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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크리스마스 크래커 Christmas Cracker

단 단 2018. 12. 30. 05:27

 

 



크리스마스가 우리 명절이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는 막 12월 24일에도 일해야 하고 12월 26일에도 일해야 하고, 슬퍼 죽것어요. 단단네 본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인데 도대체가 준비를 할 수 있어야죠. 요리고 베이킹이고 뭐고, 이맘때는 심지어 밥 먹을 시간 만들기도 힘듭니다. 25일 아침에 겨우 시간 내서 권여사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권여사님 댁 트리를 보고서야 크리스마스를 실감, 영국에서 바리바리 싸 온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은 꺼낼 엄두도 못 내고, 베이킹 못 한 지는 2년이 다 돼 가고, 너무 바쁘고 몸이 힘들어 한 해 동안 집에서 요리한 횟수도 열 번이 될까말까. 놀고 있는 내 불쌍한 냄비들, 그릇들, 베이킹 틴들. 흑.

 

 

 

 

 

 

 


권여사님이 십수 년간 국내 여행지 이곳저곳서 모으신 솔방울이랍니다. 수북이 담아 놓으니 근사하죠?

 

 

 

 

 

 

 


중식당에서 밥 사 먹고 돌아와 크리스마스 티타임을 준비합니다. 우리 권여사님이 미국 <레녹스> 사 크리스마스 그릇을 좋아하십니다. 저는 영국에 살다 왔으니 영국 크리스마스 그릇 애호, 독일 살다 오신 분은 독일 그릇 애호. 크리스마스 때 다들 좋아하는 예쁜 양식기 꺼내 놓고 흐뭇해 하셨죠? 물건은 우리를 추억에 젖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미니멀 라이프는 개뿔.

 

 

 

 

 

 

 



집안에 초등학생이 둘이나 있어서 올해는 고모가 조카들한테 재미있는영국 풍습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뭐냐면요, '크리스마스 크래커'라고 불리는 사탕 포장 모양의 선물 꾸러미입니다. 가운데 몸통 부분에 작은 물체가 하나씩 들어 있는데 뭐가 들었는지는 열어 보기 전까지 모릅니다. "얘들아, 고모가 사진 찍을 테니 잘 좀 들고 있어 바바바." 했더니 녀석들, 말도 잘 들어요. 저 고사리 손.  >_< 

 

 

 

 

 

 



이 크리스마스 크래커는 포장을 끄르는 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원래는 저렇게 팔을 'X'자로 꼬아 양 옆 사람의 크래커 끝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겨야 하는데,

 

 

 

 

 

 

 


힘이 보통 많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아이들이나 노약자는 대개 저렇게 1:1로 줄다리기 하듯 잡아당깁니다. 힘 줘! 

 

 

 

 

 

 



영차!
끙!

종이띠에 화약을 발라 놔서 크래커가 분리될 때 콩알탄 터지는 것 비슷한 소리가 납니다. 
"딱!"

 

벽난로 장작 탈 때 나는 "따닥crackle!" 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죠.

 

 

 

 

 

 

 


잡아당기다가 기운 빠져 잠시 쉬는 중인 권여사님과 막내아들. 처음 경험해 보는 거라 익숙지 않아 더 그렇죠. 

 

 

 

 

 

 

 


크래커 안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거창하고 값 나가는 물건들이 아니라 없어도 그만인 시시한 것들이에요. 재미로 하는 거지요. 동네 수퍼마켓에서 사 온 거라서 저렴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는데, 부잣집들은 고가의 물건이 담긴 럭셔리 크래커를 준비해 만찬상에 놓기도 합니다.  

 

 

 

 

 

 

 



크래커에는 작은 물건 외에도 이런 '아재 개그' 같은 재미있는 글과 퀴즈가 적힌 종이 쪽지가 들어 있고, 종이로 간단하게 만든 왕관도 들어 있습니다.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모두 종이왕관을 쓰고 음식을 즐깁니다. 재미있는 명절 가족사진이 생기는 거죠. 

