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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6개월 더 숙성시킨 체다 덩이 Wookey Hole Cave Aged Cheddar Truckle 본문

영국 치즈

집에서 6개월 더 숙성시킨 체다 덩이 Wookey Hole Cave Aged Cheddar Truckle

단 단 2016. 5. 30. 00:00

 

 

 

 

 

작년 11월 말에 사 둔 웨스트 컨츄리 팜하우스 PDO 체다 덩이입니다. '정통' 체다인 거죠. 본고장인 영국에서 만들었다고 다 PDO를 달 수 있는 게 아니라 영국 남서부의 지정된 몇몇 마을에서 엄격한 조건의 원료 수급과 전통 제법에 따라 만들어야만 PDO 체다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체다가 매우 중요한 식재료이므로 어떤 곳에서 만들든 다 잘 만듭니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큰 치즈인데다 경쟁이 치열해 정당한 값 치르고 산 영국산 체다라면 다들 기본 이상은 합니다. 저는 평소에는 이런 전통 체다 대신 모던 체다를 사 먹습니다. 예전에 공들여 쓴 체다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체다 제대로 고르기

 

사진에 있는 것은 큰 체다 덩이를 가정용으로 작게 만들어 크리스마스 기념판으로 낸 제품이었는데, 이런 제품은 평소에는 볼 수 없고 명절 같은 특별한 때에나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더 숙성을 시켜 보겠다고 6개월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었습니다. 원래는 아래 사진에 있는 것처럼 덩치가 큽니다.

 

 

 

 

 

 

 

 


치즈 생산자의 치즈 숙성고가 아니라 판매자의 치즈 숙성고입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치즈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닐스 야드 데어리Neal's Yard Dairy>입니다. 전문 치즈 가게에서는 대량으로 납품 받아 자기들이 이렇게 따로 숙성을 더 시키기도 합니다.

 

 

 

 

 

 

 

 

 

"Wookey Hole Cave Aged Cheddar"라고 돼 있죠. 영국 남서부 서머셋 주에 '우키 홀'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거기서 숙성시켰다는 소리입니다. 웨스트 컨츄리 팜하우스 PDO 체다 중 유일하게 동굴 숙성 시키는 제품이라서 프리미엄이 좀 붙습니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고요한 공간이라 어느 나라든 동굴에서 숙성시킨 치즈들은 예스럽고 자연스럽고 신비롭다며 값을 좀 더 높게 쳐줍니다.

 

 

 

 

 

 

 

 

 

포장을 끄르니 곰팡이가 화석처럼 굳어 저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치즈가 숙성될 때는 원래 저렇게 표면에 곰팡이가 핍니다. 저는 영국 와서 자연치즈를 하도 많이 봐 이제는 치즈에 핀 곰팡이 보고는 눈도 깜짝 안 합니다. 어, 포장지에 갇혀 습해서 곰팡이가 좀 피었구나. 걷어 내지 뭐. 그리고는 냠냠. 먹는 데 아무 문제 없어요. 제 블로그에 찾아 들어오시는 분들 검색어 중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는데 뭐냐면요, 바로 "치즈 곰팡이"입니다. 다들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치즈에 핀 곰팡이 보고 '으악' 혼비백산해서 검색해 찾아 들어오시는 거지요. 이 글을 한번 보세요. ☞ 꽥! 치즈에 곰팡이가 피었어요!

 

표면에 천 자국이 보이죠?
체다뿐 아니라 영국의 전통 하드 치즈들은 이렇게 천으로 싸서 숙성을 시킵니다. 응유를 큰 벽돌 모양으로 잘라 쌓아 유장을 빼내는 '체다링cheddaring'과 천으로 감싸 숙성시키는 이 '클로쓰바인딩clothbinding'은 영국 하드 치즈 제법의 양대 특징입니다. 현대의 공장제 대량생산 체다들은 짧은 숙성에 들어가기 전에 비닐로 치즈 덩이를 싸 버리죠. 치즈가 숨을 쉴 수 없는 이같은 방식에 비해 천으로 싼 것들은 섬세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맛이 납니다. 곰팡내와 흙내음 같은 대지의earthy 맛도 물씬 나고요. 천으로 감싸는 작업을 별도로 해주어야 하고 숙성 기간 동안 수분 손실이 10% 이상 일어나므로 치즈 무게가 줄고 생산자로 하여금 비용과 노동을 더 들이게 만들어 값이 비싸집니다. 그래도 이 복잡한 자연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꼭 클로쓰바운드 치즈를 삽니다. 제이미 올리버도, 고든 램지도, 체다를 요구하는 레서피에는 꼭 이 클로쓰바운드 체다를 쓰게 하죠.

 

 

 

 

 

 

 

 


원래는 살살 옷을 벗겨야 하는데, 별로 이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숙성을 오래시켰더니 겉옷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어요. 그냥 칼로 깎습니다. 대리석이 따로 없네요.

 

 

 

 

 

 

 

 

 

칼로 곰팡이 핀 곳들은 잘 도려냅니다.

 

 

 

 

 

 

 

 

 

맛을 봅니다.
두근두근...

 

아아...
이런 진하고 복잡한 맛이라니...


비닐에 싸여 숙성된 것들에 비하면 바깥쪽은 질감이 약간 건조하나 안쪽은 여전히 촉촉합니다.

 

제 생각엔, 요리에 녹여서 쓸 체다는 블록 형태의 일반 모던 체다로 사시고, 전통 제법으로 만든 이런 클로쓰바운드 체다는 치즈보드에 올려 그냥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리에 쓰기에는 좀 아깝습니다. 다른 재료들에 묻혀 복잡한 맛과 매력적인 그 대지의 맛이 많이 가려질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이런 정통 클로쓰바운드 영국 체다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유 치즈들은 이제 수입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죠? 희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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