마 보통 때보다 최소한 세 종류 이상의 샌드위치가 더 나올 겁니다. 물론 고기나 생선을 넣지 않은 것들인데, 그렇게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가 나오게 되면 상 위에 죽 펼쳐 놓고 요리조리 사진 찍으면 됩니다. 종류가 많고 색이 더 다양하니 사진이 훨씬 더 좋게 나오죠. 이렇게 시켰더니 원래 나오는 다섯 종 외에 채식주의자용 세 종류가 새로 더 나와 샌드위치만 무려 8종이 되었습니다.

 

 

 

 

 

 

 



친척 어르신이 차 드시는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실례. 오른쪽 벽면 한쪽에 있는 거울 장식 역시 전형적인 아르 데코풍. 그 시절의 글래머를 그리워하는 이가 유럽과 미국에는 아직도 많아요. 매력적인 시절이긴 했죠. 저 관능적인 렘피카의 여인들을 보세요.

 

 

 

 

 

 

 



접시에 옮겨 담아본 채식 샌드위치들. 고기는 안 먹어도 해산물을 매우 즐기는 편이니 사실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밥상에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을 안 먹을 정도로 한때 고기를 몹시 즐기던 시절이 있었으나 요리하려고 고기의 핏물을 빼다가, 그리고, 어느 날 무심코 집어든 고기 한 점을 유심히 살피다가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우러나는 피와 내 손등의 살결과 너무나도 똑같던 죽은 짐승의 살결을 보고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던, 나름 충격적인 순간이었죠.


고기를 왜 한점 두점 세는지도 이때 감을 잡았고요. 바로 살'점'이기 때문. 남의 집을 방문해 그 집 가죽소파의 무늬를 보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심약하기 짝이 없다고 남들의 비웃음을 한몸에 살, 고기에 얽힌 사사로운 기억들이 많이 있으나 가뜩이나 여름철을 맞아 부진한 우리 블로그 친구분들의 식욕을 생각하며 여기서 이만 닥치겠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스콘도 한가득이네요. 과일 스콘과 플레인 스콘 이 두 종류는 어디서든 기본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클로티드 크림에는 골든 크러스트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아이스크림처럼 동글동글 예쁘게 굴려 놓았으니 보기가 좋네요. 비싼 아프터눈 티를 즐기러 갈 때면 항상 두 가지가 제대로 갖추어졌는지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식탁보를 제대로 깔아 주었는지. 클로티드 크림을 모양내서 담았는지. 이 두 가지가 안 돼 있으면 막 삐치기도 한다. 삼단 접시는 없어도 됩니다.


병에 든 투명한 노란 것은 홍차맛과 샴페인맛이 같이 나는 색다른 젤리였습니다. 예전에는 프랑스 홍차 회사 마리아쥬 프레르의 '마르코 폴로'로 만든 젤리를 냈다는데 맛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남은 것을 집에 가져왔는데 시럽도 아니고 잼도 아닌 것이 성상이 독특하긴 했으나 썩 맛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샴페인 맛이 강하게 풍깁니다.

 

 

 

 

 

 

 



단것들 역시 더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더 주기도 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늘 샌드위치를 너무 많이 먹어 마지막에 가서는 겨우 맛만 보게 된다는 겁니다. 본전 뽑으려고 점심 굶고 가서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샌드위치부터 넉넉히 먹게 되는데, 배가 부르니 꼭 단것을 남기게 돼요. 싸 달라고 하면 싸주기도 하지만 맛보겠다고 죄다 야금야금 뜯어 놓았으니 싸 오기도 민망하다. 이런 건 그냥 앉은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즐기고 남으면 남은 대로 미련없이 일어서는 것이 최곱니다.

 

 

 

 

 

 

 



접시에 옮겨 담은 내 몫의 스콘. 어르신은 샌드위치 몇 개 드시고는 벌써 다 끝났다고 선언해 버리셨습니다. 소식하는 사람들이 맑은 정신으로 큰일을 이룬다는 말은 역시 맞는 말인 것 같아요. 혹 입맛에 맞지 않으셨던 건 아닐까요? 한국의 중장년 신사분들은 아무래도 단것 먹는 습관이 안 들어 있으니까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결혼을 기념하여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바텐버그' 케이크입니다. 독일 바텐버그 가문 루이 공에게 시집 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데, 그 무늬가 꼭 창틀 같다고 하여 'window cake'라 부르기도 합니다. 수퍼마켓에서 사 먹었을 때는 목이 다 따가울 정도로 달아 다시는 먹지 않겠노라 결힘했었는데 역시 호텔 베이커리는 다르네요. 은은한 단맛에 향긋한 아몬드향이 일품이었습니다. 꽃단장도 다 했어요.

