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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대추야자 Dates, 메쥴 품종 Medjool Dates

단 단 2017. 10. 26. 00:00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영국의 수퍼마켓들과 식료품점들은 꾸덕꾸덕하게 익은 중동의 대추야자 열매를 갖다 놓습니다. 영국인들은 특이하게도 명절에 자국 전통음식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식품을 함께 늘어놓고 즐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푸딩, 크리스마스 케이크, 민스 파이, 멀드 와인에는 이국 향신료와 이국 재료들을 듬뿍 넣고, 프랑스 단것, 독일 단것, 이태리 단것, 중동 단것, 터키 로쿰lokum, Turkish Delight까지 늘어놓고 즐기죠. 시판되는 자국 치즈 종류가 프랑스보다 많은 나라인데도 치즈보드에 꼭 여러 나라 치즈들을 골고루 올려 놓아야 합니다. 먹는 일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해도 구색 갖춰 즐겨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세계시민'다운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국에 있으면 음식 공부하기가 오히려 좋아요. (요리 유학지로 영국 추천합니다. 농담 아닙니다.) 

☞ 유럽 4개국 단것 사다 차린 크리스마스 찻상  


대추야자 열매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메쥴 품종이 크리스마스 지나 떨이로 나왔길래 냉큼 집어 왔었습니다. 대추야자 열매date를 우리말로는 그냥 '대추'라고 번역할 때도 종종 있던데, 이게 우리나라 대추jujube와 얼핏 비슷하게 생겼어도 완전히 다른 작물입니다. 나무부터가 벌써 너무 다르게 생겼죠. 휴양지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그 키 크고 뾰족한 잎의 늘 푸른 나무 있잖아요. 팜유를 내는 ☞ 'oil palm'이나 코코넛 열매를 내는 ☞ 'coconut palm'과 헷갈리기 쉬운데 이건 ☞ 'date pal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대추는 포동포동 생생할 때 따서 말리지만 대추야자 열매는 나무에 달린 채 마르게 합니다. 농익어 가는 동시에 마르는 거죠. 그러니 단맛이 농축돼 가는 그 긴 시간 동안 새나 벌레로부터 뜯어 먹히지 않으려면 망을 씌워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중동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이집트, 이라크,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북아프리카와 파키스탄에서도 재배합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남부까지가 북방한계선 안에 겨우 드는데, 이보다 북쪽에서는 나무는 자랄 수 있으나 열매를 보기 힘들다고 하네요. 스페인 사람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져가 심은 덕에 미국에서도 소량이지만 생산을 합니다. 

그냥 두면 30m 넘게도 자랄 수 있으나 꼭대기에서만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수확을 위해서는 15m 이상 자라지 않도록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열매가 한꺼번에 익질 않고 알알이 익는 속도가 달라 여러 차례 수확해야 하거든요. 암그루 수그루 따로 존재하며, 암그루 100주당 수그루 한 주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두어 그루만 소유하고 있어도 온 가족이 먹고 살 만큼 열매가 많이 열린다니, 척박한 땅에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이 내린 중동의 과일, 대추야자 열매 


 

 

 

 

 


 성탄일 밤 베들레헴으로 가는 동방박사 세 사람.

대추야자나무일까? 아마도.

<로얄 코펜하겐> 크리스마스 기념 접시.

 

이스라엘 역시 이 대추야자 열매를 주식 삼았기에 성경에 '종려나무'라는 이름으로 자주 언급이 됩니다. 번영과 영광을 뜻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종려나무가 아예 ☞ 국가 문장으로 쓰이고 있고요. 제가 사 온 것도 이스라엘산이었는데, 'King Solomon'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참으로 적절해 보입니다. 그런데 메쥴 대추 품종 자체는 모로코가 원산이라고 하네요. 대추야자도 품종이 600여 종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영국인들과 서양인들은 사진에 있는 것 같은 반쯤 마른 대추를 좋아합니다. 무려 50%가 당이랍니다. 더 바싹 말린 열매에서는 최대 70%까지가 당이라 하고요. 한 입 먹어 보니, 와아, 명성대로 과연 어마어마하게 답니다. 설탕 한 톨도 가미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건조식품 중 이토록 단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아요. 꿀보다 달다고 하죠. 너무 달아서 저는 맨입에는 반 가른 것 한쪽만 겨우 먹을 수 있겠던데, 달긴 해도 맛은 끝내줍니다. 제가 원래 '군내' 나서 말린 과일들을 잘 안 먹는데 이 메쥴 대추는 군내 없이 퍼지나 토피, 캬라멜 같은 맛있는 단맛이 납니다. 열매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자연식품에서 이런 맛이 난다니 신기하죠. 끈적끈적 쫀득쫀득, 씹는 맛도 좋고요.  

