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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런던 홍차 여행 안내

단 단 2009. 12. 8. 16:03

 

 

 코벤트 가든 마켓에서 공연 구경 중인 동양인 관광객



날씨가 따뜻해지고 공기 중 날벌레 밀도가 높아지는 걸 보니 관광철이 슬슬 다가오는 모양이다. 런던 시내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버글버글.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올 여름엔 해외 여행 하실 분들이 많이 줄었겠지만 그래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런던에 잠깐 들르실 홍차 애호가들을 위해 오늘은 모처럼 도움이 되어 드릴 만한 일을 좀 해야겠다. 만일 <홍차테마여행> 비슷한 것을 하고 싶은데 런던에서 단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 분들, 이런 분들을 위해 동선을 알려 드리자면,

 


1. 일단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옷을 준정장풍으로 번듯하게 잘 차려입고 운동화나 밑창 좋은 단화를 신은 채 숙소를 나선다. 정장에 운동화라니, 좀 우스꽝스럽지만 런던엔 생활 속 빨리 걷기를 실천하는 이런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 천지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멋쟁이 뾰족구두는 따로 가방에 넣어 갖고 나온다. 옷을 잘 차려입어야 하는 이유는 조금 있다가 알려 드린다.

 

 

 

 

 

 

 

  30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트와이닝> 숍

 



2. 제일 먼저 영국의 유명한 '신문사 거리Fleet St.' 근처에 있는 <트와이닝> 숍을 들르도록 한다. 지하철역으로는 템플Temple 역이 가장 가깝긴 하나 좀 걸어야 한다. 트와이닝 숍 앞을 지나가는 버스 노선이 많으므로 버스를 타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대법원Royal Court of Justice 바로 맞은 편에 있으므로 찾기는 어렵지 않다. 버스 안내 방송으로 "Royal Court of Justice"를 듣고 점잖게 내리면 된다. 무척 작은 숍이긴 하나 1717년부터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었던 역사적인 숍이니 꼭 방문해보자. 아침 9시부터 문을 연다 하니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도록 한다.


참고로, 영국에서 트와이닝 차들은 우리 한국의 대형 마트에서 설록차 티백 보듯 흔하게 볼 수 있으므로 꼭 이 트와이닝 숍이 아니더라도 영국 어느 수퍼마켓에서든지 쉽게 구할 수가 있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트와이닝 차는 약간 저렴하고 양도 많은 편. 숍에서는 대신 제대로 된 틴 제품 루스 티를 살 수 있다. 낱개 포장된 모둠 티백이나 벌크 티백은 수퍼마켓과 트와이닝 숍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 길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테스코>나 <세인즈버리즈>, <아스다> 같은 대형 수퍼마켓에서 사는 것이 유리하다.

 







 국제 인종 전시장 코벤트 가든




3. 트와이닝 숍을 다 구경했으면 이번에는 지도를 참고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코벤트 가든으로 향하자. 트와이닝 숍에서 걸어갈 수 있는 만만한 거리에 있다. 열시 조금 넘어 코벤트 가든에 도착하도록 해 <티팔레스>와 맞은 편의 <위타드 오브 첼시> 숍을 둘러본다. 가게 문을 10시에 여니 9시에 문을 연다는 트와이닝을 먼저 둘러보고 슬슬 걸어서 오면 얼추 시간이 맞는다.

 







 코벤트 가든으로 새로 이사한 <티팔레스>



며칠 전인 4월 16일, 티팔레스가 찾기 힘든 노팅힐 부근에서 코벤트 가든으로 장소를 옮겼다. 부유하고 호젓한 동네에 있었던 널찍한 옛 집에 비하면 새 집은 1층과 지하로 된 복층 구조이긴 해도 비좁고 답답한 감이 좀 있다. 새 집에서는 차를 즐기던 기존 티룸 공간을 과감히 없애고 아예 차 소매에만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내 그럴줄 알았다. 호텔이나 유명 티룸의 아프터눈 티보다는 저렴하다 해도 결코 싸지 않았던데다 상차림 수준은 훨씬 못 미쳤으니 가격 대비 만족도나 호화로움에 있어서 뭐 하나 나은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를 파는 것과 찻잎을 파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 싸고 푸짐하게 차를 즐길 방법은 굳이 티팔레스말고도 많으므로 어설픈 티룸 공간을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이제 양질의 찻잎 공급에나 신경 쓰시도록.

