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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건강식이라 우기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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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건강식이라 우기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단 단 2016. 7. 14. 23:29

 

 

"한식이 최고 맛있어요."

라고 하는 건 취향의 문제이니 그런가 보다 하는데,


"한식은 최고의 건강식입니다. 서양인들처럼 먹다간 병 나요."
하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한식은 건강식이 될 수 있다." 

"서양식은 건강식이 될 수 있다."


어느 식문화든 건강식 구성이 가능하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한식이 건강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 보면, 한식은 최대한 짜지 않게 조리한 채소 중심의 정갈하게 잘 차린 밥상을 놓고 서양식은 꼭 파스트 푸드로 비교한다. 서양인들은 뭐 만날 파스트 푸드만 먹고 사는 줄 아는 모양. 공정하게 비교를 하려면 떡볶이나 국수 같은, 짜고 탄수화물만 잔뜩 있는 음식, 튀긴 뒤 맵고 짠 양념에 버무린 열량 높은 양념치킨 같은 걸 놓고 비교해야지. 게다가 한국은 인스탄트 라면 소비 압도적 1위국이다. 야식이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나라이고. 야식만큼 몸에 안 좋은 게 어디 있나. 차라리 오후 4시 티타임에 차나 커피와 함께 케이크 한 조각을 먹는 게 낫지.  



 

 

 

 

한국에도 이렇게 차려놓고 먹는 사람 수두룩하구만.

 

 

위암, 대장암 등 소화기 계통 암 발병률은 현재 한국이 세계 1위다. 한국인들은 갖가지 나물 반찬을 예로 들면서 채소를 이렇게 다양하게 먹는 나라는 또 없을 거라며 뿌듯해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생각이 좀 다른 듯하다. 불린 마른 나물들은 장폐색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대장암 전문의들은 많이 먹지 않도록 당부하기도 하고, 봄이 되면 언론들은 특정 봄나물과 산나물의 독소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서구식 식생활로 대장암 환자가 늘었다고 서양 탓하는 사람 많던데, 아니 그럼 서양인들은 죄 대장암으로 죽었게? 오히려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처럼 먹다간 위암, 대장암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치에 맞지.


한식이 생각만큼 건강식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이 말하면 "그럼 그 기름 많은 서양식은 건강식이냐?" 따지는 사람들이 꼭 있다. A를 개선하기 위해 A의 문제점을 논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엉뚱하게 '그럼 B는 문제 없냐?' 발끈한다는 건 일단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 데다, 서양인들은 자기들 음식을 건강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맛있어하면서 먹지. 그런데 우리는 우리 음식이 최고의 건강식이라고 우기면서 먹잖나.


한식과 서양식 중 어느 쪽이 더 건강식이냐 하는 것만큼 사실 소모적이고 답 안 나는 논쟁이 없다. (여기도 건강식으로 잘 차려먹는 사람 많다. 우리보다 단백질, 칼슘, 생채소를 더 많이 먹고.)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만만찮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내가 얻은 결론은, 음식이 먹을 만하게 느껴지려면 불행하게도 적당히 짜거나 적당히 기름지거나, 둘 중 하나는 충족을 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한식은 짰고 양식은 대체로 기름졌다. 영국 와서 확실히 소금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게 섭취하고 있으나 대신 지방은 많이 먹고 있다. 그런데 체중은 내가 영국에 막 도착했을 때보다 귀국을 앞둔 현재가 7kg이 덜 나간다. 영국 와서 더 날씬해졌다는 소리다. 재미있지 않나? 이유를 곰곰 생각해 봤는데, 음식을 짜게 먹지 않으니 양을 줄여 먹는 게 한결 쉬워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한식 백반을 먹으면 쌀밥만 300kcal가 넘는데다 짭쪼름한 밥도둑 반찬이라도 하나 끼어 있으면 많이 먹게 되기 일쑤잖나. 다이어트 기껏 잘 하고 있다가 짠것을 소량이라도 먹게 되면 식욕이 불일듯 이는 경험, 누구든 해보았을 것이다. 

