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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성스러운 런던

단 단 2023. 12. 17. 23:00

 

 

우기라서 하루 종일 비 내리고, 

오후 4시면 해가 지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에는 대중교통도 멈추고,

상점도 문 닫고,

숙박 업소와 식당 음식 값은 치솟는데,

이때 런던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무모한 자가 있어

한때 런더너였던 단단,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런던을 떠올려봅니다.

  

'런던' 하면 여러분 머릿속에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요?

 

 

 

 

 

 

 

[pixabay]

 

저는 'Underground'라고 써 있는 지하철 간판과 빨간 2층 버스요. 런던에 살 때 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거든요. 서울의 지하철에 비하면 역사驛舍가 오래되어 낡고 비좁고 냄새 나 불편하기는 하지만 역마다 깨알같은 역사歷史와 문화가 담겨 있어 나름의 멋이 있습니다. 지하철이 최초로 개통된 곳이 바로 런던이지요[1863년]. 

 

그런데 'tube'라는 애칭에 걸맞게 열차의 단면이 동그래서 키 큰 분들은 열차 안에 오래 서 있기가 불편할 겁니다. 빅토리아 시대 때 터널을 동그랗게 뚫어 놓아 지금도 열차를 하는 수 없이 동그랗게 만들거든요. 한국처럼 역마다 안전문screen door이 설치돼 있지도 않을걸요? 관광철 붐비는 역에서는 심지어 승강장에 발 디딜 틈도 없으니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웬만하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시는 게 편할 거예요. 

 

 

 

 

 

 

 

 

 

또,

빨간 공중전화 부쓰와 빨간 우체통도 떠오르고요.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공중전화 부쓰 자체를 보기가 힘들어졌으니 보시면 기념으로 사진기에 담아오세요. 우체통은 어느 군주 때 세워졌는지 전면에 표기가 돼 있으니 그것도 기념 삼아 담아보세요. 저는 무려 빅토리아 여왕 때 세워진 우체통 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꼽은 최고의 영국 디자인 스물 다섯 가지

 

참,

영국에 소매치기 하는 집시는 드문 것 같지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스쿠터moped 타고 지나가면서 행인들 손에 있는 소지품을 순식간에 낚아채는 불량배가 늘었다고 하니 길에서 지갑, 스마트폰, 사진기 등을 꺼낼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 도난이 특히 잦다고 하죠. 여행 가서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으니 사진기는 반드시 스트랩을 써서 목에 거시고 일행이 촬영자의 주위를 잘 살펴주세요. 영국은 겨울이 우기라서 지금 여행 가시면 야외 사진 찍기가 조금 힘들긴 할 겁니다.

 

 

 

 

 

 

 

[pixabay]

 

런던의 상징, 블랙 캡과 바삐 걸어가는 런더너들도 떠오르고요.

 

정면에 세인트 폴 대성당의 둥근 지붕dome이 보이는데, 일요일을 끼고 런던에 여행 가시는 분들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웨스트민스터 사원(1245- )이나 세인트 폴 대성당(1675- ) 중 하나를 골라 예배에 참석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로 나눠서 둘 다 가보셔도 좋고요. (오전 예배는 세인트 폴 대성당, 오후 예배choral evensong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추천.) 둘 다 런던의 관광 명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고딕 양식, 세인트 폴 대성당은 (대륙식 요란한 바로크 양식이 아닌 영국식 차분한)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교회 건물은 그 안에 사람과 음악이 차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일에는 유료 및 무료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니 일정을 알아보고 참석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국의 교회들은 훌륭한 음악회장이기도 합니다.

음악회장으로 변신한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교회

 

 

 

 

 

 

 

[pixabay]

 

박물관이나 기차 역사들도 근사하니 건축물 사진 찍기 좋아하는 분들은 개장 시간을 알아보고 방문하셔도 좋고요. 건축물 전체를 감상하는 것뿐 아니라 담이나 창, 문, 문 손잡이, 벤치 등 정교하게 장식된 세부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영국에 살 때 진작 사진 찍는 취미를 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wikipedia]

 

다쓰베이더는 '런던' 하면

탬즈강을 가로지르는 연두색의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웨스트민스터 팔레스,

그리고

시계탑의 빅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합니다.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한 정말 멋진 건물입니다. 

특히 새해맞이 불꽃놀이 때 저 뾰족뾰족한 실루엣이 얼마나 근사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2012 런던 불꽃놀이

 

 

 

 

 

 

 

[pixabay]

 

시계탑과 대종 소리의 대명사 빅벤Big Ben.

소리를 들어볼까요?

 

 

 

 

 

 

 

 

 

많이 익숙하죠?

그런데 영국에 11년 살면서 빅벤 타종 소리를 가까이서 실제로 들은 건 두 번밖에 안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도 늘 대중교통 타고 지나다니기만 했지 실제로 내 발로 걸어서 건너본 건 딱 한 번 뿐이고요.;; 겨울에 블랙 캡 안에서 구형 아이폰으로 급하게 찍은 사진이 한 장 있길래 이거라도 감지덕지하며 올려봅니다. 런더너들 참 힘차게 걷는군요. 보폭 큰 것 좀 보세요. 

 

기독교 신자로서 느끼는 런던의 좋은 점, 영국의 좋은 점, 혹은 유럽의 좋은 점이랄까요, 지금은 다들 세속 사회가 되었고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도 많이 줄었다지만 곳곳에 기독교적 관습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혼, 탄생, 장례 등의 왕실 경조사나 명절, 신년, 현충일 등 국가의 중요한 날에는 기독교식으로 예식을 하고, 건축물이나 공공 기물에도 기독교적 상징이 많이 담겨 있는 것을 봅니다. 무명 용사의 비석에는 이름 대신 'Known unto God'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일상에서 찬송가를 대중음악처럼 연주하고 즐깁니다. 찬송가집에 영국산 찬송가가 많은데, 특정 종교와 신자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그냥 자기들의 음악 유산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의 '삼엽trefoil' 장식이 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성삼위일체holy trinity를 상징합니다. 이 삼엽 장식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건축물의 아치 문이나 창틀에서도 정말 흔히 볼 수 있는데, 동글동글해서 예쁘기도 하고 성스러운 의미도 함축하고 있어 제가 좋아하는 서양 문양 중 하나입니다. 이 위의 빅벤 사진도 크게 띄워 놓고 들여다보면 삼엽 장식이 조로록 둘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오후의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흠흠.

 

자자자, 

우기인 겨울에 런던 가서 날씨 왜 이러냐고 투덜거리지 말고, 다들 여름에 가서 즐기다 오세요. (뽐뿌)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영국의 먹거리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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