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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집에서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처럼 치즈 코스 내기

단 단 2016. 6. 15. 00:00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에 가면 저는 늘 음식 양이 너무 많아 치즈 코스를 못 시킵니다. 집에서나 즐길 수밖에요. 오늘은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처럼 치즈 코스 내는 법을 귀띔해 드리겠습니다. 아, 이런 건 어디 가서 돈 받고 강의해야 하는데.  

식후에 내는 치즈 코스는 콕테일 파티나 와인 파티에 내는 치즈보드와 다릅니다. 식후 치즈 코스는 양이 훨씬 적어야 하고, 요리처럼 주최자가 개인 접시에 일인분씩 담아 제공을 해야 하죠. 콕테일이나 와인 파티 때처럼 식탁 가운데에 치즈들을 큼직한 덩어리로 올려 놓고 각자 알아서 잘라 먹게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치즈를 담는 개인 그릇은 다음과 같은 여러 재질의 것을 쓸 수 있습니다.

 

 

 

 

 

 



왼쪽은 검은색 돌판slate, 오른쪽은 나무판입니다. 흰 대리석도 많이들 씁니다. 셋 다 멋스러워서 좋긴 한데 관리가 까다로워 저는 개인용 치즈 코스 그릇으로는 셋 다 추천하지 않으렵니다.

 

저 검은 돌판은 세척이 용이하긴 하나 너무 연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잘 부서지고 어떤 때는 결대로 큼직한 파편이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가정집이 손님 수대로 준비하고 있기에는 비실용적이죠. 게다가 검은 돌판은 큼직한 것을 한두 개 준비해 위에 크기가 큰 치즈 조각들을 이것저것 얹을 때나 멋스러워 보이지, 개인용 작은 돌판이 식탁 위에 여러 개 올라와 있는 것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검은 돌판은 식탁에 적게 올라 와 있을수록 돋보입니다. 

흰 대리석은 사람 수대로 올려도 멋있기는 하나 이건 또 너무 무거워서 추천하지 않으렵니다. 대리석판 들 때마다 저는 심장이 뻐근해집니다. 여러 개를 다루다간 파티 끝나고 나서 호스트 병 납니다. 이것도 큰 것을 식탁 위에 센터피스처럼 놓는 용도로나 활용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무는 자연스럽고 멋스러워 보이기는 하나 테이블 세팅 환경을 다소 따집니다. 흰 식탁보 깐 격식 있는 테이블에는 안 어울릴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끈끈하고 흐르는 치즈들을 올렸을 경우 나무에 유지방이 배어 그 부분만 색이 진해지고 냄새가 뱁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가 고약하게 변질되고요. 그런데 나무이다 보니 물과 세제를 써서 마음껏 세척할 수도 없죠. 치즈용 그릇으로 가장 실용적이지 않은 재질이 이 나무입니다. 수분 적은 하드 치즈만 놓을 때는 괜찮습니다. 나무 보드도 사람 수대로 올리는 것보다는 가운데에 센터피스처럼 큰 게 몇 개만 올라와 있는 게 더 멋스러워 보입니다.

고로, 실용성과 미, 둘 다 따져 저는 도자기 접시로 권하겠습니다. 

 

 

 

 

 

 



가장 무난한 것은 아무래도 흰 접시입니다. 원형도 좋고 길죽한 직사각형도 좋은데, 원형을 쓸 경우에는 치즈를 시계의 눈금처럼 방사형으로 조로록 둘러서 배치하시면 됩니다. 마치 피짜 잘라 놓은 것처럼요. 그런데, 치즈 코스 전에 제공되었던 전식, 본식, 그리고, 이후에 제공될 후식 접시가 원형일 경우가 많으므로 치즈 코스는 각진 접시에 담아 시각적인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직사각형 접시는 한국식 생선구이나 김밥 한 줄 썰어 조로록 담을 때도 요긴하니 이런 접시를 보시면 몇 개 장만해 두세요. 푸른 기운 도는 흰색보다는 아주 희거나 우윳빛 도는 따뜻한 흰색이 예쁩니다. 

 

 

 

 

 

 

 


빳빳하게 잘 다린 흰 식탁보를 씌우지 않고 식탁의 멋진 나무 결을 그대로 살려 세팅을 한 경우에는 파인 다이닝풍 흰 접시들이 안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색이 좀 있고 두툼한 공방풍 접시들도 괜찮습니다. 치즈란 게 원래 자연을 품어 껍질 표면이 우툴두툴하고 곰팡이 흔적들이 얼룩덜룩 있으므로 이런 접시에 담는 것도 잘 어울립니다. 