 

 

 

 

 

 

 



영국의 클래식 타트인 스트로베리 타트.

무려 튜더 시대 때부터 기록이 있는 타트인데 딸기가 제철이니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것에는 쵸콜렛과 컵 푸딩 종류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예민한 관찰자라면 지금까지의 사진을 보고 왜 삼단 접시가 없는지 의아했을 겁니다. 삼단 접시를 사용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요. 우리 테이블은 4인용이었고 4인용치고도 깍쟁이 같은 아프터눈 티룸들에서는 드물게 매우 큰 테이블을 주었으니 공간절약용 삼단 접시는 필요치 않았던 겁니다. 우리 테이블 말고 다른 테이블들은 대부분 여느 티룸에서 볼 수 있는 원형의 매우 작은 테이블이었는데, 그런 작은 테이블에는 대화를 가로막는 테이블용 삼단 접시 대신 상 옆에 트롤리 같은 삼단 스탠드를 따로 갖다가 세워줍니다. (위의 티룸 전경 사진 참고.)


지난 번 브라운 호텔 아프터눈 티룸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사실 테이블이 너무 작고 삼단 접시가 상대방의 얼굴을 많이 가려 좀 불편했었습니다. 아프터눈 티 하면 으레 기대되는 키 큰 삼단 접시가 없으니 실망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넓은 테이블에서 한꺼번에 죽 펼쳐놓고 즐기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네 명이 각자 다른 차를 시켜 찻주전자도 네 개나 올라왔습니다. 자스민 · 동방미인 · 러시안 캐러반 · 다질링.

밖에 나와 제대로 된 곳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기분 좋을 정도로 연하게 우려준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티룸에서는 찻잎 양을 대폭 줄여서 우리고 온도도 많이 식혀서 낸다는 사실을요.

차 우리는 물 온도를 실험하면서 느낀 것 한 가지 - 펄펄 끓는 물로 우리는 것을 그간 홍차 우리기의 기본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롱차 우리는 온도 정도로 슬쩍 낮추어 우려봤더니 색다른 맛이 납니다. 과학자들은 온갖 데이타를 들이대며 100℃에 가까운 온도가 홍차 우리기의 정석이라고 하겠지만 살짝 낮춘 온도에서 우린 홍차는 좀더 '착한' 맛을 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애호의 일에는 결국 '취향'이 정답인 겁니다.

 

 

 

 

 

 

 



클래리지스 호텔이 언제부터 브라운 호텔처럼 손님들에게 작은 차통을 쥐어 줌으로써 아프터눈 티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시 경쟁은 좋은 걸까요?


브라운 호텔이 번거롭더라도 손님이 마신 차를 기억했다가 같은 것으로 주는 반면 클래리지스 호텔은 마셨던 차와 상관없이 브렉퍼스트 블렌딩으로 줍니다. 그래도 차통 하나는 제대로니 차통을 찻잎만큼 소중히 여기는 홍차인들에게는 이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양도 많아요. 네 통 다 합치면 125g은 족히 넘겠습니다.

 

 

 

 

 

 

 



 
전반적인 느낌은?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다 좋아요. 다만 어느 호텔이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불만입니다. 앉은 지 한 시간 30분이 되면 다음 손님을 위해 일어서야 하는데, 넷이서 이 아프터눈 티를 즐기는 데 들인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하면 이 점이 아쉬워요.

 

서비스는 물론 어느 곳이든 훌륭합니다. 손님의 찻주전자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물을 채워주거나, 차아 써졌겠다 싶으면 아예 찻주전자를 새로 갈아주기도 합니다. 이런 아프터눈 티룸이든, 호텔 프론트 데스크든, 음악회장의 간이 카페든, 기찻간 안의 스낵 바든, 이제 영국의 서비스 분야에서 영국인들의 서비스를 받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자리는 언제나 폴란드나 기타 동구권 국가에서 몰려 온 좀 더 예쁘고 성실하고 적은 임금으로도 불만을 품지 않는 '착한' 아가씨들이 대신합니다. 지난 번 브라운 호텔에서도, 이 클래리지 호텔에서도, 상냥한 동구권 아가씨들이 우리의 시중을 들며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 브라운 호텔 아프터눈 티
☞ 체스터필드 호텔 아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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