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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메이드 오브 아너, 메이즈 오브 오너 Maids of Honour, Richmond 본문

영국 여행

[아프터눈 티] 메이드 오브 아너, 메이즈 오브 오너 Maids of Honour, Richmond

단 단 2009. 12. 24. 04:43

 

 

 


런던 남서쪽 써리Surrey 주에 리치몬드Richmond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헨리 8세가 이곳에 있는 궁전Richmond Palace에서 맛있는 제과를 먹고 즐거워했다는 전설이 돌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제과제빵으로 유명한 동네인데, 국립 수목원 기능을 하는 왕립 큐 가든Kew Garden이 있어 맛있는 빵도 먹을 겸 자연을 벗삼아 즐기려는 방문객들로 활기를 띠는 곳이다.


전에 <런던 홍차 여행 안내>라는 글을 올리면서 "영국인들은 화려한 호텔 아프터눈 티보다는 꽃이 만발한 시골 동네 소박한 티룸에서의 차 한 잔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은 큐 가든 앞에 있는 오래된 티룸 <The Original Maids of Honour>를 소개할까 한다. 우리말로는 뭐 '원조 시녀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는 이 '메이드 오브 아너'가 신부 들러리를 뜻한다는데, 원래 영국에서 여왕의 시중을 드는 미혼 여성을 일컫는 용어였다. 영국 발음으로는 가게 이름을 '메이즈 오브 오너'로 불러야 한다. 군주로서의 여왕은 8명을, 왕의 배우자로서의 여왕은 모두 4명의 메이즈 오브 오너를 곁에 두고 부릴 수 있었다고 한다. 헨리 8세에 의해 잉글랜드의 특별한 페이스트리 이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길을 건너려는데 웬 젊은 남자가 차에 치어 차 앞에 쓰러져 있다. 아니?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알고 봤더니 이 남자, 가족들 데리고 티룸에 차 마시러 와서는 혼자 나와 자기 차 밑을 들여다보며 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어우 야아, 깜짝 놀랐잖아.

 

 

 

 

 

 

 



테이블이 모두 열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티룸이다. 런던의 호텔들과는 전혀 다른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의 티룸. 단단씨 이런 아늑한 동네 티룸은 처음 와 봤다지? 영국에서 온갖 색의 벽을 다 봤어도 딸기 스무디색 실내 벽은 처음 봤다. 식욕이 막 돋누나.

 

 

 

 

 

 

 


 
자, 이런 소박한 찻상을 주문했으니 찬찬히 한번 보시라. 푸른색 찻잔과 빨갛고 노란 차음식들의 색상 대비가 아주 훌륭하구나. 흐음... 블루 프린트 티세트를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꼭 밖에 나와 남의 것을 보면 아주 예쁘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손빨래를 싫어하는 나 같은 불량 주부들한테는 예쁜 앞접시 위에 올린 1회용 종이 냅킨 따위도 나쁘지 않게 보인단 말이야. 아주 편하고 좋은 방법 같으니 나도 어디 가서 종이 냅킨 예쁜 거나 사다 써야겠어.

 

 

 

 

 

 

 



이 티룸을 유명하게 만든 두 개의 간판 상품, 딸기 타트와 '메이즈 오브 오너'. 영국인들은 'Tart'를 '타르트'라 발음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타아트'라 발음한다. 'R' 발음을 하지 않기 때문.

 

티룸 이름이 바로 이 사악할 정도로 맛있는 노란색 페이스트리에서 온 것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이것들을 실버 디쉬 위에 (비록 1회용 종이이긴 하지만) 도일리를 깔고 내는 데는 다 사연이 있다. 저 아래의 영문 설명을 읽어 보면 답이 나온다.

 

 

 

 

 

 

 


 
메뉴판을 곁들여 상 전체를 다시 찍어 보았다. 메뉴에는 물론 점심식사로 삼을 만한 여러 가지 영국 요리들도 있고 크림 티도 있지만 이곳에 오면 꼭 이 딸기 타트와 메이즈 오브 오너를 먹어 보도록 하자. 차를 홀짝거리고 앉아 있으니 이곳의 페이스트리를 집에 포장해 가려고 들르는 이들이 많다. 원래 이 가게는 제과제빵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영국에서 빵 있는 곳엔 항상 차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니 '빵집'이라 하지 않고 '찻집'이라 해도 문제 없으리라.

 

 

 

 

 

 

 


 
지금 주인의 증조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뉴언스 씨와 그의 직원들이었던 모양이다. 이 조그마한 가게에 일꾼도 참 많았다. 지금도 홀과 카운터에는 세 명밖에 없지만 주방 안쪽으로는 일 하는 이의 숫자가 제법 돼 보인다. 영국의 거의 모든 가게들의 ☞ 누리집에는 꼭 자기네 역사를 적어 놓은 곳이 있으니 이 티룸의 역사뿐 아니라 '메이즈 오브 오너'라는 이 익숙한 듯 환상적인 맛이 나는 페이스트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자.



"The Maid of Honour cake has been part of Richmond history for nearly 300 years. It Is believed that Henry VIII was the first to use its name when he met Anne Boleyn and other Maids Of Honour at his Royal Household of Richmond Palace eating the cakes from a silver dish. The first Richmond Maids of Honour shop can be traced back to the early 18th century and it is here Robert Newens the present owners great great grandfather served his apprenticeship. The cakes soon became a feature of taking tea in fashionable Richmond.