 

 

 

 

 

 

 

 

 

크리스마스 크래커 잡아당기기는 대개 12월 25일 점심식사인 크리스마스 만찬 때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때 어느 '설탕 씌운 아몬드' 장사꾼이 판매 촉진을 위해 크래커 속에 담아 판 것이 그 시초라고 하는데, 지금도 장사꾼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네가 파는 물건들을 작게 만들어 크래커 속에 넣어 기획상품으로 내놓고, 백화점과 수퍼마켓들도 경쟁적으로 예쁜 포장과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크래커 세트를 내놓습니다. 화장품에서부터 간식거리, 계량스푼까지, 별의별 게 다 들어갑니다. 신문사와 잡지사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독자들의 크리스마스 크래커 선택을 돕기 위해 어느 회사의 크래커가 훌륭한지 미리 사서 비교한 뒤 순위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인디펜던트>가 꼽은 2018년 크리스마스 크래커 10선

 <텔레그라프>가 꼽은 2018년 크리스마스 크래커 18선

 

알뜰한 사람들은 다음 해에 쓸 크래커를 올해 크리스마스 지나 떨이로 나올 때 사서 보관해 두기도 합니다. 저도 떨이로 나온 걸 한 상자 사서 조카들 보여주겠다고 이삿짐에 넣어 이 한국에까지 가져왔습니다. 미량이긴 하나 화약이 발려 있어 비행기 기내 반입은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겨울에 영국 여행 갔다 이거 들고 돌아오시려는 분들은 잘 알아보고 들고오세요.

 

 

 

 

 

 

 

 

 

 

영국의 ☞ 어느 소규모 잼 회사가 낸 크래커입니다. 광고사진 근사하죠? 종이왕관, 메시지가 적힌 종이, 그리고 작은 병에 담긴 각기 다른 맛의 잼과 마말레이드가 들어갑니다.

 

 

 

 

 

 

 

 

 

힘센 장정들이라서 그런지 별 힘 들이지 않고 쉽게 크래커를 여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어우, 저거 힘 꽤 많이 듭니다. 악력 약한 사람은 맞잡은 사람한테 크래커를 홀딱 빼앗기기도 하고, 잘못하면 뒤로 자빠지기도 합니다.  

참, 
영상에 있는 네 젊은이 모두 우스꽝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jumper를 입고 있는데, 저것도 나름 크리스마스 전통입니다. 뜨개질 천국인 영국에서 시작돼 여러 나라로 퍼졌다고 하죠. ☞ 어글리 크리스마스 스웨터 사 입고 파티 참석하기 
내년 모임 때는 저희도 드레스 코드를 저렇게 정해야겠습니다. 올해는 그냥 무늬 없는 빨간 스웨터 입고 권여사님 댁에 갔고, 종이왕관 쓰고 간식 먹었습니다.

 

 

 

 

 

 

 

 

손이 야무진 사람들은 크래커를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집들도 있어 아예 공작용 '키트'를 팔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손재주 좋고 노는 것 좋아해서 한국에 이 풍습이 들어오면 대박 날 텐데요. 독일의 ☞ 대강절 달력 거는 풍습도 같이요. 멀드 와인(글뤼바인, 뱅쇼)과 슈톨렌은 그래도 찾는 사람이 많아졌더라고요. <코스트코>에서는 이태리 파네토네도 다 팔고요. 다 떠나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 입고 참석하는 문화부터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크래커 발명자인 톰 스미스가 설립한 크래커 회사 홍보 영상도 걸어 봅니다. 크래커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크래커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포장지도 만드는데, 재미있는 풍습의 근원이자 원조를 기려 영국 왕실에서는 이 회사의 제품으로 납품을 받는다고 합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도 설 명절을 맞게 되는데요, 명절음식을 집에서 장만하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중노동입니다. 그러나 서양인들 크리스마스 쇠듯 우리도 집 꾸미고, 예쁜 명절 그릇 꺼내고, 좋아하는 음악 틀고, 촛불 켜고, 선물과 카드 교환하고, 웃고 떠들고 노는 문화를 결합시키면 심리적으로 좀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 늘 안타깝습니다. 아니, 아니, 다 필요 없고, "명절 치르고 나면 당신이 갖고 싶어하던 그릇 사줄게." 해보세요. 아내들,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할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단단이 2018년 가족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고른 건 이것.
이케아에서 (떨이 할 때) 샀어요. (쉿!)
첫 사진에도 등장합니다.



☞ 영국 크리스마스 음식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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