 








가게 안이 비좁아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거리와 각도가 나오질 않는다. 밖에서만 한 장.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만 했던 나로서는 북적대긴 해도 버스 한 번만에 올 수 있는 이 새 집의 위치가 더 좋긴 하다. 홍차 애호가 관광객들도 코벤트 가든 구경나온 김에 들를 수 있어 동선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진열해 놓은 차 향도 맡아 보고 <오늘의 차> 시음도 꼭 해보자.

 








 <티팔레스>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위타드 오브 첼시>.
코 앞에 경쟁자 생겼으니 위타드 이제 큰일났어.



<위타드 오브 첼시>도 1층과 2층 복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위타드의 전문인 달달한 인스턴트 시음차를 꼭 얻어 마시고 2층으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구경하도록 하자. 다른 지점에는 없는 셀프 블렌딩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자기 차를 자기가 직접 블렌딩해 소량 구입해 올 수도 있다. 귀여운 그림의 다구들도 많이 갖추고 있다. 차품질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티팔레스가 위타드보다는 훨씬 낫다. 값도 물론 더 비싸다.

 








코벤트 가든 <막스 앤 스펜서> 백화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보라.
독특한 가게가 하나 나온다.




4. 코벤트 가든 지하철역 맞은편에 있는 <막스 앤 스펜서> 백화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 <티하우스The Teahouse>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티숍도 빼놓지 말고 같이 둘러본다. 윌리엄슨의 '코끼리 틴'들을 종류별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막스 앤 스펜서> 백화점을 둘러보고 싶으면 이 코벤트 가든에 있는 간이점말고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제대로 된 큰 <막스 앤 스펜서>를 가는 게 좋다. 그곳 지하 식품부에는 차에 곁들일 만한 호화로운 먹거리들이 가득해 런던 사는 나도 갈 때마다 곧잘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 <해로즈>와 <포트넘 앤 메이슨>, 그리고 이 옥스포드 서커스 <막스 앤 스펜서> 식품부는 런던에서 호화로운 식료품 가게로 정평이 난 곳들이다. <웨이트로즈>라는 수퍼마켓 체인도 질 좋고 신선한 식품들과 티타임용 간식거리로 유명하다.

 








<해로즈>백화점 장난감 코너의 빨간 2층버스와 곰돌이들.
홍차 코너를 찍은 사진이 없으니 이거라도.




5. 코벤트 가든 지하철역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다섯 정거장만 가면 나이트브릿지Knightbridge 역이 나온다. 전철로 15분밖에 안 걸린다. 나이트브릿지에는 그 유명한 <해로즈> 백화점이 있다. 홍차 커피 초콜릿 비스킷 코너를 둘러보되 둘러보기만 하고 사지는 말라. 공항 면세점에서 똑같은 홍차 면세로 다 팔고 있으니 미리 사서 수화물 무게 늘리지 말라. 요즘 항공사들 러기쥐 인심 박해졌다고 들었다. 생활용품 코너로 올라가 영국의 각종 유명 도자기 브랜드의 티세트들과 근사한 식탁보들도 구경하자.

 







 마음이 삐딱한가. 왜 이리 사진들이 자빠지는 것인가.




6. 해로즈 백화점을 다 구경했으면 이제 해로즈 맞은 편에서 14번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서커스에 있는 <포트넘 앤 메이슨> 백화점으로 가자. 20분밖에 안 걸린다. 포트넘 앤 메이슨 바로 맞은 편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 앞에서 내리면 된다. 1층의 홍차 커피 초콜릿 비스킷 코너를 둘러보고 바로 위층 생활용품 코너로 올라가 멋진 찻주전자들과 이름난 영국의 은제품들을 구경하도록 한다. 마리아주 프레르의 다구들도 다 갖다 놓고 판다.


