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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영국 처녀들의 황송하기 짝이 없는 습관

단 단 2012. 9. 29. 01:32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잉글랜드 처녀.

도도해 보여도 의외로 나긋나긋한 구석도 있다는데.




여러분,  
이태리 처녀와 영국 처녀의 이미지를 잠깐 떠올려보세요. 어느 쪽이 더 사근사근 애교 있고 붙임성 있을 것 같습니까?

앵글로 색슨이나 게르만 쪽보다는 라틴 계열 사람들이 아무래도 햇빛을 많이 쫴서 성격도 좀 더 활달하고 여자들도 더 친절할 것 같지 않나요? 이태리 사람들은 양 볼 모두에 뽀뽀하면서 인사를 하고, 영국 사람들은 한 쪽 볼에만 뽀뽀 인사를 한다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걸 봐서도 이태리 여자들이 왠지 더 사랑스러울 것 같죠. (요즘은 영국에서도 양 볼에 뽀뽀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움와, 움와, 이렇게 두 번.)   

다혈질 마틴 루터가 유럽을 들쑤시던 시절, ☞ 에라스뮈스라는 온화한 성격의 인물이 중용의 덕을 지키며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대학자요 천재 문인이자 인문주의자 수도사였던 그를 유럽의 여러 군주들이 궁정 고문으로 모셔 가지 못해 다들 안달이었지요. 유럽 각지를 돌며 지식을 쌓고 교류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양반이 잉글랜드에 대해 쓴 흥미로운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공기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사내는 분별 있고 똑똑하다. 학식 있는 사람이 많다. 자기네 고전을 소상히 꿰뚫고 있어 비록 이탈리아는 아니었지만 아쉬울 것이 없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문예의 중심지 - 단단] 잉글랜드 처녀는 너무나 아름다울 뿐더러 황송하기 짝이 없는 습관을 가졌다. 어디를 방문하든 처녀는 늘 뽀뽀를 해준다. 어서 오시라고 뽀뽀, 다녀오시라고 뽀뽀, 잘 다녀오셨냐고 뽀뽀. 그 보드랍고 향기로운 입술에 한 번 맛을 들인 사람은 평생 이곳을 떠나지 못하리라." 

- 에라스뮈스, 잉글랜드에 대하여 (1497년)      


 

*   *   *

 

 

 

 


저는 빈티지 느낌이 나는 식품 깡통을 좋아합니다. 식품 중에서도 특히 홍차와 비스킷 깡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해로즈Harrods> 옛날 녹색 홍차 깡통들이 참 근사했는데, 더이상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이 <링톤스> 깡통은 어떤가요? 이것도 빈티지스럽죠? 'Rington's'가 아니라 'Ringtons'이므로 굳이 '링톤스'라고 불러줘야 한다는군요. 두 회사 'William Titterington'과 'Samuel Smith'를 합친 이름이라 'S'를 빼면 안 된다네요. 잉글랜드 북부Newcastle-upon-Tyne에 본부를 둔, 여러 블렌딩 차를 선보이고 있는 유서 깊은 회사입니다. 블렌딩은 다양해도 깡통은 하나라서 좋아요. 어떤 차를 사든 이 깡통에 담으면 되거든요. 티백용이라 깡통이 큽니다. 

깡통에 마차가 그려져 있는 이유는, 이 회사가 가게 운영이 아닌 배달로 성공한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배달 위주로 장사를 하고 있고요. 집집마다 차를 직접 배달해주는 독특한 영업 방침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포트넘 앤드 메이슨>, <웨이트로즈>, <막스 앤드 스펜서> 같은 쟁쟁한 회사나 유명 호텔, 유명 레스토랑 등에 차를 공급하는 실력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오늘날엔 2주에 한 번] 집집마다 차를 배달해주면서 독거 노인들 잘 지내고 있나 안부도 묻고 수다도 떨고 한다는군요. 역시 훈훈한 북부 사람들이죠. (영국에서는 남쪽 사람들은 깍쟁이, 북쪽은 인정 많고 후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삼백대의 배달 차로 영국의 30만 가구에 차를 배달, 4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하니 규모가 제법 큰 회사인 것 같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링톤스> 누리집을 한번 방문해보세요.

Ringtons Tea & Coffee  






 

 1950년대 홍차 배달 차van. 세월이 흘러

마차는 사라졌지만 배달 차도 어쨌거나 근사하죠.



 

 

 

 

 

 

<링톤스>의 여러 블렌딩 홍차 중에 오늘은 '코니써Connoisseur'를 우려봅니다. 수색이 아주 짙죠? 우유를 1큰술 넣었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홍차들로만 블렌딩을 했다는데, 아릿하고 쌉쌀해서 기름기 많은 단 과자와 잘 어울립니다. 차음식 없이 그냥 마시기엔 좀 써요. 진한 차라서 잠 깨울 때 좋겠네요. 그런데, 흔흔이가 혼자 와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흔흔이 사진을 찍고 보니 그동안 우리 집을 거쳐 갔던 수많은 개, 고양이들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고순이, 싹순이, 쭈리, 꼭지, 맘보, 탱고, 호롱이, 까롱이, 아지... 주인집에 사람이 하도 많아 밥 굶기 일쑤였지요. 반성합니다. 이제 반려견은 다시 못 키울 것 같아요. 마당 있는 이층집들은 죄 사라지고 아파트만 빼곡 들어선 탓에 발이 무려 네 개나 달린 녀석들을 집에만 가둬 놓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마음 아프기만 합니다. 요즘 들어 잘 못 해준 것만 자꾸 생각 나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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