 

 

 

 

 



집에 있는 치즈 10종 중 영국 치즈 5종을 추려 담아 보았습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대개 5종을 담아서 냅니다. 이 사진에서 치즈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식기 쓰려고 사다 놓은 것들 중에서 골라 담은 거라 이것들이 다 제 취향의 치즈들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프랑스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들은 프랑스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사명이므로 대개 프랑스 치즈들만 선을 보이고, 헤스톤의 <디너> 같은 곳에서는 영국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영국 치즈들만 선을 보입니다. 국적 상관없이 자유분방한 'modern European cuisine'을 표방하는 집들은 치즈도 다양한 국적의 것들을 냅니다.


 

 

 

 

 



같은 사진인데 이번에는 치즈의 질감texture에 따라 표시를 해보았습니다. 아래의 것들이 모두 포함되도록 다양한 질감의 것들을 얹으시는 게 좋습니다. 

보슬보슬 잘 부서지는crumbly 치즈
• 연성soft 치즈
• 반경성semi-hard이나 반연성semi-soft 치즈 
• 경성hard 치즈
• 푸른곰팡이blue 치즈 (반경성, 반연성 성상의 것이 많으나 블루 치즈는 늘 따로 분류를 하는 관행이 있음.)

크림 치즈, 신선 치즈, 가공 치즈 등은 올리지 않고 공들여 숙성한 치즈들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모짜렐라 같은 신선 치즈들, 페타, 파마산parmigiano reggiano 등은 맛있긴 해도 요리에 많이 쓰지 치즈보드나 치즈 코스 접시 위에는 여간해서 올리질 않습니다. 당절임 과일이나 생강 등의 부재료를 박은 맛치즈는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 파티 때 내는 일이 많습니다. 가공 치즈는 어떤 경우에도 올리지 않습니다. 


 

 

 

 

 

 


같은 사진을 이번에는 젖 종류별로 표시해 봅니다.
골고루 올리는 게 좋습니다.

• 소젖cows' milk
• 염소젖goats' milk
• 양젖ewes' milk 

양젖을 대개 'sheep's milk'라 표기하는데, 영국에서는 콕 집어 암양인 '유ewe'를 써서 표현합니다.  

한국에 염소젖, 양젖 치즈들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젖 치즈 중 유명한 것으로는 스페인의 만체고manchego, 프랑스의 록포르roquefort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이 반드시 '가장 맛있는'을 뜻하는 것은 아님.) 록포르는 너무 짜서 치즈보드나 치즈 코스 접시에 올리기엔 좀 부적합하고, 만체고를 사시면 되겠습니다. 둘 다 한국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접시 위에 치즈를 배치할 때는 순한 맛에서 점차 강한 맛을 내는 것 순으로 올리시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먹기 전에 설명을 잘 해 주십시오. 그런데, 먹어야 할 순서를 들어도 담소를 나누다 보면 잊어버리기 쉬우므로 그냥 처음부터 순서대로 접시에 올려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치즈 맛이 강하다는 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는데요, 풍미 자체가 진할 수도 있고, 소금 간이 셀 수도 있어 맛을 보시고 판단을 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혀는 예민한 것 같으면서도 다소 어리석은 데가 있어 짠 치즈를 맛이 진한 치즈로 오인하기가 쉽고, 풍미 강한 치즈를 짠 치즈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치즈들 중에서는 블루 치즈들이 간이 가장 셉니다. 풍미 강한 치즈를 먹고 순한 치즈를 먹으면 앞 치즈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맛이 잘 안 느껴지기도 하니 먹는 순서도 중요합니다.

감각 있고 눈치 빠른 분들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치즈 코스를 내는 데 대원칙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대원칙: 최대한 다채롭게 낼 것.

질감도, 젖 종류도, 맛도, 색도, 형태도, 다채로울수록 좋지요.


 

 

 

 

 

 


치즈에 곁들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쓴 '치즈와 비스킷의 궁합' 글도 보셨겠다, 사진에 있는 것처럼 좀 '있어' 보이는 아티잔 비스킷들을 종류별로 바리바리 놓고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욕망을 꾹 누르셔야 합니다. 식사 시간 사이에 갖는 콕테일 파티나 와인 파티와 달라서 식후 치즈 코스는 양을 많이 내면 안 됩니다. (그래도 한 치즈의 맛을 충분히 음미할 만큼은 제공을 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치즈를 너무 많이 줘서 문제, 한국의 파인 다이닝 업장에서는 양을 너무 적게 줘서 문제입니다.)

