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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중세인들의 의리

단 단 2019. 12. 23. 19:19

 

 

중세의 연인들.

 

 

 

성탄절에는 늘 모텔이 미어터진다길래 (므흣) 부모님께 둘러댈 알리바이를 고심하고 있을 불타는 청춘들을 위해 오늘은 특별한 중세 음악을 하나 걸어 보겠습니다.

살면서 혹시 '음유시인'이라는 용어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요즘은 이 용어 대신 '시인음악가'라는 더 정확한 용어로 부르는데, 11세기말부터 13세기말까지 프랑스 남부, 스페인 북부, 이태리 북부에서 활동했던 'singer-songwriter'인 '트루바두르troubadour'를 일컫습니다. 떠돌이 예인일 거라는 통념과 달리 궁정에 정착해 활동했던 엘리트 음악가들이었죠. 

이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사랑 타령도 있고, 
실연의 아픔, 신세 한탄도 있고,
교훈적인 것도 있고,
영웅의 행적을 기리는 무훈가도 있고, 
십자군 원정 함께 가자고 장정들 부추기는 내용도 있고,
또,
군주나 후원자에게 아첨의 찬사를 바치기도 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하고, 
못된 사람이나 행실 칠칠치 못한 사람 뒷담화를 까기도 하는 등

주제에 있어 인간 삶의 거의 모든 국면을 아우릅니다. 

그중 단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새벽 밀회가'인 '알바'. 
('alba'는 프로방스어로 '새벽'이라는 뜻.)  

알바의 가사 내용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밤새 밀회를 즐기다 새벽에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의 아쉬움을 담고 있거나,

밤새 애인과 밀회 즐기는 친구를 위해 망 봐 주고 있는 자의 노심초사를 표현하고 있거나. 

제가 걸어 드릴 곡은 후자에 속하는데, 친구의 애정행각이 들키지 않도록 조바심하며 신의 가호를 비는 내용입니다. (거기 신은 왜 끌어들여;;) 이 노래에서처럼 간혹 은혜를 입은 친구가 화답하는 대목이 따라 붙기도 합니다. 

잠깐.

잠도 안 자고 눈 비벼가며 친구의 밀회를 돕는다고라고라? 
허어, 중세인들의 의리, 참으로 흠모할 만한 것이었네요.  
하긴, 성탄절에 연인과 밤 새우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려면 요즘도 의리 있는 친구가 필요하긴 하죠. 

당대 유명한 트루바두르였던 기로 드 보르넬(c. 1140–c. 1200)의 알바 <영광스런 왕이여>를 스페인의 고음악 전문 단체의 연주로 들어 보시겠습니다. '영광스런 왕'은 신을 뜻합니다. 가사의 내용상 원래는 남성이 불러야 하는데 이 음반에서는 당찬 목소리의 여성이 부릅니다. 6절까지 다 부르면 너무 길어 두 절만 부릅니다.


 

 

 

 

 

 

영광스런 왕이여 Reis glorios

영광스런 왕이여 진정한 빛이시며 밝음이시며
강한 신이시여 주여 당신이 원하신다면
내 친구를 보살펴 주소서
밤이 된 후로 보지 못 한 나의 친구를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더 자지 말아라 밤을 새야지
동쪽 하늘에 아침별이 보이네
새 날을 가져올 아침별이. 나는 잘 알고 있다네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내 너에게 노래 부르리 
더 자지 말아라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네
새들은 숲 속을 날아다니며 새 날을 기다리네
너를 질투하는 이가 올까 두렵네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내 너를 떠난 후로 
한 잠도 못 자고 눕지도 못 했네
신에게 그리고 마리아의 아드님께 기도 드렸지
나에게 나의 진실한 친구를 무사히 돌려 달라고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여기 돌 위에서 
내가 잠들지 말라고 부탁했지
아침이 올 때까지 너를 지켜 달라고
나의 성실함이, 나의 노래들이 너를 괴롭혔다는 것을 아네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

"나의 사랑하고 친애하는 친구여, 나는 다시는 
아침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쁨을 맛보고 있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를 내 품에 안고 있네
그러니 그 미친 나의 적수가 와도 상관없네
그 새벽이 찾아온다 해도!" 





 

 

중세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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