 

 

 

 

 

 

 

서양 음식이 한식보다 짜다고? 서양 어느 나라도 한국보다 짜게 먹는 나라는 없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짜게 먹고 있다. 2010년에 조사한 전세계 나트륨 섭취 현황. ☞ British Medical Journal


유럽이나 미국에 여행 가서 음식 사 먹어 보니 훨씬 짜던데 무슨 소리냐며 항변하는 이들을 많이 본다. 그렇지 않다. 특정 식품에 짠 것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래도 우리 젓갈, 장아찌만큼 짜랴.) 우리처럼 매 끼 그렇게 짜게 먹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주식을 우리처럼 맵거나, 뜨겁거나, 달게 먹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음식을 먹을 때는 혀가 짠맛에만 집중할 수 있어 짠맛을 훨씬 증폭해서 느낄 뿐이다. WHO 통계를 보면 어쨌거나 주요국 중에서는 한국이 항상 나트륨 섭취 1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혀를 과신하지 말고 식품 포장의 나트륨 양을 살피거나 믿을 만한 통계를 찾아서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는 혈압이 높아지면 큰일나는 사람이므로 정상 혈압이었는데도 예방 차원에서 혈압약을 먹고 있다. (의사가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식품이나 식재료를 사면 항상 영양표에서 소금양을 유심히 살피고 한 번에 먹을 양을 결정하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 인간의 혀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는 영양표의 소금양을 살피면서, 그리고 치즈 시식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이를 테면, 소금은 훨씬 적게 들었지만 복합적인 진한 풍미 때문에 더 짜게 느껴지는 치즈들이 있다. 

 

영국음식은 게다가 서양 음식 중에서도 싱거운 편에 속한다. 노인들 많이 사는 동네의 식당들은 각자 자기 건강 상태에 맞춰 알아서 소금 쳐 먹으라고 채소 익힌 것에 간도 안 해서 낸다. 피쉬 앤드 칩스에도 간을 안 해서 내는 치피chippy들이 대부분이다. 영국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어제 뭐 드셨어요?" 물어서 국민들의 소금 섭취량을 계산하지 않고 24시간 소변을 받아 분석해 정확하게 집계하는 나라이다. 아직도 WHO가 권고한 5g보다 '훨씬' 높은 8.1g을 먹고 있다며 보통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데, 권고량의 2.5배를 먹는 우리 한국인이 코웃음칠 일이다. 우리도 24시간 소변 분석으로 집계하면 소금 섭취량이 지금보다 더 높게 나올지 모른다.   

 

지방은 확실히 서양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많이 섭취하고 있다. 나한테 짠 음식이 더 나쁜가, 기름진 음식이 더 나쁜가를 묻는다면, 흐음... 글쎄...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인들보다 버터를 훨씬 많이 쓰고 지짐판frying pan에 주먹만 한 버터 넣고 녹이는 짓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인데, 어떤 요리는 심지어 주재료 익힐 때 쓴 버터를 그대로 소스로 끼얹어 내기도 한다. (기차게 맛있다.) 이태리, 스페인 등 남유럽 음식에는 올리브 오일이 흥건하고. (기차게 맛있다.) 그런데도 이 세 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과 건강의 질 모두 우리보다 높다. 영국은 한국보다 평균수명은 0.7년 짧지만 건강 종합 평점은 월등히 높고. [OECD 38개국 건강 종합 평점: 스페인 12위, 영국 14위, 프랑스 18위, 이태리 19위, 한국 35위.] 한마디로, 우리 한국인은 골골대면서 오래 산다는 소리다. ☞ OECD 최근 자료

 

