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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아직도 헷갈린다 본문
▲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meat and two veg' 형식의 밥상
- trout, artichoke, green beans.
대학 교수들도 연구 실적이란 걸 계속해서 내줘야 잘리지 않고 학교에 붙어 있을 수 있다. 어느 작곡과 교수가 일년 내내 썼다 고쳤다를 반복해 가며 죽을 고생을 해서 20분짜리 대편성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했는데 동료 모 교수의 2분짜리 가곡 한 곡(피아노 반주와 성악, 두 명의 연주자로 구성)과 같은 연구 실적 점수를 받더라며 허탈하게 웃던 기억이 난다. 어느 성악과 교수가 여름 방학 내내 '셰익스피어 시에 의한 가곡 연구'로 논문을 써 발표를 했는데 동료 모 교수가 잠깐 시간 내 부산에 내려가 부산 갈매기 축제에서 노래 한 곡 불러 주고 온 것과 같은 연구 실적 점수를 받더라는 선배의 말도 기억 난다. 싸이월드에서 한참 도토리 거래를 하던 시절에는 30초짜리 음악과 15분짜리 클래식 음악 한 곡이 똑같이 도토리 다섯 개로 매겨져 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향해 탄식을 한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유학을 앞두고 도서관에 처박혀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집에 돌아온 나보다, 집에서 하루종일 영국 영화와 드라마 보며 킬킬거리던 다쓰베이더가 영어를 더 잘한다. 베짱이처럼 탱자탱자 놀기만 했는데.
나는 종종 다음Daum 첫 화면에서 하루종일 땀 흘려가며 준비한 '정성 가득 집밥' 블로그 글 소개를 본다. 반찬 가짓수가 하도 많아 젓가락을 한 번씩만 대도 밥 한 공기가 비워질 그런 밥상인데, 그 많은 반찬들 순회를 한 번이라도 더 할라 치면 밥 한 공기가 추가로 필요할 판이고, 보글보글 끓인 찌개까지 맛있게 먹으려면 밥 한 공기가 또 있어야 할 판이다. '밥 도둑' 밥상이다. 덧글들도 다들 차린 이의 정성을 찬양한다.
그런데,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의 관점에서 보면 현모양처의 이런 정성 가득 밥상보다는 사진에 있는 어느 개날라리 왕날라리 주부의 초간단 밥상이 더 낫다고 한다. 접시 위에 올라온 것이라곤 수퍼마켓에서 집어 온, 포장 뜯어 먹기만 하면 되는 양념 송어trout 구이와, 델리 코너에서 담아 온 기름에 잠긴 아티쵸크artichoke 구이와, 버터와 소금 넣고 잠깐 데치기만 한 줄기콩green beans이 전부다. 정성 면에서는 빵점짜리 밥상이다. 그런데도 이 밥상은 'long chain omega-3 fatty acid'가 풍부하다며 영양학자들로부터 가산점까지 받는다. 게다가 먹고 나서 설거지도 얼마 안 나와 환경론자들한테 박수 받고, 여기에 식후 치즈 한 조각까지 먹으면 '저탄고지족'들로부터 최고의 밥상으로 칭송까지 받는다.
남녀 관계에서는 정성 들여 열 번 찍으면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외의 세상사에서는 [춘향전] "지성이면 감천이라, 정성이나 들여 보자"가 반드시 통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아직도 헷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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