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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② 크라이스트 처치 커씨드랄 Christ Church Cathedral, Oxford 본문
지난 글에서는 옥스포드 대학 중 크라이스트 처치를 둘러보았고요, 오늘은 이곳 학생들이 예배 드리는 공간을 보겠습니다. 'Christ Church Cathedral.' '주님의 교회 대성당'이라니, 우리 말로 직역하면 다소 이상하게 들립니다. 영국에서는 '대성당cathedral'이 반드시 로마 가톨릭 교회 건물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린 적 있습니다. 이곳도 헨리 8세 때 국교를 성공회로 전환하면서 성공회 건물로 바뀌게 되었지요. 영국에서 가장 작은 커씨드랄이라고 합니다.
더 진행하기 전에 먼저 위 화면의 재생 단추를 눌러 음악을 틀어보세요. 화면없이 음악만 나올 텐데, 저희가 이곳을 구경할 동안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중창단이 이 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곡 설명은 나중에 따로 드릴게요.
내부 신랑身廊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작기 때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성가대석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사진 찍고 있는 제 머리 위에 있습니다. 교회가 작긴 해도 천장과 벽, 창문 등의 장식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합니다.
교회들을 다닐 때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유심히 보곤 하는데 이곳의 창들에서는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일단 그림과 구도가 꽤 복잡하고 원근감이 있는 데다 쓰인 색상도 다양하고 그라데이션도 섬세합니다.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시기에 와서 제작했다는 소리가 되겠는데, 집에 와 자료를 찾아 보니 놀랍게도 이 교회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중심인물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와 그 일당들의 작품이 꽤 있다고 하더군요. 이 운동의 이론적·정신적 강령이 되는 중요한 저서들의 저자이자 미술평론가,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후원자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이 이곳 크라이스트 처치 출신이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성가대석 뒤의 스크린과 천장의 장식 좀 보세요. 이런 옛 교회들의 화려함은 곧잘 개신교도들의 공격 대상이 되곤 하죠.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장식을 하려면 당대 뛰어난 장인들을 불러다 일을 시켜야 할 텐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동네 유지나 독지가가 자발적으로 낸 헌금이라면 좋았겠지만 옛 시절엔 종교세 명목으로 사람들을 얼마나 쥐어짰겠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건축헌금이 사람을 잡는다고 하니 문제죠. 옛날 교회들만큼 아름답게 잘 짓지도 못하면서 큰 돈들을 써재끼니 더 문제입니다. 모인 돈들을 잘 쓰면 빠듯한 생활 가운데 기꺼운 마음으로 헌금한 이들과 이들의 후손이 대대로 위로와 기쁨을 얻겠지만, 만일 교회가 파이프 오르간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가짜 파이프 모양 장식물 따위나 만들어 붙이는 데 돈을 쓴다면.
쥐어짰든 하늘에서 뚝 떨어졌든, 영국인들이 저 이태리의 교회들처럼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충분히 아름답게 성전을 꾸미는 데 재주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기왕 짓는 교회, 한국에서도 좀 멀리 내다보고 잘 좀 지었으면 좋겠어요. 탄탄하게 잘 짓고 예술적으로 잘 꾸미기. 성전 치장에 공을 들이자고 역설하니 제가 좀 이단스러워 보입니까? ㅋ
교회 건물에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과 석수장이들과 대장장이들과 목수들과 유리장이들과 공예가들과 미술가들과 음악가들의 혼이 어려 있기 때문에 다쓰 부처는 교회 보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궁전이나 대저택도 이런 성격을 갖긴 하지만 과거의 궁전이란 우선 만인을 대상으로 하는 열린 건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교회만큼 감동이 없더라고요. 한국의 교회들은 어떤가요? 교회가 돈이 없어 초라하고 소박한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저는 오히려 큰 돈을 잘못 쓴 티가 팍팍 나는 촌스러운 대형 교회 안에서는 예배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손 안 떨고 양호하게 찍었습니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 찬찬히 시간 들여 여러 장 찍었습니다. 전 이런 교회를 올 때마다 오르간 콘솔 찾기가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대체 어디 숨었는지 꽁꽁 꽁꽁 꽁꽁...
개신교인들은 수호성인을 안 믿지만 교회음악의 수호성인이라는 산타 체칠리아가 오르간을 들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눈이 번쩍! 하여 가필드 님을 위해 열심히 찍었습니다. 이태리의 음악학교 이름이기도 하죠. 영어로 '세실리아', 불어로는 '세실리', 독어로는 '트리아', 고대 라틴어로는 '케킬리아', 중세 라틴어로는 '체칠리아'라 발음한다고 합니다.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맨 아래 오른쪽, 체칠리아가 순교 당하는 장면이 있어요. 체칠리아만 확대해 찍은 사진 다시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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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어째 '라파엘전파' 멤버였던 로제티(D. G. Rossetti, 1828-82) 그림 속 인물들을 닮지 않았습니까? 순정만화 주인공들 같은 로제티의 인물들 말입니다. 윌리엄 모리스 일당(Edward Burne-Jones, 1833-98)의 작품이니 분명 영향이 있을 겁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 꼭 있는 촛불 봉헌대.
티라이트 대신 막대 초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아, 저 자유롭게 너울거리는 불꽃. 설치작품 같기도 하고요.
