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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셨습니다 In Memoriam Queen Elizabeth II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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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방금 마치 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듯 말했는데,
영국에 10년 넘게 살면서 TV나 신문을 통해 늘 소식을 듣고, 동전·지폐·우표에 새겨진 얼굴을 보고,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귀 쫑긋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대국민 덕담을 듣다 보면 남의 할머니도 내 할머니 같아진다. 유학생도 이럴진대 영국인들(과 영연방 사람들)은 더하겠지. 왕실에 아기들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자라서 세례 받고 유치원 가고 학교 간다는 소식 들을 때마다, 내 일가친척 아이들 소식을 듣듯 반갑다. "아이구, 벌써 이렇게 컸어?"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자기 아이를 낳는다. 내 가문이 이어지듯 이들 가문도 이어진다.
수많은 무슬림 및 타 종교 국민들이 있어도 영국의 국교는 어쨌거나 개신교Church of England, Anglican Church이므로 성탄절, 부활절 같은 명절이나 장례, 결혼 같은 중요한 왕실 행사 때는 BBC가 어김없이 왕실 사람들이 참석한 예배를 생중계해 준다. 왕실은 영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continuity'의 성실한 이행자요, 바삐 움직이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것'을 상징한다. 내가 (날라리)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예술가라서 그런지, 이 엄격한 PC 시대에 왕실 사람들이 꿋꿋이 예배에 참석해 앉아 있는 걸 보면 좋다["Defender of the Faith"]. 무언가를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영국 국교회 예배는 음악회로서도 손색이 없다.) 노동당에 투표하는 사람, 보수당에 투표하는 사람, 녹색당에 투표하는 사람도 아우를 수 있는 게 이 왕실이고, 56개국 24억명(전세계 인구의 1/3)을 묶는 거대한 '친목 단체'의 구심점이 이 영국 왕실이기도 하다. 전부 따르는 건 아니지만 이들 나라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영어, 군조직, 학제, 럭비/크리켓/풋볼 같은 스포츠, 의회 시스템, 심지어 자동차 운행 방향까지도.)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가 늦게까지 함께 살아 주시다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선조인 빅토리아 여왕처럼 긴긴 세월을 외롭게 혼자 보내지 않으셔도 됐다는 것. ("여왕은 지난해 4월에는 74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또, 올해 재위 70주년인 플래티넘 쥬벌리platinum jubilee까지는 맞이하고 돌아가셨다는 것.
지난 6월에 사 두었던 <포트넘 앤드 메이슨>의 '재위 70주년 기념 홍차'를 부고 듣고 오늘에야 개봉.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 [BBC] Queen Elizabeth II: A Life in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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