 

탄수화물을 올리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빵은 식전에, 혹은 식사 중에 이미 제공이 되었으므로 식후 치즈 코스에는 여간해서 올리지 않는 게 좋고, 비스킷도 가급적 적게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포도를 몇 알 올려주는 상투적인 관행이 있기는 한데, 포도가 보기에는 예뻐도 잘 어울리는 치즈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와인이 있는데 뭐 하러 생포도를 또 올립니까? 잘 어울리기는커녕 치즈 맛을 오히려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치즈 코스 다음에 후식이 제공될 것이므로 과일은 많이 올리지 않는 게 좋죠. 제 생각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이 치즈 코스를 내는 이유 중에는 와인을 마시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손님이 와인을 많이 마셔 줘야 영업집으로서는 좋거든요. 저는 치즈 곁들임 음식은 다음과 같이 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크랜베리 잼, 어니언 처트니, 즉석에서 깨서 낸 호두, <카스> 멜츠 오리지날 비스킷입니다. 크랜베리 잼과 어니언 처트니는 체다 같은 경성 치즈, 브리나 꺄멍베흐 같은 흰곰팡이 연성 치즈 모두에 잘 어울립니다.

 

블루 치즈는 간이 좀 세서 맨 입에 먹기 힘들므로 비스킷 한두 개 정도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데, 탄수화물 먹기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호두를 한 알 까서 같이 올려 주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블루 치즈와 호두는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즐겨 오는 클래식 조합으로 맛이 잘 어울립니다. 블루 치즈 먹고 얼얼해진 입 안을 호두가 중화시켜 주죠. 미리 깐 호두보다는 넛크래커 써서 방금 깐 신선하고 고소한 호두를 올리는 게 좋습니다.

 

<카스> 멜츠 오리지날은 어디서나 구하기 쉽고, 값도 싸고, 어떤 치즈에건 잘 어울리고, 치즈 맛을 돋보이게 하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크기도 딱 알맞아 추천을 드립니다. 비스킷 고르는 고민만이라도 덜어 드리기 위해 제가 이름을 콕 집어 밝혀 드리는 겁니다. 수많은 치즈용 비스킷을 수많은 치즈와 함께 맛보고 나서 내린 결론입니다. 비싼 아티잔 비스킷이라고 반드시 치즈에 더 좋은 궁합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비스킷은 직접 구운 걸 내셔도 되고, 선호하는 제품으로 취향껏 골라 올리셔도 됩니다.  


☞ 크랜베리 잼 만들기
☞ 어니언 처트니 만들기
☞ 어떤 치즈에든 무난하게 어울리는 <카스> 멜츠 오리지날
☞ 치즈와 비스킷의 궁합에 대하여
☞ 콕테일 파티나 와인 파티 때 낼 치즈보드 꾸미기
☞ 치즈 보관법

 

풍요로운 식생활, 즐거운 치즈 생활 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머리 속에 있는 것을 탈탈 털어 적어 보았습니다. 치즈 다섯 종을 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달린다 여기시면 영국산 체다나 네덜란드 하우다Gouda나 스위스 그뤼예르 같은 풍미 짙은 경성/반경성 치즈, 이태리 고르곤졸라(끈적이고 흐르는 '돌체'말고 좀 더 단단한 '피칸테'로), 프랑스산 꺄멍베흐나 브리(둘 다 내지 마시고 둘 중 하나만), 이렇게 세 종류만으로 우선 내 보세요.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이라서 언급해 봅니다. 블친 누룽지 님께서 영국의 스틸튼stilton도 한국에 들어가 있다고 소식을 주셨으니 고르곤졸라 피칸테 대신 스틸튼을 올리셔도 되겠습니다. 고르곤졸라에서는 향긋한 단맛이 많이 나고 스틸튼에서는 우리 된장 같은 구수한 풍미가 납니다.

치즈는 냉장고에서 꺼낸 지 최소 30분은 지나야 풍미가 회복되기 시작하니 이 점 염두에 두시고, 브리나 꺄멍베흐 같은 수분 많은 흰곰팡이 연성 치즈들은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아직 단단할 때 미리 썰어야 예쁘게 잘 썰린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세요. 시간 날 때 치즈용 칼에 대해서도 글을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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