앗, 이것은 반 고흐의 의자 아닙니까?
몇 개 놓여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찍어보았습니다.
초도 있지만 이렇게 현대식 등불도 있고요. 등 뒤의 스크린에 눈이 갑니다. 영국에는 공원 담도 저런 스크린으로 해 놓은 곳이 많아요. 멋없는 직선 창살보다는 한결 낫죠. 나중에 집 지을 일 있으면 저런 걸로 둘러볼까 생각중입니다.
이제 음악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갑니다. 이곳의 상주 소년 성가대와 컬리지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 같지는 않고 초청된 아마추어 중창단인 듯 보입니다. 어린 여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왕성한 활동중인 영국의 성가 전문 작곡가 존 러터John Rutter의 <내 눈을 여소서Open thou mine eyes>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다른 곡들은 제목을 몰라 소개를 못해드리겠네요. 교회 전속 소년 성가대인 코리스터 제도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고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의외죠? 마치 가톨릭의 본부가 있는 저 이태리쯤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연주는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캐임브리지 학생들이 부르는 연주입니다. 사진은 옥스포드 컬리지 교회를 올려 놓고 음악은 캐임브리지 학생들 연주를 걸어 놓다니요. ㅋ
영국인들은 남녀노소 불문, 어느 합창단이냐를 불문하고 대개 이런 톤으로 노래를 합니다. 많은 목소리가 잘 융합될 수 있도록 목떨림을 최대한 억제한 약간 허스키하면서 산뜻하고 가벼운 소리를 냅니다. 영국의 성가 작곡가들이 지은 현대 성가곡들도 대개 이런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무겁지 않은 곡들이 주를 이루고요. 그래서 영국 합창단이 이태리 오페라 작품에 찬조 출연할 일이 있으면 연습 때 지휘자가 이렇게 외치곤 합니다. "여러분! 이건 이탈리아 오페라니까 합창이라도 큰 목소리로 마음껏 떠는 소리를 내세요!" 그러고 나면 와글와글, 엄청난 음량의 소리가 나기 시작하죠.
영국의 아저씨나 할아버지들 중에는 현재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모습의 사람들일지라도 과거 코리스터 출신이었던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이런 분들 얕잡아 보았다간 큰코 다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엄청난 초견 실력에 라틴어까지 줄줄 구사합니다. 대단한 능력들을 갖고 있지요. 우리 아래 집 할아버지도 코리스터 출신이었을지 모르는 일이죠.
자기들 말로 성공회는 개신교에 속한다 하지만 예배 의식이나 외형은 아무리 봐도 천주교를 더 닮아 있습니다. 저녁 기도회Even Song 시간에는 '성모의 노래Magnificat'를 부르는 순서가 꼭 있습니다. 성모의 노래라고 해서 마리아를 찬양하는 건 아니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경의 대목을 그 가사로 하고 있어요. 저녁 기도회 때 부르는 노래들은 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조용하고 명상적인 성격을 띱니다. 이를 위한 좋은 무반주 합창곡들이 영국에는 참 많아요. 영국의 속담 중에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Sing Magnificat at matins.
아침 기도에 저녁 기도의 성가를 부르다.
경우나 때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볼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곳은 1, 2차 대전 때 전사한 옥스포드 주민들과 학생들을 기리는 밀리터리 코너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배당이라도 국기가 걸려 있지요. 다쓰베이더가 더욱 유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1차대전 때 전사한 나팔수bugler들의 명단입니다.
나팔수가 죽으면 남은 대원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2차대전 전사자 명단입니다.
영국에서는 어딜 가나 이렇게 전사자 한명 한명의 이름을 정성껏 적어 놓거나 새겨 넣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사회 전체가 자국의 전사자들을 참으로 잘 챙기고 기리는 분위기입니다. 부러운 풍토입니다. 손글씨가 참 예쁘죠?
이렇게 예배당 의자에까지 새겨 놓았네요. 이 의자에 앉아 예배 드릴 때마다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촛불 하나 밝힙니다. 그리고는 가진 돈 탈탈 털어 헌금함에 넣습니다. 다쓰 부처는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초를 밝히고 헌금을 합니다. 오르간 건반 닦을 천조각 하나라도 더 사라는 마음에서죠. 촛불 켜면서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미스 월드도 아닌데 웬 세계 평화 타령이냐? 전쟁 나면 오르간이 박살날지 모르잖아요. 그럼 큰일나죠. ㅋ 실제로 2차대전 때 영국의 보석과도 같은 저 코벤트리 대성당이 독일군의 폭격에 무너져 그곳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이 대단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아주 모던하고 새뜻한 새 교회 건물이 지어졌지만요. 독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독일 교회들에는 또 멋진 오르간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니 전쟁 나면 안 되죠. 세계 평화 빌 수밖에요. (뭣? 사람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오르간이 걱정돼서 세계 평화를 빌어?)
오르간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나오는 길에 측면을 다시 찍어봅니다. 오, 측면이 입체감 있고 더 멋있네요. 앞으로 측면 사진도 꼭 찍어야겠어요. 작지만 알차게 잘 꾸민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좀 더 많이 찍어 오지 못 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요.
컬리지와 교회를 다 돌아보고 나왔더니 아름다운 정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동네의 상점들을 구경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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