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나로서는 기름지게 먹었을 때보다 짜게 먹었을 때가 몸이 훨씬 더 힘들고 그 반응이 즉각적이다. 하루종일 목이 타고 정신이 혼미해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한식은 평소에 잘 안 해먹지만 아주 가끔씩은 조리법이 궁금해 호기심에 해볼 때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싱겁게 만들려고 애를 써도 기본적인 '한식' 맛을 내려면 어쩔 수 없이 나트륨을 많이 넣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식탁에서 김치, 장아찌, 젓갈 같은 염장음식 빼고, 장 빼고, 국 빼고, 찌개 빼고, 조림 빼고 나면 한식의 근간이 무너진다. 싱거운 쌀밥과 먹어야 하니 나물 반찬들도 어쨌거나 맨입에 먹는 채소 요리들에 비하면 간이 센 편이고 단품 요리들도 짜다. 특히, 면요리들의 나트륨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잡채를 몹시 좋아해 지난 설에 당면을 구해 난생처음 내 손으로 잡채를 만들어 보았는데, 통달하기 위해 조리법을 바꿔 가며 네 번을 연속으로 만들어 본 뒤 내린 결론: 잡채가 이토록 짠 음식이었다니. 

 

당면 자체에도 간을 해야 하는데다 채소와 고기도 각각 따로 간 해서 볶아야 제대로 맛이 나고, 한국에서 맛있게 먹던 그 맛을 내려면 당면과 채소를 합치고 나서 전체 간을 또 해야 한다. 내 평생 음식 만들면서 그렇게 많은 나트륨을 투입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싱거웠다. 게다가 쌀밥에 올려 먹을 잡채밥용 잡채는 더 짜게 만든다. 하얘서 순한 음식처럼 보이는 콩국수에도 소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 콩국뿐 아니라 면 자체에도 간을 많이 해야 한다.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면서도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맛있게 먹던 미역국 간이 되려면 내 기준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간장과 소금을 넣어야 했는데, 미역이 아무리 몸에 좋아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국이 이렇게 짠 것이었나? 그런데 찌개는 국보다 더 짜니 도대체 국민들이 일상식으로 얼마나 많은 나트륨을 섭취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데도 우리는 한식이 건강식이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한식을 종교처럼 받드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한식 세계화'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문구가 다 탄생할 수 있었겠지만.) 음식뿐 아니라 식재료를 놓고도 그런다. 걸핏하면 먹는 걸 애국과 결부시키고 쓸데없이 분통을 터뜨려 정력을 소모한다. 우리 농축수산물이 최고라는 소리만 듣다가 여기 와서 보니 그렇지가 않다. 영국에 비해 재배 및 생산 방법, 환경, 품종 다양성, 유통, 동물 복지, 장인 정신, 식품 포장 및 광고 문구, 요리 방송, 요리책을 포함한 음식 관련 출판물, 영업집 식기, 언론의 레스토랑 비평 등 무엇 하나 나은 게 없다. 자뻑과 국뽕이 왜 문제냐면, 개선과 발전 가능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우리 음식 맛있어하며 먹는 것은 좋으나 제발 건강식이라고 우기지는 말자. 서양 음식 탓 좀 그만 하고. 신문에서 건강 관련 기사만 냈다 하면 습관처럼 붙이는 문구가 '서양식 식습관 때문에'다. 한국인의 외식 품목 1인분당 열량이 가장 높은 것은 돼지고기수육, 감자탕, 돼지갈비구이 등이고, 나트륨 함량이 가장 높은 것은 짬뽕과 그밖의 면요리들이라는 ☞ 통계가 있는데도 밤낮 서양 음식 탓이다. 한국인이 짜게 먹고 있다는 기사 댓글에 "짜게 먹는 게 뭐가 문제냐, 대신 물 많이 마셔서 희석시키면 되지." 하는 사람도 다 봤다. 혈관 터뜨려 죽을 작정인가 보다. "천일염은 몸에 좋으니 많이 먹어도 된다."는 사람도 꼭 있다. 한국 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많이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헬리코박터균 한 번 가져 본 적 없는 '청정' 위장인데 식당에서 남의 침 묻은 재활용 반찬 먹다 각종 병균, 충치균 옮지는 않을까 그것도 걱정이다.

 

 

 

뭐여, 이것도 서양 탓이라고?

☞ 한식, 싱거워져야 영국 시장서 살아남는다

☞ 한식은 건강식이어야만 할까?

☞ 우선 일주일만 싱겁게 먹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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