은제 다구를 살 때는 "Is it silver?" 라고 물어보자. 점원이 "Silver-plated"라 하면 은도금 제품이란 말인데, 도금 제품은 솔리드 실버에 비해 값이 좀더 싸고 실용적이라 이것도 쓰기에는 나쁘지 않다. 영국인들은 자기네 은제품이 최고라고 여긴다. 다른나라 은제품과 차별을 두기 위해 영국의 스털링 실버 제품에는 영국법에 의해 항상 홀마크를 표시하게 돼 있으니 영국 은제품을 살 때는 제품 구석이나 밑면에 이 홀마크들이 꾸욱 찍혀있는지 확인하자. 은이지만 은은한 노란빛이 감돌아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맛이 있다.

 







 런던 리츠 호텔 아프터눈 티룸 <팜코트Palm Court>




7. 오후 4시경. 이때쯤 되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으므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일 것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 여자 화장실로 가 옷 매무새와 화장을 좀 고치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뾰족구두로 갈아 신는다. 아까 해로즈 백화점에서 버스 타고 왔던 방향으로 다시 2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리츠The Ritz> 호텔이 나온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쳤을 터이니 이곳의 아프터눈 티로 홍차 기행을 우아하게 마무리 하도록 한다. 양이 많으므로 점심을 굶거나 길거리에서 군것질로 대충 때운 후 가도 된다. 리츠 호텔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므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와야 한다. 꼭 리츠 호텔이 아니어도 되지만 영국인들도 리츠 호텔의 아프터눈 티를 '아주 특별한 날'을 위한 장소로 꼽으니 차 애호가라면 홍차의 나라 영국에 와서 한번쯤 영국인들이 동경하는 장소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영국 에드워디안 시대의 럭셔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으므로 돈을 좀 미리 모아두어야 한다. 드레스 코드, 즉 복장 규정이 있으므로 껄렁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은 예약을 했어도 입장 불가다. 그럼 단정한 청바지는? 입장 불가다. 하여간 청바지, 반바지, 운동화, 이런 건 안 되고 남자들은 재킷에 타이를 매도록 권하고 있으니 방문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하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 홍차 애호가들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런던 버클리 호텔 아프터눈 티 이미지들.
그릇은 죄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디자인.




8. 리츠 호텔이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분들은 구글 검색창에 영어로 'Afternoon Tea in London'을 찍어 리뷰나 사진을 보고 적당한 곳을 선택하셔도 된다. 크던 작던 영국의 호텔들은 어느 곳이든 오후 4시 즈음해서 아프터눈 티를 내놓기 마련이니 사전에 알아보고 마음에 드는 곳 아무 곳이나 가면 된다. 호텔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도 아프터눈 티를 제공하므로 돌아다니다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왕립 공원인 <켄싱턴 가든> 안에 자리잡고 있어 찻상보다는 고즈넉한 주변 경관이 더 매력적인 <오렌저리Orangery>도 좋고, 쇼핑을 겸해 포트넘 앤 메이슨 꼭대기 층에 있는 티룸을 가도 좋고, 영국식 아프터눈 티에 프랑스적 터치가 가미된 <클래리지Claridge's> 호텔도 좋고, 상큼발랄 20대나 30대의 아가씨라면 <버클리Berkeley>호텔의 깜찍한 아프터눈 티도 좋을 것이다.


좀더 믿을 만한 선택을 하고 싶은 분들은 '영국차협회UK Tea Council'에서 매년 뽑는 리스트를 참고하셔도 되겠다. 올해 런던 최고의 아프터눈 티룸으로는 <브라운Brown's> 호텔이 뽑혔다. 매년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니 10위 안에 뽑힌 티룸이라면 어느 곳이든 수준과 비용은 비슷할 것이다. 아프터눈 티를 즐기고 난 후에는 뮤지컬 공연을 보시거나 음악회를 가시거나 각자 알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것.

