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더치 페이 본문

영국 이야기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더치 페이

단 단 2013. 7. 21. 08:16

 

 

 

 

 

 

영국인들의 습관 중 가장 흠모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단단은 '자기가 먹은 음식 자기가 계산하기', 즉, '더치 페이going Dutch'를 꼽겠습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한국에서도 속으로는 다들 '더치 페이를 했으면' 바라지만 실천이 안 되고 있죠. 연장자를 우대하는 뿌리 깊은 한국식 정서 때문이겠지요. 윗사람 대접하느라 아랫사람이 도맡아 내든지, 혹은 윗사람이 체면 때문에 손사래치며 한사코 계산서를 집어들든지, 둘 중 하나죠. 이런 상황에서는 "관습의 수혜자"가 먼저 나서서 양해를 구하고 강경하게 더치 페이를 실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얘기해 볼게요.

 

석박사 학생들, 학내 강사, 외부 초청 강사 등 열 한 명이 모여 시내 소박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채식주의자가 끼어있을지 모르므로 모임의 대표가 인도 식당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어떤 종류의 식당이건 반드시 채식 메뉴가 있게 마련이지만 인도 식당에는 특히 더 많습니다. 인도에서는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채식 요리가 발달해 있거든요. 게다가 서양인들이 인도음식을 좋아해요. 일행 중에는 호주 사람, 노르웨이 사람도 끼어 있었는데, 다들 인도음식을 잘 먹습니다. 주문에서 계산까지의 과정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웨이터가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습니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킵니다. 다같이 나누어 먹을 난naan 빵과 기름에 튀긴 바삭한 뽀빠돔poppadom도 인원 수에 맞춰 시킵니다. 영국인들은 인도음식을 먹을 때 맥주를 곁들여 마시는 습관이 있어 술을 안 마시는 다쓰 부처 빼고는 다들 인도 맥주인 '킹피셔Kingfisher'를 한 잔씩 시켰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다들 즐겁게 대화를 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식사 시간 내내 이어집니다. 계산할 때가 되자 웨이터가 각 요리의 가격을 일일이 적은 긴 계산서 한 장을 식탁 가운데 놓고 사라집니다. 다들 주문할 때 자기가 먹을 음식의 가격을 눈여겨봐두긴 하지만 혹시 까먹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므로 웨이터가 일일이 음식 이름과 가격을 적어서 갖다 주는 겁니다.

 

각자 자기가 시켜 먹은 음식과 술 값 + 난과 뽀빠돔 전체 값을 11분의 1로 나눈 것 (하나씩 집어먹었으므로) + 이 둘을 합한 가격의 12.5%를 봉사료로 더해 총 지불해야 할 비용을 산정해 냅니다. 식사 시간 내내 재잘대던 일행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다들 진지한 얼굴로 머릿속에서 이 모든 숫자를 휘리릭 계산해냅니다. 이 때부터는 각 사람의 양심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덜 내는 얌체가 있으면 전체 계산이 안 맞게 될 테니까요.

 

다들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친 뒤 식탁 가운데에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 놓습니다. 잔돈이 없는 사람은 지폐를 내고 다른 사람이 낸 동전들 중에서 거스름돈을 집어가기도 합니다. 돈이 다 오가고 나면 일행의 대표가 모인 돈을 세어 전체 금액이 다 채워졌는지 확인한 후 웨이터를 불러 돈을 건넵니다. 미처 현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때 각자의 카드를 웨이터에게 주면서 "이 카드로는 XX파운드어치 결재해 주세요." 요청합니다.

