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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영국 동전, 아라비아 커피 포트 '달라dallah'

단 단 2012. 5. 8. 20:59

 


소식이 늦었습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새 글을 올리겠노라 다짐해도 쉽지가 않네요. 오늘은 영국 동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래의 영국 동전 사진을 자세히 보십시오.

 

 

 

 

 

 

 



디자인이 끝내주지 않습니까? 영국 살면서 생활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물건들의 디자인에 감탄하다 감탄하다 지쳐 이제는 두통이 다 생겼습니다. 영국 생활 초기에 다쓰 부처는 범죄율 높고 주거 환경 열악한 흑인 밀집 지역에 살았었습니다. 그런 후진 동네에 살았어도 분기마다 날아오는 구정 소식지의 디자인과 색상 안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더군요. 깜짝 놀랐더랬죠.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전문 디자이너를 따로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영국인들은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요.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언제 날 잡아 영국 디자인에 대한 제 소감을 한번 피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애플사의 아이패드 디자이너도 영국인이네요.


몇 년 전 공모를 통해 디자인을 바꾼 새 동전들입니다. 다 모으면 오른쪽과 같이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방패 모양이 됩니다. 누가 "영국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고 말합니까? 영국에 대해 잘 모르는 분임에 틀림없어요. 영국은 수집가의 나라죠. 전국민적 취미인 이 수집질이 계속해서 성립되려면요, 무언가가 끊임없이 새로 나와 줘야 하고 기존 것들의 외형이 주기적으로 바뀌어 줘야 하는 겁니다. 우표 수집가들을 위해 끊임없이 새 우표가 나와줘야 하고, 동전 수집가들을 위해 일마다 때마다 기념 동전이 나와 주고 통용되는 동전 역시 정기적으로 디자인이 바뀌어야 하는 거죠.

 

영국인들은 또 역사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는 사소한 일상 용품들의 역사 역시 중요한지라 물건의 변천사를 논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이 계속해서 변해줘야만 합니다. 그 때문인지 영국에서는 아예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동전 디자인을 바꾸어 준다는 규정이 다 있더라고요.

"멀쩡한 걸 왜 바꿔?" 가 아니라

"오, 이번에는 어떤 디자인으로 바뀔꼬?"

안경 추켜올리며 궁금해하는 게 논쟁의 핵심이라는 거지요.

 

동전이 바뀌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 - 군주가 나이 들어 늙어가는 모습이 국민들이 지니고 다니는 동전에도 성실히 반영되어야 한다는군요. 동전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면에는 항상 여왕의 얼굴이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할머니 얼굴이죠. 제 지갑에는 여왕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옛 동전도 있습니다.

 

 

 

 

 

 

 

영국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곳은 동전의 개수가 많고 화폐의 가치가 좀 높습니다. 이 동전은 한화로 무려 4천원 정도 합니다.

 

 

 

 

 

 

 

이건 2천원. 여왕 할머니 이마의 주름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건 천원.

 

 

 

 

 

 

 

4백원.

 

 

 

 

 

 

 

2백원.

 

 

 

 

 

 

 

백원.

 

 

 

 

 

 

 

4십원.

 

 

 

 

 

 

 

2십원.

 

종류가 정말 많죠? 무려 여덟 개나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전의 개수가 많고 화폐의 가치가 높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아래의 사진을 잘 보십시오.

 

 

 

 

 

 

 



지금도 종종 정신 놓고 있다가 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영국 생활 초기에 정말 숱하게 당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거스름돈 잘못 받는 일이었지요. 영국 돈보다 화폐 가치가 낮으면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외국 동전들을 섞어서 주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부도덕한 거죠. 주로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동전 취급을 많이 하는 구멍가게 같은 데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동전 종류가 워낙 많으니 헷갈려서 여행자나 유학생들은 속기 쉽습니다.


사진 왼쪽에 있는 동전은 아랍인 거리에 있는 어느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 사 마시고 거슬러 받았던 아랍 에미리트 동전입니다. (젠장, 아랍인 거리에 왜 스타벅스가 있냐고.) 오른쪽 것은 영국 10펜스[200원] 동전이고요. 환율 계산을 해보니 다행히 현 시점에서는 아랍 에미리트 동전의 가치가 비슷하게 생긴 영국 10펜스 동전보다 살짝 더 높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고 대개는 가치가 낮은 동전으로 바꿔치기 당하기 일쑤이지요. 집에 돌아와 발견하고 분히 여겨도 이미 늦은 일. 거슬러 받을 때 그 자리에서 잘 살펴야 합니다. 저희 집에도 현재 잘못 거슬러 받은 외국 동전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헛!

이 아랍 동전, 문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거 커피 포트 아닙니까? 이국의 향기가 물씬 나는 저 아라비안 커피 포트. 아랍 동전 실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잘못 받은 동전이긴 해도 다구 좋아하는 단단에게는 뜻밖의 수확이 아닐 수 없네요. 아래의 사진을 보십시오. 점입가경입니다.

 

 

 

 

 

 

 



작년 봄, 금속 광내기 취미가 있는 다쓰베이더가 채리티 숍 한 구석에 놓여있는 새까만 숯덩이를 집어왔었습니다. 한참을 닦았더니 동전에 있는 것과 같은 커피 포트가 되었지요. 너무 번쩍이지 않고 적당히 꼬질꼬질한 게 보기 좋죠?

 

 

 

 

 

 

 



누리터를 뒤져 이름도 알아냈지요. '달라dallah'라고 불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전통 커피 포트이더군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아주 근사할 것 같죠. 사진을 보니 사우디 아라비아에 여행도 가고 싶고, 당장 원두 사와 커피도 마시고 싶고 그러네요. 이 포트는 놋쇠brass 재질이라 뜨거운 물이 닿으면 쇠비린내가 날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건 그냥 장식품으로나 써야겠습니다. 주전자는 역시 도자기 재질이 최고입니다. 이제 슬슬 여행철이 다가오는데, 혹시 다이아몬드 쥬벌리와 올림픽을 기념해 영국 여행 오실 분들 계신지요? 영국 여행 오시면 물건 사고 거스름돈 받을 때 주의하여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사우디 아라비아 도시 '제다Jeddah'의 거리 조형물 <Dallah Fountain>.
이건 황동brass이 아니라 청동bronze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진 Susie of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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