 

 






 시골 마을의 작은 티룸 입간판




9. 사실 영국인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도심의 호화로운 호텔 아프터눈 티보다는 꽃이 만발한 시골 동네 아담한 티룸의 소박한 <크림티>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관광객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홍차를 즐기기는 쉽지 않을 터이니 런던에서 하루만에 최대한 많이 다닐 수 있는 일정으로 소개해 드렸다. 다시 동선을 정리하자면,

 



1. 트와이닝 (지하철 템플 역, 버스로는 자기 숙소에서 대법원 앞 지나가는 버스 아무거나)


2. 티팔레스 - 위타드 오브 첼시 - 티하우스 (트와이닝 숍에서 걸어서 코벤트 가든으로)

 

3. 해로즈 (코벤트 가든 지하철 역에서 피카딜리 라인 타고 다섯 정거장. 나이트브릿지 역)


4. 포트넘 앤 메이슨 (해로즈에서 길 건너 14번 버스 타고 왕립미술원 앞 하차, 맞은편)


5. 리츠 호텔 (해로즈에서 포트넘 올 때 버스 타고 온 방향으로 도로 200m 걸어가면 됨)

 


6. 아마드Ahmad는 티숍이 따로 없으므로 아마드 티를 구하고 싶은 분들은 런던 시내 도처에 널려있는 관광 기념품점에 가면 된다. '50% 세일'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붙여놓은 문구에 현혹되지 말 것. 일년 내내 붙어 있다. 똑같은 아마드 틴이라도 가게마다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 잘 비교해보고 사도록 한다.


 


- 시간 날 때 수퍼마켓에서 -

 








 동네 수퍼마켓의 홍차 선반 일부. 
양 옆과 위로도 한참 더 있다.




10. 대형 수퍼마켓에 가면 티숍을 갖춘 위의 브랜드들말고도 다른 이름있는 많은 브랜드 제품을 접할 수 있으니 수퍼마켓도 잊지 말고 들러보자. 특히 우유 타서 마실 수 있는 진한 '브렉퍼스트'류나 각 브랜드 고유 블렌드 홍차들, 예를 들어 <Yorkshire Gold> <PG Tips Special> <Jackson's of Piccadilly> <Tetley> <Dragon Fly> <Dilmah> <TickTock> <Typhoo> 등은 (너무 많아 여기까지만 열거) 수퍼마켓에서 티백 제품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값이 싸면서도 양이 많고 블렌딩도 잘 돼 있어 밀크티용으로 아주 좋다. 밀크티에 관한 한은 티백이 '느슨한 잎'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각 수퍼마켓의 자사 상품인 공정 무역 유기농 홍차들도 품질이 뛰어나다. 영국에서는 <테스코Tesco>나 <아스다Asda>,  <세인즈버리즈Sainsburys> 같은 대형 수퍼마켓 자체가 하나의 큰 홍차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홍차뿐 아니라 녹차에도 과일과 꽃을 첨가해 즐기므로 선반에 각종 가향녹차가 즐비하고 일본 녹차, 백차, 심지어 보이차 티백까지 다 있다. 브렉퍼스트 블렌딩용으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아프리카 케냐 홍차도 단독 제품으로 구할 수 있다.

 


11. 한국에 비해 영국은 우유, 버터 등 유제품이 특별히 맛있고 티푸드로 즐길 수 있는 비스킷의 품질도 훌륭하니 수퍼마켓 선반의 과자들도 눈여겨보자.

 


12. 냉장 코너에 가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 작은 포장을 하나 사고 빵 코너에서 고급 스콘을 사 숙소에서 밤에 몰래 먹도록 한다. 작은 딸기잼 한 병을 같이 사서 곁들이면 더욱 좋다. 클로티드 크림이 뭔고? 하시는 분들은 이전 게시물 중 <클로티드 크림>을 참고하시면 되겠다. 아래 사진에서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돌돌 야무지게 푼 것 같은 샛노란 크림이 바로 클로티드 크림이다.

 


이 게시물 외에도 그간 틈틈이 작성해둔 티숍과 티룸 방문기들이 있으니 같이 참고해서 보시면 도움이 될 듯싶다. 홍차 한 잔 끓여 셈틀 앞에 두시고 찬찬히 둘러보다 가시면 좋겠다.








 런던 클래리지 호텔 아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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