 

번거롭기 짝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효율적으로 끝납니다. 열 한 명이 테이블에 앉아 각자 먹은 걸 계산하는 이 상황, 부럽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되면 (쥐꼬리만큼 돈 버는) 강사들이 그래도 돈 버는 사람이랍시고 학생들을 사줘야 하거나, 학생들이 돈 걷어 하늘 같으신 선생을 대접해야 하거나 둘 중 하나로 결말이 나지요. 연장자가 연소자 앞에서 체면을 차려야 하거나 아랫사람이 (힘 있는) 윗사람을 대접해야만 하는 사회에선 소통이 잘 될 리가 없어요. 사람이 만나면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염려가 생기죠. 내가 내도 부담, 각자 내도 구두쇠 소리 듣지는 않을까 부담.

 

 

 

 

 

 

 

 


저는 모든 사람이 비용을 일률적으로 나누어 내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회비' 관행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한국에서는 전골집이나 고깃집에서처럼, '정'을 나누느라 같은 음식을 시켜 나눠 먹는 일이 많죠. 같은 걸 먹어야 하기 때문에 썩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때도 있고, 또, 먹지도 않은 남의 술값까지 나누어 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저는 다같이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런 식의 외식이 탐탁지 않습니다. "오늘은 네가 샀으니 다음엔 내가 살게." 이것도 마뜩지 않아요. 빚이 남는 것 같고 숙제가 남는 것 같아요. 한국인들은 왜 각자 부담하는 걸 정이 없다고 여기는 걸까요? 이건 마치 '학생 인권을 존중하면 교사의 권위가 실추된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 아닙니까?

 

여기 영국에서는 교수가 제자들 밥 사 주는 일도 없지만 음대 교수가 자기 음악회 티켓을 제자들한테 떠넘기는 일도 없습니다. 제자들한테 공짜로 티켓 주는 일도 물론 없고요. 서로 절대 폐 끼치지 않아요.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나갑니다. 심지어 제자들한테 연주회 소식을 알리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학생들 중에는 저녁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이도 있고, 또, 각자 자기들 일정이 있을 테니까요. 지도교수 음악회 안 갔다고 미운 털 박히는 일은 없어요. 시간이 있는 제자나 직접 티켓 사서 관람하고 옵니다. 한국에서처럼 꽃다발, 케이크, 이런 거 준비해서 교수한테 안겨 드리고 오는 일도 없습니다. 명절, 생신 챙겨 드리는 일도 없어요. 명절과 생일은 제자들이 챙겨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교수의 가정사에 속하는 일입니다. 제자의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이름과 지도교수의 이름을 빛내는 겁니다. 미대생이었던 내 둘째 오라버니는 심지어 교수님 댁 김장날 불려가 마당에 김장독 파묻어 드리고는 녹초가 되어 집에 오곤 했지요.

 

하여간 저는 서양의 이런 개인주의가 참 좋아 보입니다. 앞으로는 식구들 모임에서도 큰오라버니 혼자 비용 짊어지는 일 없도록 막내인 제가 솔선해 제 몫의 돈을 박박 우겨서라도 내야겠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후배들한테 "그대들이 먹은 건 각자 알아서 내시오." 할 수 있을까요? 으음... 그놈의 체면 때문에 그건 아직까진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눈치껏 알아서 각자 부담하면 좋으련만.

 

 

 

 

 

 

 

 

 

그건 그렇고, 인도 커리는 집에서 다쓰베이더가 해 주는 게 제일 맛있고, 수퍼마켓에서 간편식ready meal 사다 먹는 게 그 다음으로 맛있고, 오히려 인도 식당에서 사 먹는 게 제일 맛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돈 없는 학생들이라 고급 식당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습니까. 제가 이래서 외식을 잘 안 합니다. 제가 시킨 저 인도 볶음밥 '비리야니Biryani'도 하도 맛없어 3분의 1도 못 먹고 남겼어요. 다쓰베이더가 시킨 새우 커리도 맛없었어요[첫 번째 사진]. 비용 들여 외식을 하는 이유는 몸에 나빠도 맛있는 걸 먹기 위함인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과 향이 다 죽은 끈적하고 맹탕인 커리가 나올 수 있는지. 흑흑, 금쪽 같은 내 돈.

 


☞ 코리안페이 두 얼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