 

In 1850 Robert Newens continued the tradition of selling and making Maids Of Honour and in 1860 moved his shop to Kew where it can still be found to this day. The fifth generation of The Newens Family maintain this tradition and continue to serve their long standing speciality "Maids Of Honour". The bakery and tearooms also provide a mouthwatering experience for any visitor and offer a huge variety of high quality home made cakes, meat pies, cream teas and traditional English Luncheons. The shop now holds its own unique place in Richmond's history having served its community and its visitors for over a century and a half.

 

 

 

 

 

 

 



하나 더 사 먹자. 이 작은 파이 하나가 우리돈으로 자그마치 오천원이 넘는다.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파이는 먹어 본 적이 없다. 알록달록 겉은 화려해도 맛은 대개 거기서 거기인 파이들만 먹었었는데 (일급 호텔 베이커리의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 이 메이즈 오브 오너 파이는 발군의 맛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맛은 제법 복잡하다. 대개 잼, 달걀, 치즈, 설탕, 레몬 제스트, 아몬드 가루 등을 얹어 굽는다는데 이곳의 레서피는 그야말로 며느리도 모른다고. 이걸 사려고 동네 주민들이 차를 마시는 내내 계속해서 들락거린다. 바삭거리면서도 촉촉한 식감, 기분 좋게 따뜻한 온도가 풍미를 잘 살린다. '메이즈 오브 오너'라는 이름말고도 풀어서 '잉글리쉬 아몬드 치즈 케이크', '리치몬드 타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레서피도 만드는 이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딸기 타트도 하나 더. 
이런 건 이제 집에서도 3분이면 후딱 조립해 먹는다고 오만·자만·교만을 떤게 엊그제 같은데 이 딸기 타트는 심상치가 않네. 도대체 딸기에 무슨 짓을 했기에, 타트 반죽에 무얼 넣었기에 이런 맛이 나는 걸까? 홍차의 나라라더니 차음식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들 해먹는구나.

 

 

 

 

 

 

 



배가 아주 부르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게 먹고 슬슬 정신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감탄하며 먹느라 시간을 끌었더니 우리 주변의 손님들은 이미 티타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난 뒤였다. 꺄륵, 이제 여기저기 마음껏 찍어 보자.

 

 

 

 

 

 

 



우리 옆 자리의 손님들은 보아하니 '세트 티(크림 티에 이 곳의 스페셜 페이스트리 하나가 추가된다.)'를 시켰던 모양. 저런, 클로티드 크림을 하나도 안 먹고 고스란히 남겼네. 뚱보의 나라 영국에서도 중산층 이상 교양 있는 사람들은 지방 섭취를 매우 조심하며 몸매 가꾸기에 힘쓴다. 이제는 부자일수록 날씬하고 못 배우고 돈벌이 시원찮은 사람들이나 생각 없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고 뚱뚱해지는 세상이니 얼른 살 빼자.

 

 

 

 

 

 

 



벽난로, 선반, 도자기 접시, 알록달록 작은 입상들...
램프의 따뜻한 기운이 뉴언스 씨 가족이 몇 대에 걸쳐 모았을 소박한 장식품들에 운치를 더하는 듯.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이 장소에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하니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치긴 했어도 저 벽난로는 아마 처음부터 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큐가든 오신 김에 이곳을 방문하실 분들은 영업 시간을 숙지하고 가셔야 한다. 저녁 장사는 하지 않고 점심과 오후 티타임 때만 음식을 제공한다 하니 컴컴해질 무렵 문닫을 때 가서 차 한 잔 주세요 해봤자 소용없다. 바쁜 점심 시간에 가서 차를 달라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모양이다. 차는 티타임 때나 가서 즐기도록 하자.


장소가 좁고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아 바쁜 시간에 혼자나 둘이 가면 다른 손님과 같이 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작은 가게가 하루 잠깐 때만 장사해서 그 많은 직원들 월급을 주려면 손님들도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5파운드 이하로 사 먹는 것도 이런 좁은 가게에서는 실례가 되는 모양이니 돈을 좀 넉넉히 가지고 가시길 권한다. 우리는 둘이서 차 한 잔씩 마시고 딸기 타트 두 개와 메이즈 오브 오너 세 개를 시켜 모두 15파운드 정도가 소요됐다. 살찔 걱정만 아니었으면 나 혼자서도 타트 세 개, 메이즈 오브 오너 세 개 정도는 거뜬히 먹어 치웠을 것이다. 아직도 삼삼하다.

 

 

 

 

 

 

 


 
가게 문 닫을 즈음 나왔더니 손님들 차도 다 사라지고 없다.
이 때다 하고 티룸 사진 한 장 더.
과연 동네 티룸다운 소박한 모습이다. 꽃바구니조차. 


잠깐. 
오른쪽 옆에 있는 하얀 너는 무어냐? 정체를 밝혀라.

 

 

 

 

 

 

 



오호라, 방금 전 차음식 사러 들어갔던 분이 네 주인이로구나.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혹시 아니? 
주인님이 집에서 메이즈 오브 오너 잡수시다 한 입 주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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