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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영국 채리티 숍에 왜 중국 자사호가

단 단 2012. 3. 24. 00:39

 

 

 

 

 

힘든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채리티 숍들을 훑었습니다. 채리티 숍 순례 수년만에 처음으로 중국 자사호 발견. 아니, 이게 왜 여기 있냐?!

 

자사호가 뭔지 모를 게 분명한 영국인들은 아마 이걸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을 겁니다.

 

'티폿이 왜 이렇게 작아? 아무 짝에도 쓸모 없네. 한 잔도 안 나오겠구만. 가만, 돌 하우스doll's house용인가? 그렇다 해도 색이 너무 칙칙한걸. (뒤집어서 보고) 한자 있는 걸 보니 중국 거로구만.'

 

안 봐도 훤합니다. ㅋㅋ

 

 

 

 

 

 

 



젤리 빈처럼 생긴 꼭지가 인상적입니다. 색은 꼭 스니커즈 한입 씹은 것 같네요. 쵸콜렛과 캐러멜 색의 조화가 훌륭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가치를 모르고 또 값을 잘못 매겨 놓은 것 같았습니다. 공예와 품질이 꽤 괜찮아 보였는데도 2.49 파운드, 한화로 5천원도 안 하길래 '앗싸 가오리' 속으로 또 외치고 집어 왔습니다.

 

 

 

 

 

 

 



물대 끝이 야무지게 끊겼습니다. 용량을 재 보니 180ml쯤 됩니다.

 

 

 

 

 

 

 



대나무 형상 손잡이입니다. 대나무 마디 끝 옹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네요.

 

 

 

 

 

 

 



무늬가 다 있습니다. 찻자리 마치고 해 뉘엿뉘엿 질 무렵의 저녁 노을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일몰이 아니라 일출이었습니다.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반죽할 때 여러 색 흙을 겹겹이 쌓아 압축하고 늘려 모양을 낸 것 같습니다. 신기하죠. 자사호 안쪽에도 같은 무늬를 하고 있거든요.

 

 

 

 

 

 

 



작가의 낙관도 다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자사호 작가의 급을 엄격하게 나누고 있다는데, 이름난 작가의 작품에는 투자자들이 들끓는다고 하지요. 단단은 그럴 만한 돈도 없거니와 작가의 인지도나 유명세 따위에는 좀체 관심이 없어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런던 왕립미술원The Royal Academy of Arts에서 그 유명한 '여름전시회Summer Exhibition'를 개최합니다. 출품자들의 이름을 가린 채 심사위원들이 작품만 보고 선정을 합니다. 기성·신인 불문, 작품으로만 뽑겠다는 거죠. 그런데 정작 선정작 전시회에 가 보면요, 신인이나 무명 작가의 번뜩이는 작품이 넘치는데도 사람들이 유명 작가 이름이 붙어 있는 작품에만 빠글빠글 몰려 구매 희망 딱지를 붙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작이 궁금하고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름난 작가 작품에 투자해 훗날 돈 좀 벌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거길 간 거죠.

 

 

 

 

 

 

 



글자에 멋을 부려 놓아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진국량陳國良' 일까요? 동명이인도 있을 테고, 가짜가 유명 작가 행세할 가능성도 있을 테고, 하여간 정답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것 바가지 쓰지 않고 잘 사서 열심히 쓰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집 영감이 마음에 들어합니다.

 

 

 

 

 

 

 



가만 있자, 이 녀석한테는 무슨 차를 담아 우릴까요? 자사호가 생기면 꼭 해야 하는 고민이 바로 이거죠. 기공이 많아 차 향이 배기 때문에 한 자사호에는 계속해서 한 가지 차만 우려야 하거든요.

 

대나무 모양의 손잡이와 물대spout를 달고 있으니 은은한 대나무향에 훈향, 바닐라향, 쵸콜렛향이 같이 나는 기문 홍차를 우리면 좋겠습니다. 고로, 이 호에는 당분간 기문과 아쌈이 혼합된 <위타드Whittard of Chelsea>의 '1886 블렌드'를 우리기로 하겠습니다. 가향차와 인스탄트 분말차를 주로 생산하는 탓에 다쓰 부처는 위타드를 그간 우습게 여기고 있었는데 1886 블렌드 차를 마시고 나서는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창립 연도를 딴 시그너처 블렌딩이기 때문일까요? 이 차는 우아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태고를 연상케하는 그윽한 향이 납니다. 위타드 깡통들은 또 왜 이리 근사해진 걸까요. 참, 이 깡통의 색과 위타드 로고 바탕색이 바로 지난 번에 잠깐 말씀 드렸던 '로얄 블루'입니다. 코발트 블루보다는 좀 더 진하고 중후한 블루죠.

 

 

 

 

 

 

 



식구가 늘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자사호는 참 칙칙하고 노티 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볼 때마다 런던이나 파리의 쉬크chic한 쵸콜렛 부티크의 럭셔리 핸드 메이드 쵸콜렛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약 하나 안 입힌 흙 자체의 색이라니, 멋진 흙입니다.

 



단단이 소장한 또 다른 자사호들
젖꼭지 뚜껑을 얹고 있는 육감적인 우리 부들이
☞ 가지꼭지 뚜껑을 얹고 있는 앙증맞은 우리 가단이
☞ 점잖고 기품 있게 생긴 우리 지조 높은 누렁이

 

 

 

 

 

 

 


 닦고 쓰기에는 좀 불편해도

공예가 많이 들어간 호가 좋더라고요.

맨 왼쪽 대나무 찜기 모양 호가 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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