 

 

 

 

 

 

 



중동 부호들의 마나님 따님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며 쇼핑한다는 런던 <해로즈> 백화점에도 당연히 대추야자 열매 매대가 있습니다. 진열 참 잘 해놨죠. 맛있는 품종 몇 가지를 엄선해 갖다 놓은 모양입니다. 

 

 

 

 

 

 

 



매대 왼쪽의 속 안 채운 것들만 품종을 적자면,


뒷줄 왼쪽부터 오른쪽: Sokari, Khidri, Kholas, Agwa

앞줄 왼쪽부터 오른쪽: Sagai, Medjool, Wanan  

 

(사진을 누르면 큰 사진이 뜹니다.)


 

 

 

 

이 대추야자 열매 숍이 취급하는 품종입니다. "Fresh"라고 쓴 이유를 아시겠지요. 따서 말린 게 아니라 가지에 오래 두어 수분을 날리기 때문에 어쨌거나 "생"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겁니다.  

럭셔리 대추야자 제품들

 

 

 

 

 

 

 



매대 오른쪽에는 속 채운 열매를 놓았습니다. 피스타치오, 피칸, 아몬드, 마카다미아 같은 견과류, 당절임 생강, 당절임 레몬, 당절임 오렌지로 채웠습니다. 쵸콜렛에 담갔다 뺀 것도 있네요. (이것도 사진 크게 띄워 보세요.)  

 

 

 

 

 

 

 


색상 대비가 멋져 피스타치오 채운 것만 따로 찍어 봅니다.

생산지 사람들, 즉, 중동 사람들은 대추야자 열매를 대개 우유, 크림, 치즈 같은 유제품 또는 견과류와 함께 먹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손님이 방문하면 상품上品의 대추야자 열매를 아라비아 커피와 함께 대접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대추야자 열매와 아라비아 커피? 오오, 캬라멜 맛이 나므로 커피와 잘 어울릴 게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쓰임새가 무궁무진해 중동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한 달 내내 다른 방식의 대추야자 열매 요리를 낼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맛있는 게 소문 안 날 리가 없지요. 유럽에서는 일찍이 로마 시대 때 중동에서 말린 대추야자 열매를 수입해다 먹었고, 영국에서도 중세 때 고기 요리에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산지도 아닌 나라의 명절 단 간식 목록에 버젓이 끼게 되었고요. 

 

 

 

 

 

 


영국인들의 케첩과도 같은 브라운 소스도 대추야자 열매를 주 원료로 삼습니다.
☞ 브라운 소스

 

 

 

 

 

 

 


뜨겁게 데워 먹는 영국의 전통 디저트 '스티키 토피 푸딩' 반죽에도 대추야자 열매가 갈려서 들어갑니다. 위에 장식으로도 얹고요. 이것도 별도의 글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스티키 토피 푸딩

한국에서도 이제는 구하기 어렵지 않죠. 품종을 밝히지 않은 제품들이 간혹 보입니다만, 한국에서 뜨끈한 '스티키 토피 푸딩'을 해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 
이 대추야자 열매date를 베이컨에 감싸서 많이들 드시죠. 저는 단맛만 있는 대추야자 열매보다는 단맛과 신맛이 함께 있는 말린 자두prune를 감싸서 구운 것이 좀 더 맛있었습니다. 레서피는 이 글을 참고하세요. 
☞ 데벌스 온 호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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